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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아서. 님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니알아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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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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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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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호질 21 - 가장 아름다운 꽃은

DUMMY

"웃기지 마라! 이 세상 모든 노비를 부리는 자, 첩을 들이는 자, 인간을 차별하는 자는 모두 동죄다! 모두 호해와 같은 나찰이란 말이야! 그 사실은 호원이 죽은 그날로부터, 전혀 불변하는, 절대 바뀔 수가 없는 세상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네놈 따위가 부정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사실이 아니란 말이다!"


황제는 진노했으나, 언샤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가 자신의 맏아들 히르카니아를 죽인 그날로부터, 황제와 그 살아남은 자식 사이에서 더 이상 대화와 타협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아무리 슬픈 과거와 사정이 있더라도 자신의 자식을 죽이고 수많은 무관계한 자들을 학살하는 자를 부모라 생각하는 자식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질 않는군. 완전히 미쳤어. 벽과 대화해도 이것보단 더 말이 잘 통할 텐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잖아."


언샤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진언을 올렸음에도 여전히 같은 논리를 반복할 뿐인 판테라 황제에게 그냥 질려버렸다.


그가 아무리 크게 분노하고 소리치더라도 공포 같은 걸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벽이 아무리 거대하고 압도적이더라도 고작 벽일 뿐인데, 벽을 보며 공포감을 느끼는 자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저러한 자가 이 나라의 황제이며 자신의 아버지라니, 오히려 저런 놈 때문에 평생 속앓이한 언샤 자신의 삶이 측은해질 정도였다.


"동생아, 대체, 대체 왜 죽으려 하는 거니. 대체 왜 살려 하지 않는 거니! 대체 왜 목숨을 건질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거냐고!"


황녀가 눈물을 흘리며 언샤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몰라! 그냥 좆같아서 더는 못 참겠으니 그런가 보지.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지난 10년간 광대 같은 황태자 노릇을 하며 성신도 보이지 못할 인내심을 보였다고. 참을 만큼 참았더니 이제 그냥 저딴 놈이 황제라고 설치고 다니는 이런 애미 뒤진 세상에 더 살기 싫어졌어.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고. 이 정도 이유면 충분히 된 거 아냐?"


이제는 그냥 될 대로 돼라였다. 완전한 객기. 죽음을 각오한 자. 더는 잃을 게 없는 자에게 이 세상에 더는 두려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그게 전부인가?"


황제가 말했다. 황제의 주변에, 희고 검은 두 가지 투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내면의 모든 분노를 담은 듯한 강렬한 투기였다.


"아니! 나 할 말 많거든! 진짜 억울해 죽겠네! 당신이 대체 뭐가 용기의 화신이야? 밖에서 우연히 우리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 당신 어릴 때 고작 자라 보고 놀라서 할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한참을 꼼짝도 못 하며 울며 불며 하던 세상 둘도 없을 겁쟁이였다며! 그런 겁쟁이가 대체 무슨 용기의 화신이란 거야! 나는 적어도 자라 보고 놀란 적은 없는데!"


"······. 그야말로 광대. 재앙 같은 주둥아리로구나. 그 목이 날아가는 그 순간까지 그 경박한 입으로 지껄여보거라."


"아니 광대는 내가 아니라 당신······."


언샤가 그렇게 말하려는 그 순간, 판테라의 몸 주변을 휘몰아치던 투기가 언샤를 향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파괴 그 자체인 힘이 그 몸에 닿으면 그 어떠한 강자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 분명했다.


그리고, 피가 튀었다.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그 몸이 압축되고 팽창하며 동시에 나선으로 휘감아졌다. 주변에 엄청난 양의 혈액이 튀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


날아간 머리가 어느 순간 원래대로 돌아와있었고, 주변에 튄 혈액은 마치 튄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 증발해있었다. 찢겼던 몸은 그냥 평범히 서있을 뿐이었다.


"아, 이 저고리! 마음에 들었는데 다 찢어졌잖아!"


휘둘러진 투기에 찢기고 부서진 것은, 은발의 소녀였다. 자칭 사랑의 여신 루카.

두 가지 권능을 갖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완전한 불사였다.


소녀는 언샤가 공격받는 순간 뛰어들어 그 공격을 자신이 대신 맞았고, 그래서 그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나. 그다음 순간 원래대로 돌아왔다.


참으로, 여신의 권능이라고 밖엔 부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판테라는 그 광경에 놀라, 자신이 아직도 몽환포영의 꿈속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가 그것이 아니란 걸 자각했다.


그리고 다시 여신의 몸을 투기로 갈가리 찢었다.


여신의 육체는 참으로 끔찍하게도 부서졌으나, 그다음 순간엔 또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있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를 않는 광경이었다.


"너는, 무어냐."


황제가 물었다.


"나? 나는 한참 전부터 여기 이 두 녀석과 계속 같이 서 있었는데, 그걸 이제야 묻는 것이냐? 참으로 무례하나 대답은 해주도록 하마. 나는 그대가 좋아라하는 저 하늘 그 자체인 일월성신 루카다. 그리고 그대가 바로 그 판테라렸다. 감히 이 하늘의 이름을 사칭하고 팔아먹은 데다가 자신을 천자라 부르며,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한 미치광이여. 나는 그대를 벌하기 위해 직접 강림한, 천벌이며. 동시에 그대의 파멸이니라!"


판테라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 하며, 그대로 옥좌에서 한숨에 달려 나와 작디작은 여신의 허리를 걷어찼다.


여신은 고작 그것만으로 정전의 창문을 부수고 날아가 정전 주변 담벼락에 처박혔다. 엄청난 굉음과 흙먼지가 퍼져나갔다.


"전능한 루카신이라는 것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판테라 황제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장애물을 지워버린 후, 자신을 모욕한 아들을 죽여버리기 위해 다시 그 권능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리고 여신은 그렇게 세게 걷어차였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어나 그 손을 언샤를 향해 뻗었다.


그것이 황녀와 여신이 준비해둔 2번째 계획이었다.



그 짧은 순간.


단 찰나의 순간이면 황제가 다시 자신의 권능을 휘두르고, 언샤의 몸이 고깃덩이로 변해버릴 찰나의 시간보다도 더 짧기에. 찰나보다도 더 짧아 수유(須臾)밖에 부를 수 없는 짧고도 짧은 시간 속에서.


여신의 권능이 그 힘을 발휘했다.


만능이라 불리던 천 개의 능력 중 여신에게 남아있는 건 단 두 개의 능력, 그중 하나인 불사는 이미 판테라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 발휘된 것이 두 번째 능력이었다.


두 남매에겐 쉽게 설명해 그저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라 말했지만, 여신의 두 가지 능력 중 나머지 하나의 정체는 실제론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 고대의 인간들이 호르몬이라 부른 것의 분비와 촉진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호르몬(ὁρμή).


이 시대의 인간들은 사람의 몸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생물의 온갖 내장 기관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다.


호르몬의 효과는 아주 단순하다.

호르몬은 생물의 모든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고 조종한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자유 의지이며 자신의 자아라고 느끼는 것은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며, 어쩌면 인간이 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가 이 호르몬일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호르몬은 생물의 생존과 정신 활동에 있어 중요한 물질이다.


그리고 여신은 그런 호르몬의 분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의 약해진 몸으론 여러 제약이 붙어 한 번에 한두 종류의 호르몬을 조종하는 게 한계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그것이면 충분했다.


여신이 언샤의 몸에 한 짓은 단순했다.

여신은 그저 언샤의 뇌에서 공포와 관련된 신체 작용을 일으키는 공포 호르몬, 콜티졸의 분배를 억제하고 사랑 호르몬, 옥시토신의 분배를 촉진했다.


옥시토신이란 무엇인가.

옥시토신이란 사랑 그 자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느끼는 연애 감정, 사랑, 성욕까지도 모두가 옥시토신을 필두로 한 화학작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언샤의 뇌에서 분비된 옥시토신의 작용에 의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도파민은 곧 아드레날린으로 변했다.


이는 본래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나, 여신의 권능은 그러한 과정을 있을 수 없는 속도로 가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드레날린의 작용으로 인해 언샤의 심박과 체온은 대폭 상승하고, 공포심이 마비되고, 신체는 본래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변했다.


그야말로 여신의 축복이자 강복(降福)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효과.

이를 받은 그 순간의 언샤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인간을 초월한 초인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이 모든 게 겨우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 단 하나의 효과였다.


이는 루카신이 가진 천 개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사랑의 여신 루카답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천 개의 권능 중 여신에게 남은 것이 하필 이것인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으리라.



백호는 지난 수십 년간 늘 해왔듯이, 자신의 것인 권능을 휘둘렀다.


본래라면 설호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허공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호는 그 청금석과 같은 두 눈을 푸르게 불태우며, 어떠한 위축도 거침도 없이 그 자리에 위풍당당히 서있었다.


두 맹호는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용기의 신의 권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리고 가장 용기 있는 자란, 가장 공포를 모르는 자를 의미한다.


백호는 공포를 모르는가?

그는 공포를 몰랐다. 몰라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공포를 안다.


자신조차 죽일 수 없는 여신의 존재를 직접 보았으며, 아내 호원이 낳은 세 아이가 모두 자신의 황좌를 노리는 위협이 되어 자신의 안위를 압박해왔기에.


공포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자신에게도 죽음이란 게 존재할지 모른다는 바로 그 감정 속에서 솟아오르는 미지의 존재였으니.


설호는 공포를 모르는가?

그는 공포를 알았다.

평생 동안 그 공포에 짓눌려, 호랑이에게 짓눌려 살아왔다.


그렇게 성장한 자신의 내면이 텅 비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텅 빈 존재는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면의 공(空)을 백성의 존재로 채우는 것으로 그 공포를 뛰어넘어 모든 걸 부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에 도전했다.


세상 제일 가는 겁쟁이가 공포를 모르는 패자에게 목숨을 걸고 도전한 그 첫 순간부터, 그가 인간이 아닌 신의 위업을 이루려 한순간부터.


이곳에 선 두 범 중 가장 용기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가장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는 법.


가장 용기 있는 자, 용기의 신 아슬란의 화신. 그것은 언샤 밖에 없었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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