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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여우의 서재입니다.

아저씨는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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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여우
작품등록일 :
2024.03.28 10:40
최근연재일 :
2024.07.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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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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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글자수 :
355,778

작성
24.04.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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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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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셀프 드립 커피

DUMMY

분식집 앞에서 기찬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제 저녁에 굽고, 빻아온 원두가루를 밀폐용기에 소분해서 한쪽에 놓고 거름망이며 컵을 내다 놨다.


어젯밤 아궁이에서 원두를 굽다가 얘기가 나왔었다.

소희가 학교가고 나면, 둘이서 분식집 장사 하면서 커피까지 내려서 판매하는 건 어려울 거라고.

원두 빻은 가루를 내놓고 손님이 직접 내려 먹게 하자고..


기찬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한가할 때 커피 손님이 온다면 물을 부어 내려주겠지만, 뭐 내리는 게 전문가가 아니니까, 혜영이가 했던 대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기다렸다가, 부었다가 더 붓더만.

그리고, 커피 내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걸렸고, 한번에 많은 분량을 뽑아냈었다.


지연이는 가게 오픈 전에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거름망에 원두 한 숟가락 퍼 넣고, 물을 부었다가, 기다렸다가 반복하더니..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서는 기찬에게 내밀었는데, 기찬은 한 모금 입에 물고는 고개짓을 하며 지연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오빠나 소희나 커피를 즐기기는 커녕 맛보는 것도 싫어하면서 무슨 커피 장사를 한다고 그러는지 몰라."


"너 커피 한 잔하고 종이에 써서 붙여 놔라."


기찬은 점심 장사거리가 늘었다며 가게 오기 전에 사온 토막 닭 봉지를 들고 가게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님과 약속한 대로 10인분의 닭볶음탕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커피가루를 거름망에 한 수저 담아 넣고, 물을 스스로 내려 마셔야 합니다'를 종이에 담아야 하는데..


[원두 한숟가락! 셀프 드립 커피!]


"오빠! 가격은? 그냥 2000원?"


지연이 가게 안에서 닭을 씻고 있는 기찬에게 물어봤으나 묵묵부답이다.

기찬은 말없이 고개를 위로 두 번 젖혀서 까닥여 주는 것으로 지연에게 일임한다는 뜻을 전했다.


"내가 주인 같다. 나는 여기 종업원이야. 왜, 머리쓰는 일을 내게 맡기는 거야."


지연이 말한들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


어제 숯불에 원두를 구웠고, 빻았고, 또 그걸 열기가 남아 있는 부뚜막 위 솥뚜껑에 밤새 널어놓고 아침에 담아 내온 원두가루다.

원두가루를 용기에 담는건 지연이 맡아 했다.


기찬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며 손을 낼 수 없었고, 지연이 소희를 깨운다니까 결사적으로 막아내서 할 사람이 지연 밖에 없었다.

안방에서는 소희가 진작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는데..

소희 더 자야 한다고, 생고집을 부려서.


지연이 생각하기에 잿물까지 마셔가며, 수 십잔의 서로 다른 커피 물을 마셔가며 테이스팅해서, 원두굽기 정도를 결정한 건 본인이다.

굽기 정도가 정해지자 가마솥에 원두를 때려 넣고 볶아서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아니 까맣게 타기 전까지 구워 낸 원두에서 나는 냄새에 취했었다.

냄새에 정신을 잃을 뻔 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지만.


극한 작업으로 내모는 두 사람의 짬짜미에 속절없이 당했다.


우리 소희 이제 잘 때 됐다며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엉덩이를 미는 오빠에게 소희가 말했었다.


아저씨랑 같이 자야지. 무서워서 어떻게 나 혼자 자?


그러고는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갑자기 아래로 떨구었다가 다시 올렸다 하는 연기혼을 보여줬다.

그러자 오빠는 졸고 있는 소희를 안아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그렇게 들어가 버린 오빠는 끝내 나오지 않았고, 마무리를 나 혼자 해내야 만 했다.


가마솥에 들어가 있는 볶은 콩을 꺼내고, 빻고, 솥뚜껑에 널어 놓고는 온돌방에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었었다.

아침 6시쯤 되자 자신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 오빠 성화에 일어나 원두가루를 담기까지..


이렇게 고생하며 만든 원두가루인데, 2000원은 아니다 싶었다.

가격을 3,000원으로 매기면 좋을 것 같은데..


안내 종이 위에 매직펜을 들고 가격을 얼마로 써 넣을지 장고에 들어가고 있을 때 지나가던 단골손님이 물어왔다.

근처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 그녀는 지연이 쓰고 있는 종이를 보더니만..


"이거 직접 내려 마시는 거예요. 재밌겠다. 한 숟가락에 가격은요?"


단말머리 그녀가 원두가루 한 수저를 고봉으로 담아 스텐필터 거름종이에 넣고는 지연을 쳐다본다.


"글쎄요. 지금 가격을 정하려고 하는데요. 얼마면 좋을까요."


단말머리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3000원이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지연이 바로 비어있던 가격란에 3,000원이라는 글자를 써 넣었다.


단발머리 공무원녀가 커피를 직접 내리자 은은한 커피향이 번지고 주위로 한 명이 더 다가왔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내려진 커피를 둘이 나눠서 종이컵 두 잔으로 가져가도 되냐며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려보지만 대답해 줄 이가 없다.


지연도 떡볶이 준비에 한창이고, 기찬은 김밥 속재료 준비하느라 바쁘다.

공무원녀가 두 종이컵을 들고 가게에 들어가서 지연과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두 번 끄덕이는 컨펌을 받고서 돈 3,000원을 바구니에 넣고..

종이에 글자를 몇 자 추가했다.


[원두 한숟가락! 셀프 드립 커피! 두 컵 OK!]


그리고는 종이컵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


분식집에 단골손님들이 들어와서 식사하고 나갈 때 마다 커피 얘기를 묻고 있다.

그리고,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에 테이블 당 한 사람이 빠져나와 돈 3,000원을 바구니에 넣고 커피를 내리고는, 두 명이면 종이컵 두 개, 세 명이면 종이컵 세 개에 따라서 나눠 마시고 있다.


"구수한데요. 신맛이 약간 느껴지고요. 고소한 향도 나고요."


"드실 만 하신거죠?"


손님의 시음평에 마셔볼 만 한 거냐고 되물어 보고는 커피 대화를 끝내는 기찬이고.

그러면 안되겠던지 지연이 홀로 나와서 이것 저것 손님과 말을 주고 받고 수첩에 메모도 하고 있다.


스텐 커피 필터를 씻어내주고, 커피 찌꺼기를 모아놓고, 종이컵을 채워놓고, 밀폐용기에 담아놓은 원두가루가 떨어지면 채워넣는 일이며, 커피 판매 관련된 일을 지연이 도맡아 하고 있다.

처음에 몇 번은 기찬에게 물어봤으나 올려 치는 고개짓을 받고는 아예 질문 자체를 삼가고 있다.


셀프여서, 처음인 손님들이 물어오지만 마땅한 답을 받지 못하자 핸드드립하는 여러 방법이 나오고 있다.

뜨거운 물을 와르르 부어 내리기도, 조금 붓고는 뜸들였다가 조금씩 부어 내리기도하고..

커피내리는 시간도 어떤 성미 급한 사람은 10초가 걸리기도, 1분이, 5분이, 10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찬과 지연은 노터치다.

뭐, 사실 말해줄 것이 없기도 하다.


기찬이 가스렌지 화구 하나를 밖으로 빼 놓고 들통을 올려놓고 있다.

어제 손님과 약속한 가정식백반 첫 번째 메뉴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고..

잠시후 커피 향과 더불어 닭볶음탕이 끓으며 내뿜는 냄새가 뒤섞이고 있다.


...


"아저씨 저 왔어요~"


혜영이 가게로 들어와 기찬에게 안기고 있다.

이제 기찬은 혜영이가 보이면 바로 양팔을 옆으로 들어주고, 그러면 바로 올라 타 안기는 혜영이다.


뭐, 와서 안긴다는데 말릴 건 없는 거지.

인사하는 것 뿐인걸..

소희 안을 때와 다른 맛도 나고..

소희보다 묵직하게 내 몸에 부딪치는 걸 보면 몸무게가 3킬로 쯤 더 나가는 것 같다.


"커피 장사는 셀프로 가는 거예요?"


"응. 방법이 없어. 둘이서 분식집 운영을 해야 하니까."


혜영이 원두가루며 스텐필터를 들여다 보고 테이블 위 상태를 보더니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장비들을 다 내려놓고 청소에 돌입한 것이다.


"혜영이가 오니까 든든하다. 누구 같지 않게 일머리가 있단 말이야."


"누가 인정 안해? 그 보다 인사한다는 핑계로 서로 안는 농도가 더 찐해지고 있는 거 알아요? 하체 밀착 그것도 초밀착에.."


그때 밖에서 끓고 있던 닭볶음탕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분식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서 오세요~"


"닭볶음탕 주문할 수 있는 건가요?"


"예. 스텐 볼에 밥을 담고 닭볶음탕을 얹어서 나갑니다. 가격은 5,000원이고요."


"주세요. 4개요. 떡볶이도 2개 주시고요."


손님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혜영이 종이에 글자를 써 넣고는 가게 벽에 붙여 놓았다.


[가정식백반 메뉴1. 닭볶음탕 밥 한그릇 5,000원!]


#


학교 운동장 계단 위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소희가 앉아 있다.

이제는 점심시간이면 지정석화 되어 가고 있다.


"지혜가 뭐라고 하든?"


"많은 얘기를 하던데.. 너는 다 듣기 싫어할거니까. 커피 맛은 향, 맛, 바디 느낌, 후미로 나뉘어진데."


바디 느낌이라.. 바디는 몸이고.. 느낀다라?

커피가 입속으로 들어가면.. 커피물이 바디이고, 그걸 느껴? 물인데?

후미는 뭐야? 뒷맛이라는 건가?

먹고 나서 뭔 맛이 있어? 다 먹었는데?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향, 맛은 알겠다. 바디는 뭐고 후미는 뭐야. 너 알아보지도 않고, 지혜가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막 갖다 붙이는 거지?"


소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서 올려보며 입을 옹그리고 있다.


"나는 지혜가 한 말을 옮긴 것 뿐이야. 아니지. 구구절절 말이 많았는데, 너 그런거 듣기 싫어하니까. 줄여서 말한거라고."


"은혜 너 나 무시하는거야? 그런 거야?"


"내가 너를 왜 무시해. 그건 누워서 침 뱉기지. 너나 나나 공부 안해서 머리 상태가 거기서 거기니까."


"지혜 그년이 말한 거 다 읊어 봐! 들어나 보자."


은혜가 말문이 막혔다.

뭐라 뭐라 기관총으로 총알을 쏘듯이 귀에 와 부딪쳤지만 머리속에 남아 있는 건 없다.


"지혜 그년?"


소희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잇사이로 내뱉어지는 서슬 퍼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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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 말대로 하세요 24.04.18 104 1 10쪽
» 셀프 드립 커피 24.04.17 99 1 10쪽
26 재는 털어내야겠다 24.04.16 104 2 9쪽
25 나보고 어쩌라고 24.04.15 111 3 9쪽
24 버팅기지 말고 너도 들어와 24.04.14 138 2 9쪽
23 별걸 다 욕심내네 24.04.13 126 2 9쪽
22 그게 왜 궁금해? 24.04.12 13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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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너희들 상상은 자유야 24.04.06 178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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