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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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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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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

DUMMY

해가 중천에 뜨고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거리를 거닌다. 아무리 시절이 하수선 해도 그들에겐 그들의 일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광경이다. 조금은 위축된 모습, 그리고 본래와 다르게 순찰을 다니는 병사들의 모습이 늘긴 했어도 평소와 같은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한 거리를 걸으며 장락원으로 향하는 정기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어젯밤 허염의 지시에 따라 천신영에게 서찰을 전한 그였다. 그리고 보답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 집 사랑방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과연 잘 나가는 집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대접을 잘 해주었다. 이부자리도 장락원에서보다 더 질이 좋았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대접을 해주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마도 정기 자신보다 정기의 뒤에 있는 허염에 대한 예의에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받는 당사자인 정기에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대접받는 입장에서 불평해선 안 된다고 여기긴 하지만 이건 참 아니다 싶었다. 대접이 과하다기 보다는 받는 입장인 정기 스스로가 어색해했기 때문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나? 역시 사람에겐 제각기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대접은 오히려 불편할 뿐이라는 걸 새삼 몸으로 깨우친 정기는 덕분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더군다나 아침 식사는 천인예가 직접 들고 오더니 정기가 식사하는 내내 곁에서 이를 지켜보았다. 여자가 곁에서 식사를 지켜본다거나 하는 일이야 장락원에서 지내다보면 거의 일상처럼 겪는 일이다. 미령이라든가, 화령이라든 하는 소녀들이 특히 그렀다. 그런데 그녀들이야 정기가 일상을 함께 해오는 이들이기에 익숙한 이들이니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헌데 천인예는 정기와 아는 사이도 아니고, 거기에 정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귀한 집 여식이다. 그런 분이 곁에서 지켜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어찌 알겠는가.

덕분에 소화불량까지 일어난 정기는 피폐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를 종종 걱정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기는 신경 쓰지 않고 장락원으로 향했다. 얼른 장락원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음은 장락원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졌다.

“너 왜 여기 있냐?”

정확히는 장란원에 있는 정기 자신의 방에 들어서서 이부자리에 당당히 누워있는 미령을 봤을 때 말이다.

“어······, 정기가 오는 밤을 기다리다 이렇게 됐어?”

“어째서 의문형?”

묻는 말에 대답치 않으며 미령은 잠깐 몸을 옆으로 움직이더니 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보아하니 피곤해 보이니까 어여 자.”

과연 편히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는 와중에 정기는 미령에게 갑자기 든 의문을 물었다.

“근데 널 누가 여기다 옮긴 거냐?”

미령에게는 다리가 없다. 양 쪽 두 다리가 사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그런 건지 장락원에 들어올 당시부터 두 다리가 없었다. ‘어머니’인 홍매화는 이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고 들여왔기에 다른 기생들은 그녀를 친 자매처럼 받아들이고 기생으로서의 기예를 가르쳐 주었다. 때문에 노래나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그녀이나 역시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다른 기생들이나 정기가 그녀를 직접 들어서 옮겨주어야 했다.

즉 현재 미령이 여기 있는 것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누구일지는 너무 짚히는 이들이 많기에 정기로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초향 언니 주도, 유화 언니의 허가, 그리고 희나리 언니의 실행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이루게 해줬지. 자, 어여 누워. 오늘은 평범한 밤이 아니게 될테니까.”

“이미 밤도 아니고, 무엇보다 난 그저 자고 싶을 뿐이야. 별다른 의미없이 순수히 자고 싶다고.”

“응. 내가 극상의 밤을 보내게 해줄게.”

“잠깐, 내 말 통하는 거 맞냐?”

이 상황에서 과연 잘 수가 있느냐에 깊은 불신을 품고 나가야 하나 하고 나갈까 고민하던 정기였다. 허나 여길 나간들 편히 쉴 곳은 없기에 그냥 자기로 했다. 엄청 피곤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미령이 이렇게 누워있는 건 그냥 장난치는 것 정도지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자, 어서 누워,”

한숨을 내쉰 정기는 대충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이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키득대는 미령을 애써 무시하고 편하게 갈아입은 정기는 쓰러지듯 이부자리에 누웠다. 익숙한 이부자리에 심신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며 정기는 눈을 감았다.

“잘 자, 우리 정기.”

묘한 분위기로 속삭이는 미령의 말을 무시하며 정기는 잠에 빠져 들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문틈 사이로 지켜보던 초향, 유화, 희나리 등은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엽다 여기며 키득거렸다.


이러한 장락원의 평화로운 풍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남영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장락원과는 거리가 좀 있는 건물의 높은 지붕 위에 올라와 있는 남영의 곁에는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평화롭군.”

[과연 이걸 평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참새에게서 흘러나오는 수문의 목소리에 남영은 킬킬 거리며 웃었다.

“평화는 평화지. 아, 물론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폭풍 전의 고요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지금 저곳 자체를 논하자면 평화야. 더군다나 거리도 말이지. 하기야 일반 백성들 입장에선 나라가 어찌 흘러가든 자신들의 생업이 안전하게 유지만 된다면 평화라고 여길 테지만 말이지.”

기운 넘치게 웃는 남영에게 수문은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지적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남영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 정기라는 아이는 그렇게 주목해볼만 한 건지요? 남영 그대와 조금 겨뤄볼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거야 대단하긴 한데 그렇게 주목해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느냐는 수문의 물음에 남영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답을 해줬다.

“그렇군. 확실히 저 소년은 허염의 종자라는 것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찾아내긴 힘들어. 현재 저 소년을 둘러싼 환경과 실력은 허염의 종자라는 쪽지가 붙기에 가치를 발하는 것이라 할 수있지.”

그 말에 수문은 무언(無言)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말이야. 가끔 난 느껴진단 말이지. 뭐랄까, 오래 살아서 생긴 직감 같은 거? 원채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무언가 재미있는 구석이 느껴졌거든. 가능성이랄까?”

[가능성 말씀이십니까.]

“그래, 가능성.”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곰씹어보는 남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참으로 가치가 있는 소년이라고 할 수 있지. 아마도 본인도 눈치를 채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야. 허나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단 말이야.”

[저 소년이 말인가요?]

“뭐, 지금은 그리 그 가능성을 개화시키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허염이라는 그늘이 저 소년의 가능성을 잠재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허염과 맞서실 생각이신가요?]

수문의 걱정이 말로써 남영에게 전해져 왔다. 무리도 아니다. 아무리 은퇴를 하기는 했지만 허염이라는 존재는 결코 무시할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교활한 늙은이와 잘못 맞서다가는 홍매화와 저 기방의 기생들도 상대하게 될 거야.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

[하오시면.]

“지금은 좀 지켜봐야지. 서두를 건 없어. 사태는 지금부터 시작이니 말이야.”

여유로운 태도로 말하는 남영의 모습의 수문이 한숨을 쉬었다. 사태가 점차 커지고 있는 와중에도, 그리고 그 사태의 심각성이 큰 와중에도 스스로의 쾌락을 위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걸친 남영의 태도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남영을 크게 제지치 않고 함께 이 일에 끼어드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도 섞여 있었다.

이를 눈치를 챈 남영은 수문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참새를 바라보고 웃었다. 소리죽여 웃으며 참새를 쓰다듬는 남영의 태도에 수문은 묘한 포기감을 보여주었다.

“아, 그러고보니 무천군은 어떠하더냐? 오늘 아침 저 장락원을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 것 같은데.”

[예. 추적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자신을 보는 눈이 있는 걸 아는 모양인지 집으로는 좀 복잡한 길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의 경계가 강하기에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건 확실합니다.]

“흐음······.”

[다만 특기할 만한 일로 몇몇 대신들이 그의 집으로 먼저 도착한 걸 확인했습니다.]

“음?”

수문의 보고에 남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정당문학 서양필, 중서평장사 문경신, 좌복야 진무숭, 우복야 남필주, 예부상서 이승필, 지문하성사 김부선, 응양군 상장군 김지순, 그리고 신명군 등입니다.]

전부 무천군의 일파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어찌할까요?]

“아무래도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확인키 어렵겠지?”

[예. 경계가 원채 삼엄해서 말이죠.]

“알았어. 일단은 거리를 두어서라도 지켜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거 진짜 재밌게 흘러가기 시작했군, 그래.”

소리를 죽이긴 했지만 기쁨에 찬 웃음이 남영의 입에서 넘쳐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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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3) 18.02.25 169 1 9쪽
5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2) 18.02.19 171 1 11쪽
»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 18.02.11 143 1 10쪽
5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1) 18.02.04 166 1 10쪽
56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0) 18.01.28 16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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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4) 17.12.16 181 2 9쪽
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1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0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37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 17.09.09 262 3 10쪽
36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6) 17.09.01 216 3 8쪽
35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5) 17.08.25 258 3 10쪽
34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4) 17.08.19 339 3 10쪽
33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3) 17.08.13 281 2 9쪽
32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2) 17.08.11 31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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