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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31,963
추천수 :
232
글자수 :
523,721

작성
17.06.28 01:39
조회
2,954
추천
10
글자
8쪽

서문(序文) : 회상

DUMMY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늘은 붉게 물든 노을이 가득 메꾸고 있었고, 땅 역시 하늘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만 그건 사람들이 감탄하고 찬양하는 저녁노을의 붉은 색이 아닌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붉은 색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평화롭고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항상 똑같은 얼굴과 말로 나를 대해주던 가족과 이웃,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한줌의 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 붉은 색 중심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숨을 내쉬려 해도 주위를 가득 메꾼 화마(火魔)의 열기에 의해 숨을 내쉴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내 옆구리에 박혀 검붉은 내 생명을 땅바닥에 흘러내리게 만드는 이 화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때 나에겐 더 이상 숨을 내쉴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대는 무얼 원하는가.”

그랬던 바로 그 날, 여인은 그렇게 물었다.

“무얼 위해 살려고 하는가. 무얼 위해 생(生)에 집착하는가. 무얼 위해 이리도 힘을 원하는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순수하게 의문을 담은 여인의 질문에 내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가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모르겠다.

“모른다?”

그래.

“모르다니······. 흠,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도와야할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하는가.”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살려줘. 아니, 힘을 줘.

“힘? 헌데 그 힘은 도대체 왜 원하는가.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데, 이 지옥을 벗어나는데 굳이 힘이 필요한가. 그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지도 몰라. 아니, 그게 당연한 걸지도. 그렇지만 아니야. 내겐 아니야. 내겐 힘이 필요해. 살아가고자 하는 힘이!

“그러니까 그 힘을 얻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없는가. 대답을 못한다는 건 마땅한 이유는 없단 거로군.”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살고 싶어. 그 이유도 몰라. 그냥 살고 싶어. 이유는 모르지만 살고 싶어. 그러기에 힘이 필요해. 아니, 힘이 필요한 이유도 몰라. 그저 힘을 얻고 이 세계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

“혼란에 빠져 답을 못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힘만 탐하는 건가.”

여인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읊조렸다. 한껏 여유가 담긴 그 태도 속에 알 듯, 모를 듯 자그마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이 만남과 선택이 세상을 재앙으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구원으로 이끌 것인지 모르겠군. 허긴 그저 아무런 변화 없는, 그저 그럴 뿐인 운명인지도 모르지.”

그러고서 잠시 침묵을 갖고는 손에 든 지팡이를 고쳐잡으며 여인은 나를 바라보며 홀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건 분명한 건 그대에겐 커다란 운명의 전환점일 것이야.”

그건 분명히 내게 있어 구원의 말이었다.

“그대를 구해주지. 그리고 힘을 주지. 뭐, 정확히는 그대가 힘을 얻게 도와주는 것이지만 말이야.”

땅에 내리찍은 지팡이 위로 검은 먹구름이 몰려 들기 시작했고, 땅은 어느새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내 옆구리에 박혀서 내 생명을 몸 속에서 끄집어내던 화살을 통해 전해지는 아픔이 점차 사라져 갔다.

“자, 그대를 구원해주겠네, 나의 새로운 제자여.”

그게 나와 그녀의 만남이었다.

그 뒤에는 참 힘겨운 나날이 이어지긴 했다. 애당초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막연히 힘을 원한 내겐 신비로우면서 익숙치 못한 나날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랬을 나날이지만 내게는 그 익숙치 못함이 힘겨운 나날을 의미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숨쉬는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붙고, 규칙이 있었다. 그리고 들어보기는커녕 생각지도 못한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나는 막연히 얻고자 했던 힘을 하나둘 얻어갔다. 그녀, 그 날 이후로 스승님이라 부르게 된 여인은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런 그녀, 그러니까 스승님에게 나난 짜증도 내고,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 대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싱글싱글 웃으며 여유롭게 받아치면서 상대하는 스승님이었다. 결국 난 포기하고 투덜대면서도 스승님이 시키는 수행을 받아들였고, 명령 역시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수행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수행과 명령이행에 있어 높은 성과를 내던 나를 스승은 다른 제자들보다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와 스승님 사이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스승께 물어봤지. 왜 그날 그냥 도와주지, 뭣 때문에 살고자 하는 이유를, 힘을 얻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봤냐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더군.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망에 빠져도 이상치 않은 상황에선 스스로의 본성이 잘 드러나게 되지. 그런 상황에서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그 사람의 본성의 일부, 경우에 따라선 그 전부를 엿볼 수 있는 파편들이 담겨있어.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사람이 진정 힘을 얻었을 때 그릇된 길을 가는지, 가지 않는지 알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물어본 거야. 무얼 위해 살아남으려 하고, 무얼 위해 힘을 원하느냐고.’”

그 날의 대화가 떠오르면서 무심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드러누운 지붕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계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상황에서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힘을 원한 건 나뿐이라더군. 도대체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힘을 원한 놈은 나뿐이라더군. 똑같은 말이라도 다른 녀석들은 그 말에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지닌 목적이 표정이나 어투에 섞여 나오는데 난 아무것도 없었대. 그래서 이 녀석 도대체 뭘까 하는 마음에 날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쳤다고 하더군. 근데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서 뭔 생각을 갖고 얘길 떠들겠어. 그런 놈 있음 대단한 정신력 가진 놈 아니거나 태생이 이상한 놈이겠지. 아님 그냥 내가 이상한 놈이었던 건가?”

“글쎄요. 적어도 제겐 당신은 소중한 은인인걸요.”

“그래······.”

내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소녀의 미소와 하늘을 바라보던 눈을 감고 다시금 그 날을 떠올려 본다. 한순간에 지옥에 떨어지고 다시금 극락을 꿈꾸게 만드는 스승을 만났던 그 날을.

고요히 바람소리만이 들리고, 가끔씩 바닷새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게 방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나를 찾는 하인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은 마음이었다.

“찾으시는데요.”

“······.”

소녀의 말에도 반응치 않으며 자는 척하려 했으나 방해음은 계속 이어진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어디 계십니까!”

“그냥 무시하실래요?”

“······.”

“주인어른, 손님이 오셨습니다! 주인어른!”

무시하고 놔두자니 신경쓰이고, 또 어차피 소음은 이어질테고, 뭣보다 나중에 잔소리 듣기도 귀찮다.

“······젠장. 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

투덜대며 몸을 일으키는 나에게 소녀는 아쉬운 눈으로 쳐다본다.

“하여튼 낮잠 좀 자려는데 꼭 저래요.”

“그러면 그냥 무시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랬다간 나중에 혜민, 고 녀석에게 잔소리만 실컷 듣게 돼.”

슬슬 일어나며 기지개를 펴본다. 나를 찾는 저 소음만 아니라면 웬일로 고요했을 지금 이 시간, 그리고 지금 이 장소. 정말 평화롭기 이를 데 없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할 일이란 게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야. 가자.”

“예, 남영님.”


작가의말

태평도령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긴 하지만 재밌게 봐주셨음 합니다. 그리고 댓글 만이 달아주었으면 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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