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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1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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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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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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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0)

DUMMY

그렇긴 하다고 남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기는 남영이 자신 쪽에게 다가오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남영에게 겨누었다.

“칼 거두거라. 지금 이 시절에 괜히 거리에서 칼 뽑았다간 금오위에 끌려가는 수가 있어. 그랬다간 허염은 둘째치고 홍매화에게 큰 화가 갈 것이다.”

장락원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여성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왔다는 상황에 정기와 화령은 놀랐다.

“그 녀석과는 오랜 지인이라서 말이지. 그럼에도 왜 기방에서 그런 난리를 벌였냐고 한다면 첫째는 그 금오위랑 선랑이 괜히 내게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냥 장난삼아 한 번 놀아볼까 하는 심보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해두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풀어낸 남영은 놀라서 잠시 멍 때린 정기와 화령의 옆을 그냥 휙 지나가 버렸다. 그제서야 정신 차린 정기와 화령이 뒤돌아보았으나 남영은 그 둘을 쳐다도 보지 않으며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에 대해서는 홍매화에게 직접 물어봐라. 내가 내 이름을 굳이 알려줘야 하는 이유도, 의무도 없기에 해주지는 않으마. 딱히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자세한 건 홍매화에게 물어 보거라. 알려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는 그냥 걸어가는 남영이었다.

그런 남영의 뒤를 묵묵히 쳐다보던 정기의 어깨를 화령이 툭툭 쳤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낸 화령은 남영을 바라보던 정기의 어깨를 툭툭 치며 길을 재촉코자 했다. 그러자 정기는 갑자기 품속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더니 그대로 남영을 향해 던졌다.

정확하게 남영의 뒷통수를 향해 날아간 단검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서 “탕!”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무서운 소년이로군. 과연 넌 사냥개가 아닌 호랑이야.”

자신에게 단검이 날아왔다는 사실에도, 그리고 그걸 던진 이가 자신이 지나쳐온 소년이라는 사실에도 남영은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었다. 그런 남영의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장면을 뭐 하나 빼놓지 않고 본 화령이 정기의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얌마,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것도 어머님의 지인에게.”

“넌 몰라도 돼. 그런게 있어. 그보다 저거 뭘 어떻게 하면 보지도 않고 막아낸거지? 뒤에도 눈이 달렸나?”

“야!”

“됐고. 넌 그냥 기방으로 돌아가라. 아, 말로만 해선 안 갈테니 가자.”

“아, 싫어!”

“반항하지 말고!”

“싫. 다. 니. 까!”

있는 힘껏 반항하는 화령을 끌고 장락원으로 향하면서 정기는 남영에 대해 떠올렸다.

이름이 무엇인지,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엄청난 실력의 무술과 도술을 부릴 수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아는 한 이 장경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물론 장락원의 그 “어머니”인 홍매화라면 어느 정도 상대해볼 만 하다고 생각은 드나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상대할 만한 실력이라도 이긴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인물이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장락원에까지 모습을 드러내 깽판을 벌인 건 허염이 벌이는 일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되어 있는 정기 자신과도 아예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말이다.

정말 귀찮아졌음을 느끼며 정기는 반항을 하며 어울리지 않게 떼를 쓰는 화령을 질질 끌며 장락원으로 향했다.


한편, 장락원에서 무천군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천군이 팔을 올려놓은 책상 위에는 남영이 건네준 서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누구의 출입도 허가치 않은 상황에서 무천군은 그 서찰을 말없이 노려볼 뿐이었다.

“······.”

이를 꽉 물면서 무천군은 서찰에 쓰인 내용을 되세겨 보았다.

서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남영 어른께 동궁환관 이주신이 아뢰오.

일개 상단을 이끄는 데 불가하다는 그대에게 이런 글을 보내신 데에 조금 놀라셨을 수 있소. 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오. 각설하고, 다름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기에 이렇게 서찰을 보내오. 그대도 알고 있다시피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고 신료들과 백성들의 근심은 하루하루 늘고 있소. 더군다나 폐하의 병세도 심각하여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는 실정이오.

이런 상황에서 태자전하께선 총명하시고 자질도 훌륭하시오나 이 나라의 대신이란 것들은 그런 전하의 자질을 방해하고 있소. 내 이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고, 전하의 자질을 침해하는 이들을 모두 제거하고자 하니 남영 어른께서 도와주셨으면 하오. 일이 성공한다면 마땅히 귀공과 귀공의 수하들에게 큰 덕이 있을 것이오.』

즉 자신을 비롯한 힘 있는 대신들을 전부 제거하고자 하니 남영에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태자를 모시는 동궁환관이라는 사람이 말이다. 이 배후에 태자가 있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무천군으로선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다. 비록 이 서찰에 대신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을 뿐 무천군 등을 딱 꼬집은 건 아니나 분명 무천군 자신이 여기서 제거코자 하는 이들 중 하나로 되어 있는 게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무천군의 막내인 진의전에 대한 것이다.

일단 자신의 아들이고, 어린 나이에도 선랑으로 뽑힌 만큼 기대를 하여 일을 맡겼으나 초정회에 이렇게 중요한 서찰이 전해지는 동안 아무런 보고 없었다는 건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보고치 않은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불미스런 일로 인해 보고치 못한 것인지 알 수는 없기에 섣불리 판단은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 일을 분명히 하여 주의를 주거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진의전을 방해한 이가 만일 동궁에서 부리는 인물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나름 무술도, 도술도 중간이상은 해내며, 법보까지 지닌 선랑을 상대할 이가 동궁에 있다는 것은 무천군에겐 경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어쩌면 이 일은 조정의 풍파만이 아니라 무천군 자신의 신변에도 심각한 위험이 초래할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이 서찰이 너무나도 눈에 밟혔다.

제거라는 글자가 떡 하니 적혀있는 서찰은 분명하게 무천군의 목에 칼끝을 들이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를 막지 못한다면 차후 무천군의 집은 쑥대밭이 될 게 자명했다.

“칼춤이라도 추어야 하는 일이 된 걸지도 모르군.”

어디선가 남영의 웃음소리 같은 게 들리는 기분을 느끼며 남영은 책상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한 번 쯤은 하고 넘어갈 일이긴 했지. 허나 이런 식으로 내 목에 칼을 겨누겠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인물이라 여긴 건가? 그거야말로 오산중에 오산이지.”

이를 으득 가는 무천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나저나 남영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를 으득 갈며 분기를 끌어올리던 중 문뜩 무천군은 남영을 떠올렸다. 당당히 자신에게 이 서찰을 넘긴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서찰을 넘긴 것인지 순간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찰은 사실 없었고, 자신은 남영이나 그를 사주한 누군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지략이 풍부한 허염이나 남영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던 참지정사 최염계, 자신과는 정적관계는 문하시중 천신영일 가능성이 높다. 제3의 인물일 수도 있고, 이 서찰을 전했다는 이주신이나 태자도 의심이 갔다.

오랜 정치생활 속에서 여러 정적과 충돌해온 무천군으로선 지금 자신이 칼을 뽑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인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불안함으로 이어졌고 결국 제 손으로 서찰을 구겨버리고 말았다.

“이러다가 그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재롱이나 피는 원숭이 꼴이 나겠군.”

남영이라는 남자에 대한 불쾌감이 치미는 와중에 무천군은 다시금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과연 이 다음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던 무천군은 책상 서랍을 열어 부적 하나를 꺼냈다. 그 부적은 무천군의 차남인 진의겸과 연락을 주고 받는 데 쓰는 부적이었다.

부적을 손가락으로 몇 번 튕기자 희미한 빛이 나더니 이윽고 진의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시옵니까, 아버님?]

“당장 네가 사람을 좀 모아주거라.”

[사람을요?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정당문학 서양필, 중서평장사 문경신, 좌복야 진무숭, 우복야 남필주, 예부상서 이승필, 지문하성사 김부선, 응양군 상장군 김지순, 금오위 상장군 한순, 그리고 신명군, 이렇게 말이다.”

다들 하나같이 무천군의 당파 중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즉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모이라고 전할까요?]

“내일 정오쯤에 모이라고 전해라. 나도 갈터이니 준비 잘 해놓고.”

[알겠습니다.]

“아, 그렇지.”

무천군은 연락을 마치려다가 급히 생각이 난 것을 말했다.

“당장 선랑 중 실력 좋은 놈 하나를 급히 의전이에게 보내거라. 아무래도 혼자로는 버거울 수 있으니 말이야. 만일 뭔가 있으면 급히 연락을 하라고 이르고.”

[? 알겠습니다.]

무천군의 명령을 충실히 시행하겠다는 의사를 진의겸이 전하는 것으로 끝으로 연락은 끊겼다.

무천군은 부적을 다시 집어넣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이런 서찰이 나온 시점에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움직이기로 했던 것이고 그 행동의 시작시기만 달라졌을 뿐이다.

“칼춤이 추도록 하지. 허나 그건 그대를 위한 행동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할 것이오. 결국 웃는 것도, 모든 걸 쥐는 것도 바로 나니까.”

귀에서 묘하게 맴도는 남영의 웃음소리를 지우듯이 무천군은 그리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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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1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0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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