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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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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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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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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1)

DUMMY

그 날 밤, 문하시중 천신영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오늘밤 손님이 올 거란 건 알고 있었으나 어떤 손님이 올지에 대해선 천신영은 모르고 있었다. 대신 그 손님이 누구에 의해 온 것임을, 어떤 목적으로 온 것인지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아니, 알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왜냐면 그 손님이 오기를 바라고, 오게 만든 건 바로 천신영 자신이니 말이다.

천신영은 자신의 집의 자신의 방에서 딸인 천신예와 집사 지영과 함께 손님을 마주했다. 손님으로 온 이는 언뜻 봐서도 자신의 딸인 천신예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는 소년이었다. 비록 어려보이는 손님이기는 했지만 대강보이는 그 모습에서 역시 보통의 인물로 보이지 않아 보였다.

이 소년의 이름은 정기. 바로 천신영이 찾아간 허염이 부리는 소년이자 현재 장락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소년으로, 오늘 낮에 허염의 부탁으로 받은 서찰을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어두워진 밤에다가 이렇게 고요한 분위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정기는 어색한 헛기침을 작게 하면서 자신이 건네준 서찰을 읽는 천신영을 살펴보았다. 책상 위의 촛불의 불빛으로 서찰을 묵묵히 읽고 있는 천신영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적었기에 이러는지 알 도리가 없는 정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에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천인예의 존재가 한몫하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는 것 같이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시선은 뭔가 불편함을 넘어서 거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기로써는 집사 지영처럼 그냥 눈이라도 감거나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었음 했다. 덕분에 정기는 자신의 몫으로 놓여진 차와 과자에 손 하나 대기가 힘든 판국이었다.

“아, 마셔도 되네. 자네를 위해 준비한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되네.”

정기가 다과에 손을 대지 않은 걸 안 천신영이 빙긋 웃으며 다정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아, 예······.”

대답을 하며 찻잔을 들어 마시는 척을 하는 정기였으나 당장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잘도 이런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다며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결국 거의 마시지 않은 찻잔을 내려놓는 정기였다. 당연히 그런 정기를 천인예는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그 시선과 마주치지 않도록 정기는 애써 눈을 피하며 과자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분명 맛있는 과자인 게 분명하나 이런 거북한 분위기 속에선 맛도 나지 않았다.

불편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던 와중에 천신영은 서찰을 내려놓았다. 골치가 아프기라도 한지 미간을 잠시 만지던 그는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소가 향하는 정기가 긴장을 잔뜩 하자 천신영은 다정히 말을 건넸다.

“수고했네. 피곤할 터이니 오늘밤은 여기 손님방에 묵고 가도록 하게.”

“아, 아닙니다.”

“밤도 늦었고, 요즘 시국이 어수선한데다 금오위도 많이 날카로우니 쉬도록 하게. 내 불편하지 않게 해주겠네.”

“아닙니다. 저 혼자 돌아갈 수 있으니 걱정치 않으셔도 됩니다.”

“허 대부께서도 자네가 피곤할 터이니 내 집에서 쉬게 좀 해달라 서찰에 얘기해 주었으니 사양치 말게나.”

“감사합니다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

웃고는 있으나 속으론 허염에 대해 온갖 욕설을 퍼붓는 정기였다. 지금 이 자리가 불편해 미치겠는데 이 불편한 공간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면 과연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허 대부에게 전할 것이 있어서 그러네. 그런데 그걸 지금 당장 전할 수 없네. 아무래도 빨라도 일단 아침에 전하게 될 거 같으니 하룻밤 머물도록 하게나. 그러니 편히 쉬게.”

이 이상 거절하면 오히려 좋은 인상은 물 건너가는 게 분명하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기는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허염을 들먹인 시점에서 거절할 방도는 없었다.

“이보게, 집사. 손님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잘 해주게나.”

방금까지 눈을 감고 말없이 서있던 지영이 눈을 딱 뜨고는 정기로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에 움찔한 정기가 일어서자 지영은 재빠르게 방문을 열었고 정기는 그 뒤를 따라 방밖으로 나가고자 했다.

“오늘밤 푹 쉬게.”

“아, 예······.”

어색한 미소로 답하며 정기는 지영을 따라 나갔다.

정기가 지영을 따라 밖으로 나가자 천신영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런 천신영을 향해 천인예는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며 떠듬떠듬 말을 건넸다.

“···괘, 괜차···안 스, 습···니···으시, 신가···요···?”

“괜찮다. 걱정말거라.”

지친 미소를 지은 천신영의 손아래에 놓인 서찰에 천인예의 시선이 닿았다. 천신영은 천인예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대부의 서찰이 문제가 아니란다. 일단 내가 원하는 답이 나왔으니 말이야.”

“···그, 그···러···엄······.”

“그저 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그런단다.”

스스로 헛웃음을 터뜨린 천신영은 스스로의 이마를 짚었다.

일단 대내외적으로 숨기고는 있지만 임금의 병환은 점차 심각해져 가고 있다. 거기에 중신들을 상대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으로 여러 주요 인사들이 살해당했다. 거기에는 사촌이자 상장군에 올라있던 천신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어수선한 시절 속에서 무천군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의 움직임도 심상치는 않다. 임금의 지지 아래에서 천신영이 주도해온 개혁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부딪쳐온 그들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치 않을 수 없으며, 천신영이 고명딸인 천인예가 선랑에 뽑힌 일에 반대치 않은 것도 그녀를 통해 무천군을 감시코자 하고자 했던 것이다.

최근 기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무천군은 자신의 아들을 비롯한 선랑을 움직여 금오위의 수사에 개입하고, 초정회라는 상단을 감시하면서 접촉하기 시작했다. 무천군이 은밀하게 활발하는 활동을 견제코자 하는 측면에서, 그리고 지원세력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천신영은 딸인 천인예의 도움으로 초정회에서 서찰을 전하고, 허염에게도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임금의 병환이 악화됨에 따라 천신영에게 칼을 가는 무천군 일파의 움직임이 더더욱 활발해졌다. 겨우 서찰을 보낸 초정회 측에서는 특별히 대답을 보내지 않았고, 오히려 수장인 남영이 무천군과 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정치적 동반자에 해당하는 최염계 쪽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도움을 보내주지 않는다. 거기에 천신종의 보고에 따르면 동궁소속 환관들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허염이 정기를 통해 협력을 하겠다는 의견을 보내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허염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한 마당에 천신영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이 붕어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심에 빠진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천인예는 뭔가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그저 머뭇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위로를 해줄 수 있는지 그녀로선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럴 때 거칠 것 없는 훌륭한 조언을 꺼낸다는 최화련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함부로 조종하여 일을 꾸몄단 사실을 그녀도 알 터인데, 그녀에게 어떻게 사죄를 해야할지 걱정이 태산이 된 천인예도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걱정이 있나 보구나.”

“아, 아니···닙니다······.”

부정하는 그녀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준 천신영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파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아무래도 우리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수밖에 없는가.”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리는 천신영은 병으로 고생하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태자와 이 나라를 부탁하는 임금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임금에 대한 보답을 위해 일해왔고, 드디어 그 결실이 다가온다는 걸 느낀 그였으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결코 그런 일만큼은 피하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한 그이기에 이를 악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필요를 느꼈다. 허나 이런 그를 도와줄 인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지금까지는 임금의 지지와 정치적 동반자인 최염계의 협력으로 잘 해왔으나 지금은 그 도움을 받기 힘들어졌다.

그렇다 하여 그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때문에 초정회, 허염 등 정치판과 거리가 멀거나 멀게 된 인물들에게도 손을 내민 것이다.

이런 천신영의 각오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창의 틈 사이로 달빛이 비쳐 들어왔다. 환한 달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안 그는 오늘은 달이 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 달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천신영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딸에 천신영은 미소와 함께 제안했다.

“오늘은 달이 무척이나 밝은 모양이구나. 모처럼이고 하니 부녀간에 같이 달이나 즐기며 얘기 좀 나눠보자꾸나.”

갑작스런 제안에 고개를 갸웃거린 천인예는 이내 떠듬거리며 승낙을 말을 꺼냈다.

천신영은 천인예와 함께 방밖으로 나오며 정기에게 방을 안내해주고 돌아온 지영에게 다과를 준비해 마당에 마련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올라다본 달은 예상대로 참으로 크고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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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1) 18.02.04 166 1 10쪽
56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0) 18.01.28 16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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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4) 17.12.16 181 2 9쪽
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1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0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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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3) 17.08.13 281 2 9쪽
32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2) 17.08.11 31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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