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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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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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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4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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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8)

DUMMY

“재밌는 손님이요?”

“문하시중 천신영이다.”

문하시중 천신영. 현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 一人之下)라고 할 수 있는, 신료들 중 으뜸의 자리인 문하시중에 오른 인물이다. 성품도 일품이고, 재능도 일품인지라 여러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는 하지만 여러 개혁적인 정책들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기존 특권을 장악하던 일부 세력을 적으로 돌리기도 했다.

“아무리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정에는 그의 사람이 많지. 게다가 그의 인척인 천신종은 태자사부의 자리에 앉아 있는 만큼 태자전하의 측근이며, 그 외동딸은 선랑이 되어 주목을 받고 있지. 거기에 얼마 전 죽은 용호군 상장군 천신무의 사촌이기도 하니 그 명성에 어찌 부족함이 있겠느냐.”

“아, 예······.”

구구절절이 천신영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허염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정기는 맞장구쳤다. 분명 허염의 말대로 천신영이 대단한 인물이기는 하나 도대체 어째서 이 시점에서 허염을 방문했는가 의문이 갔다.

“의문이 가는 건 이해는 간다. 이 시점에서 날 찾아왔다는 건 분명 정치적 의논이 분명한데 어째서 정치적 동지인 참지정사 최염계를 찾아왔어야 하는데 말이다.”

마치 정기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태도의 허염이 불쾌하게 느껴진 정기였으나 내색치 않았다.

“바로 그 이유란 것이 상당히 재미있기에 그런 것이다.”

“아, 그러신가요.”

대충 답하기는 했지만 정기도 내심 흥미롭기는 했다. 뭔가 허염에게 물드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분명 흥미로운 부분임은 분명했다.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가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닌 화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를 마시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 화령을 무시한 채 정기가 물었다.

“확실히 의문이네요. 도대체 뭐가 있는 거죠? 그거 혹시 요즘 일어난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래.”

즉답을 한 허염은 어느새 빈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금 차를 따르며 말했다.

“천신영 본인의 말로는 그렇다는 것 같더군.”

“같다?”

“본인도 아직 확답을 내리지는 못하는 입장이나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듯 하구나.”

차가 가득한 찻잔을 드는 허염을 정기는 말없이 바라봤다. 문하시중되는 사람이 확답은 없어도 뭔가 짐작이 간다는 말을 했다는 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이미 은퇴하고 퇴물취급 받아도 무방한 허염에게 와서 했는지 의문이었다.

“설마······.”

정기는 뭔가 짚히는 것 같아 스스로 생각에 들어갔다. 화령은 그런 정기를 흥미로이 쳐다보더니 본인도 뭔가 생각해보려는 눈치였다. 두 소년소녀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허염은 가볍게 웃고는 말을 꺼냈다.

“그래, 천신영 그자는 너와 장락원의 존재에 대해 뭔가 아는 눈치더구나. 명확하게 전부 아는 건지 그거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예?”

놀란 정기와 달리 여유로이 차를 한 모금을 들이킨 허염은 말을 이었다.

“과연 허투루 문하시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더군. 역시 훌륭해. 그렇지만 그런 무력 정도 밖에 쓸 수 없는 이 늙은이를 찾아온 걸 보니 여간 급한 일 아니면 내가 그만한 쓸모가 있는 모양이더구나.”

“무력밖에는 무슨.”

껄껄 웃는 허염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본 정기는 잘 알고 있었다. 이 허염이라는 노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인물인지 말이다. 평소에는 별거 없어 보이는 노인이나 실상은 과연 오랫동안 정치계를 살아온 요괴라고 평할만 했다.

“어찌 되었건 본론을 말하자면 천신영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더구나. 아무래도 내가 부리는 너는 신분상 자유로운 입장이니 말이다. 마침 경계해야할 인물이 있으니 말이다.”

“연쇄살인범들요?”

현재 장락원 한 방에 누워지내는 소녀를 떠올리며 정기가 묻자 허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그 배후지. 아무래도 그 배후가 누구인지 감이 온다고 하더구나.”

“그게 누군지 내게 가르쳐줄 생각은 없죠?”

“원한다면 내 얘길 못해줄 건 아니나 지금은 때가 아닌 듯 싶구나.”

어련하겠냐며 한숨을 내쉰 정기였으나 굳이 듣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넘어갔다. 이런 일은 들어봐야 본인만 귀찮아질 게 뻔하며 어차피 허염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안 가르쳐줄 게 뻔했기에 묻지 않기로 했다. 이와 달리 화령은 엄청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입장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중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정기가 허염과 화령을 번갈아 보자 허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었다. 아무래도 가르쳐줄 수는 있으나 화령이 있어서 가르쳐줄 수 없는 듯 했다. 하기야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함부로 흘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어쩔까요?”

“후후후, 그걸 내 생각하던 중에 네가 온 것이란다.”

“꽤 기다린 듯한 말투시던데.”

“네가 올 거 같다는 생각은 했거든. 그리고 실은 마음을 정한 상태이기도 하단다.”

의미심장한 미소의 허염을 보며 정기는 이제 슬슬 움직일 시기임을 눈치챘다.

“정기야.”

낮게 깔리는 허염의 말투는 아까와 달리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임을 안 화령은 침을 꿀꺽 삼키고 조용히 지켜봤다.

“네가 아무래도 문하시중 댁에 다녀와야겠구나. 내 이미 말은 해놓았으니 오늘밤에 몰래 그 저택 뒷문으로 가도록 하거라. 내 그 뒷문의 위치가 적힌 약도와 문하시중에게 전할 서찰을 준비해 두었으니 챙겨가고 말이다.”

허염이 내민 두 개의 봉투를 받아 품속에 넣으며 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미안하긴 하나 부탁 좀 하나.”

“언제 미안한 적은 있었고, 지금도 별로 미안한 것 같진 않네요.”

빈정대주며 정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기를 따라 화령도 급히 일어서면서 몇 개 과자를 챙겼다. 장락원에서도 먹을 수 있음에도 굳이 과자를 챙기는 화령에게 눈총을 좀 주고는 정기는 고개를 까닥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꽤나 판도가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그거 좋으시겠네요.”

뒤도 안 보고 자리를 떠나는 정기의 뒤를 화령이 급히 쫓아갔다. 가던 중 급하게 허염에게 인사를 올리고 정기와 함께 떠나는 화령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허염은 말없이 차를 즐기기 시작했다.


장락원에선 남영이 차를 대접받으며 어느 방에 위치해 있었다. 여러 아리따운 장식물들이 제 자리를 잡고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병풍까지 놓여져 있는 방의 주인은 남영과 둥근 상을 사이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현재 남영의 눈앞의 여성은 이 장락원의 운영을 담당하며, 이곳 기생들로부터 “어머니”라 불리는 “홍매화”였다. 분명 한 기방을 운영하고, 오랫동안 기생 일을 하여 4,50대로 추정되는 인물이긴 했지만 피부를 비롯한 겉모습은 여전히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착각받아도 이상치 않아 보였다.

“네가 날 부르다니 의외군.”

홍매화가 직접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정기가 말하자 홍매화는 그를 째려봤다.

“남의 기방에 와서 깽판을 친 불한당을 내 방으로 불러서 차를 대접하는 나 자신도 의외이긴 매한가지야.”

가시 돋친 그녀의 말에 정기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거 진짜 미안하다니까, 그래.”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는군.”

마치 얼음장 같은 그녀의 태도에 정기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미안하다고 빌었다. 물론 거기에는 전혀 사과의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다.

“됐어, 그만해. 그런 가식적인 사과는 관심 없다. 애초에 내가 네놈을 부른 건 그딴 사과나 받자고 부른 건 아니니 말이야.”

“뭐,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이임을 운운하는 정기의 말을 무시하고 홍매화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꺼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라니······.”

“웃기지 마라. 변명도 하지 마라. 네놈 말대로 난 네놈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그런 내가 네놈이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일 거라 생각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나타난 거지? 그리고 무천군은 왜 만난 거냐?”

변명이라도 꺼내려던 정기의 말을 막으며 홍매화는 말을 빠르게 쏘아댔다. 그럼에도 여유를 하나도 잃지 않는 정기는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무천군과 손이라도 잡는다는 거냐? 네 녀석, 설마 나리와 척을 지겠다는 거냐? 아니면······.”

“일단 말을 확실히 하자면 난 허염과 어떤 관계였던 적이 없다만. 적도 아군도 말이야. 뭐, 척을 지겠다면 질 수도 있지만 말이지. 그보다 넌 여전히 그 놈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냐?”

홍매화를 끊으며 말을 늘어놓는 정기가 슬쩍 떠보자 홍매화는 매섭게 정기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오래 알고 지냈다면 내가 원래 즐거움이나 재미를 더더욱 추구한다는 건 알 텐데? 내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내 끼어든 것도 그런 즐거움이나 재미가 있어 보인다는 게 원인이지.”

“그것뿐이냐?”

차가운 홍매화의 질문에 정기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곤 말을 이었다.

“전혀. 나름의 이유도 있고, 사정도 생기긴 했지. 그치만 그걸 내가 너에겐 말할 의리도, 의무도 없지. 그건 아마 네가 더 잘 알 터이고 말이야.”

“······.”

“허염과 척을 지느냐, 아니냐 하는 건 나도 장담 못 하지. 그래도 되도록 너와 척은 안 지도록 할 터이니 걱정 마라. 괜히 너랑 맞서려다가 네 아래의 “딸”들과 우리 상단과 충돌하는 건 피하고 싶으니 말이야.”

매섭게 노려보는 홍매화를 상대로 여유로이 미소로 대하는 정기는 차와 함께 놓인 과자 하나를 입 안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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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2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1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37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 17.09.09 26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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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4) 17.08.19 33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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