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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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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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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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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DUMMY

본의 아니게 편지를 전달한 입장인 최화련이 편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뜨거웠다. 그건 열정이나 그러한 것이 아닌 치욕과 분노로 인한 뜨거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껏 자신이 무시해온 것까진 아니어도 얕잡아보던 인물에게 농락당한 점이 치욕스러웠다. 동시에 그토록 신뢰를 해오기도 한, 친언니처럼 여긴 천인예에 대한 배신감도 한몫하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신세를 진 인물이 곤란할 수 있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점에서 죄책감으로 인해 생긴 천인예에 대한 증오감도 같이 있었다.

“뭐, 이런 방식이 아니어도 접촉해 올 거란 건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지.”

그러한 최화련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는 남영이 한 마디 휙 던졌다. 최화련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말에 납득도 하고 있었지만 분한 마음이 가실 줄은 몰랐다.

남영이 내려놓은 편지를 집어든 소은은 편지의 내용을 흝어보았다.

“협력인가······. 나라와 대의를 위해 간악한 무리의 준동을 막아야 합니다라. 즉 자신의 정적들을 상대하는데 우리가 힘을 빌려달라는 거네.”

“그런 셈이지.”

흥미로이 편지를 읽어보던 소은은 최화련에게 고개를 돌리어 물었다.

“네 입장에선 어떤 생각이 들어?”

“예?”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최화련이었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뭐라 답하기는 좀 그렇네요. 여기서 말하는 간악한 무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애당초 겉으로 봐선 일개 상단에 불가한, 그리고 내부적으로 강력한 무력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집단의 손을 빌린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왜? 강력한 무력이 뒷받침된다면 무슨 일을 하던 간 꽤 도움이 되지 않겠어? 정적이든 뭐든 간에 간단하게 입을 막아버릴 수 있을 거 아니야.”

소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꺼낸 지적과 질문에 최화련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 그렇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허나 정치판이란 게 고작 힘만으로 좌지우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힘을 함부로 소유하여 휘두른다면 겉으론 적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나 명분을 잃어 수많은 지지세력과 민심을 잃어서 종국엔 무너지게 됩니다.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집단이라 해도 한 나라와 맞설 수는 없는 법이고, 근본적인 정신 밑바탕에 깔린 명분과 사상 앞에선 무력한 법이지요. 선랑을 사적인 힘으로 다루는 무천군도 선랑이라는 국가체제를 상서령이라는 지위에서 합법적으로 다루는 것이지, 사적인 병사나 추종자를 움직여서 명분을 상실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흐음.”

소은이 최화련의 말을 경청하며 반응을 보이고는 있었으나 납득치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최화련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문하시중 천신영이라는 사람은 제 아버님처럼 명분을 평소부터 중요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힘과 돈을 지닌 상단에 손을 내민다는 건 뭔가 그럴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고 한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보낼 리가 없지요. 아니면 천인예의 독단이라던가.”

“으음.”

“뭐, 인간들의 세상에서 정치라는 건 우리가 내세우는 힘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서로 간의 생각과 관계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서 힘이라는 형태가 되어 돌아가는 거지.”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갸웃거리는 소은을 보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남영이 보충설명을 더했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인지 소은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편지를 책상에 내던지고는 투덜거렸다.

“정말 인간은 복잡하고 불편한 것들이야. 왜이리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서 골치 아프게 사냐 이거야.”

뺨을 부풀리며 툴툴거리는 소은을 두고 남영은 최화련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문하시중 천신영이 이런 행동을 벌일 사람은 아니다? 어째서 그렇게 보지?”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천신영의 출신입니다. 그는 명분과 대의를 중시하는 유학자 출신이에요. 그리고 그 유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입장인 만큼 행보 하나하나에 명분과 대의를 들먹이며 움직였습니다. 편지에서도 그 점을 언급했잖아요.”

슬쩍 편지로 시선을 준 남영은 편지에 적힌 명분(名分)과 대의(大義)라는 단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툴툴대던 소은도 편지를 집어 들어 그 두 단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론 겉으로만 그런 걸 내세우는 사람일수도 있으나 적어도 제 아버님이 평가하고,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겉으로만 명분과 대의를 떠드는 위인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아니어도 명분과 대의가 실익으로 이어진다 여기며, 또 이를 옳다 여기고 이를 직접 실천하여 올바른 대의명분이 서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인물, 그것이 바로 문하시중 천신영입니다. 그것 때문에 조정에서 충돌한 사람들이 꽤 있고, 심지어 대왕폐하와도 여러번 충돌한 적이 있을 정도죠.”

최화련의 말이 마치자 천천히 자신 몫의 차를 한 모금 들이키는 남영이었다. 만족스런 답을 들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한 남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이 일을 하면서 들은 바가 있지. 문하시중 천신영, 대의명분을 중요히 여기는 후대에 귀감이 될 명재상이며 군자라고 말이지.”

명재상이며 군자라는 부분이 맘에 안 들었는지 최화련은 코웃음을 쳤다.

“수많은 유학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많은 백성들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겉으로만 이행하여 쌓을 수 없는 명성이야. 그 점에 있어서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니,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소은이 들고 있던 편지를 가리키며 남영이 말했다.

“저 편지. 도대체 저 편지를 보내어 나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일개 상인인 나에게 말이야. 물론 나와 초정회가 지닌 힘은 일개 상단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나 그렇다고 대의명분이 바로 선 국가통치아래에서 추구할 만한 힘이라곤 할 수 없어. 오히려 세인의 질시를 사고 쌓아놓은 명성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일 수도 있는, 뭣보다 지금까지 지켜온 마음가짐을 어기면서 택할 일인가 싶군.”

“그냥 현실적인 힘이 필요해진 거 아니야?”

소은의 지적에 남영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바로 그거야.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힘을 찾게 만들었느냐는 거지.”

흥미진진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입가를 보며 소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최화련은 뭔가 집히는 게 있다는 얼굴이었다.

“최근 폐하께서 편찮으시다는 것, 그리고 태자께서 새로이 등극하실 거라는 것,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연쇄살인. 겉으로는 이것들뿐이지만 공공연히 수족들을 움직이는 무천군과 허염과 같이 재야에 묻혀 있으나 꿍꿍이속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넘쳐난다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죠.”

그러면서 잠시 말을 멈추어 생각을 한 최화련은 다시금을 입을 열었다.

“태자의 곁에 있는 환관들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하여 한정된 정보를 접해야 하는 저로선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분하기는 해도 냉철히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 나온 최화련의 답변에 남영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반면 여전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소은은 흥미를 잃었는지 다과를 입에 가득 집어넣어 우물거리고만 있었다.

다시금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는 남영의 눈에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흥미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시작은 지금 눈앞에 있는 최화련의 가벼운 부탁과 언급에서 시작되었지만 도중 접촉하게 된 무천군 측과 어쩌다보니 충돌하게 된 살인범 일당과의 일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한 천신영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그에겐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목적이고 어떤 결과로 결정날 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남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소리 죽여서 큭큭 거리며 웃는 그를 바라보는 소은과 최화련은 남영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는 있는 건지 서로 마주보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 정말 이래서 인간의 삶이란 재미있다는 거야.”

자연스레 흘러나온 그 말과 함께 남영은 생각에 들어갔다. 아무리 흥미진진하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앞으로 벌어질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남영과 초정회는 분명 관련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이러한 사태를 일으키고 여기에 움직이는 이들이 의식적으로 꾸민 일인지, 단순히 참견 좀 하려한 남영을 발견하고 즉흥적으로 접근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미 관련이 되어 본의 아니게 참여치 않을 수 없다는 건 분명했다.

이러한 사정을 안다면 투덜거릴 이수문과 주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영은 지금까지의 사태와 앞으로 일에 대해 정리코자 했다. 그랬는데······.

“응?”

귀를 쫑긋 세운 소은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은만이 아니라 최화련도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품속에서 부적 몇 장을 꺼냈다. 남영도 생각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유는 소음. 뭔가 부딪히고 “히익!”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였다. 싸운다고 한다면 분명 한 명은 이 방의 앞을 지키고 있었을 희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와 싸우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가.

최화련과 소은이 경계를 하는 와중에 남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한 구석에 위치한 부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남영을 따라 이동한 소은과 최화련을 뒤돌아보며 남영이 나직이 말했다.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 우리 경계를 피해서 말이지.”

그러고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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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2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1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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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3) 17.08.13 281 2 9쪽
32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2) 17.08.11 31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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