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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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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721

작성
17.11.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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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DUMMY

멀리서 최화련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천인예는 안심하여 가슴을 쓰러 내렸다. 분명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필요에 따라 행동한 일이고, 그 자신도 분명 이게 옳다 여기고 한 일이긴 하다. 허나 그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친여동생과 같은 이를 이용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나름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습격자가 발생한 장소로 가서 도와주지 못한 점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행히 무사해 보이고 호위까지 받으며 떠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천인예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기쁨과 안심, 그리고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은 천인예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 쓸쓸함을 아는 이는 현재 이 자리에는 없었다.

“···보, 보고 하, 지, 지, 마···아. 아무러···언 이, 일 어···없는 거···야···.”

“예, 맡겨주십쇼, 누님.”

진의전의 대답이 살짝 맛이 가 보이는 대답이었지만 천인예는 그럼에도 만족했다. 이 주술은 상대의 정신을 지배할 수는 있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상대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게 보이기에 어쩔 수는 없다.

“그, 그래···, 잘 부, 부타···악 해, 해.”

가기 전에 천인예는 살짝 주술을 풀어주기로 했다. 계속 정신을 지배하는 건 무리이기도 하고, 뭣보다 계속 지배코자 하면 계속 이런 상태라서 상대가 눈치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이런 정신지배를 할 수 있는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 외에는 없기는 했지만 방심할 순 없는 일이다. 진의전의 아버지인 무천군과 진의전의 형이자 무천군의 차남인 진의겸이 있기 때문이다. 천인예의 주술에 대해서 모른다 할지라도 평소와 다른 진의전의 상태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고, 현재 정치상황에 비추어서 천인예의 아버지인 천신영을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천인예는 주술을 풀어줄 수밖에 없다. 단, 이대로 풀어줬다간 그대로 보고하여 천신영과 천인예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천인예는 떠나기 전에 기억을 조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바로 이 장소에서 자신을 만난 적도 없고, 최화련이 초정회에 들린 적도 없었다고 말이다. 조금 복잡한 과정이긴 하지만 못할 건 그녀가 못할 건 아니었다.

다만 조작에 앞서 어떻게 해야 무천군과 진의겸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이야기의 흐름을 점검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진의전의 기억에 허점이 있다면 무천군과 진의겸은 뭔가 이상함을 단박에 눈치챌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의심을 여러 인물들, 특히 자신들의 세력 밖에 소속된 선랑들을 의심할 게 뻔했다. 그러므로 조작에 있어 신중하게 흐름을 선택하여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 필요가 컸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천인예는 얼른 떠나지 않고 일어난 사건들을 진의전과 같은 장소에서 계속 지켜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위치하여 바라본 장면들을 떠올려 봤다. 최화련의 초정회 방문, 연쇄살인사건을 일으킨 일당의 초정회 습격, 그리고 초정회와 그 일당과의 싸움, 극소수를 제외한 일당의 전멸과 최화련의 귀가까지. 전부 위에 보고가 되면 파란을 일으킬 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 일은 모두 초정회라는, 최화련과 가까운 상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전부 무천군과 진의겸이 알았다간 저 초정회는 물론이고 최화련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갈 수가 있다. 자신이 속한 측의 이익과 상관없이 피하고 천인예에겐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심호흡을 깊게 몇 번 반복 후 천인예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기억들을 수정하여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전부 지웠다.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건 좀 아닌 듯 하여 약간의 패싸움 같은 게 일어났다는 듯이 기억을 조작했다. 다수의 일당의 공격을 소수의 초정회가 괴멸시킨 것이 아니라 전초전 형식으로 초정회와 일당이 다수 대 다수로 싸웠다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역시 없게 하고는 싶지만 이미 초정회가 은연중에 주목받는 와중에, 그리고 일당과의 싸움의 흔적이 남은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기억을 남기는 건 아무래도 불안했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기억조작을 완료한 천인예는 자리를 이탈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슬슬 해가 날까말까 하는 시간이었고 곧 통금이 끝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억 선태과 조작에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고심한 결과 꽤 시간이 흐른 셈이었다. 천인예는 얼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의심을 덜 받고자 움직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천인예가 이탈한 곳에는 진의전 혼자 남아있었다.

진의전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흔들고 난 그는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가 하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에는 기억이 중간중간 파 먹혀 있는 듯이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제, 제길···, 뭐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진의전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어두웠던 밤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중이었다. 그건 분명 달과 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뭐, 뭐야······, 벌써······.”

분명 마지막 기억의 시간대는 밤이었는데 벌써 아침이 온다는 사실에 진의전은 경악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인가에 대해 고심하던 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조, 졸은 건가······. 그런 거야?”

아무도 없는 상황임에도 그가 던지는 물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아침이 다가온다는, 기억 속 시간의 공백에 대해 자책감을 가지면 진의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요즘 제대로 잠을 잔 적이 드물기는 했지.”

최근에 이어지는 감시 임무를 거의 홀로 담당하다시피 한 턱에 제대로 잠을 잔 기억이 없기는 했다. 물론 진의전에게는 잠을 자지 않아도 멀쩡할 수 있는 도술을 알고 있기에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역시 그도 사람이었다.

“이를 어쩐다······.”

자신의 피로에 의해 기억에 공백이 생겼다 여긴 진의점은 낙담에 빠졌다.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긴 아버지와 작은 형 진의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의 꼴에 자책을 하던 그는 품속에서 부적 하나를 꺼냈다. 형 진의겸과 연락을 위한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내려다보는 진의전은 뭘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굳게 마음을 먹고 부적을 작동시켰다. 부적을 통해 금방 일어나서 피곤해 보이는 진의겸에게 진의전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뭐죠?]

“나 참, 동생에겐 꼬박 며칠 밤을 새게 만들어놓고 팔짜 늘어지셨구만.”

[시비 걸거면 그만두시죠. 그리고 당신에게 그 일을 맡긴 건 그대가 그만한 실력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그 점은 당신도 잘 알 텐데요.]

“예이예이.”

평소와 같은 말투로 가볍게 시작한 진의전이었다. 잠시 일상적인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진의전은 자신이 해야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그래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드디어 등장하는 본론에 진의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긴장한 기색을 숨기며 밝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있기는 무슨, 여전해.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청란도야.”

[? 그렇습니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저들 일당이 초정회에 손을 대지 않을 가능성이 낮거든요.]

“지나친 생각 아니야, 형?”

그렇겐 말하지만 초정회와 그 일당으로 보이는 무리와의 싸움이 기억 속에 확실하게 남아있는 진의전이었다. 다만 이를 보고할까 하던 중 진의겸이 말이 전해졌다.

[뭐, 좋습니다. 크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일이에요. 계속 지켜보도록 하세요. 한동은 말이에요. 아셨죠?]

“예이.”

[괜히 졸거나 하지 말고요.]

“아, 알았어.”

뭔가 뜨끔하기는 했지만 진의전은 아닌 척했다.

[? 알았습니다. 수고하세요.]

연락이 끊김과 동시에 진의전의 입에선 한숨이 길게도 나왔다.

사실 이 역시 보고해야 하는 일이나 날아올 문책과 잔소리가 겁이 나 말을 못한 진의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별 일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그의 마음도 있었다. 별 일 아니기에 넘어가도 좋다는 마음이 말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초정회 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진의전은 통금이 해제되었다는 북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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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2) 18.02.19 17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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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4) 17.12.16 182 2 9쪽
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2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2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70 3 9쪽
41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5) 17.10.07 246 2 10쪽
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1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5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37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 17.09.09 26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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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4) 17.08.19 339 3 10쪽
33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3) 17.08.13 281 2 9쪽
32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2) 17.08.11 31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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