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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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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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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1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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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DUMMY

가현에 아침 해가 떠오름과 함께 황궁에도 아침이 시작했다. 점차 밝아짐에 따라서 황궁 내의 환관과 궁녀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밤새 고요했던 황궁의 정적은 사라지고, 새로운 하루의 일상을 맞이하기 위해 다들 바쁘게 움직인다.

동궁, 태자궁이라고도 불리는 곳에 속한 환관 이주신 역시 바쁘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래의 환관들과 궁녀들로 하여금 새숫물과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여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속한 동궁의 주인인 태자의 기상과 건강상태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하께선······.”

“한 시진 전에 기침하셔서 책을 읽고 계시옵니다.”

동궁의 밤을 지키던 궁녀의 말에 이주신은 걱정이 가득했다. 책을 읽으며 학문을 익히고자 하는 것은 훌륭한 자세이긴 하나 지나치게 밤을 새면서까지 하는 건 건강에 좋다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최근 임금의 병세가 심각해진다는 점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에 따라 태자로서의 그 자리를 이어야할 시기가 가까워지니 걱정과 부담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태자전하, 소신 이주신이옵니다.”

“들게.”

태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이주신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으로 들어선 이주신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산처럼 쌓인 책이었다. 본래 독서를 자주 하는 태자이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서 독서량이 많이 늘었다. 산처럼 쌓인 책더미 옆의 의자에 앉아있는 태자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평안히 주무셨사옵니까.”

“그렇소. 그대도 잘 잤는가.”

책에 눈을 고정시킨 채 태자는 이주신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주신은 고개를 들어 태자가 읽는 책으로 시선을 주었다.

“···『맹자』이옵니까?”

이주신의 질문에 태자는 그제서야 책에서 시선을 떼었다.

“알겠는가?”

“예. 환관이라는 것이 본래 궁에서 일을 하려면 나름의 학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 아버지께서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그대의 아버지라면······, 전 대전환관인 이길수을 말하는 거군.”

“그렇사옵니다.”

이길수. 이전의 대전환관으로, 환관이기는 하나 평소 학식을 갈고 닦아서 여러 신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아온 인물이다. 지금은 고인(古人)이기는 하나 선왕과 현 임금을 모셔왔던 거물급 인사이다. 그 양아들인 이주신이 이렇게 동궁 담당 환관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자신의 능력도 있으나 아버지 이길수의 명성이 한몫했다는 점은 부정할 데가 없다.

“나야 아주 어린 시절에 딱 한 번 봐서 별로 기억이 없는 인물이기는 하나 그대는 잘 기억하고 있겠군. 어떤가, 그대의 아버지가 여기 있다면 이런 내 모습을 어찌 평하였겠는가.”

“소신의 아버지라면 지금 태자전하의 모습을 칭송하시며 감탄하셨을 겁니다. 다만 지나치게 독서에 매진하여 몸을 상하게 하실 행동을 함에는 옳지 않다 여겼을 겁니다.”

“오호, 그건 그대 아버지의 생각이 아니라 그대의 생각이 아닌가?”

가벼이 웃음을 터뜨리는 태자를 두고 이주신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 마음 쓰지 말게나. 농담이니.”

“예, 전하.”

“허나 확실히······, 그 말이 옳을 게야. 아무리 한 나라의 군주가 되려면 학문을 닦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나 그 때문에 육신을 망가뜨려서도 아니 되지.”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그래도······.”

말을 꺼내려다 만 태자의 얼굴은 많이 심란해 보였다. 태자의 그런 얼굴에 이주신은 뭐라 말을 못하고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본래 태자는 심성이 곧고 다정하여 타인을 상대함에 있어서 험히 대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현실 정치의 잔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정치에 나선 건 아니나 종종 아버지이신 폐하의 정치를 옆에서 보조하면서 현실 정치의 잔혹함과 어두운 면을 배워나간 사람이다.

그런 태자가 요즘 들어서 이런 얼굴을 자주 하는 데에는 걱정이 많아서 이다. 그 걱정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중압감이었다. 임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때에 당연히 그 뒤를 이어야할 태자의 입장에서는 중압감이 아니 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도 긴장을 하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으며 나의 사랑에 잘못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며 나의 지혜가 부족한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예로써 공경해도 그 사람은 나를 공경하지 않으면 내가 공경하는 마음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기대했던 상대방의 반응을 얻지 못할 경우,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맹자』 이루(離婁)편이로군요.”

담담히 책의 구절들을 읊어 나가던 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참으로 내가 맘에 들어 하는 구절이지.”

살짝 위를 올려다보는 태자의 시선은 천장을 향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을 하늘을, 그리고 그 하늘에 비유되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내 평판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태자로써의 내 평판이네. 태자로써 내 마음가짐이 옳기에 높이 평을 받고 있는 것이지. 허나 임금의 자리는 달라. 과연 내가 왕좌에 올라서 임금에게 걸맞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군.”

자신도 모른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자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오늘 아침에 식사에 앞서서 달달한 다과와 함께 연잎차를 올리라 얘기해 두었습니다.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데에는 딱 이오니 깊은 향과 맛을 즐기시고 폐하께 문안인사를 드리시지요.”

“고맙네. 역시 내겐 자네밖에 없어.”

태자가 건네는 감사의 말을 공손히 받으면서 이주신은 물러났다. 방밖으로 나오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녀들을 마주쳤다. 그녀들이 쟁반 위에 들고 있는 찻잔과 찻주전자, 그리고 다과가 자신이 주문했던 것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여보내게 했다.

비록 인사를 받기는 했지만 이주신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신이 모시는 소중한 태자전하의 심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고작 차와 다과로 위로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과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더 잘 모실 수 있는가 걱정을 하며 이주신은 잠시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화창한 하늘에선 점차 햇빛을 뿌려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최근에 일어나는 흉흉한 사건들로 시절이 어수선함에도 맑은 하늘이 야속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씁쓸히 입맛을 다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거두며 이주신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그가 속한 동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터벅터벅 궁궐의 으슥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종 주변을 살피는 행위를 하거나 지니고 있던 노리개를 몇 번 흔드는 행위를 보이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궁궐의 한 편으로,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에 도착한 이주신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관 두 명을 마주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정광취와 김선연이었다. 둘 다 환관이기는 하지만 속한 곳은 이주신과 달리 각각 대전과 중궁전에서 일하는 환관이었다.

“음, 내가 늦은 듯 하군.”

“아니옵니다, 어르신.”

“소인들이 일찍 온 것이죠.”

“누구 미행이 붙거나 한 건 없겠지?”

경계를 잔뜩 담은 이주신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의 반응과 별개로 이주신은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했으나 다행히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이외에는 없어 보였다.

“망아로부터는 어떤 소식은 없느냐?”

“어젯밤을 기일로 잡았다고 했으니 벌써 소식을 전하긴 힘들 것입니다.”

“대신 행하기로 한 일은 완료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이주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확실한 보고를 듣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어젯밤을 기일로 했다면 지금 소식이 도착한다는 건 무리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망아 녀석, 과연 일을 무사히 처리할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군. 뭐, 좋아. 허나 다들 명심해야 할 것이야, 이 일이 알려져선 안 되고, 알려진다 한들 전하께 해가 되선 아니 돼.”

현재 행하고 있는 일, 정확히는 이주신이 이 둘을 통해 망아에게 전한 일이 알려졌을 경우 미칠 파장을 떠올리니 이주신은 자신도 모르게 섬뜻해 하면서 단단히 경고했다.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아는 두 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염려치 마십시오. 소인들도 그 정도는 잘 아옵니다.”

두 젊은 환관의 확답을 들으며 조금은 안심을 하는 이주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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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4) 17.12.16 181 2 9쪽
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43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7) 17.10.21 221 1 10쪽
42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6) 17.10.14 26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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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4) 17.10.01 220 2 9쪽
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38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2) 17.09.16 23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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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4) 17.08.19 339 3 10쪽
33 제6장 : 풍파는 배우가 준비되었다고 부는 게 아니니(3) 17.08.13 28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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