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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1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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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721

작성
17.12.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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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5)

DUMMY

선랑이 상대도 되지 않고, 당연히 정기 자신도 상대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는 탈을 쓴 상태로 비웃음을 흘리고는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막으려고 병사들이 달려 들었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지위가 있어 보이는 무관이 칼을 휘둘렀으나 역시 그에겐 닿지 않았다.

“······크······, 막아!”

도술로 얻어맞은 부위를 감싸며 비틀대는 선랑의 외침에 병사들은 한꺼번에 달려 들었다.

“비(飛).”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 병사들을 뛰어넘었다. 뛰어넘은 그에게 정기가 달려들어 베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그가 착지한 순간에 정기는 재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역시 닿지 않았다.

분명 날이 살아있는 칼이나 상대가 들고 있는 부채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격(擊).”

그리고 뒤이은 도술의 타격이 정기의 복부를 강타했다.

“속(束).”

이어서 보이지 않는 밧줄 같은 것이 정기의 몸을 꽁꽁 묶었다. 결국 뭣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정기는 땅바닥에 구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을 본 초향은 나서고자 했으나 하인 하나가 그녀를 제지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무리 초향이 싸울 수 있는 인물이라고는 하나 일개 기생인 그녀가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보여선 안 되었다.

안 그래도 경계를 받는 와중에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는 초향도 잘 아는 일이긴 했지만 눈앞에서 소중한 동생과도 같은 아이가 당하고 있는 꼴을 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침입자를 그대로 뒀다간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저기······.”

압도적인 개인의 존재에 의해 다수가 제대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죄, 죄송한데요······.”

그 누군가는 무천군의 처소를 담당하여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기생이었다. 그녀 역시 이 장락원에 속한 기생으로, 이름은 선화였다.

“거, 거기 계, 계신 분 말입니다······.”

머뭇머뭇 거리는 선화는 여유롭게 병사들과 선랑, 정기를 가지고 논 탈을 쓴 상대를 향해 말을 걸었다. 현재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 사이에 여유로이 부채를 부치며 서있는 그에게 선화는 겁을 먹은 모양이었는지 버벅 대며 말을 걸었다.

“무, 무천군 니, 님이 보, 보자고 하십니다······.”

“호오.”

감탄사를 흘리는 그는 잠시 목을 몇 번 옆으로 꺾으며 뿌득 소리를 내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선랑이 말로써 제지하고자 했다.

“자, 잠까······.”

“무, 무천군 님은 여러분 보, 보고 가만히 있으, 으라고 하시네요······.”

뒤가 흐려지는 말이었으나 무천군의 말임을 전한 선화에게 누구 하나 항의를 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항의가 불가능했다. 여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엄연히 무천군보다 아래였으며, 무천군의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가면을 쓴 이는 여유로이 손을 흔들기까지 해주며 선화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화는 그의 뒤를 따라서 종종 걸음으로 따라갔다.

“해(解).”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는 그는 잠깐 멈칫하며 한 글자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꼼짝을 못하던 정기가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 움직일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 뻔한 일을 벌인 탈을 쓴 이가 떠나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인 병사들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엄연히 일국의 정예병이자 이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오위의 병사들이 그저 장난감처럼 농락당하다가 너무도 쉽게 한 사람에게 박살났다. 물론 그 한 사람이라는 게 엄청난 실력을 지닌 강자임은 틀림없지만 금오위 병사들 입장에서는 자괴감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이는 선랑도 마찬가지로, 아예 그는 분함을 삼키며 복수하겠다는 투지를 태우고 있었다.

한편, 포박이 풀리고 소란의 중심인 인물이 자리를 떠난 걸 지켜본 정기도 허탈하긴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와 금오위 병사들의 차이는 지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갈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기는 싸우면서 얻어맞은 부위를 신경 쓰며 초향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초향은 엉망이 된 마당의 꼴에 한숨을 내쉬고는 정기에게 눈짓을 줬다. 이는 지금 여기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선랑이든, 병사들이든 엉망진창인 상황이니 괜히 정기를 제지할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뭣보다 정기 자신의 일이라서 초향은 막을 생각이 없는 입장이었다.

초향의 눈짓에 정기는 잘 보이지 않게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몰래 움직였다. 그의 행동에 뭐라 떠들어댈 입장인 선랑은 자신을 가지고 논 상대가 간 방향을 보며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나름 선랑이니 뭐니 하며 자존심이 높아진 그 선랑의 입장에선 참으로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기습이라도 하자니 무천군의 명령이 내려온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이건 선랑들을 사실상 지휘하는 상서령 무천군의 명령을 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천군의 개입으로 끝이 난 싸움을 뒤로 하고 정기는 몰래 그 자리를 떠났다. 그대로 대문으로 나갈 수는 있으나 괜히 시선을 받을 수 있기에 몰래 뒷문으로 가려고 한 것이다.

“괴물이 따로 없군.”

자신이 상대한 이의 실력에 정기는 소름 돋아 하면서 중얼거렸다. 분명 그 탈을 쓴 이는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놀이 삼아 어울려 준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가 전력으로 상대했다면 금오위 병사들은 물론, 선랑과 정기도 죽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길래 저런 게 나타난 건데. 아, 진짜 완전히 귀찮아진 걸 넘어선 거잖아. 진짜 발을 빼야 하는 거 아냐?”

“뭘 발을 빼.”

어느새 뒷문으로 갈 수 있는 기방 뒤쪽의 공간에 도착한 정기는 당당히 옷까지 갈아입고 서있는 화령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미안하다며 시선을 피하는 다른 기생들과 재미있다는 듯 싱글거리며 보는 미령, 그리고 골치 아프단 표정의 유화와 해화가 서있었다.

“자, 가자!”

당당히 손을 내밀어 정기의 손을 붙잡고 이끄는 화령 덕에 아까의 싸움의 기억은 저편으로 밀려난 정기였다. 정말 귀찮아졌단 생각을 하며 정기는 끌려가는 동시에 입술을 깨물었다.


기방 뒤쪽에서 정기가 고생하는 동안 무천군이 머무는 방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선화가 가져다 놓은 다과가 놓인 상을 가운데로 하여 무천군과 탈을 쓴 이는 의자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의외로군. 그대가 이렇게 나를 찾아오다니 말이야.”

무천군이 건네는 말에 탈을 쓴 이는 코웃음을 치며 누군가 엿듣나 하며 뒤를 돌아 문 쪽을 쳐다보더니 무천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천군은 그가 쓴 탈을 슬쩍 보더니 물었다.

“그 탈은 왜 쓰고 온 건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인가?”

“그냥 멋내기. 딱히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곤란한 점도 있으니 이 탈을 썼다고는 해주지.”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는 탈바가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답했다.

“자네답다면 자네답군.”

무천군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현재 무천군 앞에서 이렇게 공손치 않은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남이 봤다간 크게 야단이 날 일이다. 허나 무천군은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탈을 쓰고 있는 남자는 그가 앞으로 일을 하는데 중요할 것이라 여겨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남영. 지금 이 탈을 쓰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자 초정회를 이끄는 인물이며, 무천군이 아는 한 이 나라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세 손가락 내외에 들 것이라 여겨지는 존재였다. 무천군이 어렸던 시기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나저나 호위 하나 끝내주는군. 특히 그 선랑은 좀 태도에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나름 자질이 있어 보여. 이름이······, 아마 병마사 이경오의 손자이자 지병부사 이수찬의 차남인 이민성이었던가?”

“잘 아는군.”

“수도 근처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말이야, 기본적으로 조정 돌아가는 꼴을 알아야 무난하게 장사를 할 수 있거든. 특히 우리 초정회 같은 나름 규모가 있는 상단은 더욱 그렇지. 그러니 조정 고위직에 올라 있는 유력 인사들에 대해선 좀 알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끄덕이는 무천군이었다.


작가의말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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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9) 18.01.28 148 1 9쪽
54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8) 18.01.14 173 1 10쪽
53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7) 18.01.07 191 1 9쪽
52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6) 17.12.31 170 1 9쪽
»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5) 17.12.24 188 1 9쪽
50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4) 17.12.16 181 2 9쪽
49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3) 17.12.02 250 1 9쪽
48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2) 17.11.25 212 0 10쪽
47 제8장 :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고 춤도 동쪽으로 향하진 않나니(1) 17.11.18 234 1 9쪽
46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10) 17.11.11 171 1 9쪽
45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9) 17.11.03 203 1 9쪽
44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8) 17.10.27 18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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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7장 : 산초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방향이란 없네(3) 17.09.25 30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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