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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1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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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721

작성
18.09.0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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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7)

DUMMY

허염의 후원에 있는 정자에는 허염 한 사람만이 느긋이 자리하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느긋한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그는 누구보다도 세상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세상일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보다도 그 일이 일으킬 여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찰했다. 한 번의 실수와 불미스런 일과 연관되어 정계 중앙에서 밀려나 한직을 전전하다 결국 이렇게 은퇴하여 느긋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백발이 성성해지면서 조정에는 천신영, 최염계, 서양필 등이 중요직을 차지하였고, 임금의 아우인 무천군이 상서령 자리에 앉아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당연히 정계에서 물러나 노인이 된 허염이 다시금 앉을 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때로는 하인을 시켜서, 때로는 자식들이나 사위를 시켜서,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사병을 시켜서.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흥미를 가질 요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일련의 사태였으며, 바로 그 일련의 사태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상 위에 찻잔은 두 개였다.

그 중 자신의 앞에 놓은 찻잔에 다시금 차를 다 따랐을 무렵 허염은 손님이 왔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왔군.”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허염이 힐끔 바라 본 방향에서 세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비도이고, 다른 하나는 이소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기였다.

가장 앞에선 정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허염은 장난스레 말을 걸었다.

“내가 뒤를 따라가라 했지 누가 안내하라 했더냐?”

“뒤를 따라가란 말은 하셨지만 안내하지 말란 말은 안 했잖수.”

투덜대는 정기의 말에 허염은 킬킬 웃었다.

“그래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허나 얌전히 뒤를 따라다니란 말을 했다는 건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더군다나 지금 앞에 서있고 말이지. 난 뒤라고 했지 앞이라곤 안 했다.”

그 말에 정기는 몇 발자국 뒤로 뛰었으나 비도가 이를 막으며 등을 발로 차버렸다. 차인 등을 쓰다듬으며 정기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네놈이 허염이냐.”

“장유유서는 지키지 그런가.”

“그걸 내가 왜······.”

이를 빠득거리며 정자 위로 올라온 비도는 상 위에 놓인 두 개의 찻잔을 보게 되었다. 하나는 당연히 허염의 바로 앞에 놓여 있으니 허염의 몫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그 맞은 편 자리에 놓여 있으니 손님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손님이겠는가.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나.”

“올 걸 알고 있었던 거면 타박이나 하지 마십쇼. 도대체가 사람을 있는 대로 굴리면서 일의 앞뒤를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지니 나로선 이게 옳은지 그른지 어찌 압니까. 그리고 일이 그렇게 흘러갈 걸 알고 있었다는 건 난 그냥 재주 부리는 원숭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거잖아요. 나 참, 사람을 원숭이 취그······.”

“입 닥쳐.”

주절주절 떠드는 정기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이소연이 위협했다.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다. 이렇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나 원 참. 이것 보십쇼, 덕분에 나는 목숨이 오락가락······.”

“입 닥치라고!”

이소연의 외침에 정기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했다. 그런 정기를 짜증난다는 시선으로 비도는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허염만이 킬킬 웃을 뿐이었다.

비도는 정기를 이소연에게 맡기고 허염에게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눈앞의 일에 그저 재밌어할 뿐인 노인이나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하며 다가갔다. 비도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인지한 허염은 킬킬 대던 웃음을 거두었다.

“일단 허락을 받지 않고 무례하게 내 후원에 발을 딛인 이이긴 하나 일단 손님이니 인사를 하지. 난 전 문하평사사 겸 판병부사 허염일세. 지금은 조정을 떠난 일개 늙은이네만. 어서오시게.”

“흥.”

콧방귀를 끼며 비도는 칼을 꺼내어 허염의 목에 겨누었다. 허염은 자신의 목에 칼이 겨눠졌음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하나 없었다.

“내가 물을 건 하나다.”

“5년 전 망연진에서의 일을 묻는 게지? 과연 그 일의 생존자인가. 불가 5년 전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내게 잊을 수 없는 일이지. 그 화재 때문에 나는 결국 이렇게 조정을 떠난 몸이니 말이야.”

“그게 아니······.”

“허나 자네가 궁금한 일은 아마도 그보다 근본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 아무도 언급치 않고 덮혀져 있던 일 말일세.”

비도가 말을 꺼낼 때마다 가로채며 말을 이어나간 허염이었다. 그럼에도 비도가 뭐라 화를 낼 수도 없었던 것이 비도가 하고 싶은 말들을 허염이 전부 얘기했기 때문이다. 칼이 겨눠졌음에도 당황치 않는 태도에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태도 모두가 비도에게 소름이 돋았다.

“잘 아는군.”

“허투로 그 오랜 세월 조정에 있던 건 아니네.”

“그렇다면 네놈이 해야할 얘기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알다마다. 이 일련의 사태에 자네들을 제외하곤 입에 담는 이들도 없고 설령 아는 이들도 그저 곁다리 취급을 하고 있었지. 아무래도 그건 자네들에게 불만스럽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 자네들처럼 당사자가 아닌 이들, 특히 높은 자리에 위치한 이들에겐 그런 건 매우 사소하여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니 말이야.”

비도의 물음에 시작된 허염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쏟아졌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자네들이 원하는 얘기는 이것이지. 망연진이 있던 자리에 어느 마을이 있었고, 국경에 위치한 그 마을은 오랑캐들과 교류를 하던 마을이었지. 그리고 그곳은 동시에 상당히 중요한 무기들, 특히 법보를 거래하거나 제작하는 곳이었지. 그런데 법보 중 일부가 오랑캐에게 팔아 돈을 챙기던 관리가 자신의 부정을 덮고자 자네들 마을을 없애고 망연진을 세웠지. 그럼에도 이 나라는 자네 마을이 가지는 이익을 알기에 망연진을 세웠음에도 적극 활용했네만 하필 여기서 문제가 생겼지. 그건 바로 그 과정에서 망연진이 엄청난 법보를 소유하면서 그 가치가 높아졌고 아울러 그 법보를 대량 보유하여 위험성이 높아졌지. 때문에 이를 걱정한 신료들은 거기를 망연진 없앴네만 그들의 걱정은 오해였고, 오히려 그 과정에 많은 신료들과 황실의 비리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았지. 그래서 이를 덮고자 나랑 조의진을 재물 삼아 몰아냈다. 어떤가?”

“그래.”

너무나도 가볍게 술술 늘어놓는 허염의 기세에 비도는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연 역시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기만이 흥미 없는 척하면서 잘 내용을 잘 들으며 이소연의 칼에 벗어날 기회를 보고 있었다.

“허나 이 모든 건 중요치 않네.”

“그게 무슨 의미지?”

“무슨 의미긴 이미 말했지 않은가.”

여유로이 콧노래와 함께 차를 들이킨 이후 허염은 찻잔을 내려놓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들의 그 과거가 자네들에게 어땠는가는 이 일련의 상황에서 중요치 않다는 거네. 자네들 설마 자신들이 해온 일이 전부 복수의 과정이라고 믿었는가. 어처구니없군, 그래. 실제로 자네들이 죽인 이들 중 망연진과 관련되어 있던 이는 판군기감사 김종언과 중서시랑평장사 허경 뿐이네. 나머진 그 당시 조정에 있었을 뿐이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이들이지.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자네들을 고용한 이정도?”

“우린 고용된 적 없어!”

“과연 그러한가? 자네들이 이 정도 활동을 위해 법보와 장소를 뒷받침 해준 이가 있었을 테네만. 그리고 아무리 금오위가 무능했다곤 해도 병사들을 피해 그 정도 일을 벌일 정도라면 분명 뒤가 있는 셈이지.”

그 말에 이소연은 망아가 종종 만났다는 정보원을 떠올렸다. 비도 역시 그 정보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자네들이 인지하고 있었는가는 별개로 자네들은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고용된 자객이었을 뿐이네. 그 고용주가 어떤 이이건 그 경솔한 행위는 결국 무천군의 실력행사로 이어지겠지. 수고했네. 이제 자네들의 역할은 다한 셈이군.”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마치고 허염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천천히 빈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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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7) 18.06.25 10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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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5) 18.06.03 85 1 9쪽
73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4) 18.05.27 115 1 9쪽
72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3) 18.05.20 142 1 9쪽
71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2) 18.05.13 167 1 9쪽
7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 18.05.07 167 1 9쪽
6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2) 18.04.29 145 1 9쪽
68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1) 18.04.23 129 1 10쪽
67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0) 18.04.16 145 1 9쪽
66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9) 18.04.08 171 1 9쪽
65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8) 18.04.01 149 1 9쪽
64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7) 18.03.25 150 1 8쪽
63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6) 18.03.18 208 1 9쪽
62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5) 18.03.11 15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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