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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1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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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3,721

작성
18.05.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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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4)

DUMMY

“갑자기 내 집으로 찾아오다니, 그러다가 여차 잘못 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뭐, 금오위에서 이리저리 나돌아 다니긴 하지만 나 같은 일개 백성에게 뭐라 하겠수. 게다가 지금은 오히려 기방에 있는 게 수상하게 보일 시기요.”

“그렇긴 하겠구나.”

기분 좋게 웃으며 허염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에 담긴 차를 들이켰다. 반면 정기는 찻잔을 들고는 있었지만 차를 들이키거나 하지 않고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정기는 허염의 집 후원에 와있는 중이었다. 밤새 있었던 이소연의 동료들의 침입과 그 뒤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랑의 죽음에 대해 설명했다. 어차피 알고 있을 게 뻔한 일이긴 해도 일단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는 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질문하기 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기의 이야기를 미소 띈 얼굴로 조용히 듣던 허염은 정기가 이야기를 마치자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이 앞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구나.”

당연한 이야기를 뭔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한다는 생각을 하는 정기에게 허염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나 어색한 분위기를 흔드는 웃음이라기보다는 이 일련의 사태가 흥미롭다는 투의 웃음이었다.

“어쩌실거요?”

정확히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진 정기에게 허염이 말했다.

“그건 걱정치 않아도 되는 일이다. 다만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내가 다룰 수 있는 주요 전력인 네가 좀 많이 행동을 벌여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겠구나.”

“얼씨구, 아주 사람 쉬는 꼴을 못 보시겠나 보군요. 아주 그냥 사람 지대로 부리는 데에는 도가 터셨습니다. 그 여자애 하나 주워오라고 보내고, 거기에 나보고 그거 지키는 파수꾼 개 노릇 시키고, 서찰 배달에, 이제는 사지(死地)로 관광이라도 가라는 거요?”

투덜투덜 대는 정기이긴 했으나 이미 그도 자신이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의무감이라기보다는 허염이 그런 명령을 내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냥 행동을 벌이기엔 짜증도 나기에 이렇게 투덜대는 것이었다. 허염은 그런 정기에게 짜증 하나 내지 않으며 허허 웃어넘겼다.

“젠장,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뭐요? 문하시중네 개 노릇이라도 할까? 아님 파수꾼 개?”

“굳이 개에 비유를 해서 이야기를 하느냐?”

“굳이 개가 떠오를 정도로 요즘 들어 마음이 심란하고 제대로 쉰 적이 있다고 떳떳히 말할 날이 과연 몇날며칠이 될까 진지한 의문이 드는 바요.”

짜증나고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지만 그러면서도 허염의 명령을 받아들일 입장인 정기였다. 이를 잘 아는 허염은 그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째야 하는 겁니까?”

투덜거림을 접어두며 정기는 본격적인 본론에 들어가고자 다시금 이 질문을 입에 담았다. 허염은 살며시 미소를 살짝 거두며 말했다.

“이미 홍매화에겐 언질을 둔 바다. 그녀라면 내가 부탁한 일을 아래에 시켜 행할 수 있지. 허나 이는 그녀와 그녀의 기생들이 할 일이고, 네가 할 일은 좀 다르단다. 이미 너도 대강 알고 있듯이 상황이 꼬여도 아주 배배 꼬였어. 여러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가 얽힌 실타래만큼 꼬이게 되었단다. 그만큼 목숨 부지도 힘들 것이야.”

목숨 부지라는 말에 정기는 긴장했다. 여차 잘못 하면 그 자신은 물론 장락원의 식구들도 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눈앞의 허염도 해를 당할 터이나 이는 별로 걱정이 안됐다.

“일단 네가 할 일은······.”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를 내쫓는 것이겠지.”

갑작스레 끼어 든 목소리에 허염과 정기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거기엔 왠 탈을 쓴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나 정기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바로 장락원에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과 선랑을 가볍게 가지고 놀았던 그 사내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때랑 똑같은 탈을 쓴 채 나타났고, 그 외의 외형도 분명 그 사내가 분명했다.

“이거 자네가 나오다니. 여기가 자네가 나설 때인가?”

경계심을 갖고 자신의 칼에 손을 댄 정기와 달리 허염은 이내 여유를 되찾아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나설 때가 지금인지 어젠지 굳이 그대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뭣보다 그대가 내가 나설 때를 알기나 하겠나? 뭐, 이건 쓸데없는 이야기만 양성할 터이니 그만 두도록 하지. 그보다 기척은커녕 허락도 없이 남의 집 후원에 발을 들인 데에는 사과를 하도록 하겠소.”

“이미 다 와놓고 무슨.”

당당히 한 걸음씩 다가오는 사내를 경계하며 칼을 빼든 정기였으나 승산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정기에게도 비장의 수가 있다. 허나 그 날 잠깐 겨뤄본 입장에선 그 비장의 수를 꺼내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 두거라. 이미 이길 도리가 없다.”

잔뜩 경계하는 정기를 말리며 허염이 말했다.

“그보다 갑작스런 방문에 내 그대에게 차는 대접키 힘들게 되었구려. 나중에 장락원을 이용할 때 특별히 무료로 즐길 수 있게 귀뜸해 두겠소.”

“됐소이다. 어차피 거기는 홍매화가 있어서 맘놓고 즐길 수 없으니 말이오.”

후원의 정자에 오른 사내가 정기가 비켜준 허염의 맞은편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 앉았다. 정기는 사내에게 자리를 비켜주고는 살짝 물러서면서 칼을 뽑아놓고 그를 주시했다.

“그토록 투덜대면서도 충성심 하나는 착실하게 이뤄져 있군, 그래.”

“허허허, 참 청개구리 같은 아이이네.”

자신을 재미있다는 듯 웃는 사내와 허염에 대해 속으로 온갖 불평과 욕설을 내뱉으면서 정기는 얼굴 하나 변하지 않으며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문하시중과 손을 잡은 것인가?”

“대강 정보를 아신다면 어찌 그렇게 묻는 것이오? 확인차 묻는 것이오?”

“진정 손을 잡았는가도 의문이 들어서 말이지. 문하시중이야 원채 성품이 올곧고 바른 사람이며 의리도 깊으니 자네와 손을 잡은 틀림없는 진실이겠지. 허나 그대는 어떠한가?”

“잡은 건 잡은 거지. 거기에 뭔 이야기가 더 필요한가?”

“잡았다 할지라도 그것에 과연 마음이 있기나 하겠소? 도대체 나이도 많고 이미 일선에 물러났다고는 하나 그대는 분명 참으로 지낭(智囊)이라 일컫어도 이상치 않은 사람이네. 더군다나 그 심성이 과연 올곧은 문하시중 천신영과는 정반대라 할 인물이지. 과연 무엇을 꾸미고, 뒤로 누구랑 손을 잡았소이까?”

탈로 가려져 있을 뿐 상당히 날카로운 시선이 허염을 향한다는 건 물러나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정기의 눈에도 보였다. 이를 감도 좋고 바로 마주하는 허염이 모를 리 없었다.

의미심장한 사내의 시선을 받으며 허염은 여유로이 웃으며 자신의 찻잔에 차를 가득 따랐다. 그리곤 흘러내리지 않게 천천히 들어올렸다.

“이 찻잔에 가득 찬 차가 흘러내리지 않는 건 내 손이 흔들리지 않아서이지. 허나 작금의 장경은 이미 흔들리고도 남아서 차가 넘쳐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네. 난 그저 그 찻잔 안의 차를 마시려고 하는 거네. 전부 흘러내리기 전에 말이야. 아직 그럴 기력은 남아 있네, 남영.”

사내, 아니 남영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며 차를 마시는 허염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눈앞의 노인이 가진 능구렁이 같은 생각이 과연 어떻게 실행될지에 대한 기대와 흥미, 그리고 그로 인한 남영과 관계된 이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과연 그대가 마실 차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군. 자네가 말한 것처럼 찻잔이 흔들려 차가 넘쳐흘러가고 있고 그 차를 마시고자 하는 이들도 한둘은 아니네. 과연 그대가 마실 기력은 있다곤 하나 그들을 제치고 마실 기력은 있겠는가?”

“나를 너무 늙었다고 보지는 마시오. 아직 내겐 손발이 있소.”

허염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정기가 서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경계하는 정기를 보며 남영은 작게 감탄의 소리를 흘렸다.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내 기대는 해보도록 하지. 피차 이 일련의 상황에서 어찌 그 차를 마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네만 기대도 해보도록 하지. 과연 그대가 이 나를 상대할 수 있을는지 말이야.”

“허허허, 정확히는 그대와 손을 잡은 불길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가볍게 웃어넘기며 일어서서 정자를 내려가는 남영의 뒤에 허염이 말을 걸었다.

“차는 안 하고 가시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는 내 찻잔은 없지 않소. 나중에 따로 대접이나 해주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떠나는 남영이 몇 발자국 떠나면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눈도 뜨기 힘든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남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정자를 내려와 주변을 살핀 정기의 눈에는 남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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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9) +1 18.09.23 119 1 9쪽
87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8) 18.09.10 11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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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1) 18.07.22 144 1 10쪽
79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0) 18.07.15 113 1 9쪽
78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9) 18.07.08 84 1 10쪽
77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8) 18.07.01 101 1 9쪽
76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7) 18.06.25 104 1 9쪽
75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6) 18.06.10 129 1 9쪽
74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5) 18.06.03 85 1 9쪽
»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4) 18.05.27 115 1 9쪽
72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3) 18.05.20 141 1 9쪽
71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2) 18.05.13 166 1 9쪽
7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 18.05.07 166 1 9쪽
6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2) 18.04.29 144 1 9쪽
68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1) 18.04.23 128 1 10쪽
67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0) 18.04.16 145 1 9쪽
66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9) 18.04.08 170 1 9쪽
65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8) 18.04.01 149 1 9쪽
64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7) 18.03.25 149 1 8쪽
63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6) 18.03.18 20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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