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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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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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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2)

DUMMY

최화련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천인예에게서 자신을 파악하고자 보는 소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으로 인해 마주친 시선에서 정기는 상대가 보통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상당히 고위 가문의 아가씨가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만한 기백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난 참지정사 최염계의 장녀 최화련이다. 내 아버지이신 참지정사와 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당당히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는 최화련의 뒤에서 그녀의 하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이런 상황에 괜히 정체를 밝히는 건 후에 구설수로 오르거나 하여 가문에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녀를 수행하는 하인 자신도 큰 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건 나중에 어떤 약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정기는 놀란 마음에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아가씨를 보던 정기는 스스로를 밝히고 말없이 자신을 보는 최화련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나도 밝혀야 하나?”

“그것이 예의다.”

“이 상황에서 무슨 예의를······. 정말 세상물정 모르시는군.”

어처구니없어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정기에게 최화련은 콧웃음을 쳤다.

“너야말로 세상물정을 모르는군. 나와 내가 속한 가문을 모르느냐?”

모를 리 없다. 참지정사 최염계는 상당히 유력한 조정의 대신이다. 그리고 그가 속한 최씨 가문 역시 대대로 유력대신들을 배출한 명문가다. 거기에 최화련이라는 이름 역시 여신동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정기도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지?”

“오히려 그럴수록 몸조심해야 하지 않나? 보통 명문가 여식일수록 몸조심하면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얌전히 굴고 괜한데 구설수 오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숨기지 않냐는 거지.”

“오호라, 하나는 아는 모양이지만 둘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

정론이라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정기에게 최화련은 비웃음을 담은 말로 대꾸했다.

“바로 그런 구설수를 무시하고 지울 수 있는 힘이 있기에 바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구설수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에 스스로를 숨기지 않은 것이고, 그런 구설수에 발목잡힐 일이 없기에 당당히 나 자신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당당한 태도의 최화련의 말에 정기는 대꾸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뭐라 대꾸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괜히 대꾸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정도 되는 사람이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는 게 얼마나 큰 약점이 되는지 알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보나? 오히려 그게 더욱 이익이 될 수 있기에 그럴 거라곤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렇게 말을 마치며 살며시 미소를 짓는 소녀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정기는 묘한 소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창날이 끼어들었다.

“거, 거기까, 까지.”

“뭐가 거기까지라는 거야?”

기껏 끼어 들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려는 천인예는 최화련의 말에 정지했다.

“그, 그건······.”

“아, 맞다. 지금 언니의 부친이신 문하시중과 내 부친이신 참지정사는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탄 입장이지, 참. 그리고 그쪽 남자애가 뫼시는 허염도 지금은 한 배에 탄 상황? 맞나?”

“그, 그래. 그, 그러니, 까······바, 방해······.”

“방해하지 말라는 거네. 언니는 너무 더듬거려서 말을 알아듣기 힘드니까 대신 내가 말하도록 하지. 뭐라 얘기를 할지 대강 알 거 같으니 말이야.”

더듬거리며 말을 꺼내려는 천인예의 말을 끊으며 최화련이 말했다. 최화련의 행동은 분명 무례한 행동이긴 했지만 잠깐의 시간 속에서도 천인예의 더듬거림에 대화의 힘듦을 느끼던 정기는 속으로 공감을 표하며 감사도 표했다.

“물론 한 배라곤 해도 모든 부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위해 행동치 않을 게 분명하지. 특히 허염이라는 늙은 여우의 경우 말이야.”

정기는 내색치 않으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여우라기보다는 뱀에 가깝지 않냐는 말을 속으로 던지면서 말이다.

“그, 그건 차, 참지저, 정사도 마, 마찬······.”

“글쎄?”

정말 모르겠다는 듯 뻔뻔하게 반응을 보이는 최화련은 소리죽여 웃으며 말했다.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그보다도 이렇게 있어서야 되겠어? 거기 남자애의 경우에 방금 장락원 밖으로 나온 여자애를 쫓아야 하지 않아? 분명 최근에 일어난 연쇄살인의 범인 일당에 해당하는 애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허염이라는 영감은 그 애로 뭔 짓을 저지를 생각인 듯 하니 말이야. 언니 입장에선 괜히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허염의 사병이 있는 장락원을 감시하는 일이겠지? 아, 이건 언니 독단이려나? 날 조종해서 초정회에 편지를 보낸 것처럼 말이야.”

술술 말을 늘어놓는 최화련의 기세에 눌린 천인예였으나 지지 않으려고 무기를 꽉 쥐었다. 이는 아무리 친했던 사이였다고 해도 맞서야 한다면 맞서겠다는 의미였다.

“예전이랑 정반대 입장이네.”

“그런 것보다 난 이제 가면 되겠지? 괜히 지체하다고 놓쳐서 영감님께 혼나긴 싫거든.”

“그걸 그냥 두려고 내가 나섰겠어? 너 잡아 두려고 내가 정체까지 밝히며 시간을 끌었는데.”

괜한 말을 꺼냈다며 뻔뻔스럽게 당황하는 척을 하는 최화련을 보며 정기는 무언가 있음을 짐작했다. 분명 이들 셋은 각자가 모시는 중요인물들이 동맹을 맺었기에 같은 편이라곤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법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분명 각 세 진영은 각자의 꿍꿍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대화로 짐작해봤을 때 그 아래에 해당하는 이들 중에도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으로 행동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된다.

“정말 귀찮게 됐군.”

“그래? 난 재밌게 됐는데.”

어둠 속에 대치한 셋은 서로를 마주하며 대치했다.

“미안한데, 정말 나는 얼른 움직여야 하거든?”

“그, 그걸 마, 막아······.”

“그 이유를 알아야 겠다는 게 언니의 입장? 그럼 난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으로 하지.”

가장 여유로운 입장인 최화련이 들고 있던 부채를 촥 소리가 나게 폈다. 최화련과 맞서기 싫어하는 천인예는 창을 들기는 했지만 그 끝이 흔들렸다.

“화, 화련아······, 나, 난 너라, 랑은 싸우, 우기 싫어, 어. 그러, 니, 니, 까···우, 우리······.”

“언니, 자기 아버지를 위한 언니의 효심을 잘 알겠지만 그런 독단 행동에 짜증이 치민 내 입장은 고려 좀 해줘. 언니 덕분에 구긴 내 체면은 뭐가 돼? 언니 덕분에 스승님 앞에서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한 거라고. 뭐, 스승님은 뭐라 하지 않지만 내 자존심은 뭐가 돼?”

최화련의 말 앞에 천인예는 뭐라 대꾸치 못하며 쭈뼛거렸다. 반면 이들의 일과 상관없는 입장인 정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잘난 체면이고, 나발이고, 싸울 거면 두 사람이서 싸워서 인간관계 매듭이나 지우셔. 난 내 길 가야하니 좀 봐주고. 누가 봐도 제3자인 나 좀 냅두면 안 되나?”

“미안한데, 일단 시작은 너야. 사실 여기 있는 문하시중 댁 아가씨인 선랑은 사적인 일이고, 넌 공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거든.”

“그러니 길게 끌어봐야 소용없겠군.”

더 이상 지체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정기는 그대로 돌진했다. 재빠르게 최화련에게 다가간 그는 자신의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밝게 빛나는 부적이 최화련의 품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정기의 칼을 막았다.

“직접적으로 노리지도 않은 칼에 맞을 리 없잖아?”

그 말대로 이후의 여파를 고려하여 정기는 최화련을 베기보다는 놀라게 하여 넘어뜨리기만 할 생각이었다. 허나 예상치 못한 부적에 막히고, 예상하긴 했지만 위협적인 공격에 물러나야 했다.

“젠장.”

칼이 막히 시점에서 정확하게 옆구리를 향해 내질러진 천인예의 창을 간신히 피한 정기가 침을 땅바닥에 탁 뱉었다.

“화, 화련이, 이에, 게···소, 손···모, 못 대.”

“말은 잘 해요.”

실제론 더듬거리는 말이긴 하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분명 최화련에겐 굴욕적인 일을 맛보게 만든 천인예이기는 하나 여전히 최화련을 동생처럼 여기기에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 행동을 보며 최화련은 쓴웃음을 지었고 천인예는 여전히 그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반면 이들과 전혀 인간적인 관계가 없는 정기는 미칠 상황이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자니 혼이 날 것이 자명했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성가셔서 말이야.”

“뭐라니.”

정기는 지니고 있던 부적을 꺼내어 두 사람에게 날렸다. 짤막하게 외운 주문과 함께 부적은 강력한 빛을 냈다.

“큭.”

“······으.”

그 눈부신 빛에 두 소녀의 시야가 가려지자마자 정기는 재빠르게 제갈길을 가고자 했다.

“모, 못 가.”

눈을 가리며 천인예가 내지른 창에서 붉은 빛이 날카로이 뿜어져서 정기의 행로를 저지했다. 그대로 전진했다가 옆구리에 구멍이 날 뻔 했음을 안 정기는 식음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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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2) 18.10.07 88 1 9쪽
89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1) 18.09.30 110 1 10쪽
88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9) +1 18.09.23 120 1 9쪽
87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8) 18.09.10 113 1 10쪽
86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7) 18.09.02 13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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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4) 18.08.12 115 0 10쪽
82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3) 18.08.05 89 2 9쪽
»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2) 18.07.29 109 1 10쪽
8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1) 18.07.22 144 1 10쪽
79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0) 18.07.15 114 1 9쪽
78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9) 18.07.08 84 1 10쪽
77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8) 18.07.01 10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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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4) 18.05.27 115 1 9쪽
72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3) 18.05.20 141 1 9쪽
71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2) 18.05.13 167 1 9쪽
7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 18.05.07 166 1 9쪽
6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2) 18.04.29 145 1 9쪽
68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1) 18.04.23 128 1 10쪽
67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0) 18.04.16 145 1 9쪽
66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9) 18.04.08 170 1 9쪽
65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8) 18.04.01 149 1 9쪽
64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7) 18.03.25 149 1 8쪽
63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6) 18.03.18 208 1 9쪽
62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5) 18.03.11 15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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