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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가현별곡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최근연재일 :
2019.05.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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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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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5)

DUMMY

진의겸은 이미 벌어지는 일들에 관하여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토록 아버지와 함께 피하길 원했던 초정회와의 전투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본래라면 생각지 못한 요소가 나타난 시점에서 물러나는 게 상책이나 이미 사태는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로군요.”

진의겸은 짤막한 지팡이를 꺼내어 허공에 흔들었다. 이윽고 거센 불길이 무시무시한 열과 빛을 내며 지팡이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진, 의겸······.”

천인예가 창을 고쳐잡으며 진의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너, 너는, 아니, 네, 네 아버···지느, 는 뭐, 뭘 위해 이···러느, 는 거, 지?”

“그게 굳이 궁금한가요? 그렇다면 설명해 드리죠. 아니, 당신도 알겁니다. 최근에 일어나는 불온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걸 말입니다.”

진의겸의 말은 평소와 같은 정중한 말투이나 그 어조는 고조되어 있었다.

“제 아버지는 유능한 국가의 동량들이 속한 선랑을 지휘하면서 종친들의 수장인 상서령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현재 이 나라의 지존이신 임금께선 병환으로 위중하시고, 태자께선 아직 나라를 이끄시기 미숙한 것이 실정이죠.”

“즉, 상서령이신 무천군이야 말로 현 시점에 이 나라를 이끌 유일한 인물이라는 건가?”

“동시에 혼란을 잠재우실 분이지요.”

진의겸의 말에 최화련은 코웃음을 쳤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군. 누가 들으면 반역죄로 여길 수 있겠어.”

“이는 오만이 아니라 당연한 이치를 설명하는 겁니다. 제 아버지이신 상서령 무천군께선 바로 이 혼란스런 정국을 잠재우실 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기에 그 혼란을 잠재우고자 하는 겁니다. 특히 임금께서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위중한 이 시기야 말로 뛰어난 역량을 지닌 분이 나셔서 정국을 지휘하고 안정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부와 조정을 단속하여 혼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을 제거하고 위험요소를 단속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진의겸의 얼굴은 그야말로 당당했다. 당연히 옳은 일이자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앞장서는 이로선 당연한 표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최화련에겐 가식과도 같았고 그저 욕망에 찬 이들이 곧잘 뒤집어 쓰고 다니는 명분이란 이름의 가면일 뿐이었다.

“어쨋건 그게 네놈들의 지금의 막나가는 행동의 명분이라는 거군.”

“대충 알았으면 적당히 하고 항복이나 하라고!”

걷어차여 잠시 쓰러져 있던 문진호가 이를 빠득 갈면서 검을 들고 최화련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최화련 사이에 끼어든 주호가 칼날이 없는 칼자루를 휘둘렀다. 그러자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문진호의 검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쳐냈다.

“뭐, 뭐야!”

어두워서 못 본 게 아닌가 하는 문진호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솔직히 전에 우리 상단에 와서 거만하게 X랄 떨던 게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거든?”

보이지 않는 칼날을 휘두르며 주호는 문진호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검술에 있어서 나름 자신이 있는 주호이나 상대의 칼날이 보이지 않는 터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난감해져서 방어에 치중하게 되었다.

주호와 문진호가 싸우는 동안 천인예의 창끝은 붉은 빛이 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나기 시작했다. 아울러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던 불길도 점차 진의겸의 지팡이 끝에 한 점으로 작게 모이기 시작했다.

“현 임금의 아우이자 상서령이신 무천군의 차남이며, 선랑의 일원인 진의겸이 말하노니 더 이상의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나라의 부국과 평화를 위해 복종하고 따라라. 그것이 이 나라 백성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하는 도리이자 자세이며,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할 지니.”

그야말로 최후통첩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천인예도 지지 않으며 떠듬떠듬 선언했다.

“나, 나느···은 조, 조정, 의 수장이···신 문···하시, 중의 자, 장녀이자 선라, 랑인 처, 천인···예···다. 조정···의 여, 영수이···신 내 아버, 버지의 며, 명을 받드, 들어 나···라의 위, 협이 되···는 모든 이, 드, 들을 분쇄···하, 한다. 너희, 야 마, 말로 내 조정···의 여, 영수 이신 문하, 시중의 마···말을 따르어, 야 하, 할 것이···다.”

천인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인예와 진의겸, 두 사람의 법보가 공격을 시작했다. 진의겸에 의해 한 점으로 모인 불길은 이내 수많은 불덩이가 되어 사방에 떨었다. 사방으로 떨어지는 불덩이 선랑들을 피해 그들과 맞서는 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진의겸을 향해 내지른 천인예의 창끝에서 거대한 붉은 빛이 내뿜어졌다. 진의겸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 같은 빛은 이를 막고자 사이에 끼어든 서금수, 서금영은 물론 진의겸까지 뜨겁게 달구었다.

천인예의 붉은 빛은 세 사람을 그저 좀 뜨겁게 만들 뿐이었다. 대신 그들이 들고 있는 법보들이 힘을 잃어버리며 순간 녹이 슬어 버렸다. 동시에 진의겸이 날린 불덩이들도 한낱 허상이 되어 사라졌다.

법보의 기이한 힘이 사라졌을 뿐 무기로선 여전히 쓸 수 있다 판단한 서금수와 서금영이 급히 천인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한 발짝 물러나는 듯 하다가 먼저 휘두른 서금수의 철편을 피해 옆으로 뛰어올랐다.

그런 그녀를 향해 서금영이 봉을 내질렀으나 천인예는 마치 서로 엮이듯 자신의 창의 몸통으로 서금영의 봉을 누르면서 휘둘렀다. 봉이 붙잡히듯 되어 틈새를 보인 서금영은 천인예의 창에 목을 거세게 얻어맞고 말았다.

“컥.”

“금영아!”

서금영이 당하는 장면에 놀란 서금수가 공격방향을 바꾸었으나 천인예가 서금영을 방패삼아 뒤로 숨자 당황하여 순간 움직임을 멈칫하고 말았다. 그 틈에 천인예는 한 손으로 창을 길게 내질러 서금수의 옆구리를 찔러버렸다.

한편, 천인예의 법보에 그 힘이 사라진 진의겸은 뒤이어 발차기를 날린 소희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다. 품속에서 꺼낸 부적도 천인예의 법보가 가진 힘에 의해 그냥 종이조각이 된 상태였다.

“정말 대단하네. 과연 문하시중 댁 여식은 뭐가 달라도 달라.”

“정말 그렇습니다.”

맞장구를 치며 도움을 받고자 돌아본 진의겸이었으나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서금수, 서금영은 천인예에 의해 제압되었고, 문진호는 주호를 상대로 어찌 공격치 못 하고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의전은 최화련과 김중후는 이초와 마주하여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만 물러나 줬으면 하는데?”

“그러고 싶지만 말이죠.”

정말 얼른 물러나는 게 답이긴 하나 물러날 경우 기습을 해올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움직임이 곧 시작되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일을 꼬아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 하는 게 제 입장입니다.”

진의겸은 두 자루의 단검을 품속에서 꺼내어 쥐면서 소희와 마주했다. 소희는 그런 진의겸을 보며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마음에 들어.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하룻밤 정사를 청해봤을 텐데 말이야.”

“그거 나름 영광으로 받아들이죠.”

진의겸이 자세를 낮추며 단검을 들어 소희에게 돌격했다. 재빠르게 소희에게 다가가 휘두른 단검은 소희의 손톱에 가로막혔다.

“그럼 영광이지. 그런데 정말 내가 인정할 만한 녀석인지는 두고 보자고, 인간.”

달빛 아래 드러난 소희의 눈은 마치 짐승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재빠르게 자리를 이탈한 정기는 이미 놓쳤다고 생각되는 이소연의 뒤를 쫓았다. 이미 어디로 갔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 정기는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어느 민가의 지붕 위에 착지한 그는 사방을 살피며 이소연의 옷깃이라도 보이길 빌었다.

옷깃은커녕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치열한 전투의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열심히들 하는군.”

정말 치열하다고 표현될 만한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정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렇게 소란이 벌어지는 싸움이 도성 한복판에 일어나고 있는데 분명 도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오위의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호기심에 슬쩍 보고 있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뭐야, 이거······.”

“뭐라고 보나?”

갑작스런 목소리에 돌아본 정기는 그제서야 이소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울러 본 적이 있는 인물도 함께 말이다.

“과연 쫓아 왔군. 그 녀석들의 말이 옳았어.”

비도는 감탄 아닌 감탄을 흘리며 자신의 칼을 정기를 향해 겨누었다. 비도의 곁에는 오랜 이불 속 생활로 체력이 많이 준 이소연이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래도 녀석들 덕에 시간을 벌었어. 괜찮냐?”

비도의 물음에 이소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네 녀석에겐 감사의 인사를 하도록 하지. 듣자하니 네가 다친 소연이를 주워서 치료받게 했다고 하더군. 전에도 한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도록 하지.”

전에 감사의 인사는커녕 무단으로 장락원으로 침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동시에 묘한 한기가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냐면 분명 다혈질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던 인물이 매우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편인데 말이야. 그새 성격 좀 바뀌었네? 뭔 일 있었어?”

“있었지. 중요한 일이 말이야.”

도대체 그 짧은 사이에 성격이 저렇게 변할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정기에게 여전히 칼을 겨누며 비도가 말했다.

“그보다 지금 당장 네놈의 뒤를 바주는 영감탱이에게 나를 인도해라. 어서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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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1) 18.09.30 1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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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4) 18.05.27 115 1 9쪽
72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3) 18.05.20 141 1 9쪽
71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2) 18.05.13 167 1 9쪽
70 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1) 18.05.07 166 1 9쪽
69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2) 18.04.29 145 1 9쪽
68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1) 18.04.23 128 1 10쪽
67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10) 18.04.16 145 1 9쪽
66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9) 18.04.08 170 1 9쪽
65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8) 18.04.01 149 1 9쪽
64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7) 18.03.25 149 1 8쪽
63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6) 18.03.18 208 1 9쪽
62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5) 18.03.11 156 1 9쪽
61 제9장 : 어그러진 바람이 폭풍으로, 재해로 이어진다(4) 18.03.04 18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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