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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57,703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2.10 19:10
조회
121
추천
5
글자
12쪽

슬픔의 악마

DUMMY

엑스칼리버가 부러졌다.


조나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러진 엑스칼리버를 내려다봤다.


비록 자신이 진짜 조나단은 아니지만, 이 검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조나단의 기억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사용할 자신도 충만했다.


그런데 부러졌다.


레이라의 공격 단 한 번으로.


“그 검은, 책임감으로 이루어진 한 남자의 것이었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라져간다.


아니,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레이라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스며들면 스며들수록 레이라의 마음은 본질이 슬픔으로 바뀌어갔다. 어떠한 일이든 슬픔과 연결 짓고 싶어지고, 이 세상은 슬플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지어진다.


그렇다면 슬픔을 베어버리자.


슬픔을 모두 베어버리면 이 세상도 살만할 곳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슬픔은 무엇인가?


“조나단은 책임감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 슬픔이 전해져오고 있어.”


그래서 엑스칼리버부터 부러트렸다.


끝까지 다하지 못한 책임감의 슬픔을 베어버렸다.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알고는 있어도 이해하지는 못 하는, 탐이라는 괴물은 결코 엑스칼리버를 다시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이 남자의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후배여.”


조나단, 아니, 탐은 손에 기운을 모았다.

기운은 머지않아 검이 되었다.

엑스칼리버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검이었으나, 음산한 기운이 감돌아 불길해보였다.


“후배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대선배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


탐은 단숨에 레이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탐에게 레이라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외투를 붙잡고 벗어던질 뿐이었다.


“이제 불필요한 거적때기야.”


쾅!


레이라의 외투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먼지가 구름을 일으키고 굉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억눌러왔던 레이라의 마력이 전부 해방되었다.


카캉!


외투를 벗는 동작 때문에 탐의 검이 레이라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외투를 벗으면서 몸이 가벼워진 레이라는 가볍게 공격을 받아냈다.


파악! 그 다음으로 한 번 더 힘을 주자 탐은 힘없이 밀려냈다.

탐은 한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레이라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상치 않았다.

느끼는 것만으로도 몸이 소스라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두려움만 느끼고 있으면, 식탐의 권속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탐은 당연하게도 레이라의 마력을 삼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두렵지만 못 할 것도 없다.


비록 조나단이 레이라보다 마력은 뒤떨어져도, 검술은 한 수 더 위니까.


‘기억을 확인해본 결과, 조나단과 레이라가 헤어진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어.’


마력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을지언정, 검술의 경험은 다르다.

탐은 확신을 가지고서 검을 바로잡았다.

이어서 조나단이 오랜 시간 공들여 익힌 보법으로 강직하게 돌격했다.


돌격하면서 레이라의 검을 보았다.


‘내가 더 빨라!’


레이라의 검은 한 차례 늦게 내려오고 있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자신의 검이 먼저 레이라를 베어낼 수 있다.


탐은 그렇게 확신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검으로 베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팍에 통증이 느껴져서 내려다봤다.


레이라의 검이 가슴에 꽂혀있었다.


“뭣···?”


“심장이 없구나, 너는.”


레이라는 가슴에 꽂은 검을 뽑았다. 피가 없는 괴물이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찌른 부위에 깊은 구멍만 생겼을 뿐이었다.


“심장이 없으니까 감정을 못 느끼는 거겠지. 그게 네 패배 요인이야.”


“그게 무슨···”


“머리도 없는 게 아니라면 차분하게 생각해보렴. 조나단님의 보법을 따라했잖아? 어땠어?”


“강직하고 올곧았···”


대답하다가 탐은 직감했다.


조나단의 힘은 자신이 쓸 수 없는 힘이다.


게다가 조나단의 힘과 레이라의 힘은 극과 극의 상성이다. 올곧고 정직하기만 한 조나단의 공격은 어둠속에 숨어버리는 레이라를 벨 수 없다.


“그렇다면!”


굳이 조나단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도리어 인간의 형태를 하고서 검으로 싸우니까 불리하다.

조나단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레이라를 자극시키라는 식탐의 명령 때문이었을 뿐.


‘질 것 같은데 그 모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


마침내 탐은 원래 슬라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온통 새카만 슬라임, 레이라는 처음 봤지만 그 감상을 느낄 틈은 없었다.


탐이 원래 모습을 되찾으면서 삼킨 이들의 슬픔이 전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찌 이리도 슬플까.’


조나단의 슬픔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책임감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뿐이었고, 기본적으로 조나단은 강한 이였기에 다른 슬픔은 안 가지고 있었으니까.


‘반면에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툭, 투둑.


레이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며 초원의 풀잎을 건드려 소리를 냈다.


눈물이 떨어진 바닥에가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레이라는 자신의 눈물에 마력이 계속해서 묻어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힘은···’


레이라가 자신의 눈물을 보며 생각에 빠졌을 때, 탐은 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촉수를 꺼내들었다.


구경하던 로스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저거지! 슬라임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촉수 아니겠어?”


황제는 또 시작이라며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귀를 막았음에도 로스트의 말이 들려와서 불쾌해했다.


“슬라임의 촉수는 산성이어서 갑옷을 녹여버리고···”

“닥쳐라.”

“모양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 이런저런 형태가 되어 붙잡은 여자를 흐흐흐···”

“제발 좀 닥쳐라.”

“그 끝에 우걱우걱! 삼켜버리고 마력을 전부 빼앗아버렷♥”

“하트도 빼라.”


“아무튼 우리 탐이가 이긴 거라고, 저 싸움!”


로스트는 기분이 좋은지 방방 뛰었다.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슬픔의 악마가 저기에서 죽어버리면, 저급한 그 분들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겠냐···”


“괜찮아, 로스트짱. 슬픔의 악마 같은 것 없어도 이프를 괴롭힐 수단은 많단다~ 라고 해주지 않을까?”


“잘도 그러겠군.”


그 순간, 이변이 생겨나 황제와 로스트 둘 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라?”


탐은 잘려나간 촉수 한 개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촉수가 잘리는 광경은 연속해서 벌어졌다.


“군것질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간식을 챙겨주지 못한 어머니의 슬픔을 벤다.”


촉수와 함께 잘려나간 것은 레이라가 흘린 눈물이었다.

눈물이 베이면서 검격은 강대한 마력을 머금고, 날카로운 검기가 되어 촉수를 베어냈다.


“엄마한테 떼쓰지 말 것을 그랬다, 엄마한테 울지 말고 웃어줄 것을 그랬다, 후회하는 아이의 슬픔을 벤다.”


눈물을 베면서 촉수를 베는 레이라에게는 다른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건강을 위하여 채소가 가득한 식사를 마련했다. 아이는 채소밖에 없다면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떼를 쓰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별 수 없이 먹었다.


그리고 맛없는 채소를 많이 먹었으니 간식이라도 달라고 투정부렸다.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울음소리는 커져갔다.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 안 주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은 마음이 아파 약해져만 갔다.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계속 투정부리다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


멈춘 뒤에는 마음을 아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했다. 떼쓰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반면에 어머니는 내일 꼭 간식을 챙겨주자고 생각했다. 아이는 반성하고 어머니는 간식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은 오지 않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식탐의 괴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고, 탐에게 먹히면서 아이에게 간식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슬퍼했다.


아이는 탐에게 먹히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말 잘 들으며 미소만 짓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이 먹힐 때 후회했다. 처음부터 말을 잘 들었어야 했다고 슬퍼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죽었다.

슬픔이라는 감정만을 남겨둔 채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슬픔을 달래줄 방법은 무엇인가.


레이라는 베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소한 일에도 모두 슬픔이 깃들어있다. 슬픔은 원초적 감정이니 못 없앨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없애기 위해 벤다.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지 못한 남자의 슬픔을 벤다.”


하나씩,


“사랑하는 그이에게 무력감을 안겨준 여자의 슬픔을 벤다.”


하나씩,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의 슬픔을.”

“마을을 지키지 못한 자의 슬픔을.”

“희망을 지키지 못한 자의 슬픔을.”


베어내고, 또 베어낸다.


촉수가 베이면서 눈물도 베인다.

눈물은 베여봤자 두 방울로 흩어져 바닥에 떨어질 뿐이다.

슬픔을 베어봤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세상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아도, 탐에게 먹힌 이들의 슬픔은 해소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가 줄어들어가며 탐의 크기 또한 작아져갔다.


탐은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 오래 살면서 많은 것을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그 사실에 탄복하며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죽기 직전에 공격이 멈췄다.

순식간에 쏟아진 공격이라 첫 번째 베인 촉수가 아직까지 공중에 떠있었다.


후두둑······


공중에 떠있던 촉수 파편이 액체로 다시 흩어지고, 눈물과 뒤섞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새파랗던 초원이 검게 물들어 바닥에 구멍이 생긴 것만 같았다.


탐은 왜 자신이 죽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슬픔의 악마가 된 탓에, 괴물인 자신이 느낀 슬픔조차 헤아려주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슬픔을 받아들이고 없애려고 하는 악마니까,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탐은 내심 기대하며 레이라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이었다.


“뱉어내라.”


“무··· 무엇을?”


“네가 먹은 사람들을.”


레이라는 탐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는데도, 마을 사람들의 슬픔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탐의 몸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슬플 수밖에 없다.


적어도 마을에 묻히고 싶다. 그래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덜 슬플 것이라고 원혼들은 소리쳤다.


“지금 당장 뱉어내.”


탐은 죽고 싶지 않았다.

혹시 먹은 이들을 전부 뱉어내면 살려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내뱉었다.


그런데 레이라는 매정하게 검을 들어올렸다.


“자, 잠깐!”


탐이 외쳤다.


“나도 슬프다고!”


탐이 항변했다.


“나도 슬라임이었을 뿐이야! 나쁜 건 식탐의 악마지. 식탐의 악마가 나한테 멋대로 권능을 부여하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야! 나는 슬픈 슬라임이라고!”


슬프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는 소리를 냈다.


“그래, 그렇군. 너는 슬픈 생물이다.”


탐은 한순간 살았다는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레이라는 검을 내려찍었다.


“그러니 너라는 슬픈 생물을 벤다.”


탐의 위에서 눈물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이 탐의 마지막이었다.


“이제 망자들을 묻어줄까.”


레이라는 시체들에게서 전해지는 슬픔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모두의 슬픔이라지만 사심이 섞일 수밖에 없기에, 제일 먼저 시선이 간 것은 조나단이었다.


“조나단님···”


슬퍼하며 조나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나단을 묻어주려고 옮기려는데, 품속에서 종이가 떨어졌다.


레이라는 의문을 품으며 종이를 주웠다.


작가의말

조나단 그는 좋은 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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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악마 20.12.10 122 5 12쪽
78 아리니 마을 20.12.09 109 6 12쪽
77 페널티 20.12.08 118 5 12쪽
76 준비된 위기 +2 20.12.07 127 5 13쪽
75 수색대 +2 20.12.05 129 5 12쪽
74 라이미 소환 +2 20.12.04 126 5 12쪽
73 러브초코 데이 (6) +6 20.12.03 136 5 12쪽
72 러브초코 데이 (5) +4 20.12.02 134 6 12쪽
71 러브초코 데이 (4) +2 20.12.01 132 6 11쪽
70 러브초코 데이 (3) +4 20.11.30 136 5 12쪽
69 러브초코 데이 (2) 20.11.29 143 5 12쪽
68 러브초코 데이 (1) +4 20.11.28 176 6 12쪽
67 식탐과 색욕 20.11.27 166 6 12쪽
66 오크의 숲, 쿠발란 (5) +4 20.11.26 158 6 12쪽
65 오크의 숲, 쿠발란 (4) 20.11.25 153 6 12쪽
64 오크의 숲, 쿠발란 (3) +2 20.11.24 159 6 12쪽
63 오크의 숲, 쿠발란 (2) 20.11.23 167 7 12쪽
62 이프의 기억, 쿠발란 (4) 20.11.22 173 6 12쪽
61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20.11.21 173 7 12쪽
60 이프의 기억, 쿠발란 (2) 20.11.20 182 6 12쪽
59 이프의 기억, 쿠발란 (1) +4 20.11.19 191 6 13쪽
58 오크의 숲, 쿠발란 (1) +4 20.11.18 216 7 12쪽
57 이프의 신화 20.11.17 227 8 12쪽
56 마음짓기 (2) +4 20.11.16 224 8 12쪽
55 마음짓기 (1) +4 20.11.15 238 8 12쪽
54 에리나 +2 20.11.14 252 8 13쪽
53 슬픔과 불신 20.11.13 262 8 13쪽
52 탐욕·인색 (4) +2 20.11.12 261 7 13쪽
51 탐욕·인색 (3) 20.11.11 259 9 12쪽
50 탐욕·인색 (2) +2 20.11.10 28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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