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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57,674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2.08 19:10
조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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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페널티

DUMMY

“부르셨나요? 교관님.”


그믐달이 뜬 밤이었다.

달빛은 옅었고, 다른 날의 밤보다 더 어둡고 음산했다.


스테민의 부름을 받아 찾아간 훈련장에 그 외의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훈련장에 아무도 없이 스테민만 서있으니 유독 쓸쓸해보였다.


하지만 스테민의 눈에 쓸쓸해 보이는 사람은 되려 레이라였다. 억누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악령의 기운이 레이라를 집어삼켜갔다.


너무나도 위태로운 모습이다.


“레이라 학생도 들었겠지요.”


“뭐를요?”


“수색대에 뽑혔다는 것 말입니다.”


스테민의 말에 레이라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엔비아가 기밀사항이라고 했었기에 주변에 누가 있으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라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요. 저도 뽑혔어요.”


“걱정이네요.”


“제가 위험에 빠질까 봐요?”


“네. 레이라 학생이 생각하는 위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레이라도 바보는 아니다. 악마로 타락할까봐 스테민이 걱정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다. 스테민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약간의 조건만 있어도 바로 악령의 기운에 잡아먹혀 악마가 된다.


“그런데 왜.”


레이라는 침묵을 깼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면서도, 수색대에 편성되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나요?”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엔비아 교관이 말했죠. 진혁이 주작업화를 사용하면 된다고···”


주작업화.


레이라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그 스킬을 떠올렸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 주작업화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직감이 그렇게 말했다.


“···저도 연구자로서 진실을 어느 정도 파헤쳐봤지만, 이 세상의 진실은 알면 알수록 우울해집니다.”


스테민은 인간이 인간으로 있기 위해서 필요한 감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슬픔이다.

자세한 감정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아기 때부터 할 수 있는 감정은 웃는 것과 우는 것뿐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긍정적 감정은 기쁨으로, 부정적 감정은 슬픔으로 1차적인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슬픔’이라는 키워드로 악마가 되어가는 레이라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테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레이라 학생이 슬픔의 악마가 되는 일은 막을 수 없겠죠. 어쩌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스테민은 초콜릿을 한 손에 하나씩 들어서 보여줬다.


“레이라 학생은 제가 처음으로 키워낸 수제자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을 이상하게 만드는 여자입니다. 저도 제 마음이 왜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잘 알아보기 위해, 초콜릿을 두 개 만들어왔습니다.


“하나는 평범한 초콜릿입니다. 먹어봤자 그저 찰나의 달콤함을 통해 기쁨을 얻을 뿐이죠. 반면에 다른 하나는.”


어둠 속에서 스테민의 눈이 고요히 빛을 냈다.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를 잊어버리는 초콜릿입니다.”


먹는 순간부터 슬픔이라는 감정을 못 느낀다. 가여운 아이가 죽어가도 슬퍼하지 않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파해도 슬퍼하지 않는다.


슬픔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 또한 모두 차단된다. 만에 하나 레이라가 분노한 끝에 슬픔을 느낀다든가, 질투한 끝에 슬픔을 느끼게 된다면, 분노나 질투와 같은 감정들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오직 행복함만을 느낄 수 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를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만 만개하게 피어난다.


그것이 인간인가?


스테민의 기준에서는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슬픔을 느낀 끝에 악마가 되어버려도 인간은 아니다.


다만, 슬픔을 느껴서 악마가 된 자와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이기를 선택한 자.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인간에 가까운지는 스테민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레이라를 그렇게까지 인간으로 남겨야할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수제자를 죽인다면 슬플 것이고, 또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여성을 죽인다면 슬프겠지만, 그러한 비극은 이 세상에서 특별한 수준에는 못 미치니까.


아무리 스테민이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도 그 정도쯤은 견뎌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생각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레이라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마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교관님, 아니, 스테민.”


레이라는 스테민의 손에 쥐어진 초콜릿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교관과 제자 사이에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으니, 편하게 말을 하도록 하지요.”


편하게 말을 한다고 해도 레이라는 존댓말을 쓴다. 레이라가 존댓말을 쓰지 않는 대상은 없으니까.


“저는 인간이고 싶습니다.”


공교롭게도 레이라 또한 스테민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슬펐고, 레이틀리가 죽어서 슬펐고, 불쌍한 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슬퍼서 슬픔이 지독하게 싫었지만.


레이틀리는 말했었다.


넓은 세상을 보러 가라고.


세상에 슬픔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맞다. 레이라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거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레이라는 평범한 초콜릿을 골랐다. 스테민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레이라는 인간이로군요.”


스테민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전투만을 위해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성장환경,

그로 인해 얻게 된 힘,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는 욕망,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특히 그러한 성장환경 속에서도 악령이나 악마가 되지 않았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철저히 배제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정녕 나는 인간이 맞는가?


그 의문을 스테민은 항상 품고 있었다.


그러다 쿠발란에서 레이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봤다.


레이라는 선하고, 인간답기에 마음에 든다는 결론이었고, 따라서 슬픔의 악마가 되면 레이라가 레이라가 아니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인간이기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고, 선하기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선한 인간이기에 슬픔으로 점철된 이 세상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시 나는, 레이라가 인간이라서 레이라를 좋아하는 거였군요.”


레이라가 설사 슬픔의 악마가 된다고 하여도, 그것은 레이라가 레이라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레이라가 레이라이기 때문에 슬픔의 악마가 되는 것이고,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스테민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굳히며 미소 지었다.


“슬픔의 악마가 되어도 나는 레이라 당신을 좋아할 거예요. 그건 슬픔의 악마가 아니라 레이라 당신이니까.”


스테민의 말을 듣고 레이라는 초콜릿을 내려다봤다. 아무 말 없이 초콜릿을 입안에 넣었다. 찰나의 달콤함으로 기쁨밖에 못 주는 초콜릿이 녹아들어간다.


“아직 저는 스테민을 이성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괜찮나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랑받기 위한 공부를 할 겁니다.”


“공부한다고 되려나···”


대화하면서 초콜릿을 모두 먹었다. 찰나의 기쁨이 몸에 스며든다.


“그래도, 지금 초콜릿이 준 잠깐의 즐거움은 좋네요. 제가 슬픔의 악마가 되더라도 즐거움을 계속 주세요.”


슬픔을 베어내기 위해 슬픔의 악마가 된다.

하지만 슬픔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슬픔의 악마가 되어서 슬픔을 줄이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자신을 말리기 위해 즐거움을 달라.


“증명해드리죠.”


밤하늘의 우울하던 그믐달이 스르르, 구름에 가려졌다.



* * *



수색대가 출발했다.


아카데미의 교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사실을 몰라야 했지만, 아는 이 또한 있었다.


네베였다.


네베는 방에 홀로 남아서, 언제나 그랬듯이 공책에 글을 적었다.


글을 적다가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날아와서 멍하니 바라봤다.


-


당신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시나리오입니다.


-


그 글귀에 네베는 멍한 기분이 싹 날아갔다.


“마지막··· 시나리오?”


네베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끝낼 수 있다는 거야?”


네베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저주 그 자체였다.


강해지고 싶어서 발악하던 도중, 우연찮게 마주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 힘은 절대적인 인력(引力)이었다.


언젠가 선택지가 나타나면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 얼마든지 골라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 막연한 생각은 처음으로 선택지가 나타났을 때 더욱 불안감을 없애줬었다.


-


당신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선택지입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요?


1. 피자

2. 햄버거

3. 치킨


-


고작 저녁 메뉴를 고르는 선택지라니,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것치고는 별 거 아닌 페널티지 않나.


그 덕에 네베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에 강력한 힘으로 많은 이득을 챙겼었다.


선택지는 세월이 흐를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서 크툴루를 잡으라고도 했지만, 네베의 강력한 힘으로 크툴루를 죽이는 것은 간단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택지의 내용이 이상해져갔다.


-


당신의 활약 덕분에 어미와 아비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잘만 먹고 사는군요.


이게 옳은 일일까요?


갈(喝)!


응당 일을 한 만큼 얻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열심히 일을 했으니까 얻는 것이 맞지만, 당신의 어미와 아비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호사를 누리는군요.


차라리 당신을 잘 키우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당신이 왜 강해지려고 했는지만 떠올려도 간단하지 않나요?


학대하는 어미, 무관심한 아비.


그랬던 주제에 지금은 당신에게 하하호호 친절한 부모 행세라니!


시스템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지를 고르세요.


1. 죽인다

2. 토막 내서 죽인다

3. 갈아버려서 죽인다


-


엄마가 못 살게 괴롭힌 것도 맞고, 아빠가 무관심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죽여야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선택지가 그렇게 나타났기에 죽여야 했다.


처음으로 저질러본 살인이 존속살해라니.


네베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와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나 네베의 인력(引力)은 사람과의 거리를 자꾸만 좁혀왔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네베는 세상과 벽을 쌓았다. 더 이상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네베의 힘은 인력이 아니라, 현상의 거부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안 그래도 된다.

이번 마지막 시나리오만 무사히 해결하면 괜찮다.

언젠가 진혁이 자신을 막아주기를 바라서 강해지라고 강요했었지만, 이번 시나리오만 끝내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 희망을 품고 네베는 시스템 창의 내용을 읽어나갔다.


-


이번 시나리오만 완수하면 당신은 자유입니다.


내일 탐욕의 악마, 리시아의 헌터 길드원들이 아카데미를 침공합니다.


리시아는 참으로 딱하죠. 아끼던 최지현이 죽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 복수를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선택지를 골라야 합니다.


1. 헌터들을 도와서 학생들을 죽인다.

2. 헌터들을 도와서 학생들을 죽인다.

3. 헌터들을 도와서 학생들을 죽인다.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


“차라리 황제처럼.”


페널티가 자신의 죽음이라면 좋았을 텐데.


-


당신의 페널티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시 살인을 저지른다.’입니다.


-


네베의 눈에 희망이 사라졌다.


작가의말

네베야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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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라이미 소환 +2 20.12.04 125 5 12쪽
73 러브초코 데이 (6) +6 20.12.03 135 5 12쪽
72 러브초코 데이 (5) +4 20.12.02 133 6 12쪽
71 러브초코 데이 (4) +2 20.12.01 131 6 11쪽
70 러브초코 데이 (3) +4 20.11.30 135 5 12쪽
69 러브초코 데이 (2) 20.11.29 143 5 12쪽
68 러브초코 데이 (1) +4 20.11.28 175 6 12쪽
67 식탐과 색욕 20.11.27 165 6 12쪽
66 오크의 숲, 쿠발란 (5) +4 20.11.26 157 6 12쪽
65 오크의 숲, 쿠발란 (4) 20.11.25 152 6 12쪽
64 오크의 숲, 쿠발란 (3) +2 20.11.24 158 6 12쪽
63 오크의 숲, 쿠발란 (2) 20.11.23 166 7 12쪽
62 이프의 기억, 쿠발란 (4) 20.11.22 172 6 12쪽
61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20.11.21 172 7 12쪽
60 이프의 기억, 쿠발란 (2) 20.11.20 181 6 12쪽
59 이프의 기억, 쿠발란 (1) +4 20.11.19 190 6 13쪽
58 오크의 숲, 쿠발란 (1) +4 20.11.18 215 7 12쪽
57 이프의 신화 20.11.17 226 8 12쪽
56 마음짓기 (2) +4 20.11.16 224 8 12쪽
55 마음짓기 (1) +4 20.11.15 237 8 12쪽
54 에리나 +2 20.11.14 251 8 13쪽
53 슬픔과 불신 20.11.13 261 8 13쪽
52 탐욕·인색 (4) +2 20.11.12 261 7 13쪽
51 탐욕·인색 (3) 20.11.11 259 9 12쪽
50 탐욕·인색 (2) +2 20.11.10 28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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