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57,701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1.21 19:10
조회
172
추천
7
글자
12쪽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DUMMY

진혁은 스칼렛이 악령이 되는 과정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아는 거랑 달라.’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브를 입은 자.


레이라에게도 들었었고, 로카의 기억을 알게 되면서 얻은 지식이지만, 잔혹한 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말을 건다.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위대한 자라고 밝히고, 힘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게 악령이나 악마가 되는 시작점인데.


‘지금은 대놓고 잔혹한 자로 추정되는 녀석이 있어.’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폭주하고 있는 스칼렛의 체기다.


본래 잔혹한 자가 노리는 것은 마음의 빈틈이지, 폭주하는 힘이 아니다.


그런데 스칼렛의 체기가 먼저 폭주를 하고, 로브를 입은 자의 공작이 펼쳐져 기운이 타락해간다.


‘다르다, 뭔가 달라.’


하지만 태평하게 다르다고 생각할 때는 아니었다.


로브를 입은 자가 사라지고, 이성을 잃은 스칼렛이 멍하니 바라봐왔기 때문이다.


‘악령이 되면 아무리 약했어도 강해진다··· 스칼렛도 얼마나 강해졌을지 몰라.’


이프의 기억에 따르면, 스칼렛은 기껏해야 불꽃 구체, 화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밖에 날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스칼렛은 수십 개의 화탄을 불러냈다.


‘나라면 별 것 아니긴 해.’


진혁의 몸이었다면 별 것 아닌 기술이었다. 불릿 타임을 쓰고 전부 피해서 다가가면 끝이다.


문제는 지금 이프의 몸에 들어와 있기에 스킬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시의 마력도 쓸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식칼뿐.


‘이프는 전생에 최강의 검사였댔는데.’


전생은 전생일 뿐인지, 신체능력이 영 좋지 못하다.


진혁은 이프 자신이 아니니까 어떻게 싸워야할지 막막한데, 이프의 속마음이 생생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나씩만 날리면 눈에 체기를 모아서 동체시력을 강화해서 피할 수 있는데··· 수십 개면 불가능해.


‘불릿 타임이랑 비슷한 건가?’


진혁은 혹시나 싶어서 눈에 체기를 모아봤다.


확실히 동체시력은 높아져갔지만, 불릿 타임을 쓴 것처럼 좋아지지는 않았다.


이런 신체능력으로는 피할 수 없겠지, 진혁은 확신하여서 체기를 풀었다.


풀자마자 날아드는 수십 개의 화탄.


진혁은 이프의 생각을 들으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했다.


“미숙한 요리사의 손길, 사과 돌려 깎기.”


영창과 동시에 펼쳐지는 무의식의 영역.

목적은 화탄을 없애는 것, 수단은 식칼.

손으로 잡지 못한 식칼이 날뛰며 사과가 된 화탄을 깎아낸다.


화탄들은 마력을 잃어서 사라져갔다.


문제는,


‘이런, 씨발.’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갔다.


진혁은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고, 이프는 긴장한 채로 생각을 이어갔다.


-루비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내 스킬에 내가 죽을 판이잖아. 차라리 전생의 나를 구현하는 게 나아.


‘전생의 나를 구현한다고?’


진혁은 이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몰랐으나, 일단은 이프가 원하는 대로 식칼을 떨어트렸다.


그 다음에 한 것은 물로 이루어진 칼을 끝없이 상상하는 것이었다.


무의식의 영역은 열리지 않았으나, 전생의 이프가 사용하던 물의 칼날이 떠오르고 체기가 형태를 잡아갔다.


그리고 물의 칼을 화탄에게 휘둘렀다.


촤아악!


하지만 증발해서 사라지는 것은 물의 칼 쪽이었다.


‘고대 영웅도 초보 때는 아무 것도 아니구만!’


진혁은 혀를 차면서 식칼을 줍고 뒤로 도약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화탄에 집어삼켜져 죽을 뻔하였다.


-물의 칼이 안 통한다고? 이러면 이길 방법이 없잖아···


‘아니, 설마 벌써 포기한다고?’


진혁은 경악했다. 이프로부터 전해져오는 감정이 무력감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손가락이 9개나 남아있지 않은가?

멀쩡히 달려갈 수 있는 다리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벌써 포기하려는 것인가?


고대 영웅 이프라는 작자가, 아무리 지금 초보라지만 이렇게나 의지가 약하다니 실망스러웠다.

이러다가 설마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겠지.

진혁은 그런 최악의 스토리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화탄을 눈앞에 두고 이프는 주마등을 보듯이 전생의 한순간을 보았다.


-


전생의 내가 살던 곳은 검사들의 세상이었다.


세상을 위협하는 검귀를 쓰러트리기 위해 강한 검사들은 꼭 필요한 존재였고,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들은 검사들에게 굽실거려야 했다.


강한 검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 불합리적이지만 단순해서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내가 재능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던 것 같다.


검을 휘두르는 나를 보며 검귀의 조무래기 하나 못 이기고 쓰러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경고했다.


맞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나도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재능이 없으니 검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를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검으로 살다가 검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만을 했고, 그 결과, 검귀의 조무래기한테 당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원하던 검을 휘두르다 죽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만족스럽게 죽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젊은이, 자네는 지금 굉장히 불만족스러워 하는군.”


신비로운 분위기의 노인이 한 말에, 나는 내가 내 감정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네는 아직 한이 많아. 이루고 싶은데 못 이룬 것이 많군. 불만족스러우니 아직 죽고 싶지 않은 게야.”


그래, 나는 검귀를 죽이고 싶다.

검귀를 죽여서 영웅으로 인정 받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힘이 없습니다. 재능이 없어요. 불만족스럽지만 현실을 이겨낼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흐음··· 젊은이, 자네는 저 뱀의 이름이 뭔지 아는가?”


노인은 기어가는 뱀 한 마리를 가리켰다. 그 뱀은 크기가 작고 기어가는 모습도 비실비실해보였다.


“참 약해보이지 않나? 저 뱀은 독도 없고, 크기도 작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저 뱀이 이무기라네.”


이무기.

수천 년을 수행하면 신령인 용으로 승천하는 뱀의 이름.


“저 뱀이요···?”


믿을 수 없었다.

저리도 약해빠진 뱀이 언젠가 용이 된단 말인가?


“그래, 약한 현실이 불만족스러워서 수행하고 또 수행을 하지. 그러니까 용이라는 신령이 될 수 있는 게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못 할 것이 없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면 언젠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노인은 그리 말하며 나를 치료해줬다.


“조급해하지 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법이니.”


-


-그래, 난 지금 불만족스럽다. 아무리 악령이 되었다지만 고작 스칼렛에게 진다니. 이래서야 잔혹한 자는커녕 다른 악령조차 못 이기잖아.


주마등을 본 이프의 의지는 변화했다.

다시 싸울 마음이 생겼는지 무의식의 영역을 열어서 눈앞의 화탄을 베었다.


-난 이런 곳에서 쓰러지지 않는다!


왼손의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간다.


‘으으, 어쨌든 할 마음은 생겼다는 거지? 한 번 가보자고.’


이프의 의지를 따라 진혁은 스칼렛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스칼렛은 침착하게 화탄을 만들어서 쏘아냈고, 진혁은 계속해서 사과 돌려 깎기를 사용했다.


사과 껍질을 도려내듯이 깎여나가는 화탄들.

그와 함께 잘려나가는 진혁의 손가락들.

어찌어찌 컨트롤하여 왼손의 손가락들만 날리고 있지만, 오른손의 손가락이 날아가는 것도 조만간이었다.


-빨리 끝내야 해.


이프는 조급해져서 지그재그로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이다. 맞히기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 진혁이 지그재그로 달리기 시작하니, 스칼렛도 당황했는지 화탄을 하나씩 쏘아냈다.


-화탄을 만들어서 쏘는 것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 같네.


확실히 스칼렛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당혹감이었다.

이대로 쭉 나아가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겠지.

진혁은 이프와 함께 확신에 가득차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면 없던 힘도 생겨나는 법.


이프가 주마등을 보고서 다시 기운을 차렸듯이, 스칼렛도 갑작스레 힘을 폭발시켰다.


단숨에 눈앞까지 찾아온 거대한 화탄.


피할 수 없다.


진혁과 이프는 화탄과의 거리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하지만, 노인과의 대화가 이어서 들려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는데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나타나면 그때는 어떡합니까?


평생을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나타나면 좌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의문을 이프는 담았었다.


노인의 답은 명쾌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다 같이 해결하면 되지 않겠나?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야.


‘그런데 지금 여기는 혼자뿐이잖아.’


이 대화가 지금 떠오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진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프의 기억,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서 도움을 주든, 이프가 어떠한 깨달음을 얻든 진혁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진행된다.


가령, 지금 이프가 깨달음을 얻어가듯이.


-그래, 그 말이 맞아. 요리를 혼자 하면 힘들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덜 힘들어.


이프는 이때까지 요리의 이미지를 ‘어머니가 해주던 것’만 상상하고 있었다.


어머니라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요리를 하는 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요리를 먹어줄 사람은 가족뿐이니, 그렇게 많은 양을 요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양을 요리해야 한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거대한 화탄을 요리해야 한다면?


어머니처럼 혼자서 요리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가?


-불가능해.


그러니까 함께 요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요리사라면, 나를 도와줄 조수가 필요해!


무의식의 영역이 열려간다.

영역 속에 있던 식칼이 두 개로 흩어지고, 식칼을 잡으려고 뻗는 손도 두 개로 늘어난다.


무의식의 영역이 완성된 순간, 영창을 내뱉고,


“요리사의 고용, 미숙한 조수.”


진혁의 곁에 이프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났다.

체기로 만들어진 분신은 바로 진혁을 힘껏 밀어내 날려 보냈다.


화아아악!


거대한 화탄이 울부짖으며 지나갔으나, 그것이 삼킨 것은 이프의 분신일 뿐.


이프의 본체가 아니었다.


-됐다!


왼손에 더 이상 손가락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었으니까.


-이걸로 끝이다!


이프는 진혁에게 의지를 보냈다.


진혁은 그 의지를 기반으로 무의식의 영역을 만들어갔다.


스칼렛은 붉은색이니까 가장 가까운 채소인 당근을 떠올린다.

식칼로 당근을 썰어버리면 스칼렛 또한 죽겠지.

스칼렛을 죽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악령이 된 스칼렛을 가만히 놔두면 얼마나 큰 사건을 일으킬지 알 수 없으니까.


-엄마는, 남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죽였어. 슬펐을 거야.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게 하고 싶지 않아.


이프는 그렇게 확고한 마음으로, 스칼렛을 죽이기 위해 무의식의 영역을 펼쳐냈다.


그런데 당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쁨의 미소였다.


-뭐···?


‘잠깐만, 왜 풀어?’


진혁은 당황했다.


이프가 당근의 미소를 보고 무의식의 영역을 풀어버렸으니까.


-왜 저런 미소를···


이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칼 대신 종이를 떠올렸다.


빳빳한 종이가 가진 수준의 날카로움.

그것만으로 이프는 스칼렛의 눈을 베어내면서 지나갔다.


“속검, 종이 베기.”


그리고 몸을 숙이면서 뒤로 돌리며 발목을 베어내고,


“2연격.”


눈과 발목을 잃은 스칼렛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아니, 악령인데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안 죽인 거야?’


진혁은 답답했지만, 일단 이프의 기억이니 계속 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작가의말

일단 존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9 슬픔의 악마 20.12.10 121 5 12쪽
78 아리니 마을 20.12.09 109 6 12쪽
77 페널티 20.12.08 118 5 12쪽
76 준비된 위기 +2 20.12.07 127 5 13쪽
75 수색대 +2 20.12.05 129 5 12쪽
74 라이미 소환 +2 20.12.04 126 5 12쪽
73 러브초코 데이 (6) +6 20.12.03 136 5 12쪽
72 러브초코 데이 (5) +4 20.12.02 134 6 12쪽
71 러브초코 데이 (4) +2 20.12.01 132 6 11쪽
70 러브초코 데이 (3) +4 20.11.30 136 5 12쪽
69 러브초코 데이 (2) 20.11.29 143 5 12쪽
68 러브초코 데이 (1) +4 20.11.28 176 6 12쪽
67 식탐과 색욕 20.11.27 166 6 12쪽
66 오크의 숲, 쿠발란 (5) +4 20.11.26 158 6 12쪽
65 오크의 숲, 쿠발란 (4) 20.11.25 153 6 12쪽
64 오크의 숲, 쿠발란 (3) +2 20.11.24 159 6 12쪽
63 오크의 숲, 쿠발란 (2) 20.11.23 167 7 12쪽
62 이프의 기억, 쿠발란 (4) 20.11.22 173 6 12쪽
»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20.11.21 173 7 12쪽
60 이프의 기억, 쿠발란 (2) 20.11.20 182 6 12쪽
59 이프의 기억, 쿠발란 (1) +4 20.11.19 191 6 13쪽
58 오크의 숲, 쿠발란 (1) +4 20.11.18 216 7 12쪽
57 이프의 신화 20.11.17 226 8 12쪽
56 마음짓기 (2) +4 20.11.16 224 8 12쪽
55 마음짓기 (1) +4 20.11.15 238 8 12쪽
54 에리나 +2 20.11.14 252 8 13쪽
53 슬픔과 불신 20.11.13 262 8 13쪽
52 탐욕·인색 (4) +2 20.11.12 261 7 13쪽
51 탐욕·인색 (3) 20.11.11 259 9 12쪽
50 탐욕·인색 (2) +2 20.11.10 282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