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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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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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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1.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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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음짓기 (2)

DUMMY

이 세상 노래 중에 아는 노래가 없다.


지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만, 노래만큼은 이 세상과 지구에 있는 것이 달랐다.


에리나가 부른 노래 또한 진혁은 처음 듣는 것.


혹시나 싶어서 진혁은 노래 목록을 살펴봤지만,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이 세상에··· 아는 노래.”


진혁의 말을 듣고 에리나는 붕 떴던 마음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진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예전에 들은 적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역시 진혁은 이프가 아닌 거겠지.’


진혁은 이프가 아니다.

에리나는 그렇게 확신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계속해서 진혁에게 이끌렸다.

몸이 리릴에게 이끌렸다면 마음은 진혁에게 이끌린다. 이 이상한 상태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된단 말인가.


‘차가움을 잃으면 안 되는데.’


에리나는 자신의 감정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그냥 고개를 세차게 내저은 다음 진혁에게 마이크를 완전히 떠넘겼다.


“그럼 네가 있던 세상의 노래를 불러줘.”


“반주도 없이 부르라고?”


“못 불러?”


“부를 수야 있겠지만··· 가수가 아니니까 잘 부르진 못 하겠지.”


“상관없어. 나도 노래 잘 부른 게 아니니까.”


진혁은 무슨 노래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였다.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애초에 많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반주 없이 부를 만한 노래는 그것밖에 없다.


“가시···라는 이름의 노래야.”


“자기 능력 자랑하는 거야?”


“아니, 뭐 어쩌다 보니···”


“한 번 불러봐.”


에리나의 말에, 진혁은 헛기침을 두 번하고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했다.


가시가 나를 둘러싸네.

어디를 가도 이 세상은 가시뿐이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면 가시가 나를 찔러오네.

나는 갈 곳이 없네.

아아, 가시덤불이여.

나를 둘러싼 가시덤불이여.

어찌 그리 나를 아프게 하는지

.

.

.

아픈 세상에서 잠에 들어.

아픈 가시 속에서 잠에 들어.

잠에 들려는데 가시의 끝에 네가 보여.

가시라는 이름의 사랑의 운명선이 너와 나를 이어주네.

너와 나를, 이었네.


“······”


처음 들어보는 노래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에리나는 가사 때문인지, 그 가사에 깃든 진혁의 감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떠오르고, 함께 하고 싶은 리릴과 진혁이 떠올라서.


기껏 차갑게 얼려놓은 마음이 녹아서 그게 눈물로 흘러내릴까봐.


그게 두려와 에리나는 눈물을 참았다.


그 대신 피식 웃으며, 가면을 썼다.


“못 들어주겠네··· 내가 살면서 들어본 노래 중에 최악이야. 너 정말 음치구나?”


“아니, 못 불러도 괜찮다며.”


자신을 놀리는 에리나를 진혁은 째려보고,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나.”


“왜 불러?”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가면을 계속 쓰고 있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가면을 벗었다가 쓰는 것을 반복해버리면 누군가는 눈치를 채고 만다.


숨기는 게 있느냐.


그 물음에 에리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었다.

사실은 내가 고대 영웅 이프의 동료인 에리나고, 이프와 똑같이 생긴 리릴, 그리고 이프와 똑같이 요리를 잘하는 진혁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하지만 친하게 지낼 자격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고.

그렇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쉿.


어디선가 지켜보는 시선.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그 자.


그 자는 언제나 에리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말할 수 없어.’


사실 차가워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가워져야만 했다.

항상 타오르고 있으면서도,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닌 그 자는, 강렬하게 타오르려는 무언가를 보면 망가트리려고 하니까.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차갑게 하고.

그 다음에 이프를.


‘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일단 녹았다는 것을 들키면 안 돼.’


그래서 에리나는 마음을 차갑게 굳히고,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요란스럽게 굴었다.


“숨기는 거? 그딴 거 없어. 무슨 중2병도 아니고···”


“중2병이라는 단어도 네 친구가 쓰던 말이냐?”


“어, 쓰면 안 되냐?”


“아니, 아니다···”


진혁은 마이크를 걸이에 걸어놓고 일어섰다.

놀이는 끝이었다.

이쯤 하고 돌아가자며 진혁은 리릴에게 떠났고, 에리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는 거대한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에 에리나가 손을 넣으니 다른 공간으로 이어졌다.


공간을 넘어서 들어간 곳은 푸른 숲.

세상에서 가장 고블린이 많이 서식하는 숲.

트리아이나의 숲이었다.


에리나는 그 숲에서 한 소녀를 내려다봤다.


리릴과 똑같이 둥글고 순한 인상.

리릴과의 차이점이라면, 머리카락이 백발이라는 것과 눈동자가 붉은색이라는 것뿐.

그 외의 차이점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소녀는 리릴과 달리 빛을 잃어있었다.

붉은색 눈동자는 탁하게 죽어있었고, 입은 미소를 잃은 채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그 소녀는 고블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프···”


리릴과 진혁 덕에 녹아들 것 같았던 마음이, 진짜 이프가 고블린에게 둘러싸인 것을 보니 싸늘하게 얼어붙어간다.


비록 이프의 눈은 빛을 잃었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


그리고 고블린을 낳는다.


살아있지 않은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아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지 않은가.


리릴과 진혁은 그저 우연히 비슷할 뿐, 이프와 관련이 없다.


‘내가, 구해줄게.’


이프를 잃은 이후부터 이프를 되살리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리릴과 진혁 때문에 녹아내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에리나는 끝없이 마음을 차갑게 얼렸다.


얼어붙은 마음속에 불씨가 하나 심어져있음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 * *



“저한테도 노래 들려주세요.”


리릴과 진혁도 숙소에 돌아오고, 리릴은 진혁이 에리나에게 노래를 들려줬음을 알게 되었다.


소환사인 자신도 진혁에게 노래를 못 들어봤는데, 에리나가 먼저 들어보다니.


별 것 아니기는 해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진혁은 이미 에리나한테 음치라고 한 소리 들어서 망설였다.


“에리나가 나한테 음치래.”


“음치라도 상관없어요.”


“주인 아가씨 귀는 소중해.”


“들려주세요. 제가 불행한 소환사가 아니라면 말이죠···”


“옳소, 옳소, 나도 듣고 싶다 노래!”


“로스트 넌 빠져있어!”


진혁은 또 음치라고 들을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소환사가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에리나에게 들려준 가시를 그대로 들려줬다.


리릴은 처음에 미소를 지으면서 듣다가, 노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미소가 사라져갔다.


“아.”


노래가 끝났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울어?”


“가슴을 울리는 노래네요.”


“음치랬는데?”


“그건 에리나고요.”


리릴은 눈물을 닦고는 싱긋 웃으면서 진혁의 손을 붙잡았다.


“마지막 가사가 마음에 들어요. 가시로 이어진 너랑 나라는 건, 진혁님과 저인가요?”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진혁은 리릴에게 가시를 들이댄 적이 없다.

아예 가시를 안 박기 위해서 계약언까지 맺었지 않은가.

그 탓에 진혁의 가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리릴에게 닿지 않는다.


그 의미로 보면 리릴의 말은 잘못 되었지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 진혁은 넘겼다.


“아무튼 주인 아가씨 힘내. 우리는 어쨌든 살았잖아. 살았으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어. 그 기회가 올 때까지 착실하게 강해지자.”


“그렇지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리릴은 최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진혁이 리시아에게 당할 때 아무 것도 못 했을 때부터 계속, 잠만 자면 악몽을 꾼다.

부모님이 죽을 때 아무 것도 못 했던 무력감의 악몽을.


“저는 처음엔 잔혹한 자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었죠.”


그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런 목표라도 세우지 않으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혁님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점차 그 목표는 옅어져갔어요.”


잔혹한 자를 향한 복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일 뿐이었다.

인생 전부를 걸 정도로 강렬한 복수심 따위는 없었다.

복수를 하면 좋겠지만, 모든 것을 포기해가면서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리릴은 진혁과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더 즐거웠으니까.


“그런데 저는 일상을 지켜낼 힘이 없어요.”


가슴에 달린 S급 배지가 힘없이 빛을 흘렸다.

리릴에게 주어진 S급이지만, 사실 리릴보다는 진혁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리릴의 마력이 강해져봤자 진혁이 원래 힘을 되찾을 뿐, 그것은 리릴의 강함이 아니었다.


“저한테 힘이 없는데, 강해져서 뭐를 하겠어요. 일상 하나 지켜낼 힘이 없는데, 저번처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또 아무 것도 못 할 건데···”


어느 정도 진혁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리릴이 아무리 마력을 강화시켜도 진혁이 헌터의 힘을 되찾을 뿐이다.

그런데 그 헌터의 힘을 되찾는다고 해서 리시아를 이길 수 있나?


아니, 못 이긴다.


결국 리릴에게 몬스터를 먹이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릴이 이렇게까지 자책할 필요 또한 없다.


“아가씨, 소환사의 힘이 뭐야?”


“소환수를 다루는 힘···이죠?”


“그래, 오로리 교관님이 소환은 뭐라고 했어?”


“박수를 치는 것···”


“소환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 나와 아가씨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야.”


진혁은 더 이상 리릴에게 최고의 소환사라고 말은 해줄 수 없었다.

최고의 소환사라고 말해주려면, 자신이 최고의 소환수여야 하는데, 최고의 소환수라기에는 여러 모로 자격이 미달인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리릴에게 함께 힘내자는 말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로카의 화살이 언젠가 목표에 닿듯이, 리릴과 진혁도 계속해서 서로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아가면 성취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해야 했다.


“그렇죠? 제가 요즘 너무 민감했나 봐요. 악몽도 매일 같이 꿔서 더 심했고요.”


“그럴 수 있지. 힘들 땐 기대도 좋다고 했잖아.”


“···네.”


리릴은 기대듯이 진혁에게 안겼다.

계속해서 참아왔던 것인지 안기자마자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리릴을 진혁은 아무 말 없이 토닥여줬다.


“이제 진정이 됐어?”


“네, 감사해요.”


리릴은 진혁의 품에서 벗어나며 배시시 웃었다.


이걸로 지금의 슬픔은 끝낸다.

리시아 때문에 생겨난 부정적 감정에 더 이상 얽매여서는 안 되니까.

과거에 매달려봤자 현재는 우리를 놔두고 도망치기만 할 뿐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진혁은 조나단이 보낸 편지를 펼쳤다.

타이밍 때문에 조나단도 의심스럽지만, 조나단이 보여준 책임감은 틀림없이 진짜였으니 일단 넘기기로 하였다.

그 조나단이 이프의 기억을 일부 읽어서 강해질 수 있었다고 하였으니까.


‘이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갈 필요가 있어.’


겸사겸사 에리나에 대한 의문도 단서를 모은다.


‘에리나가 이프의 동료와 이름이 똑같다는 점, 그리고 뭔가를 숨긴다는 점···’


헛다리일 수도 있고,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 수도 있나 싶지만.

혹시 모르니 에리나에 대한 정보도 모은다.


그것을 위해 책장을 봤다.


“이프에 대한 책들이 뭐뭐 있지?”


“이거랑, 이거랑···”


그렇게 진혁은 이프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왜 그 가시가 버즈의 가시가 아닌 겁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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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러브초코 데이 (3) +4 20.11.30 136 5 12쪽
69 러브초코 데이 (2) 20.11.29 143 5 12쪽
68 러브초코 데이 (1) +4 20.11.28 176 6 12쪽
67 식탐과 색욕 20.11.27 166 6 12쪽
66 오크의 숲, 쿠발란 (5) +4 20.11.26 158 6 12쪽
65 오크의 숲, 쿠발란 (4) 20.11.25 153 6 12쪽
64 오크의 숲, 쿠발란 (3) +2 20.11.24 159 6 12쪽
63 오크의 숲, 쿠발란 (2) 20.11.23 167 7 12쪽
62 이프의 기억, 쿠발란 (4) 20.11.22 173 6 12쪽
61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20.11.21 173 7 12쪽
60 이프의 기억, 쿠발란 (2) 20.11.20 182 6 12쪽
59 이프의 기억, 쿠발란 (1) +4 20.11.19 191 6 13쪽
58 오크의 숲, 쿠발란 (1) +4 20.11.18 216 7 12쪽
57 이프의 신화 20.11.17 227 8 12쪽
» 마음짓기 (2) +4 20.11.16 225 8 12쪽
55 마음짓기 (1) +4 20.11.15 238 8 12쪽
54 에리나 +2 20.11.14 252 8 13쪽
53 슬픔과 불신 20.11.13 262 8 13쪽
52 탐욕·인색 (4) +2 20.11.12 262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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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탐욕·인색 (2) +2 20.11.10 28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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