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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57,698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1.13 19:10
조회
261
추천
8
글자
13쪽

슬픔과 불신

DUMMY

* * *



비가 내렸다.


레이라가 회복이 되자마자 보건실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스테민은 들었다.


설마 회복이 끝나자마자 수행을 시작한 것일까.


레이라가 잠든 시간은 자그마치 5일이다.


5일 동안 잠들었기 때문에 지금 바로 활동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을 것인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훈련장에 갔지만, 레이라는 보이지 않았다.


훈련하고 있는 학생에게 레이라를 봤냐고 물어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 돌아다닌 끝에, 묘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이라가 보였다.


“레이라···”


그 묘지는 리시아 침입 사건 때 목숨을 잃은 이들의 것이었다.


“스테민 교관님.”


레이라는 스테민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눈에서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슬픈 사람은, 저 말고도 많았네요.”


스테민은 위화감을 느꼈다.

처음 면담 때 보았던 레이라와 지금의 레이라는 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렇게 침착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는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인 줄 알았어요.”


친가족은 누구인지 모른다.

새로 생긴 가족인 레이틀리는 죽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슬픈 사람은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리시아의 권속한테 붙잡혔을 때··· 아직 이들은 완전히 죽어있지는 않았었어요.”


말 하나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

그럼에도 살아있었기에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홀어미를 모시며, 금의환향만을 꿈꾸던 이도 있었고.”


홀어미조차 없어 홀로 가정을 떠받쳐야 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무난하게 살아온 귀족 자제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느낀 슬픔이라는 무게는 동일했습니다.”


더 슬프고, 덜 슬프고, 그런 것은 없었다.

홀어미를 모시는 자도 죽고 싶지 않아 슬펐고, 홀로 가정을 받쳐줘야 하는 이도 죽고 싶지 않아 슬펐고, 무난하게 살아온 귀족의 자제도 죽고 싶지 않아 슬펐다.


“그러니 저만 슬픈 게 아니에요. 제가 제일 슬프다는 생각은 잘못 된 거였죠.”


레이라는 겉에 두르고 있던 옷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쿵··· 거대한 굉음이 빗소리에 파묻혔다.


“이들이 죽은 이후는 더 끔찍해요. 죽은 이들의 영혼은 남은 이들에게 울지 마라 울부짖고, 남은 이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울부짖고 있죠.”


마력을 억제하는 옷을 벗으니, 잔혹한 자의 마력이 스멀스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혹한 자의 마력이라고만 보기에는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있었다.


“차라리 저만 슬픈 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 슬픔에 비하면 타인의 슬픔은 별 볼 일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 이 세상은 슬픈 세상이 아니어도 되었을 텐데.”


레이라 스스로 마력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력은 폭주하지 않고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히 막강하고 위험한 힘인데도 폭주하지 않는다. 스테민은 믿을 수 없었다.


“레이라, 당신···”


“네, 맞아요. 깨달음을 얻었어요.”


레이라는 천천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며 마력을 흘렸다.


“한때 저는 어두컴컴한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 사이를 걸어나갈 한 줄기의 빛이 되자.

레이라의 심상은 그러했었다.


“하지만 그게 어리석은 짓임을 깨달았죠.”


한 줄기의 빛 같은 것으로는 어두컴컴한 세상을 밝힐 수가 없다.

애초에 세상은 대체 왜 어두컴컴하단 말인가?

왜 어두컴컴해서 한 줄기의 빛으로 밝혀내야만 한단 말인가?


이토록 어두운 세상인데, 고작 한 줄기로 밝혀낼 수는 있는 것인가.


“아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겠죠.”


이 세상은 슬프다.

슬픈 것은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다.

즉, 자기 혼자 기쁘다고 해서 슬픈 세상을 웃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슬픔을 힘으로 삼아,


“슬픈 세상을 베어버릴 수는 있겠죠.”


그리고 일격.


레이라가 마력을 실어 검을 휘두르자, 쏟아지던 비의 세례가 갈라졌다.

슬픔이 깃든 마력이 비를 갈라버리니, 그것은 슬픔을 베어버리려는 의지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 힘을 쓰면 쓸수록 머리가 어지러워요.”


세상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세상 그 자체가 없어져야 슬픔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슬픔이란 게 있는 세상 따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부숴버리는 게 맞을 거야.


“스테민 교관님, 이 세상은 존재할 가치가 있나요?”


레이라가 눈물을 흘리며 묻는 그 말에, 스테민은 오싹함을 느꼈다.


‘진정한 악마로의 각성.’


악마는 모두 마음의 균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균열을 단순히 남 탓하는 것에 사용하는 수준이면 흔해빠진 악마에 불과하다.

악마로 타락한 순간에 얻은 힘, 그 힘을 끝으로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뜻.


하지만 7대 악마라 불릴 만큼 강한 악마들은 다르다.

이들은 진정한 악마로 각성을 한 자들이며, 마음의 균열을 균열로만 놔두지 않고 하나의 사상으로 바꿔버린 경우다.


슬픔 탓에 레이라가 마음에 균열이 생겼지만, 이때까지 그것은 자신에게만 한정되었기에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저 악령의 마력을 불태우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되었지만,


‘그 문제를 세상으로 넓혀, 세상이 문제니 없애버려야 한다는 염세주의에 도달해버린다면.’


그 또한 진정한 악마로 각성하는 길이 되어버린다.


아직까지 레이라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안정되었다는 이유로 슬픔의 힘을 계속 써버린다면,


‘슬픔의 악마라는 새로운 악마가 탄생할지도 모르지.’


이대로 놔두면 위험하다.

기껏해야 무거운 옷을 입힌다고 해서 제어가 될 수준이 아니다.


“레이라, 그 힘은 위험해요.”


“···그렇겠죠. 슬픔을 베어버린다는 것은, 세상이라는 슬픔을 없애버린다는 것, 그것은 곧 종말이니까.”


“깨달음을 얻어서 저는 기쁩니다만··· 그 힘은 봉인해야 될 것 같네요.”


스테민 자신에게 봉인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헬가르 교관은 저주학에 능통하니 틀림없이 레이라의 힘을 봉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네, 일단은 봉인해둘게요. 스테민 교관님 말이 맞아요.”


레이라 또한 봉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픔의 힘이 마냥 위험하다는 이유로 봉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악마로서의 정신을 일부 갖춘 레이라는, 단지 세상을 향해 유예기간을 둔 것뿐이다.


만약, 이 세상의 슬픔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면.


‘그때는 봉인이 풀리겠지.’


그렇게 레이라는 세상과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 * *



레이라가 슬픔의 힘을 각성하고 있을 때쯤, 진혁은 강해지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니? 왜 내가 마력을 단련시키라고 했는지.”


자신의 나약함에 이를 가는 진혁에게 네베가 말했다.


“그래, 알 것 같아.”


진혁은 헌터로서의 힘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은 지구에서 정점이었던 헌터가 맞다.


하지만 그 헌터의 힘은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힘이 아니지 않나?


체기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결국은 시스템의 어시스트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과연 이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내 힘이라고 할 수 없어.’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의심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리시아가 헌터의 힘을 똑같이 쓰면서, 정점이었던 성진혁보다도 상위의 힘을 썼다는 점이다.


‘시스템이 이 세상에서도 유지가 된다는 점··· 리시아가 체기를 사용해서 스킬을 쓴다는 점.’


그러한 점을 미뤄봤을 때, 헌터로서의 스킬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만에 하나 헌터로서의 스킬이, 정말 만에 하나의 일이지만 악마의 권능 중 하나일 뿐이라면.


‘중요한 싸움일 때 배신당할지도 몰라.’


갑작스레 스킬이 사용이 안 된다든가.

아니면 사용한 스킬에 자신이 역으로 피해를 입는다든가.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러한 점을 눈치챈 거지?


진혁은 네베에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물어봤자 네베는 말해줄 수 없다면서 대답을 피할 것이 뻔했으니까.


‘게다가 어떡해야 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안 해줬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겠다고 했지만, 강해져야할 방법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를 잡아먹어도 강해지지 못하니 난감하다.


“그, 제가 팁 좀 드릴까여?”


고민하는데 인벤토리에서 로스트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로스트를 보니 진혁은 화가 치밀었다.


“무슨 낯짝으로 그딴 말을 하냐? 리시아의 약점 하나 말해주지 않은 주제에···”


“그건 제가 알아야 말해줄 거 아니에요? 리시아는 현 7대 악마 중에 제일 최근에 생긴 녀석이라고요. 리시아가 리시아인 건 알아도 약점 같은 건 모르는 게 당연하죠.”


로스트가 억울하듯이 말하자, 진혁은 별 수 없으니 물러났다.


“그래, 그렇다 치고. 주겠다는 팁은 뭔데?”


“헌터의 힘을 버리세요.”


“뭐?”


“헌터의 힘이 계속 있으면, 결국 의존하게 되잖아요? 아예 버리란 말이에요.”


로스트는 인벤토리에서 알약 하나를 꺼냈다.

초기화 알약이었다.

먹는 순간 헌터로서의 힘을 모두 초기화하는 알약으로서, 기존의 힘을 포기하고 새로운 힘을 얻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뛰어난 두뇌로 웬만한 능력을 배울 수 있었던 진혁에게는 필요 없는 아이템이었지만.


“그러다가 헌터의 힘이 필요할 때 위험해지면 어떡해?”


“그렇지만 질질 끌다가 결국 강해지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잖아용.”


“강해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건 그렇죠. 제 뇌피셜이니까.”


“뇌피셜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본 거야···”


“이거요.”


로스트는 ‘늙은이들을 위한 젊은이 언어 사전’이라는 책을 들어올렸다.

진혁은 자기 인벤토리에 저런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가 저딴 책을 사서 넣어놨다고? 그럴 리가···”


“있는 걸 있다고 하지, 없는 걸 있다고 하겠어요?”


맞는 말이라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헌터의 힘을 당장 포기하라는 말은 따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리시아에게 패배한 힘이지만 결코 약한 힘은 아니다.


“게다가 주인 아가씨 마력 높여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야 헌터 시절의 스킬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버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네 의견은 기각이야.”


“언젠가 제 의견을 따랐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날이 올 걸요?”


“그건 그때 일이고.”


그때, 문이 열리며 리릴이 들어왔다.

리릴의 손에는 편지가 한 통 들려있었다.


“진혁님, 조나단님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조나단한테?”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로 새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 이름, 조나단.

진혁이 책임감의 엑스칼리버를 선물로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잔혹한 자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알려준다고 했었지.”


“네, 그랬었어요.”


뭔가 좋은 정보라도 얻은 것일까.


진혁은 궁금해 하며 편지를 열었다.


-


진혁에게.


조나단입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플루님과 함께 잔혹한 자의 흔적을 쫓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예오크의 영토, 쿠발란에서 신기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에 고대 영웅 이프의 기억을 일부 알게 되는데, 글로도 말로도 전달할 수 없는지 제약이 걸려있어 편지에 담지는 못 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 덕에 저는 더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잔혹한 자의 정보도 좀 더 풍부해졌습니다.


잔혹한 자의 정보도 얻고, 강해질 수도 있으니, (진혁님은 마력이 없어서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되면 쿠발란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또 좋은 정보가 생기면 편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조나단이.


-


“쿠발란··· 여행 교양 다음 목적지가 거기라고 들었는데.”


묘할 정도로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기묘했지만, 어차피 여행 교양은 가야 하는 것이니 기묘함을 떨쳐내고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니 조나단도 의심스럽다.


리시아가 헌터의 힘을 쓴 순간부터 진혁의 가슴속에는 불신감과 경계심이 자리 잡았다.


그 불신감과 경계심이 가시덤불을 더 크고,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작가의말

조나단 넌 또 뭐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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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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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슬픔의 악마 20.12.10 121 5 12쪽
78 아리니 마을 20.12.09 108 6 12쪽
77 페널티 20.12.08 118 5 12쪽
76 준비된 위기 +2 20.12.07 127 5 13쪽
75 수색대 +2 20.12.05 129 5 12쪽
74 라이미 소환 +2 20.12.04 126 5 12쪽
73 러브초코 데이 (6) +6 20.12.03 136 5 12쪽
72 러브초코 데이 (5) +4 20.12.02 134 6 12쪽
71 러브초코 데이 (4) +2 20.12.01 132 6 11쪽
70 러브초코 데이 (3) +4 20.11.30 136 5 12쪽
69 러브초코 데이 (2) 20.11.29 143 5 12쪽
68 러브초코 데이 (1) +4 20.11.28 176 6 12쪽
67 식탐과 색욕 20.11.27 166 6 12쪽
66 오크의 숲, 쿠발란 (5) +4 20.11.26 158 6 12쪽
65 오크의 숲, 쿠발란 (4) 20.11.25 153 6 12쪽
64 오크의 숲, 쿠발란 (3) +2 20.11.24 159 6 12쪽
63 오크의 숲, 쿠발란 (2) 20.11.23 167 7 12쪽
62 이프의 기억, 쿠발란 (4) 20.11.22 173 6 12쪽
61 이프의 기억, 쿠발란 (3) 20.11.21 172 7 12쪽
60 이프의 기억, 쿠발란 (2) 20.11.20 182 6 12쪽
59 이프의 기억, 쿠발란 (1) +4 20.11.19 190 6 13쪽
58 오크의 숲, 쿠발란 (1) +4 20.11.18 216 7 12쪽
57 이프의 신화 20.11.17 226 8 12쪽
56 마음짓기 (2) +4 20.11.16 224 8 12쪽
55 마음짓기 (1) +4 20.11.15 238 8 12쪽
54 에리나 +2 20.11.14 252 8 13쪽
» 슬픔과 불신 20.11.13 262 8 13쪽
52 탐욕·인색 (4) +2 20.11.12 261 7 13쪽
51 탐욕·인색 (3) 20.11.11 259 9 12쪽
50 탐욕·인색 (2) +2 20.11.10 28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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