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미래 계획
63. 미래 계획
존과 하워드, 올리버 그리고 벤자민은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갔다.
다들 눈치가 빠른 이들이라 아까 전의 즐기던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버리고 진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존이 그렇게 말하고는 접시에 담아온 바닷가재 요리를 우물우물 먹더니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곤 말했다.
“배가 고파서....... 이제 말해보게. 벤. 하프캔디 건 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뭔가? 솔직히 이제는 무서워지려고 하는군.”
벤자민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사실 자신도 살짝 두려웠다. 기회가 오길 바랐지만, 이런 식으로 찾아오니 두려움이 올라왔다. 세상일이란 참........
벤자민은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잠시 고민했는데, 이윽고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재판이 끝난 직후 경비병들의 손에 이끌려 황제 폐하를 만났습니다.”
모두 일순간 얼었다. 올리버는 포도주를 마시다말고 사례가 걸렸는지 간헐적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존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 황제가 내가 알고 있는 황제 맞지?”
“이 도시의 총독인 메를린 공작의 형. 그 황제 맞습니다. 프리드 황제 폐하.”
하워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왜, 황제 폐하가 널 만나? 그보다 언제 오셨대?”
“던전에 일이 있어 ‘적당히 몰래’ 왔대.”
“‘적당히 몰래’는 어느 나라 화법이냐.” 올리버가 따졌다.
혼란스러운 와중 벤자민은 일단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당황스러운 건 알겠는데. 일단, 요점부터 이야기할 게. 난 그분을 뵈었고, 제안을 받았어.”
“무슨 제안?” 올리버가 물었다. 약간 겁이나 보였다.
벤자민은 대답에 앞서 포도주로 입을 축였다.
“.......... 황제께서 내게 황실 변호사 자리를 제안하셨어.”
벤자민은 뒤이어 황제가 자신에게 원하던 것을 존과 올리버, 하워드에게 설명했다. 황제가 말했던 것보다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덕분에 지지부진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설명을 다 들은 하워드가 확인차 물었다.
“............그러니까. 황제께선 널 물고기를 잡을 작살로 쓰시겠다는 거네.”
“뭐, 그렇지.” 벤자민이 고갤 끄덕였다.
“조금........ 아니, 아주 위험하게 들리는데. 말이 변호사지 마법사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도시 경비대인 셈인데, 사실상 마법사랑 척을 지는 거잖아............. 괜찮겠어? 엄밀히 말하면 너 역시....... 마법사 가문이잖아.”
벤자민 역시 그 문제로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결정한 문제였다. 자기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전적으로 내 문제니까. 다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이미 정해졌고, 돌이킬 수 없으니. 이 이야기의 요점은 그게 아니야.”
벤자민의 단호한 태도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는지, 다들 업무자세를 취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설명해봐.”
벤자민은 하워드와 존, 올리버를 순서대로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난 황제 폐하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딱히 거절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정식 공문은 레드캐틀과의 분쟁이 끝난 후 내려올 거야. 그럼 난 공식적으로 황실 변호사가 되겠지......... 하지만 그 역할은 기존 황실 변호사들과 상이해.”
“구체적으로?” 하워드가 물었다.
“내 역할은 세리와 비슷해. 국가의 공무를 하청받는 거야. 앞서 설명한 대로, 어느 정도 지원을 받으며 난 마법사들의 위법 여부를 알아내고,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소송을 진행할 거야.
존이 끼어들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그거 아주 위험할 거야. 세리가 모두에게 증오받듯이, 마법사들 역시 널 증오할 거야.”
“전적으로 제 문제니 걱정하지 마세요.” 벤자민이 자신의 확고한 뜻을 내보일 요량으로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존은 불쾌한지 눈썹이 실룩거렸지만, 벤자민은 애써 무시하며 밀어붙였다.
“즉, 나는 기존 황실 변호사와 다르게 법률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어. 소송하려면 조직이 있어야 하니까. 만약, 내가 마스터의 뒤를 이어받아 ‘롭 앤 포터’의 마스터가 된다면, 이 사무소는 황실 변호사가 운영하는 아주아주 특별한 법률사무소가 되겠지. 참고로, 황제께선 호의의 뜻으로 ‘롭 앤 포터’에 황실 특허 문양을 써도 좋다고 허락하셨어. 이게 무얼 뜻하는지 알아?”
이례적인 이야기다 보니 하워드와 올리버는 감도 잡지 못했다.
“이 사무소는 간접적이나마 황실의 위광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거야. 황실과 연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산가들이 몰려들 거고, 다른 변호사들과의 협상 때도 유리해지겠지. 난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롭 앤 포터’를 던전 내 최고 법률사무소로 만들 생각이야.”
벤자민이 다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존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표정에 긴장과 흥분이 섞여 있었다. 던전의 최고 법률 사무소라.................. 허무맹랑했지만, 황실 변호사라는 직함과 합쳐지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벤자민이 노를 젓듯 연이어 말했다.
“단, 마스터의 말씀도 맞아. 내가 황실 변호사로 일하게 되면 마법사들과의 사이도 크게 악화되겠지. 이게 사무소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고. 황제의 보호를 받는 동안 쉽게 해를 끼칠 수는 없겠지만, 이미 브라운 사를 상대하면서 어떤 돌발 변수가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야. 내가 지금 모두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이할지 묻기 위해서야. 이왕 시작하는 거. 모두의 동의를 얻고 싶거든.”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만약 이 일에 끼기 싫다고 말하면?”
벤자민이 말했다.
“그럼 내가 떠나야지. 힘들긴 하겠지만, 수임료로 내 사무소를 차려야지. 이름은 ‘벤자민 법률 사무소’ 쯤 되려나?”
이번에는 하워드가 물었다.
“이곳을 던전 최고의 법률 사무소로 만들겠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계획인데. 난 솔직히 지금 일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데.”
“초반에는 좀 바쁘겠지만, 이후로는 괜찮을 거야. 너랑 올리버의 역할은 이제 중간 관리자일 테니까........... 난 이 사무소의 규모를 키우고 체계화할거야. 이미 어느 정도 일의 속성에 따라 나눠 맡기는 했지만, 좀 더 체계화할 생각이지. 올리버는 유산 및 재산 관리를, 하워드는 모험가들 분쟁에 관한 걸 맡아줘. 너희 두 명을 주축으로 부서를 나눠 일을 전문적으로 맡는 거지. 브라운 사와의 재판 승소와 내가 황실 변호사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하겠다는 지원자랑 고객들은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 관한 고용조건이야. 기본급이랑, 성과급 등등 확인해봐.”
벤자민이 품 안에서 계약서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거래.” 하워드가 감탄하며 말했다.
올리버는 자세히 계약서를 살피곤 의구심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아래쪽이 열심히 일하면 우리가 배가 부르는 구조인데, 지원자들이 동의할까?”
벤자민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더 심한 사무소도 널렸어. 어차피 계획대로만 된다면 일감은 우리 쪽에 몰려들 거야. 우리 일을 아무리 고상하게 꾸며도 결국 다른 장사랑 다를 바 없어. 일단 고객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지. 고객만 많이 확보할 수 있으면, 좋든 싫든 우리가 정한 규칙에 순응할 거야. 물론, 너희가 초반에 열심히 해줘야겠지만.”
하워드와 올리버가 계약서를 한참을 바라봤다. 덕분에 침묵이 내리 앉았는데, 잠시 후, 하워드가 솔직히 말했다.
“솔직히 조건은 마음에 드네. 소설이야 좀 있다 써도 되는 거고.”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좀 겁도 나는데, 마법사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규모를 갑자기 키우다간 어디 탈이 날 것 같은데.”
벤자민이 마스터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스터의 도움이 필요하지. 마스터께선 고문으로 자리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하워드와 올리버에게 조언을 해주시면 사무소가 안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존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삐딱하게 물었다.
“음................자네가 하면 되지 않나?”
“황실 변호사가 되면 전 아마 구대륙으로 갈 것 같습니다. 거기다 브라운 사와 같은 소송도 여러 개 맡을 거고요. 말이 마스터지 전 간판에 가깝습니다. 아직 마스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존이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음, 도와주고 싶지만 자네 문제에 개입하기가 싫군. 자네가 아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오해는 말게 늙은이가 꼬장부리는 거니까.”
존의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벤자민은 삐친 늙은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는데, 그때, 하워드가 벤자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알아서 해결해. 마스터.”
그리고서는 사무실 밖을 나갔는데, 이어 올리버도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잘 됐네. 마스터로서의 첫 번째 임무야. 삐진 늙은이 달래는 거. 해봤는데 어려워.”
- 작가의말
주중에 독자분들이 써주신 댓글 읽고 재밌게 보냈습니다. 다양한 관점을 볼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실 존과의 대화까지 쓰고 싶었는데, 밀리고 말았네요. 수요일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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