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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 도시의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9.04.01 12:34
최근연재일 :
2019.06.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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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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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4. 재판(4)

DUMMY

54. 재판(4)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 재판은 빠르게 시작하였다.

테오 재판장은 간략하게 재판의 시작을 말하곤, 원고 측 증인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브라운 사의 전 직원인 ‘오토’를 증인석에 나왔다.

오토는 키가 작고 마른 중년 남성으로, 깊게 파인 주름과 무뚝뚝한 표정이 삶의 무게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아마, 상대측은 이점을 물고 늘어질 터였다.

오토는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하고는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증언 내용은 하프 캔디가 출시되기 약 3년 전 정체불명의 모험가가 찾아와 수상쩍은 약초 원액을 납품하였다는 내용이었는데, 게리를 통해 들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니, 모험가의 수상쩍은 옷차림이나, 말투 등을 흉내 내며, 당시 브라운 사의 상황을 직원의 관점에서 설명해 약간 생생하기까지 하였다.

엘빈은 저번 재판에서 섣부르게 대응한 것을 교훈 삼았는지, 표정이 가끔씩 일그러졌으나, 섣불리 이의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대신 종이 위에 무엇인가 쉬지 않고 써댔었다.

오토의 증언은 때때로 시시껄렁한 자기네 이야기로 궤를 벗어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일관성 있게 증언하였는데, 오히려 그 탓에 증언이 더욱 현실감 있고 진실성이 느껴져 썩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말을 조리 있게 꽤 잘했는데, 1시간 14분이 지나자 그의 증언은 끝마칠 수 있었다.

벤자민은 회중시계를 보며 이대로 휴정에 들어가 점심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토의 증언은 평균적인 증언에 비해 훌륭한 편이라 재판장이 값비싼 점심과 함께 오랫동안 음미하기 바라서였는데, 점심을 먹는 동안 오토의 증언도 함께 곱씹을 테고, 그럼 재판에서 상대방보다 한단계 우위를 점할지도 몰랐다. 책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전직 변호사인 대학교수에게 배운 꼼수 중 하나였다.

예상대로 테오 재판장이 회중시계를 확인하고는 물었다.


“일찍 휴정에 들어가 오후에 몰아서 재판을 보고 싶소만, 혹시 문제 있는 변호인 있소.”


벤자민은 문제가 없다고 단번에 대답하였으나, 벤자민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엘빈은 재판장의 심기를 거스를 각오를 하고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재판장님 점심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허락해주신다면 반대 심문을 하고 싶습니다. 되도록 짧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테오는 못마땅한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엘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거니와, 빨리 끝낸다고 한 발언 탓인지. 결국 받아들였다.


“좋소. 반대심문을 허락하겠소. 대신 약속대로 빨리 끝내주시오.”


엘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재판 연단 위로 나와 상처 입은 사냥감을 노리듯 증인의 곁을 천천히 맴돌기 시작했다. 벤자민은 사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오토에게 조언해주긴 했지만, 사실 그럼에도 긴장이 되었다. 증인을 어떻게 난도질하느냐에 따라 재판이 유리하게 진행될 수도, 불리하게 진행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오토 씨. 장소가 재판장이라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 소속이었던 사람을 봐서 반갑군요.”


오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반갑소. 사실 과거 몇 번 인사한 적 있기는 한데, 그쪽은 본척만척했지. 몇 년이나 무시당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증인이 될 거 그랬소.”


신랄한 비꼬기에 일순간 방청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엘빈 역시 한순간이나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엄숙했던 법정 안은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해졌으며, 테오가 의사봉을 몇 번 두들기고 나서야 질서를 되찾았다.


“증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고, 표현을 가려 하시오.”


증인인 오토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한편, 이렇게 말할 줄 밖에 몰라 그런 거라며 양해를 구했다. 벤자민은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는 동시에, 게리가 증인을 잘 확보해줬다는 생각도 하였다.

한순간 표정이 일그러진 엘빈이 이내 진정을 되찾으며 질문을 던졌다.


“오토 씨는 브라운 사의 ‘전’ 직원이시죠?”


“그렇소.”


“제가 인사 쪽 서류를 찾아봤는데, ‘해고’당하셨다더군요.”


“그 역시 그렇소.”


“왜 해고당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얼마 안 되는 쉬는 시간에 마법사들에 관한 농담을 몇 개 해 해고당한 것 같소. 이해가 안 되오. 모두 재밌다고 웃었는데....... 아니면, 수상쩍은 모험가에게 납품받는 약초 원액에 관해 내가 구린내가 난다는 의견을 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둘 다나.”


엘빈이 서류 하나를 꺼내 들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르게 적혀있더군요. 오토씨는 과거 회사 물품을 빼돌려 해고당했다고 여기 적혀져 있습니다.”


엘빈이 해당 문서를 법원보조원을 통해 제출했는데, 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져 있겠지.” 증인인 오토가 불평스레 중얼거리자, 엘빈이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증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시죠.”


그러자 오토는 신경이 거슬리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사전 조언대로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증인의 돌발 발언은 향신료와 같아 과할 경우 음식을 망칠 수 있는 법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문서 두 번째 문단을 보시면, 오토씨는 회사 창고에 보관 중이던 약초를 훔친 경력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해고당했죠. 사실 고발조치 해 그동안 누적시킨 피해를 돌려받아야 마땅했으나, 브라운 사는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어해 관대히 그냥 넘어가 줬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오토는 무엇인가 한껏 토해내고 싶은 듯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벤자민을 쳐다보았는데, 벤자민은 필사적으로 참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저런 태도는 보기에 따라 억울해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위험하게 이를 데가 없었다.


‘상대방은 분명 선생을 도둑으로 몰 겁니다. 하지만 흥분하지 마시고, 섣불리 반박하지 마세요. 재판은 그런 싸움입니다. 되갚아 드릴 기회를 반드시 드릴 테니. 부디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벤자민은 사전에 했던 말을 속으로 이야기하며 거듭 진정하라고 손짓했다. 다행이 오토는 그런 조언을 따를 만큼 인내심과 분별력이 있는 이였는데, 이런 사람을 찾아준 게리를 위해 벤자민은 속으로 감사 인사를 올리며, 이 재판에서 한몫 잡는다면 두둑한 보상금을 쥐여줘야겠다는 생각하였다.

엘빈은 다시 오토가 회사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이 탓에 해고당한 앙심을 이 재판에서 풀고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하였다. 역겨운 수법으로, 벤자민은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생각을 하며, 일부로 이의를 신청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하였다.

제대로 들어간 공격의 여운을 느끼는지 엘빈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과거의 일이야 어쨌건, 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주신 오토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이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이 법원의 명령서 없이 자발적으로 재판에 참석하는 건 보기 어려운데 말이죠. 직장 상사 눈치가 보이니까요. 지금 어디서 일하고 계신가요?”


“이의를 신청합니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 측은 이 자리에 나와 준 증인을 조롱하고 있으며, 이 재판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엘빈이 뻔뻔하게 말했다. 하기야 모든 변호사가 뻔뻔하기는 하다만.


“오해입니다. 전 증인께 그저 재판에 참석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것뿐이며, 증인에 대한 질문 역시 이 재판과 상관이 있습니다.”


테오 재판장이 말했다.


“기각하겠소. 단, 피고 측 변호인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뉘앙스의 질문을 삼가하시오.”


엘빈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테오 재판장이 말했다.


“증인 대답하시오.”


오토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현재 자신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이며, 현재 일용직으로 간신히 먹고살고 있다고 답하였는데, 집도 기존에 살던 곳보다 훨씬 못한 곳으로 이사했다는 등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벤자민은 너무 솔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라리 거짓말보다는 낫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럼 증인은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군요.”


“뭐, 그런 셈이요.” 오토가 인상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확실하게 대답해 주시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소.”


“혹시 이 재판으로 받을 보상금이 있습니까?”


벤자민은 당장 일어나 증인을 모욕하고 있다고 이의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냥 오토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니요. 난 이번 재판이 어떻게 되건, 한 푼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소.”


그러자 엘빈의 표정이 살짝 굳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과 달라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단편적인 정보로만 모든 것을 멋대로 판단해 깊게 조사하지 않은 눈치였는데. 벤자민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오토가 이어 말했다.


“나나 내 가족 중에 하프 캔디를 먹은 사람이 없소. 당연한 거 아니오. 왜냐면-”


그때, 엘빈이 서둘러 오토의 입을 막으며 스스로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곧 벤자민의 재심문 차례가 오기에 무의미한 짓이라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엘빈은 오토의 불리한 면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는데, 재판장이 회중시계를 보고 휴정을 선언하였다.


“점심시간이 됐으니. 오후 1시 45분에 재판을 속개하도록 하겠소.”


작가의말

분량이 적어 죄송합니다. 이 이상 쓰면 많이 늦어질 것 같아 올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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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2. 작은 파티 +19 19.06.24 2,388 138 12쪽
62 61. 개 이론 +70 19.06.21 2,571 167 12쪽
61 60. 체포, 초대 +69 19.06.13 2,850 158 13쪽
60 59. 판결 +22 19.06.11 2,546 143 15쪽
59 연재 관련 공지 사항입니다. +18 19.06.10 2,657 55 1쪽
58 58. 협상 시도 +40 19.06.08 2,518 152 13쪽
57 57. 재판(7) +28 19.06.06 2,349 131 12쪽
56 56. 재판(6) +24 19.06.05 2,354 128 11쪽
55 55. 재판(5) +27 19.06.04 2,266 131 15쪽
» 54. 재판(4) +18 19.06.03 2,241 137 10쪽
53 53. 재판(3) +28 19.05.31 2,272 138 15쪽
52 52. 재판(2) +14 19.05.31 2,231 122 9쪽
51 51. 재판(1) +22 19.05.29 2,351 133 8쪽
50 50. 매운 샌드위치 +24 19.05.28 2,343 134 12쪽
49 월요일 휴재입니다. +16 19.05.26 2,368 40 1쪽
48 49. 사전 회의 +26 19.05.24 2,421 137 13쪽
47 48. 의도치 않은 전개 +19 19.05.23 2,452 131 8쪽
46 47. 거인의 개입 +26 19.05.21 2,396 138 12쪽
45 46. 폭풍전야 +18 19.05.20 2,361 117 7쪽
44 45. 대치 +24 19.05.18 2,444 140 16쪽
43 44. 후퇴 +26 19.05.16 2,471 131 11쪽
42 43. 공갈단 +34 19.05.15 2,453 1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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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40. 마녀, 저항자, 괴물 +35 19.05.11 2,615 164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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