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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 도시의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9.04.01 12:34
최근연재일 :
2019.06.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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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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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0. 매운 샌드위치

DUMMY

50. 매운 샌드위치




공기 중으로 버터와 소스, 구운 고기 냄새가 퍼졌다.

샌드위치가 완성된 것인데, 벤자민은 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어깨에 걸치곤 샌드위치와 구운 감자, 샐러드를 쟁반에 담아 식탁 위에 내놓았다.

제법 그럴듯한 모양에 벤자민은 속으로 안도했는데, 비록 몇 년간 손을 놓긴 했지만, 실력은 그다지 녹슬지 않은 것 같았다.

앤 역시 그에 동의하는지 한쪽 입술을 비죽 올리며 말했다.


“뭐, 겉모양은 봐줄 만하네.”


“샌드위치로 괜찮겠어? 더 맛있는 걸 해줄 수 있는데.”


“난 샌드위치를 좋아하잖아. 까먹었어?”


벤자민이 웃음으로 답했다. 앤은 잠시 벤자민을 살펴보더니 샌드위치를 한 조각 집어 먹었는데, 세 번쯤 씹었을 때 약간 놀란 듯 눈이 커지더니 물었다.


“소스가 꽤나 매운데?”


“매운 샌드위치 좋아하잖아.” 벤자민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앤이 고개를 잠시 숙이고는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고개를 쭉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뭐해, 앉아?”


벤자민이 아직 치우지 않은 주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방 정리를 해야 해. 난 주방이 지저분한 게 딱-”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앉으라고!”


결국, 벤자민이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샌드위치는 입맛에 맞아?”


앤이 다시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주 입맛에 맞아. 맛있다고. 대단한데.......... 어떻게 이런 재주를 가지게 된 거야? 음식은 하층민이나 하는 거라고 네가 말했잖아. 나도 기억하지.”

벤자민이 추억 혹은 악몽을 떠올리듯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


“호텔 주방에서 온갖 신박한 욕을 먹으며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늘게 되었어. 난 요리사들 입이 그리 거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앤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가르쳐줘. 네가 어떤 욕을 먹었는지 궁금하네. 근데, 안 먹어?”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내가 만든 음식은 안 먹어. 음식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상품 같거든. 식욕이 안 생겨. 사실, 그래서 무리하면서까지 노예를 들인 거야. 난 요리나 내가 만든 음식이 싫거든.”


앤이 매리와 마이클이 있을 위층 천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긴 하더라.......... 손댄 적 있어?”


앤이 중년 변태처럼 눈썹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리며 짓궂게 물어봤다. 벤자민은 전혀 흔들림 없이 평소대로 말할 뿐이었다.


“손 안 댔어. 예쁘긴 해도 딱히 그런 건 아니거든.”


앤이 끈질기게 물었다.


“그래도 성욕이란 게 있을 거 아니야. 부정하지 마. 난 네 성욕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으니까.”


벤자민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보통 그럴 때, 내 오른손과 너희를 떠올리지.”


대답이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는지 앤은 샌드위치를 씹는 것조차 멈추며, 벤자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넌 또라이야.”


“난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앤이 부정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샌드위치를 먹다가, 몇 번 고민하더니 머뭇거리며 물었다.


“......... 도대체... 아냐.... 아니지, 물어봐야겠어. 도대체 누굴 가장 많이 떠올렸는데?”


“대답해 줄 수 있기는 한데, 정말 듣고 싶어?”


벤자민의 반문에 앤이 고개를 다시 휙휙 저으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역시 됐어. 무덤까지 가져가. 아니면 손자들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해 주던가......... 세상에! 이 샌드위치 정말 맛있네. 정말 안 먹을 거야?”


앤이 급하게 이야기를 돌리듯 물었고, 벤자민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난 요리도 내가 요리한 음식도 싫거든.”


“그럼, 왜 굳이 만들어 준 건데. 적당히 아무거나 사 주지. 아니면 요즘 돈이 부족해?”


벤자민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일을 벌이다 보니 돈이 궁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너한테 내가 만든 음식을 한번 먹여주고 싶었거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돈 몇 푼에 내 음식을 먹어봤는데, 너만 안 먹는 것도 이상하잖아?”


앤이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건, 집에 돌아가 이야기할 거리는 늘었네. 벤자민이 하층민처럼 주방에서 요리할 줄 안다고.”


“만약, 보고 싶으면 오라고 그래, 얼마든지 요리해줄 테니까.”


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여기 눌러앉아 평생 널 요리사로 부려 먹으면 어떡하려고?”


벤자민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그거 최고네. 점심은 못 챙겨줘도 아침이랑 저녁은 챙겨줄 수 있어. 점심은 나가서 먹어. 이 도시에는 맛있는 식당이 널려있으니까.”


그 대답에 앤은 다시 샌드위치를 먹는 걸 멈췄다, 그리고 표정도 다소 어두워졌는데, 무겁고 묘한 침묵이 일었다.


“................. 딱히 재미없는 농담인데?” 침묵 끝에 앤이 말했다.


벤자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농담 아니야. 너희가 오면 언제든지 환영이고, 얼마든지 있어도 돼.”


앤이 한입 크기 남은 샌드위치를 입안에 마저 털어 넣으며 말했다.


“정 그러면 반대로 네가 올 수도 있잖아? 우리 집에도 주방은 있는데 말이야. 사실 여기보다 훨씬 크고 좋지. 오해 마. 다시 꼬시려는 건 아니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앤은 마치 아무 감정이 없다는 듯 말했으나, 표정과 몸짓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인가 아주 답답하고 화가 나 보였다.

벤자민이 우선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갔다.


“앤, 거긴 내 집이 아니야. 너의 집일 수는 있어도 내 집은 아니지.”


앤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사소한 건 넘어가.”


벤자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네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닭인 내가-”


앤이 ‘아!아!’ 감탄사를 내며 말을 잘랐다. 정말 진심으로 듣기 싫을 때 나오는 태도였는데, 그럼에도 샌드위치는 맛있었는지 계속 먹었다. 가끔씩 저 먹성으로 어떻게 저런 몸매가 유지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자존심, 자긍심, 대등, 신념 뭐 그런 헛소리들은 게 기억나긴 하네.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벤자민이 덧붙였다.


“거기에 책임감도 이 일은 내 생각보다 훨씬 커졌고, 난 그 중심에 있지. 더욱이 동료 한 사람은 나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고. 좋아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난 동료를 위해서라도 난 끝까지 이 일을 해야만 해.”


앤이 애정을 이용해 상대를 휘두르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나랑 우리보다 더 소중해?”


비열한 질문이었지만, 그만큼 강력한 질문이었는데. 벤자민 정면으로 그 질문을 들이박았다.


“당연히 너랑 너희가 더 소중하지. 그래서 이러는 거야. 신념도, 책임도, 자긍심도, 자존심도 없는 녀석의 사랑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지?”


앤은 잠시 벤자민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는 갑자기 깔깔 웃기 시작했다. 집 안을 울리고, 피부를 소름 돋게 하는 강렬한 웃음소리였는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웃음을 그친 앤이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사랑해서....... 그 잘난 자존심과 신념을 지키는 거다?”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앤이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


“그런 것도 희생 못 하면서 그게 무슨 사랑인데?”


벤자민이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너희를 위해 내 자존심과 신념은 버릴 수 없지만........ 최소한 내 목숨은 버릴 수 있어.”


너무나도 담담하고, 침착한 어조에 누군가는 농담처럼 들었을지 몰랐지만, 흔들림 없는 두 눈을 마주하니 그 설득력이 달랐다. 어찌나 진지하게 들렸는지, 앤마저 한순간 입이 막힐 지경이었다.


“............... 그럼 지금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줄 거야?” 앤이 물었다.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있어서 안 돼. 하지만, 네가 원하면 끝나는 대로 죽어줄게.”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해?” 앤이 오기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히 네가 날 해칠 거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야.”


다시 집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앤과 벤자민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누구 하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의 속마음을 훑는 듯했는데, 잠시 후, 앤은 남은 음식을 묵묵히 마저 다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재미없다.”


“벌써 가게?” 벤자민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말했잖아. 재미없다고, 거기다 배까지 부르니. 더 이상 이런 좁은 집에 있을 이유가 없지.”


벤자민이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작은 게 아니라 아담한 거야. 엄연히 다르지.”


“그러니까 ‘사촌한테 발정하는 변태’랑 ‘벤자민’만큼이나 다르다는 거지?”


앤의 장난기 섞인 질문에 벤자민이 차마 아무 말도 못 했다.

앤이 현관 밖으로 걸어갔으며, 벤자민도 배웅 차원에서 따라갔다.


“어디 지내는지 물어봐도 돼?”


“적당한 호텔에서 지내고 있어. 뭐, 그것도 오늘까지지만.”


“오늘까지라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배 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벤자민은 이유를 물었다.


“왜? 좀 더 구경 하다 가지.”


앤은 됐다는 듯 ‘에~’라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보다 볼 것도 없더구만. 아기 공장도 없고.”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벤자민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봤는데, 앤은 넘어가기는커녕 경고하듯 단호하게 그 질문을 쳐냈다.


“더 이상 네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 대답에 벤자민은 살짝 당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기야 그렇지.”


앤이 현관문을 열고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도 연애를 해볼까 해. 한 2, 3년 정도. 그러다가 적당한 남자랑 결혼하는 거지. 혹시 이에 대해 할 말 있어?”


벤자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왈가왈부하겠어. 다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이야.”


앤이 벤자민 쪽으로 몸을 휙 돌리더니 말했다.


“그러니 너도 네 인생을 살아. 아마 재판 이후..... 많은 게 변할 테니까.”


벤자민이 동의했다.


“맞아, 많은 게 변할 거야. 그러니, 늙은이하고 삼촌들한테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준비를 하라고 그래. 물론 내 충고는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테지만.”


앤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더 할 말은?”


“다른 애들한테 내가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언제든 좋으니 편지 한 통만 보내 달라고 해. 기다릴 테니까.”


앤이 살짝 발끈하며 말했다.


“내가 분명 아까 전에 네 인생을 살라고 했지?”


벤자민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난 여태까지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걸. 내가 어떻게 살든 그건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그러자 앤이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의미심장한 물음에 벤자민의 눈썹은 비대칭으로 구겨지며 의문을 표했다.


“무슨 뜻이야?”


앤이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으나, 이내 관두었다.


“스스로 알아봐. 똑똑이 씨.”


그리고선 앤은 밖으로 유유히 가버렸는데, 벤자민은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물러날 곳이 사라지고만 것이다.


작가의말

하루 잘 쉬고 왔습니다. 늦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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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5. 새로운 시작 (시즌1 완결) +140 19.06.27 3,205 207 16쪽
65 64. 황제의 까마귀와 변호사 존 +34 19.06.26 2,620 164 15쪽
64 63. 미래 계획 +38 19.06.24 2,454 150 9쪽
63 62. 작은 파티 +19 19.06.24 2,389 138 12쪽
62 61. 개 이론 +70 19.06.21 2,571 167 12쪽
61 60. 체포, 초대 +69 19.06.13 2,850 158 13쪽
60 59. 판결 +22 19.06.11 2,547 143 15쪽
59 연재 관련 공지 사항입니다. +18 19.06.10 2,657 55 1쪽
58 58. 협상 시도 +40 19.06.08 2,518 152 13쪽
57 57. 재판(7) +28 19.06.06 2,349 131 12쪽
56 56. 재판(6) +24 19.06.05 2,354 128 11쪽
55 55. 재판(5) +27 19.06.04 2,266 131 15쪽
54 54. 재판(4) +18 19.06.03 2,241 137 10쪽
53 53. 재판(3) +28 19.05.31 2,272 138 15쪽
52 52. 재판(2) +14 19.05.31 2,231 122 9쪽
51 51. 재판(1) +22 19.05.29 2,351 133 8쪽
» 50. 매운 샌드위치 +24 19.05.28 2,344 134 12쪽
49 월요일 휴재입니다. +16 19.05.26 2,368 40 1쪽
48 49. 사전 회의 +26 19.05.24 2,421 137 13쪽
47 48. 의도치 않은 전개 +19 19.05.23 2,452 131 8쪽
46 47. 거인의 개입 +26 19.05.21 2,396 138 12쪽
45 46. 폭풍전야 +18 19.05.20 2,362 117 7쪽
44 45. 대치 +24 19.05.18 2,444 140 16쪽
43 44. 후퇴 +26 19.05.16 2,471 131 11쪽
42 43. 공갈단 +34 19.05.15 2,453 130 14쪽
41 42. 새옹지마 +18 19.05.14 2,353 125 9쪽
40 41. 끔찍한 꿈 +7 19.05.13 2,416 135 11쪽
39 40. 마녀, 저항자, 괴물 +35 19.05.11 2,615 164 24쪽
38 39.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16 19.05.10 2,484 13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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