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새옹지마
42. 새옹지마
이야기에 앞서 해럴드가 몹시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겠다.
왜 아니겠는가? 가문의 밀무역을 현장에서 책임졌으며, 치안군, 자경단, 도적 등 수많은 위험을 마주했으니. 어디 그뿐이랴. 나중에는 고향에서 도망쳐 이곳 던전의 모험가가 됐고, 이후, 자력으로 변호사까지 된 사람이었다.
성격이 더럽고, 괴팍하며, 친해지긴 힘든 사람인 건 맞았으나,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인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을 것일지도 몰랐다.
“복부에 두 방, 옆구리에 한 방, 얼굴 한쪽에도 깊이 상처가 났는데, 아무래도 오른쪽 눈은 멀어버리고 말 거라더군. 제일 심한 건 머리 쪽 상처인데. 둔기로 제대로 맞은 것 같아. 일단, 목숨은 건졌지만, 언제 정신을 차릴지 신만이 아실 거라더군.”
존이 벤자민에게 그리 설명해줬다. 벤자민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그저 침대에 누운 해럴드를 바라만 보았다. 여기저기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으며, 특히 얼굴과 머리는 3분의 2가 붕대로 덥혀 있어, 흡사 미라처럼 보였다.
벤자민은 딱히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해서 같이 일한 거지.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첫 만남부터 고장 난 바퀴처럼 삐걱거렸으며, 이후로도 부당한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같이 일할 때도 티격태격 싸웠고, 심지어 자기 침대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기에 딱히 그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술고래에 성질 더러운 투견 같은 사내. 그게 해럴드에 대한 벤자민의 평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존경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벤자민은 그에게 최소한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그는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발버둥 치는 배짱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이토록 처참히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을 보니 벤자민은 화가 났다.
심지어 하필 자기가 끌어들인 일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어떤 책임감, 죄책감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분노와 짜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정신을 침범하려던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배를 툭 하고 쳤다. 바로, 게리였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왜 시체 보듯이 보나? 하지 마. 실례니까.”
벤자민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다리는 괜찮으십니까?”
해럴드만큼은 아니지만, 게리 역시 다친 상태였다. 자잘한 상처에, 다리 한쪽이 부러진 상태였는데, 바로 해럴드와 메리, 마이클을 구하려다 입은 상처였다.
계속 브라운 사를 감시하던 게리는 뒤늦게 습격 정보를 입수해, 벤자민의 집에 달려왔으나, 벤자민은 퇴근하기 전이라 집에는 해럴드와 마이클, 메리뿐이었다.
게리는 급한 대로 이들만 대피시키려고 했지만, 재수 없게도 뒤이어 습격자들이 들이닥쳤고, 어쩌다 보니 해럴드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집 밖까지는 무사히 도망쳤지만, 습격자들은 개미 떼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어느새, 도주는 전투로 바뀌며 이 꼴이 되고 말았다고 게리가 설명했다.
“괜찮아. 뼈만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바로 포션을 마실 거니까. 걱정 마.”
게리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이렇게 돼. 정말 죄-”
벤자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게리가 다시 배를 탁 쳤다.
“사과하지 마. 내 의지로 한 거니까. 그보다 자네 꼬라지도 말이 아니구만.”
그 말에 벤자민이 자기 상태를 돌아보았다. 어깨는 총에 맞았으며, 여기저기 타박상에 머리 한쪽에도 크게 상처가 나 있었다.
“별거 아닙니다. 포션 하나 빨고 하룻밤 자면 충분하죠.” 벤자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처 때문에 순간 움찔했지만. 여하튼 괜찮았다.
벤자민이 다시 해럴드를 봤고, 게리가 말했다.
“저 양반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습격자를 여덟 명이나 쓰러뜨렸네. 그중 마지막 둘은 맨손으로 때려눕혔고,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면 반드시 깨어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가만히 있던 린이 동의했다.
“맞아, 너보다 배는 강한 사람이야.”
벤자민이 한숨을 작게 내쉬곤 말했다.
“몸무게도 배로 나가겠지........... 린, 넌 어떻게 알고 날 도와준 거야?”
린이 대답했다.
“해럴드가 가르쳐줬어. 무슨 종이로 된 새가 날아왔는데........ 그게 마법이야?”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줬다. 그 와중에 자신을 도와주다니. 목숨을 빚진 셈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존이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생각 같아선 다 죽여 버리고 싶네요.” 벤자민이 차가운 분노를 담아 그리 말했다.
존이 동의하듯 대답했다.
“물론 그게 가장 깔끔하긴 하지. 하지만. 변호사로서 자네는?”
벤자민은 긴장으로 뻣뻣해진 목을 한번 꺾었다. 그리고 뒤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 변호사 조합에서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알다마다. 소문도 퍼지고 있고, 우리 상태 보려고 사람도 세 번 보냈지.”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질문했다.
“우리 사무소는 괜찮다고 했죠?”
“아직까지는. 자료도 무사해.”
벤자민은 아직도 두통이 이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원치는 않았지만 기회는 기회 허투루 낭비할 수 없었다. 대답하려던 찰라,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들었다더니 정말이었네.”
벤자민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올리버와 한 무리의 병아리 떼가 보였다.
모두 임시 고용한 애송이 변호사들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방문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벤자민이 자기도 모르게 존에게 물었다.
“임금 체불이라도 했어요?”
“아니.”
올리버가 머리와 어깨에 붕대를 하고,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가 난 벤자민을 보며 말했다.
“네가 죽는 줄 알고 걱정했어.”
“날 그 정도로 걱정했을 줄이야. 감동적이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일을 이따위로 벌이고 혼자 편해지려고 하다니. 그랬으면 무덤에서 꺼내 일어날 때까지 발로 찼을 거야.”
“변호사들 대화는 돈 내고 봐도 안 아깝지.” 게리가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올리버가 마스터에게 보고했다.
“일단 경호원들 고용했고, 자료는 말씀하신 대로 복사해 따로 안전한데 보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료가 의미 있습니까? 재판장에서 증언해 줄 사람이 지금....... 죄송합니다.”
자중하라는 존의 눈을 보고 올리버가 멈추며 사과했다.
“근데, 저들은?” 존이 벤자민 못지않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올리버가 대답하기도 전에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마가 넓었고, 혈색이 좋은 남자였는데,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엇인가 신뢰가 가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사각 턱에, 잔주름이 인간미를 돋보이게 했고, 자세는 꼿꼿하면서도 겸손하였다.
“단기 고용된 ‘제레미’라고 합니다. 단기 고용되긴 했어도, 이런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안 오는 건 아닌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고맙네. 제레미.” 존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제레미는 기쁘게 그 손을 다 잡았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인사를 했는데, 존과의 인사가 거의 끝났을 무렵, 그들은 벤자민에게 말을 걸었다.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모두 걱정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모두 밝게 이를 데가 없었는데, 일이 안 풀릴 때와 너무 대비됐다. 아무래도 자기 생각이 그다지 틀린 게 아닌 듯싶었다.
벤자민은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였고, 그들은 존에게 했던 것 못지않게 벤자민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자신을 어필하였다. 이름이 무엇인지, 어느 대학 출신인지. 특히 제레미라는 남자는 벤자민의 용기를 칭찬하며, 자신의 롤 모델이라는 식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병실이 어수선해진다는 명목으로 벤자민은 그들을 내보냈고, 병실에는 익숙한 얼굴만 남았다. 하워드가 장난삼아 말했다.
“잘만 말하면 너한테 엉덩이라도 대줄 것 같은데. 노력해봐.”
“미안, 그런 취미가 없어서.” 피곤한 벤자민이 대충 대답했다.
이해가 안 되는 린이 물었다.
“방금 그거 무슨 상황이야?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존, 하워드, 올리버, 벤자민 등이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벤자민이 대표로 말했다.
“해럴드 복수를 해줄 수 있다는 말이야.”
- 작가의말
매일 올리시는 분들은 참 대단하네요. 슬슬 체력이 붙이기 시작합니다.
어쨌건 뒤늦게 올리니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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