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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 도시의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9.04.01 12:34
최근연재일 :
2019.06.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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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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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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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 거인의 개입

DUMMY

47. 거인의 개입




“무릎 꿇어.”


퀘르노 족(뿔 족) 혼혈을 옆에 낀 손님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존의 사무실에, 존의 의자에 앉은 채 말이다.

말도 안 되게 무례하며, 상식 밖의 상황이었지만, 벤자민과 존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고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브라운 사와의 협상을 막 끝마치고 돌아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라일라가 왜 그토록 얼굴이 하얗게 변했는지는 이해가 되었다. 도시 최고 권력자인 총독이 갑자기 직장 내 들이닥치면 누군들 얼굴이 하얗게 질리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벤자민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슬쩍 눈을 올려 총독을 살펴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연설이나, 행사 때 얼굴을 익혀둔 게 천만다행이었지. 그러지 않았으면 누구냐고 멍청이처럼 물을 뻔했었다.


‘도대체 뭐지?’ 벤자민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왜 총독이 롭 앤 포터에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설마, 하프 캔디 건 때문에? 하지만 이상했다.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결국 조용히 마무리되려고 하는데, 왜 이제야 나타난단 말인가?

의문이 의문을 낳아 현기증이 일 정도로 혼란스러웠는데, 벤자민은 반사적으로 옆의 존을 바라보았다. 존도 자신과 같은 심정일까 궁금해서였는데, 존 역시 당황한 눈치였으나, 벤자민보다는 침착해 보였다.

몹시도 괴롭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는데, 이윽고 총독이 침묵을 깼다.


“내 명령에 바로 따른 걸 보면 내가 누군지 안다는 거겠지?”


존이 대표로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예......... 총독 각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단하군. 역시 똑똑한 사람이랑 대화하면 편하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표정이나 제스처는 무감각했다.


총독이 물었다.


“그럼 혹시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나?”


존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혹시....... 하프 캔디 건 때문인지?”


총독이 감탄했다는 뜻으로 빈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맞네. 하프 캔디 건 때문이지. 그 이야기 덕분에 한동안 심심하지 않았네. 주머니도 두둑해졌고, 자네들 이야기도 소식지에서 봤지. 마법사들에게 덤빈 사기꾼 내지 멍청이들이라고.”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존이 대답했고, 총독 역시 동의했다.


“맞아, 옛날이야기일 뿐이지. 지금은 브라운 사와 합의 하고 있으니까. 사기꾼도 멍청이도 아니지. 오히려 대단한 변호사들이야. 기어이 마법사들한테서 돈을 뜯어내고 있으니.”


벤자민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총독이 자신들의 일을 자세히 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불안함을 느꼈다. 총독이 그런 벤자민의 마음을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안 움직인다고 멍청한 건 아니야. 오히려 아는 게 너무 많아 못 움직일 수도 있지. 특히 나 같은 사람은 더욱더. 한 발짝만 움직여도 여러 일에 영향을 주거든. 가끔씩 난 내가 개미왕국 한가운데 있는 거인처럼 느껴지기도 해.”


벤자민은 속마음이 간파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더욱 숙였다.

총독은 변함없이 지치고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협상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그 질문에 존과 벤자민이 다시 눈을 마주쳤는데, 총독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대답을 재촉했다.


“아아,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만. 나라면 안 그럴 거야, 똑똑한 사람은 좋아하지만,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싫어하거든. 특히 날 상대로.”


그 말에 존이 곧바로 대답했다.


“거의 끝마쳤습니다. 마지막 확인만 하면 끝납니다.”


그러자 총독이 희미하게 놀란 티를 냈다.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하군. 최소한 내년까지는 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빨리 합의했다는 건. 그대들 실력이 뛰어나거나, 상대측이 그만큼 구리다는 거겠지?”


불안감이 등 뒤에서부터 섬칫섬칫 올라왔는데, 늪에 빠진 듯한 불안감이 일렁거렸다. 총독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 협상 모두 엎어버리고, 재판까지 끌고 가시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존과 벤자민은 자기도 모르게 총독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총독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했고, 뻔뻔하게 이를 데가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군.”


벤자민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총독이 되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벤자민의 표정을 보고는 총독은 이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이름이 벤자민이었지? 정확히는 벤자민 포그곤트. 이번 소송의 포문을 연 용감한 변호사이자, 마법을 못 쓰는 닭. 다시 한번 묻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이 정도 일을 일으킬 정도면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총독의 추궁에 벤자민이 반응을 보였고, 총독은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 아는군. 이유는 별거 없어. 물이 왔을 때 노를 젓는 거랑 비슷한 거지....... 며칠 전 황제군과 해적 공화국의 분쟁이 승리로 끝났네. 내 형님이 승리한 거지. 덕분에 여유가 생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여유가 있을 때. 레드캐틀을 밀어버리려는 거네. 다 아는 이야기 하려니 민망하구만.”


말에 탄력이 붙었는지 총독은 이어 설명했다.


“자네들과 합의한 금액으로는 레드캐틀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1차 책임은 브라운 사에 있으니 그쪽 선에서 끝날 수도 있고, 연대로 책임을 묻는다 해도. 일시적인 재산 축소뿐이겠지. 그건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야. 문제는 뿌리까지 뽑아야지.”


존이 물었다.


“그래서 재판까지 가시겠다는 겁니까? 레드캐틀를 죄인으로 만들고,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총독이 존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아는구만.”


“꼭 재판이 아니라도 될 텐데요. 다른 식으로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존이 총독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했으나, 총독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지. 사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방법을 찾아 봤어. 하지만 지금 눈앞에 포크와 나이프가 있는데 왜 굳이 손으로 집어 먹겠어? 이쪽이 훨씬 편하고 깔끔한데.”


한순간 총독의 얼굴은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방법을 찾으려면 시간과 비용,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 먼저 트집을 잡아야 하고, 주변의 개입도 막기 위해 여러 번 협상해야지. 아주아주 귀찮은 작업이야. 거기다 실패할 확률도 높고. 하지만 자네들을 이용하면 다르지. 모두가 보는 재판장에서 공식적으로 죄를 묻는 거니까. 일일이 설득할 필요가 없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 생기니까. 굳이 더 좋은 게 있는데 안 쓰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나?”


벤자민은 단단히 붙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나, 무력하게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발버둥 쳤다.


“총독 각하.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미 모두가 만족할만한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총독이 벤자민의 속셈을 안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상관 안 하네.”


벤자민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만약에 저희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총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부탁한 거 같나?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네. 좋든 싫든 해야지.”


그 대답에 사무실 내부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는데, 총독은 다소 불쾌한 듯 비틀린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하나 물어보지. 그대 변호사들은 정말 그대들이 잘나서 떵떵거리는 줄 아나?........ 천만에. 황실과 황제군 덕분이지. 우리가 이곳의 질서를 지켜주니까. 그대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는 거야. 우리가 없으면 그대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총독이 그렇게 말하고는 벤자민과 존을 지긋이 바라봤는데,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마치 농담이었다는 듯.


“물론, 그대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야. 그대들 덕분에 이 도시의 많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되니까. 덕분에 세금도 안정적으로 걷을 수 있지.............. 하지만, 이 도시에 변호사는 쥐새끼처럼 많은 데 비해, 총독은 나 하나뿐이지. 과연 어느 쪽이 더 아쉬운 처지인 거 같나?”


대화는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존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총독의 말을 따르겠다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으며, 벤자민 역시 따라 고개를 숙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메를린 총독이 만족스럽게 일어서며 말했다.


“그대들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닐 거야. 재판에서 이긴다면, 수임료나 명성은 배로 늘어날 테니까. 내 감사의 마음도 얻을 수 있고.”


벤자민이 기회가 있을 때 말할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럼 재판에서 저희가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실 겁니까?”


총독이 재밌다는 듯 살짝 미소 짓고는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아니, 재판 자체는 공정하게 치를 생각일세. 만약 내가 개입해 조금이라도 부정한 냄새를 풍긴다면 재판 자체의 공신력이 떨어지겠지. 그럼 모두 의미 없는 짓이고. 재판은 자네들 힘만으로 이겨야 하네.”


예상은 했지만,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총독 각하, 저희 쪽에서 일하던 마법사 해럴드가 현재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누워있어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데, 혹시 일어날 때까지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협상 때만 해도 해럴드의 부재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실제 재판까지 간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해럴드가 도왔던 사실과 조사한 자료만 있어도 협상 때는 위협할 수 있었지만, 재판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였는데, 나와서 증언해줄 사람이 없으니. 금이 간 칼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못하면 칼이 부러져 휘두른 사람을 찌를지도 몰랐다.

벤자민은 나름대로 이기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총독은 단칼에 거절했다.


“언제 일어나지? 우리 병사가 모두 늙어 죽은 후? 전쟁이란 타이밍이고 지금이 가장 적기이네. 부상병 하나를 기다려줄 시간이 없는 노릇이지. 당장 내일 새로운 일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벤자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재판의 가장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총독은 이 언쟁을 그만두고 싶다는 듯 벤자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안 되네. 그 문제는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애당초 내 허락도 없이 이 정도로 일을 벌였으니.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지. 모르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인데. 난 이미 자네를 많이 봐줬네.”


벤자민은 문득 던전 내 갖은 소문이 일어나도 침묵하던 총독이 떠올랐다. 경고였는데, 결국 벤자민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총독이 조언했다.


“선황이신 내 아버지께서 우리 형제를 두들겨 패시곤 언제나 이 말씀을 했었지. 쉬운 길은 없으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무슨 뜻인지 알겠나?”


벤자민은 공감할 수 없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알려줘. 산책하다 말고 두들겨 패고는 그 말을 하셨는데, 아직도 그게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거든.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총독은 응원하듯 벤자민의 어깨를 두 번 두들기고 떠났는데,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존은 일어나 총독이 앉았던 자리에 앉으며 벤자민에게 물었다.


“......... 지금 심정이 어떤가?”


벤자민은 한참 뒤에나 대답할 수 있었다.


“...........................돌아버리겠습니다.”


“잘됐군. 나랑 같아서.” 존이 구석에 숨겨둔 술을 잔에 따르며 그리 대답했다.


작가의말

반항중년 님, 좋은글원 님, 화이트썬 님, 블루블락 님, 아인츠바이 님, 그라나르 님

후원감사합니다. 쪽지를 보낼 수 없어 작가의 말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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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후기 +86 19.06.29 3,880 175 9쪽
66 65. 새로운 시작 (시즌1 완결) +140 19.06.27 3,198 207 16쪽
65 64. 황제의 까마귀와 변호사 존 +34 19.06.26 2,617 164 15쪽
64 63. 미래 계획 +38 19.06.24 2,453 150 9쪽
63 62. 작은 파티 +19 19.06.24 2,386 138 12쪽
62 61. 개 이론 +70 19.06.21 2,570 167 12쪽
61 60. 체포, 초대 +69 19.06.13 2,849 158 13쪽
60 59. 판결 +22 19.06.11 2,544 143 15쪽
59 연재 관련 공지 사항입니다. +18 19.06.10 2,656 55 1쪽
58 58. 협상 시도 +40 19.06.08 2,516 152 13쪽
57 57. 재판(7) +28 19.06.06 2,348 131 12쪽
56 56. 재판(6) +24 19.06.05 2,352 128 11쪽
55 55. 재판(5) +27 19.06.04 2,264 131 15쪽
54 54. 재판(4) +18 19.06.03 2,231 137 10쪽
53 53. 재판(3) +28 19.05.31 2,271 138 15쪽
52 52. 재판(2) +14 19.05.31 2,230 122 9쪽
51 51. 재판(1) +22 19.05.29 2,350 133 8쪽
50 50. 매운 샌드위치 +24 19.05.28 2,342 134 12쪽
49 월요일 휴재입니다. +16 19.05.26 2,365 40 1쪽
48 49. 사전 회의 +26 19.05.24 2,420 137 13쪽
47 48. 의도치 않은 전개 +19 19.05.23 2,450 131 8쪽
» 47. 거인의 개입 +26 19.05.21 2,395 138 12쪽
45 46. 폭풍전야 +18 19.05.20 2,360 117 7쪽
44 45. 대치 +24 19.05.18 2,443 140 16쪽
43 44. 후퇴 +26 19.05.16 2,468 131 11쪽
42 43. 공갈단 +34 19.05.15 2,450 130 14쪽
41 42. 새옹지마 +18 19.05.14 2,350 125 9쪽
40 41. 끔찍한 꿈 +7 19.05.13 2,414 135 11쪽
39 40. 마녀, 저항자, 괴물 +35 19.05.11 2,614 164 24쪽
38 39.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16 19.05.10 2,482 13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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