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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61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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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DUMMY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아가 머리카락 봤어?”


“엄청 보슬보슬하게 생겼다.”


요정의 숲 경계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한 요정들의 속삭임이었다.


“어? 눈 떴다, 눈 떴어.”


“눈 뜨니까 더 귀여워-”


“응? 양쪽 눈 색이 다른데···.”


“설마 이것 때문에 놔두고 간 건 아니겠지?”


“이 나쁜 것들!”


“사형! 사형이야?”


“어,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아요, 공주님.”


“아! 입 오물오물거리는 것 좀 봐.”


부스스한 오렌지색 머리카락과 보송보송한 피부.


쌍꺼풀이 짙은 눈매 속에 담긴 녹안과 벽안.


동글동글한 코끝과 얇은 입술.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볼록한 볼에 물든 연분홍빛의 홍조.


졸음으로 무거워진 눈을 깜빡이며 길게 하품하는 아이를 본 요정들은 저마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망설임 없이 아이를 안아 든 그들은 아이가 이곳에 버려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선 동족의 향이 났다.


“이렇게 예쁜 아가를.”


감탄과 한탄이 한데 모인 속삭임이 아이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목과 등을 받쳐 안아 드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던 만큼 따뜻했다.




아이를 데리고 정찰을 마친 요정들은 왕국으로 돌아가 여왕을 알현했다.




***


“그러니까.”


요정족의 여왕, 세실라는 제 앞에 바쳐진 바구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그 자리에 있던 요정 왕국의 주요 대신들 또한 바구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 몸만 한 바구니를 끌어안고 있는 여왕의 외동딸 루나 페일샤에게서였다.


“루나.”


한참 후에야 입을 뗀 세실라가 물었다.


“그 아이가 어디 있었다고?”


“밖에!”


그래, 밖에 있었겠지.


너무나도 해맑은 루나의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실라는 질문을 바꿔 한 번 더 물었다.


“밖에 어디?”


“어- 어-”


세실라의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던 루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계 앞에.”


“이놈의 시키!! 엄마가 거기까지 가지 말랬지!!”


이렇게 혼이 날까 봐.


이크,


루나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 뒤로 장장 40여 분간 이어지는 잔소리에 대신들은 ‘올 것이 왔구나.’란 얼굴로 각자 할 일을 손에 쥐었다.


‘씽.’


루나가 입을 삐죽였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루나의 두 손은 이미 바구니 속 아가의 양쪽 귀를 덮고 있어 손이 모자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자리에 중앙 마탑에서 온 손님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엉덩이도 팡팡 맞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따라가길 잘했어.’


루나는 바구니 속에서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주홍빛 머리카락의 아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아가는 양쪽 눈 색이 달랐는데, 그게 신기하면서도 너무 예뻤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하암-


작게 하품하는 입 사이로 보이는 이까지 앙증맞았다.


‘귀여워.’


루나는 아이의 뺨을 조물조물 만졌다. 그래도 얌전히 있는 게 신기했다.


‘울지도 않고.’


처음 발견했을 때도 이 이름 모를 아이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루나는 아이의 뺨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아이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휴, 이 똥강아지! 내가 너 때문에 증말!”


꿍!


“아야!”


세실라는 알현석을 뛰다시피 걸어와 제 말이라곤 하나도 들어먹질 않는 루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 자다가도 쿠키가 나오지!”


“언니 오빠들 따라간 건데.”


루나는 입을 삐죽이며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함께 발견한 정찰병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세실라의 매서운 눈빛은 루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네가 따라간다고 졸랐겠지!”


정찰병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두 요정을 못 본 척을 하는 사이.


세실라는 제 딸이 조물거린 뺨이 발갛게 물든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금안이 어물쩍 가늘어졌다.


“정말 요정이군.”


“반인반요정입니다.”


“그게 뭐.”


더 해 보라는 듯 턱을 치켜세우는 세실라의 기세에 눌려 장로들은 입을 떼다 말았다.


세실라는 아이가 앉아 있는 바구니에 손을 댔다. 그러자 아이를 둘러싸고 있던 정령들이 그에게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여왕, 이 아이는 울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여왕이 알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다.


고개를 젓자 정령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뱉기 시작했다.


죽음, 꽁꽁 싸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 사랑.


세실라의 입꼬리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뻔한 이야기였다.


사랑의 도피를 했거나 의절 난 아이 부모가 죽으니 아이만 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그나마 봐줄 만한 건 아이를 데리고 들짐승들이 가득한 숲을 지나 요정의 숲 앞쪽에 놓고 간 점이다.


그 거리가 만만찮다는 걸 염두에 두니, 어쩌면 이 아이를 두고 간 이들은 아이와 함께 요정의 숲까지 들어오려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계 때문에 못 들어온 건가?’


그 증거로 아이의 바구니 안에는 꽤 두툼한 봉투가 하나 같이 놓여 있었다.


꽤 진귀한 보물이 들어있는 것을 본 그가 동봉된 편지를 빠르게 훑었다.


아이의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으며, 인간들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기에는 아이에게 깃든 요정의 특성이 강해 요정의 숲에 맡기고자 한다는 설명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혼란스러워하거나 상처받을까 두려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그럴만했다.


요정족은 죽을 때까지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며, 수명도 인간보다 훨씬 길어 정서적인 면에서도 여러모로 달랐다.


[ 염치 불고하나 이젤리카를 잘 부탁드립니다. ]


‘이젤리카.’


세실라는 마지막 줄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다른 때였다면 진즉 떠났을 마법사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요정의 숲을 찾는 그들은 중앙 마법사의 탑 소속의 마법사들이다.


파벨라 대륙에서는 종족을 불문(여기에 드래곤은 포함되지 않는다)하고 마나 보유자라면 일정 기간 중앙 마법사 탑의 교육원에서 의무 교육을 받게 하는데, 그 마나 보유자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소간이었다.


“이 아이에게 마나가 있는 게 확실한가?”


세실라의 질문에 마법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정령 친화적인 요정족에서 마나 보유자가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무나, 아이가 혼혈이라면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세실라는 장로들과 마법사들을 주욱 훑었다.


아이, 이젤리카의 거취를 정해야 할 때였다.


마탑 측에선 이 아이를 요정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시 마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세실라가 생각하기에 퍽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중앙 마탑은 다른 마탑에 비한다면 깨끗한 편이고, 교육원이 있는 만큼 아이를 돌보는데 익숙하니 말이다.


‘그런데 영 석연찮단 말이지.’


그 석연찮음이 이 아이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장로들한테 반박하고 싶어서인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 그럼 아이에게 물어야지.’


세실라는 발을 동동 구르는 제 딸과 이젤리카를 눈에 담았다.


결정은 빨랐다.


“아이는 우리가 맡겠다.”


마탑에 비한다면 요정의 숲의 일원이 되는 건 매우 어려워 장성하기까지 이곳에서 먼저 지내는 게 나으리라고 세실라는 생각했다.


“아이가 어디에 속할지는 중앙 마탑에 교육을 받으러 갈 때,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도록 하지.”


어딜 택하든 그곳을 좋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의 몫일 터.


“다만 아이가 혼혈이어서 요정의 나이에 맞춰야 할지, 인간의 나이에 맞춰 교육원에 보내야 할지 모르겠군.”


중앙 마탑에서 마력 보유자를 교육하는 시기는 보통 13세에서 18세까지로, 이를 요정족 나이로 변환하면 30세 무렵이다.


요정족 및 혼혈의 선례를 찾아본다면 있겠지만, 지금 당장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인 건 서로 마찬가지여서 마탑 측은 이렇게 제안했다.


“인간 나이로 13세일 때 확인한 후 그때 결정하기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괜찮군.”


“혹 그전이라도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 마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세실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법사들은 그 시로 요정의 숲을 떠났다.




이날, 이젤리카의 집은 대륙 북동쪽에 자리한 요정의 숲이 되었다.




***


“리카! 리카 어딨어?”


이젤리카는 자신을 부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주님이다.”


-“공주님이야.”


그의 곁에서 부스스한 주홍빛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놀던 정령들과 15cm에서 30cm 정도 되는 소요정들이 꺄르륵 웃으며 미끄러졌다.


이젤리카는 졸음이 묻은 눈꺼풀을 끔뻑였다. 그러다 짝-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온 세상이 루나가 되었다.


“아유 예뻐.”


루나는 양손으로 이젤리카의 볼을 짜부시키듯 비볐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한 이젤리카의 뺨은 탱탱한 제 것과는 달라 손맛이 좋았다.


“아유 예뻐라, 아이구 예뻐라.”


보다 못한 정령들이 루나의 손을 끌어낼 정도로 만져댄 이젤리카의 볼이 발갛다. 그 위로 물의 정령들이 찰싹 달라붙어 열과 붓기를 식히는 동안에도 이젤리카는 태평 그 자체였다.


그런 이젤리카를 향해 요정족 일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애가 순해도 너무 순해.”


호불호를 표하지도 않고, 짜증을 내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답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남들보다 지극히 낮을 뿐이었다.


“졸려?”


너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미노타우로스(그리스 로마 신화 속 반인반우(半人半牛) 괴물)가 잡아간다!


말투나 어조, 양 허리에 주먹 쥔 손을 올린 채 살짝 미간을 찌푸린 모습은 여왕 세실라와 똑 닮아 있었다.


회심의 공격(?)에도 이젤리카가 미동 없이 누워있자, “에잇!”하고 팔 걷어붙인 루나가 이젤리카의 양손을 잡고 흔들었다.


“리카- 저기 언덕에서 놀자.”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힘을 주어 이젤리카를 일으켰다.


“읏차!”


“으응.”


“무슨 으응이야 얼른 이리 와! 빨리!”


이젤리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이미 저만치 멀어진 루나의 뒤를 따라 느릿하니 걷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햇살, 햇볕에 노릇노릇해진 풀, 공기 가득 묻어나는 내음.


숲속의 전경은 한결같았다.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어른들이 부탁한 사소한 심부름을 하거나, 풀밭에서 동기들과 얼싸절싸 뒹굴거리다 교육 중 도망친 루나가 잡혀가는 걸 보는 이젤리카의 일상만큼.


“리카 빨리! 이러다 잡히겠다!”


발을 구르며 도로 달려오던 루나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언제나처럼 여왕 세실라가 나타나 “리카 좀 그만 괴롭혀 이 똥강아지야!”하고 혼낼 차례인가 싶어 이젤리카가 고개를 돌린 찰라,


“리카!”


새파란 한기가 막을 새 없이 그를 덮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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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4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6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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