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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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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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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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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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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5. 늑대와 고양이 (1)

DUMMY

꼿꼿하게 선 두 귀와 길게 뻗은 코.


삼각형의 얼굴.


둥그스름한 감 씨를 비스듬히 눕혀 놓은 듯한 눈매와 고동색 눈동자.


턱선과 얼굴 주위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고동색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털이 빡빡하게 심긴 전신.


생김새는 개와 비슷하나 크기 면에서 확연히 다른 늑대 한 마리가 거울 속에 앉아 있다.


페일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가 도로 앉았다. 거울 속 늑대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또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내가 늑대라니.’


페일은 넋이 나간 얼굴로 몸에 남아있는 마나의 잔재를 쫓았다. 혹시나 누군가 제게 저주를 걸었거나, 변신 마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잘게 부서졌던 마나 그릇과 상처에 덧대진 치유마법 외에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인형 옷을 입힌 것도, 마법을 사용해 늑대로 변하게 한 것도 아닌. 그냥 페일이란 인간이 늑대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어떻게?’


스승님께서 주신 물약 때문인가?


슬금슬금 페일의 몸이 거울 앞으로 향했다. 얼굴은 이미 반쯤 거울에 파묻힌 채다.


‘응?’


이젤리카는 그런 늑대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거울을 침실에서 꺼내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온갖 것을 경계하던 늑대는 어느 순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이젠 거울 앞에서 넋을 빼고 있었다.


‘원래 수인(獸人)이 아니었나 봐.’


체력이 다 돼서 늑대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이젤리카는 며칠 전 저와는 달리(?) 충격이 커 보이는 늑대에게 다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냐고 묻고 싶어도 서로 말이 통하질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이젤리카를 오래 알아 온 이들이 이 고민을 들었다면 ‘우리 리카가 드디어···!’ 하곤 눈물을 머금었을 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리엔 아직 이젤리카를 의심 중인 늑대 한 마리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이제 어쩌지?’


이젤리카는 아직 글씨가 채 지워지지 않은 종이를 보았다. 제가 보기에도 퍽 웃긴 서제국어가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이것도 늑대가 깨기 전에 사전을 보고 단어를 몇 개 외워두어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발음이나 악센트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까봐 종이를 사용했던 것인데, 애당초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냥냥 언어였을 줄이야.


‘나 통역 마법 할 줄 모르는데···.’


이젤리카의 꼬리가 느릿하니 움직였다.


보니타의 제자가 수인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선 그가 낫기 전까지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지금부터라도 서제국어를 배우는 게 빠를까, 통역 마법을 배우는 게 빠를까?’


어쩌면 저 늑대가 동제국어를 배우거나 마나 그릇이 회복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눈을 가늘게 뜬 이젤리카가 부-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 뿐.


루나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로로가 오면 더 빠르겠지만 이젤리카는 아직 로로에게도 이 상황을 설명해도 되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루나가 오면 통역 마법부터 걸어달라고 해야지.’


보니타가 루나에게 보냈다고 말한 소포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주에서 3주.


루나가 그 전에 이곳을 방문할 가능성은 0%다. 루나가 다스리는 요정의 숲에선 마녀의 달을 기준으로 달맞이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루나가 있어 지금쯤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테다.


본래라면 그의 일원인 이젤리카도 그 축제에 참여해야 했으나, 이젤리카는 보니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패밀리어 풀루스를 대신 보냈다.


‘지금쯤이면 루나도 보니타의 부고를 들었겠지?’


보니타를 떠올리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해 이젤리카는 턱을 바짝 쳐들었다. 그러자 흐릿한 시야로 늑대가 비쳐 들어왔다.


얼마나 넋이 나갔는지, 늑대는 제가 옆에서 기웃거리는 것도 못 알아차렸다.


고인 눈물을 슥슥 닦아낸 이젤리카는 거울만을 응시하는 늑대를 토닥였다.


“냐냐냥.”


‘괜찮아. 나만 믿어.’


늑대의 발 위로 그의 1/3도 안 되는 솜방망이가 포개어졌다.


주홍빛 계열의 털에 장화를 신은 것처럼 발목까지 하얀 발은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 고양이가 위로하고 있다는 건 선명하게 느껴졌다.


페일은 제 발을 토닥이는 고양이를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 고양이를 의심한 스스로가 아주 못된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의 눈 색이 이젤리카와 같은 오드아이여서 더 그러했다.


‘이 고양이가 정말 이젤리카님인가?’


그러면 왜 계속 고양이로 있는 거지?


이곳이 안전하다는 믿음과 그래도 어쩔 줄 모른다는 의심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페일은 여유롭게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를 흘긋 훔쳐보았다.


‘그러고 보니 회색 고양이가 아니라 주홍빛 고양이었네.’


개과의 동물이 흑백으로만 볼 수 있다더니 정말 그러했다. 페일은 눈에 시각 강화마법을 두른 탓에 욱신거리는 심장 부근을 모르는 체하며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 제867회 중앙 마법사의 탑 교육원 졸업 기념 ]


그가 무심코 시선을 내린 곳에는 중앙 마탑의 인증마크와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대부분 젊은 날의 스승과 이젤리카님으로 추정되는 이의 추억이었다.


거울이 방에서 걸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곳의 모든 것을 경계했던 페일은 이 두 가지를 보고서야 조금이나마 이곳에 대한 의심을 덜 수 있었다.


먼저 중앙 마탑의 인증마크는 역대 대마법사들이 그들의 고유 마나를 넣어 유지하는 것으로 드래곤이 아닌 이상 위조하기가 어렵고, 두 번째로 사진에는 강력한 도난 방지 마법과 귀환 마법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 곱게 새겨진 마법진은 시전자가 이 사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페일은 사진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스승님이 아닌 그의 옆에 서 있는 이젤리카였다.


부스스하게 퍼진 주홍빛 머리카락과 명도 차이가 나는 오드아이가 돋보이는 앳된 얼굴엔 나른함이 한가득이었다. 모든 사진이 그러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제 옆에 있는 고양이와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 거울 앞에 다가왔던 고양이가 사진과 스스로를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설마 진짜인가?’


페일의 머릿속에서 ‘고양이 = 이젤리카님’ 이라는 가정 하나가 점점 들어맞아 갈수록 싸악-하고 온몸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정말 이 고양이가 이젤리카님이거나 이젤리카님의 패밀리어면, 난 지금까지 생명의 은인에게 무슨 짓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눈을 뜬 순간부터 이 장소를 경계하며 고양이를 공격하려 들기까지. 제가 했던 만행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만약 나를 악용하려고 데려온 거면 이미 모든 걸 끝냈겠지.’


고양이의 말에 의하면 마녀의 달이 떠오르던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때이니 말이다.


정신계열 마법이든 뭐든 간에 그러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경계를 아주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충분히 방심한 상태인 절 가만히 두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가 멀쩡한 상태에 있을 때 누명을 씌우거나 또 다른 실험을 하기 위해 살려둔 것일 수도 있었다. 최대한 좋은 상태로 만들어두기 위해서.


제가 마신 붉은 물약을 어떻게든 추출하기 위해 애쓸 수도 있고.


그 와중에 본능은 이곳이 안전하다 외치고 이성이 대거리를 해 속이 다 시끄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거울 앞에서 앓다시피 한 페일이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워웅!”


‘죄송합니다!’


사과였다.


페일은 고양이를 향해 허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페일은 –설사 고양이가 악묘일지라도- 제 무례를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고 여겼다. 이용하려고 했든 어쩌든 일단 살려준 건 눈앞에 있는 고양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가 적이라 할지라도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막상 그 인사를 받은 이젤리카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려 페일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애석해했다.


‘다음에, 다음에 의사소통이 될 때 제대로 다시.’


그날을 기약하며 페일은 어느새 졸고 있는 고양이를 향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그 후에야 찬찬히 몸을 살펴보았다. 외상이나 내상으로 가득했던 몸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딱 그만큼 앞날이 막막했다.


‘꿈인가?’


스승님의 죽음으로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한낱 악몽이었던 건 아닐까. 무심코 현실을 왜곡하게 될 정도로.


그 자신이 늑대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이 아니었다. 스승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낼 수 없다는 현실이 암담했다.


마나 그릇이 낫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못해도 3개월.


이전같이 마법을 사용하려면 반년 정도는 꼬박 기다려야 한다.


그 후 어찌저찌 본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땐 이미 모든 게 끝나있을 게 분명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스승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완전히 파묻어버리고도 남을 것이니.


페일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제가 늑대가 된 원인을 확정 짓긴 어려우나 의심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붉은 물약.


마지막을 반추해본 페일의 머릿속에 스승의 유품이 떠올랐다. 절대 그들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된다던 유언 또한.


‘그 물약이 흔적 없이 다른 종족으로 변하게 하는 물약이었을 수 있어.’


아주 잠깐 생각한 것인데도 악용될 여지가 차고 넘쳐 페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어쩌면 이 때문에 원로회에 분열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 약을 이용하려는 자들과 폐기하려는 자들로.


그렇다는 건 앞으로 장로들과 원로회를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몸의 절반 이상이 붕대로 감긴 제 모습을 살핀 페일의 어깨가 힘없이 늘어졌다.


‘이제 어떡하지?’


회복이 우선인 건 둘째치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ㅔ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젤리카 만한 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이젤리카가 늑대에게로 다가갔다.


“냥냥?”


‘왜 그래?’


무심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페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감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뒷다리에 힘을 주고서 일어난 이젤리카의 머리 위로 종이가 떠올랐다.


“냐냥.”


이젤리카가 물었다.


[ 고파. 배? ]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띄엄띄엄 적히는 글자를 확인한 페일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뱃속 사정은 말이 달랐으니.


꼬록-


‘그럼 그건 내 배에서 나는 소린가.’


게슴츠레 뜬 고양이의 눈이 그리 물었다.


[ 기다려. ]


당황해하는 늑대를 뒤로 한 이젤리카가 총총총 집을 나섰다.


페일은 그의 말대로 기다려야 할지 그래도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다 조심스레 엉덩이를 내렸다.


꼬로로록-


하얀 볼 주위의 털이 붉게 달아올랐다.


페일은 그 후에도 안절부절못하다 거울 앞에 도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사진을 보던 페일은 눈동자에 깃든 마나를 하나둘 풀어냈다.


마법이 사라진 그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작가의말

제 글이 일상 속 작은 휴식이 된다면, 하는 큰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댓글도 항상 감동 속에서 읽고 있습니다 (๑′ᴗ‵๑)


평안한 밤 되시길 바라요//


ps. 220105. 초반부의 설정 오류를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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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3 Simone
    작성일
    21.12.28 20:59
    No. 1

    생당근 먹는 고양이와 생무 먹는 늑대라니ㅋㅋㅋㅋㅋ항상 다음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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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된 마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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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3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2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4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7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8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8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7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6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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