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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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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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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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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9. 마녀, 고심하다 (1)

DUMMY

연구실의 불은 저녁에 켜졌다가 동이 틀 무렵에 꺼졌다.


루나의 계획표와는 정반대의 시간이었으나 여기선 집주인의 말이 곧 법이었다. 다만 셋 모두 연구실에서만 연구를 진행하진 않았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그들의 머릿속은 쉬지 않았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이젤리카는 인간으로 돌아 갈 수 있는 방법 571번째에 관해 생각해보다 픽 잠이 들었던 참이다. 잠귀가 무딘 그는 어디서 잠이 들든 그가 일어날 때까지 숙면을 취하곤 했다. 그의 주위에는 이젤리카를 깨울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젤리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잠귀가 어두운 것과 반비례적인 잠투정을 가진 그가 타의적으로 깼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는 이젤리카와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페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당시 얼마나 무서웠던가.


그때 페일은 다시는 이젤리카님의 잠을 방해하지 않겠노라고 그의 마법 도구들과 결의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까지는 그가 책임질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시곗바늘이 9와 10 사이를 가리킬 무렵.


끼잉-


“으응?”


이젤리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의 몸에는 제가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잠이 들 때마다 자동으로 날아오는 노란 담요가 덮여 있었다.


“뭐야.”


이젤리카가 몸을 일으키자 담요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런 이젤리카의 주변으로 불과 물이 성인 주먹만 한 크기로 똘똘 뭉친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아직 졸음이 묻은 그의 눈은 반쯤 감긴 채다.


이젤리카는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죽 훑어보았다.


루나는 이미 침실로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제 잠을 깨운 건,


“···페일?”


높낮이 없는 음성이 고요한 지하실을 울렸다.


보글보글-


루나가 끓여본 데시데리움 차가 들어 있는 찻주전자가 끓어올랐다.


‘저 소린 아니야.’


낑-


‘응, 이런 아픈 소리였어.’


아픈.


‘아픈 소리?!’


잠이 확 달아난 이젤리카의 귀가 쫑긋 섰다.


뿅뿅 솟았던 이젤리카의 발톱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이젤리카는 제가 깔고 누워있었던 곳을 보았다.


이런저런 수식과 마법진이 휘갈겨진 종이들을 밟고 있는 네 개의 솜방망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말이지 서탑의 그것도 몰이꾼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은 늑대가 있었다.


“이젤리카님께서 울고 계시는 줄 알고, 위로를 해 드리려 했습니다.”


“그럼 계속 여기에 기대도 돼?”


“네.”


“언제든지?”


“이젤리카님께서 원하신다면.”


며칠 전의 일을 상기한 이젤리카의 상념 속에 낮은 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핫!’


이젤리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우우우-웅


‘스승님.’


아웅-


페일이 끙끙 앓고 있었다. 그의 감긴 두 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눈꼬리를 따라 흘러 내렸다.


이젤리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노란 담요를 끌어다 눈물을 닦아냈다. 이 집으로 늑대를 데리고 온 날부터 깨어나기 전까지 매일 했던 일이었다.


‘또 우네.’


정말이지 또 짠하게.


이젤리카의 입꼬리가 내려가며 심통 난 얼굴이 됐다.


이젤리카는 솜방망이를 대는 듯 마는 듯 페일의 옆구리에 올렸다. 그가 마나를 끌어 올리자 핑그르르 심장 부근을 돌던 고리들이 원 형태로 심장을 감쌌다.


이젤리카의 발 볼록살 밑으로 번뜩이는 빛이 생겼다.


이젤리카는 곧장 페일의 마나 그릇 상태를 확인했다.


산산조각이 났던 그의 마나 그릇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붙어있는 상태였다. 그 균열이 하나하나 사라져 완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그가 가지고 있던 고리들도 하나하나 회복 상태로 들어설 것이다.


페일의 균열은 이제 1/3 정도 남은 상황.


이젤리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통을 줄여주는 소염제 역할뿐이었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악몽도 꿔.’


이젤리카는 그의 머릿속에 엉킨 타래를 달걀 섬 다루듯 풀어갔다. 집중한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주로 인한 악몽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러했으니 더더욱 그럴 일도 없고.


‘보니타와 있을 때도 이랬나?’


아니면, 그 보니타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호기심이 불쑥 튀어 올랐다.


그것이 고양이의 본능 때문인 것인지, 이젤리카 본인의 것인지 이젤리카는 깨닫지 못했다.


‘안 울면 좋겠다.’


그렇게 루나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헛숨을 들이켰을 생각을 하며 이젤리카는 마지막 타래를 쥐었다.


꾸우웅-


‘아프지 마라.’


아주 먼 옛날.


루나가 여왕이 되기 전, 자신을 요정족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던 여왕이 제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젤리카는 다소 어색한 손짓으로 페일의 옆구리를 쓸었다.


‘아픈 거 다 나아라.’


빨리 나아라.


으득-


누군가의 이 가는 소리는 이젤리카에게 닿지 못한 채 사라졌다.




***


“자, 이것도 먹어.”


그날 아침.


페일은 푸짐한 야채의 양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따라 이젤리카님이 적극적이신데.’


페일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루나에게로 향했다.


아주 세끼 꼬박꼬박 직접 텃밭으로 나가 야채를 따질 않나, 과일을 따오질 않나.


‘허이구 아주 먹여주지 그래?’


루나는 눈꼴사나운 꼴 다 본다는 기색으로 로메인 상추를 아작아작 씹고 있었다.


‘이젠 야채라면 신물이 나.’


제가 음식을 하겠다고 해도 한사코 말리니 가만있었다만. 다이어트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러다 샐러드 혐오자가 될까 두렵다.


“도대체 왜 야채를 생으로 먹는 거야, 리카.”


불퉁한 그의 말에 그제야 페일에게서 시선을 뗀 이젤리카가 말했다.


“아플 땐 손맛 가득한 싱싱한 걸 먹어야 하니까.”


“···?”


“···.”


루나와 페일의 뇌가 순간 파업을 했다.


손맛 가득한 싱싱한 것.


‘겨우 그런 거 때문에 여태껏 이딴···.’


심한 말을 할 것 같아 감정을 겨우 눌러 내렸으나, 입의 개인플레이까지는 막지 못한 루나가 말했다.


“이것만 먹으면 더 아플 것 같은데.”


그와 상대적으로 이젤리카의 배려와 절 생각해주는 마음을 염두에 둔 페일의 말이 곧장 따라붙었다.


“혹 어떤 책에 그런 말이 나와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으릉-


이젤리카가 루나에게 이를 드러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총총 어딘가로 향했다.


침실 협탁의 깊숙한 곳에서 나온 책 ‘요리 100선’에는 그 문제의 문장이자 가장 첫 문장인


<환자에게는 정성이 가득한 요리를 줘야 한다. 정성은 손맛에서 나온다.>


가 형광 처리되어 있었다.


‘요리 100선인데 왜 이것만 봤어?’


루나는 또 한 번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손이 촤르륵 책장을 넘겼다.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왜 그것만 봤어?’


그는 지금이라도 왕실 요리사를 불러와야 하는 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의 감정에 동요한 정령들이 잘게 떨었다.


“여왕 충격 받았다!”


“이 책이 그렇게 흉물스러워?”


“흉물스러운 게 아니라 끔찍해 하는 거 아니야?”


“끔찍해! 끔찍해!”


쪼르르 달려온 그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이걸 없애자!”


“다 태워버려-”


“앗, 잠깐만!”


놀란 루나가 말리기도 전에 이젤리카의 책이 화르륵 타올랐다. 이젤리카의 머리 두 올도.


놀란 척을 가장한 루나의 짓이었다.


“아이쿠, 미안해 리카. 너의 소중한 책이···.”


“니야오오옹-!!”


“악!”


잿가루 하나 남지 않은 루나의 하얀 손을 이젤리카가 용맹하게 잡아챘다.


내심 루나를 응원했던 페일이 슬그머니 양상추를 입에 물었다.


오속-


오속-


오소속-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어,’


이제 펜을 쥐는 것도 가능하니 국자나 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직 낫지 않아서 이런 식단이었다니.’


페일이 예의상 놓은 포크를 집어보았다.


‘···내 마나 그릇 언제 다 낫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사무친 적은 처음이다.


“아휴 정말 성질 더러워 가지고!”


그으으응-


“아! 아야!”


햑-


파바박-


“사줄게! 사준다고! 최신간으로 사줄 테니까! 아!”


우으으으으응-


“뒷장은 보지도 않고 만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책이 왜 필요···아니 사준다니까!”


루나가 일부러 태웠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젤리카의 눈꼬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새 책을 세 권이나 헌납하기로 굳게 약속하고서야 풀려난 루나의 손이 만신창이다.


‘우리 애가 무심하긴 했어도 사납진 않았는데’


어쩌다 저렇게 되어 버린 거지.


고작 그 몇 분 사이에 모든 것을 태워 버린 듯한 그의 몸에서 넋이 빠져나갔다.


페일은 그 모습에서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식단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접었다.


흑-


“우리 이젤리카 돌려내.”


루나의 주위를 둘러싼 정령들이 그를 위로했다.


“마녀, 악독하다!”


“마녀가 너무했다.”


“마녀 너무 무서워.”


“마녀 건들면 안 된다.”


마구 떠들어대던 정령들은 마녀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감사히 여겼다.


이날, 루나는 오늘 손맛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침 겸 점심밥을 뺏겼다.


“넌 오늘 먹지 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이래 봬도 짐은 여왕인데.”


“그런 거 따지지 말라며.”


100여 년 전의 일을 들먹이는 이젤리카에게 그렇지, 하고 수긍한 루나가 쭈그러들었다.


“저리 가.”


밥상에서도 쫓겨난 그는 읽다 만 기억의 총체 속으로 빠져들며 서러운 코를 훌쩍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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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7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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