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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82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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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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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02. 마검사, 처분되다.

DUMMY

“커흑-”


숨은 가쁘고 정신은 혼미하다. 오른손으로 누르고 있는 옆구리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마검사 페일 메리디에스.


서쪽 마법사의 탑 메리디에스의 마탑주 후보였으나, 3일 전 그저 ‘페일’이 된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추격대의 추적을 피해 필사적으로 발을 옮겼다.


“하아, 하-”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거친 숨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페일은 피로 물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댔다.


‘왜 하필 오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은 언제나 제게 힘이 되어 주곤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력의 힘이 보다 거세진 만큼, 깨진 마나 그릇 틈으로 방대한 마나가 줄줄 새어나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새로 채워지는 마나는 물론, 본래 가지고 있었던 마나까지 모두.


이는 그저 페일이 된 것만으로도 모자라 마검사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게 된다는 선고였다.


페일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달을 원망했다.


“우욱-”


턱 끝까지 차오른 피가 또 한 번 쏟아졌다.


그 사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 듣고 지나칠 세 번의 길고 짧은 추적 마법이 따라붙었다.


휘이-


휫-


휘-


페일은 이를 앙다문 채 더 빠르게 달렸다.


“놓치지 마라!”


“이 배신자!”


따끔거리는 고통이 폐부를 찌른다. 페일은 그 아픔이 물리적인지 심리적인지 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스승님.’


페일의 머릿속에 존경해마지않는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나무에 꽂힌 화살대가 파르르 떨렸다.


쩍- 하고 갈라진 나무 위로 얼음꽃이 피어났다.


“전방 500M!”


“전원 3형 진으로!”


페일의 귀에 무척이나 익은 목소리들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 온 가족 같은 이들이었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격한 고동을 타고 오른 독이 오른손의 감각을 앗아갔다. 페일은 다급하게 왼손으로 옆구리를 눌렀다. 소용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의도치 않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왜.


왜 아무도 제 말은 믿어주지 않는 걸까.


퍼억-


“윽-!”


어깨와 다리에 파고드는 날붙이들에 몸이 휘청였다. 달리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둔해진 감각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추격대가 절 완전히 포위했다는 사실을 알겠다. 하지만 페일은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야 했다.


“페일. 이건 절대 그놈들한테 뺏겨선 안 된다.”


새끼손가락만 한 병에 담긴 붉은 물약.


그건 마법사들이나 마검사가 심장과 그 주위를 감싼 마나 그릇, 다시 말해 써클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놓은 방어구 속에 넣어둔 상태다.


페일은 이 물약의 정체나 왜 그들이 스승님을 죽였는지,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을 왜 제게 돌린 건지 등등의 사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설사 알게 된다 해도 지금으로선 의미가 없다.


페일은 살기를 바라면서도 제가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라 단정 지었다.


“절벽으로 몰아!”


서쪽 마탑 메리디에스의 추격대는 세간에 몰이꾼으로 불릴 만큼 목표물 포획에 능했다. 이 길로 가면 죽을 게 뻔함에도 그들이 몰아내는 길로 갈 수밖에 없게끔 모든 방면을 차단하는 것이다.


투두둑-


페일은 제 바로 앞에서 끊긴 길목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끝 모를 어둠이 눈앞에 펼쳐졌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가파른 절벽이다.


휘이이이-


제 머리 위를 빙 돈 거대한 새가 소리 높여 우짖는 소리가 거센 물소리에 뒤덮였다.


페일은 다급하게 스승의 유언을 떠올렸다.


‘뺏겨선 안 된다.’


그때 스승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만일 이걸 지켜낼 수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하길 바랐는가.


언어는 물론 비언어적인 진의를 파헤치듯 기억을 되새기는 동안, 추격대가 그의 뒤를 밟았다.


못해도 수십 명 정도 되는 인원의 기척이 주위에서 느껴졌다. 그들이 시전한 마법으로 낮처럼 주위가 환해졌다.


“페일!!!”


짐승을 떠올리는 포효가 사위를 뒤흔들었다.


로브 아래로 드러난 이들의 얼굴이 울분으로 가득했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장로님이 네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그렇게 널 아껴주신 분을 네가!! 네가 어떻게 죽일 수 있어!”


페일의 진실과 거짓 없는 고백은 모두 변명이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의와 인륜을 저버린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말로.


그들의 염원에 따른 마법진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간다.


페일은 뒷걸음질을 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3열의 마법사들을 경계했다. 그는 누가 진정으로 스승을 위하는지 채 가려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그만.”


제 수하들의 마법 시동을 멈춘 대대장이 앞서 나왔다. 저 한 명 잡기 위해 대대장이 나섰다는 건···.


신경줄이 팽팽해진다. 그런 페일과 눈이 마주친 대대장이 말했다.


“투항해라.”


“대장!”


수하들의 반발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가 장로님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페일은 또 한발 뒤로 물러났다.


툭-


그의 발꿈치에 채인 흙더미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가쁘던 숨은 간헐적인 쇳소리로 변한 지 오래.


이젠 생각을 하는 것도 힘들다.


‘어지러워.’


“페일!”


비틀, 비틀 휘청거리는 몸이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듯하다.


페일은 제 손이 아닌 것 같은 손을 들어 방어구에 손을 댔다.


“어딜!”


쉬익-


그 모습을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한, 혹은 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이의 마창이 페일의 어깨를 꿰뚫었다. 일순 심장이 멈췄다.


“···!!”


페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나지막이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돼! 페일! 공격하지 마라!”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페일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왔던 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절대 뺏기면 안 된다는 건, 없애도 된다는 뜻과 같다.’


이걸 숨겼을 때와 없앴을 때, 놈들이 이를 발견할 가능성에 초점을 둔 것이다.


그래서 페일은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다.


뽕-


페일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붉은 물약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대대장이 제재했던 수많은 마법이 그에게로 쏟아 부어졌다. 정제되지 않은 살의가 그를 절벽으로 떠밀었다.


만신창이가 된 페일의 몸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질어질한 머리가 정신을 혼미케 했다.


지금에 와서 하기에는, 아니 어쩌면 지금이니까 드는 생각이지만. 페일은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어.’


빛을 잃어버린 눈을 깜빡이자 흐린 막처럼 덮여 있던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고아원에서 노예상으로, 노예상에서 마탑으로 보내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만약 살 수 있다면, 남들처럼 울고 웃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보고 싶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 길거리를 걷고, 그런다 하더라도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그런 삶.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소원이 바람결에 흩어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하늘을 향했다. 방금까지도 휘영청 떠 있던 보름달이 보이지 않았다.


페일은 색색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이리로-’


누군가가 손을 내미는 형상이 보이는 건 말 그대로 허상이리라.


‘그때도 스승님이 이렇게 손을 내미셨는데.’


페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 손을 붙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고 여긴 순간.


“허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지막 숨이 끊어졌다.




***


삐- 삐- 삐이-


대대장 알파는 제 새가 물어온 깨진 병을 움켜쥐었다. 내용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병이 뻑뻑하게 말라 있었다. 조각난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를 냈다.


그의 곁으로 마탑 소속원의 생사 여부를 알려주는 수정을 들고 있던 이가 다가왔다.


“죽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대대장은 페일의 이름에 그어진 검붉은 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알파의 심상찮은 분위기에 추격대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싸늘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파는 인공적인 빛 아래에 깔린 어둠을 의미 모를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신을 찾아라.”


알파가 등을 돌렸다.


그는 끝을 향해 가던 페일의 몸에 이변이 생겼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두근-


두근-


두근-


간헐적이나 세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


크게 확장된 동공.


고동색이었으나 모근에 향할수록 색이 옅어져 흰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 사람의 것처럼 변해버린 머리카락.


페일 스스로는 느낄 수 없었으나 자글자글 들끓던 열이 온몸을 뒤덮었다.


이후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수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더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긴 두상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린 입, 길쭉하게 튀어나온 새카만 코.


역삼각형의 빳빳하게 선 귀와 날렵한 턱선.


두 발로 선다면 성인 여성의 키를 훌쩍 넘을 체격.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작가의말

응원 감사합니다 ⸜(*ˊᗜ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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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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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6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5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4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6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5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6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40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2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6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8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5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8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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