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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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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9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2.01.0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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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DUMMY

페일은 축 젖은 눈을 들었다.


루나는 아직 곪은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원하는 대로.’


페일의 가슴이 들끓었다.


복수와 원망, 죄책감, 슬픔.


그의 마음에 켜켜이 쌓인 복합적인 감정이 루나에게 고스란히 들어앉았다.


루나는 페일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보니타가 페일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페일은 그 상자에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


“보니타는 정말 그대를 아꼈던 모양이야.”


페일은 얌전히 눈을 내리떴다.


루나는 보나 마나 이 제자가 보니타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리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여왕으로 살아온 그는 오히려 보니타의 바람이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걸 잊고 살면 오히려 찝찝하지 않나.’


인간의 방법이 그러하다면 존중은 해주겠지만.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자신을 죽이려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인생의 불순물로 나타날지 어떻게 알고.’


제가 걷는 앞길에 장애물이 생긴다면 그 뿌리까지 뽑아 없애버리는 게 정상적이지 않은가.


짧게 고갯짓을 한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짐이 제안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루나의 손가락이 차례로 접혔다.


“첫째, 그대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이는 보니타의 바람과


“둘째, 이젤리카와 같이 이 요정 숲의 파수꾼이 되는 것.”


그에 더한 제 사견. 그리고


“셋째. 서탑으로 돌아가는 것.”


보니타의 염려로 이루어진 –퍽 실리적인- 제안이었다.


특히 마지막 제안이 그러했다.


서탑으로 돌아간다.


많은 뜻을 함축한 만큼 선택지도 상당했다.


먼저 서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뒤집어엎느냐, 잠입하느냐.


전자나 후자나 내외부 적으로 믿을 만한 조력자를 찾는 건 또 다른 선택이다.


보니타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고, 보니타를 죽인 자들을 찾는 것은 그다음의 일.


둘째는 그 이후에 대한 선택으로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서탑을 떠나느냐 마탑의 후계자 지위를 공고히 하여 마탑주가 되느냐의 문제다.


루나는 페일이 마지막 제안을 선택한다면 보니타를 죽인 자들을 찾는 것만 도와줄 예정이었다.


이젤리카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루나는 보니타의 복수만 하면 됐다. 그의 제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그가 서탑을 뒤집어엎어 그곳의 마탑주가 된다고 하여도 제가 다스리는 달의 부족에 딱히 이득 될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베르한테 소개하는 것도 괜찮겠군.’


요정족 중 해의 부족을 다스리는 왕 우베르는 저와 달리 서쪽과 관련이 깊었다.


‘그래. 이참에 우베르에게 빚을 져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루나는 빠르게 계산했다. 이어 그는 이젤리카에게도 의견을 구하려 고개를 돌렸다.


이젤리카는 홑잎꽃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동그란 형태를 이룬 붉은색의 데시데리움을 든 상태였다.


주황빛의 장모종 고양이가 꽃을 든 모습이 제법 귀여워 루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리 빙글. 저리 빙글.


진지하게 데시데리움을 돌려보며 이젤리카는 꽃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아, 전혀 다르게 생겼잖아, 보니타.’


제 친우는 정말 그림을 못 그렸다.


눈물이 날 거 같아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가 한참 뒤 고갤 내린 이젤리카의 솜방망이가 조심스럽게 꽃잎을 쓸었다.


‘예쁘네.’


부들부들한 꽃잎에서는 왜 이제까지 이런 꽃이 발견되지 않았나 의심될 만큼의 마력이 느껴졌다.


이젤리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꽃잎 하나를 입에 물었다.


얌-


“리카!”


그를 눈여겨보던 루나가 돌겠다는 얼굴로 이젤리카의 턱을 쥐었다.


“으왜애앵!”


이젤리카가 마구 머리를 털며 루나의 손을 할퀴었다.


“으왜앵!”


‘놔!’


“아니 넌 왜 그 나이 먹도록 아무거나 주워 먹냐! 퉤 해 퉤!”


이젤리카의 입에 손을 집어넣은 루나가 갈고리 형태로 만든 검지로 꽃잎을 살살 꺼냈다. 그 손을 이젤리카가 콱콱 물어댔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이었다.


“웨에엥!”


햑-


“아유 착하다, 그래그래, 응응 화났어요? 어이구 다 뺐네. 응 다 뺐어.”


침 묻은 꽃잎을 루나가 얼른 치웠다.


루나의 손은 이젤리카의 팔에 갇혀 있었다.


콱, 그의 손을 문 이젤리카의 뒷다리가 퍽퍽 소리가 나도록 루나의 팔을 할퀴었다.


“아! 아! 아!”


멈추나 싶으면 다시 팡팡이고 이제 끝인가 싶으면 퍽퍽 움직이는 다리가 매섭고 제법 아팠다.


“피나! 피! 아야! 아! 아파! 리카! 아프다니까!”


결국 피를 보고 만 루나가 이젤리카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깊게 할퀴어질 것을 각오하고 빼낸 팔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리카! 이게 뭐야!”


루나가 이젤리카의 앞에 엉망이 된 팔을 내밀었다. 이곳저곳 안 긁힌 곳이 없는 팔에선 피가 났고 발갛게 부었다.


습-


“아 진짜 아파.”


루나가 이젤리카의 엉덩이를 또 한 번 팡 때렸다.


샤악!!


“으왜웅-”


그를 노려본 이젤리카의 꼬리가 휙휙 거세게 움직였다.


“아니 지금 뭘 잘했다고 성질을 부리는 거지?”


씩씩거리며 루나가 얼른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곤 정령을 시켜 이젤리카에게서 멀찍한 곳에 가져다 두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휙 이젤리카를 돌아보았다.


‘이젤리카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다고?’


루나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매사 가타부타 말이 없는 그 이젤리카인데?


루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염소가 지 머리를 뜯어먹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데서나 자고. 남한테 관심도 없고.


누가 뭐라 해도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던 이가 바로 이젤리카 아니던가.


‘얘 왜 이러지?’


그런데 아무리 친우의 제자라지만 –정령의 기억에 의하면- 먹이고 재우고 약 먹이고 돌보는 것도 모자라 감정표현까지 다채로워졌다.


괴리감에 루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세상 맹한 애가 이젤리칸데.’


루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이젤리카를 안아다가 입을 벌렸다.


“햑- 으햑!”


“너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 왜 이래?”


제가 아는 이젤리카라면 이렇게 안았을 때 물처럼 축 늘어지면서 그러든지 말든지 할 애였다.


“설마 이젤리카가 아닌 거 아니겠지?”


“냐냐냐냐-”


‘잘못 먹은 건 내가 아니라 너인 거 같은데.’


“왜 말도 잘하지?”


객관적으로 볼 땐 좋아진 게 틀림없는데, 왜 이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젤리카가 반쯤 고양이의 본능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루나로선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젤리카에게 굳이 제 걱정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 또한 알 리 없었다.


털썩-


루나는 소파에 주저앉아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친구가 세 명 있는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고양이가 된 걸로도 모자라서 이상해졌다. 또 한 명은 원래 이상한 놈이고.


끄응-


그간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루나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페일은 많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결정을 내렸다.


그의 심연을 들여다본 루나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대의 대답을 듣기 전에,”


페일의 눈을 마주한 그가 잠시 정신이 팔려 묻지 못했던 이젤리카의 의견을 물었다.


“너는 어때, 리카. 덧붙일 제안이나 할 말 있니?”


가면 아래 금안이 맑게 빛났다.


이젤리카는 비틀린 루나의 입술 모양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 한 편을 차지한 붕대투성이의 늑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젤리카의 꼬리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처음 늑대를 이 집에 데려왔을 땐, 나을 때까지만 돌봐주기로 했었다.


혼자 사는 게 더 좋고 편했으니까.


그런데···.


‘왜 저리 짠해.’


다 큰 것이 매번 울고, 악몽 꾸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그의 미래가 눈에 밟혔다.


이젤리카는 그런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솜방망이로 미간을 짚은 그가 다른 쪽 솜방망이를 흔들었다. 두드러진 발 볼록살에 루나의 시선이 꽂혔다.


“냐냐- 냐냥- 냥.”


‘일단 늑대한테 통역 마법부터 걸어줘.’


“···.”


“냥!”


‘들었어?’


이젤리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응! 당연히 들었지.”


안 될 게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까닥인 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페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페일은 성대와 머리에 스며드는 무언가에 몸을 움츠렸다.


“됐어.”


루나가 손을 떼자 이젤리카가 미어캣처럼 기웃거렸다.


“진짜?”


“넌 왜 매번 날 못 믿니.”


투덜거리는 루나의 말을 듣는 척 마는 척한 이젤리카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늑대야. 내 말 알아듣겠어?”


늑대의 시선이 이젤리카에 닿았다.


“네, 이젤리카님.”


페일은 자꾸 자신을 늑대라 부르는 이젤리카에게 공손히 답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저녁 되십시오 ✧*.◟(ˊᗨ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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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4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7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6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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