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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78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30 00:26
조회
25
추천
2
글자
9쪽

늑대와 고양이 (3)

DUMMY

***


‘잘 있나?’


이젤리카가 확인차 늑대를 한 번 돌아보았다.


앙증맞은 삼각 두건과 프릴과 리본이 달린 앞치마를 맨 그의 손에는 그의 몸만 한 칼이 들려있었다.


이젤리카는 얌전히 앉아 자기 전에 붙인 약초가 내려간 자리에 포션 솥에 퐁당 빠졌다 나온 새 약초가 자리 잡아 눕고, 그 위를 붕대가 감아주는 것을 보고 있. 지 않고 절 보고 있는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왜 날 보고 있지? 설마!’


“···.”


‘내가 독 넣을까 봐 걱정돼서?’


순간 집중이 흐트러졌다.


이젤리카는 황급히 마법을 재차 걸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우연이었다는 듯 늑대는 식탁을 보고 있었다.


‘아, 배고프구나!’


“냐냐냐냥-”


‘빨리해줄게.’


이젤리카는 도마 쪽으로 몸을 틀었다.


우후후-


‘오늘도 이젤리카는 손맛 가득 정성을 담습니다.’


이젤리카는 부러 발 볼록살을 꾹꾹 눌러가며 콜라비를 썰었다.


통통-


<환자에게는 정성이 가득한 요리를 줘야 한다. 정성은 손맛에서 나온다.>


고 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젤리카는 마법적으로 만들어진 음식 대신 직접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6대 영양소를 골고루 채워야 해요.>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땐 다소 막막했지만, 다행히 아카데미 시절에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양소 수업 시간에 사용한 교과서가 남아있었다.


이젤리카는 영양소 책과 대조해가며 구황작물과 채소, 달걀, 염소젖과 과일을 식단으로 짰다.


‘맛있어져라.’


이젤리카는 성심성의껏 발 볼록살을 이용했고, 그때마다 달라붙는 고양이 털은 브러쉬를 들고 있는 행주가 닦아냈다.


‘이러면 손맛도 닦이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늑대에게 고양이 털을 먹일 순 없는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통째로 그릇에 놓자, 페일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앉았다.


“아우- 아우우우- 아우-”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페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이젤리카의 시선은 페일의 얼굴이 아닌 꼬리에 가 있었으니.


‘오늘도···.’


이젤리카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늑대의 꼬리가 여전히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어서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걸 보면 아주 약간 신뢰가 생긴 건 아닐까.


챱챱-


염소젖을 핥으며 이젤리카는 생각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늑대와 고양이의 식탁은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조용히 음식을 씹는 소리밖에 오가지 않는다.


둘의 식사 속도는 엇비슷하며, 식사를 마치고 나면 수세미와 행주가 알아서 일한다.


식탁에서 내려온 이젤리카의 다음 일정은 늑대의 마나 그릇을 확인하는 것. 늑대의 회복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 2개월 정도 지나면 그릇 자체는 완전히 수복되리라고 여기고 있다.


이젤리카가 마나 그릇을 확인하는 동안, 페일은 마나 회로에 구멍이 난 부분을 채우고 그 위를 매끄럽게 다듬는 훈련을 한다.


훈련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후 페일이 기진맥진해질 때쯤.


“냥-!”


‘간식!’


고양이가 고구마나 과일을 들고 온다.


페일은 먹기 싫어도 한두 개는 입에 넣는다. 고양이가 자꾸만 독 이야기나 정신세뇌 마법이 걸려 있지 않다는 걸 강조해서다.


설사 독이나 마법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늑대가 이곳에선 상대적인 을(乙)로서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이후 고양이는 꾸벅꾸벅 졸다 낮잠을 자고, 또 일어나 간식과 저녁을 준비한다.


이전에는 점심도 준비했지만, 아침 식사와 간식 시간이 느리다 보니 점심은 건너뛰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의 일방적인 의사로.


3~4시쯤의 간식과 6~8시 사이에 먹는 저녁은 아침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가끔 한 번씩 가져오는 닭과 토끼고기는 맛있었다.


입맛을 다신 페일이 배를 내놓고서 자는 고양이의 위에 담요를 덮었다.


고양이는 제 앞에서 늘어지게 자면서도 꼭 공격 자세로 잠을 잔다.


그때마다 페일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못 도망가서 이렇게 자나? 아니면 날 믿는 걸까?’


‘아무리 다치고 스승님의 제자여도 외간 남잔데.’


‘그래도 너무 믿지 말자. 언제 돌변할지 몰라.’


페일은 끊임없이 의심했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배신을 당할까 무서워 스스로에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고양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제 앞에서 넋을 놓고 자서다.


고양이는 못 알아차린 것 같지만, 오죽하면 툭, 쳐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숙면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부턴.


‘고도의 노림수 아니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자는 거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더 느슨해졌다.


‘일단 날 죽이려 하는 것 같진 않아.’


그 종지부는 거의 일주일간 자는 둥 마는 둥 한 그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버렸을 때 쾅 찍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제 품에 파고든 채로 자고 있던 덕이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따끈따끈하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처음부터- 고양이는 잘 때마다 완전히 모든 걸 내려놓았다. 오히려 저렇게까지 자도 되나 걱정할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저렇게 공격 자세를 취하는 건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자.’


페일은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내가 이렇게 자면 자기한테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늑대의 언어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일부러 배를 내놓은 이젤리카의 배려(?)는 페일의 상정 외의 계산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젤리카는 열심히 꼬리도 흔들어보았고,


‘개과는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흔들지?’


고양이과의 특성을 상기한 페일은 고양이의 눈치를 보았다.


‘오늘도 기분이 안 좋나 봐.’


끼잉-


귀를 한껏 접은 페일이 꼬리를 엉덩이 사이로 감췄다.


‘도대체 왜?!’


입을 떡 벌린 이젤리카가 미어캣처럼 몸을 일으켰다. 갈 곳 잃은 두 앞발이 티라노사우루스의 것처럼 가슴 앞에서 축 처졌다.


페일은 고양이의 앞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슬금슬금 멀어졌다. 이젤리카는 화장실로 향하는 늑대의 꽁무니를 망연하게 보았다.


늑대는 이젤리카가 어렵고, 이젤리카는 늑대를 모르겠다.


늑대가 이젤리카의 집에서 오가는 곳은 응접실과 식탁, 화장실이 전부다. 이젤리카가 막는 것도 아닌데 하루 절반 이상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혹시 내가 여기 있어서 그러나?’ 싶어 방에만 있어 봐도 똑같다.


이 집에서 신난 건 약초들과 솥밖에 없다.


‘보니타, 네 제자 이상해.’


화장실에서 나온 늑대가 저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며 이젤리카가 이마를 짚었다.


‘고양이는 처음부터 친한 척하는 걸 싫어하니까.’


페일은 고양이가 눈에 안 보이는 척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고양이는 잠이 들어 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가슴팍이 일정하게 오르라고 내렸다.


고요하고 나른함 속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곤두서있던 신경을 조금씩 누그러지게 했다.


하암-


페일은 쏟아지는 잠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도롱- 도롱-


페일은 여느 때처럼 늘어지게 자는 고양이를 두고서 집 밖을 나섰다.




***


끼익-


혹시나 고양이가 아니어서 문이 열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만큼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


페일은 문 앞에서 등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벽난로에 설치된 솥 안에 들어있는 국자가 그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하듯 휘휘 손을 내젓는 게 보였다. 아니, 제가 어디 아픈 줄 알고 황급히 포션을 따라내려는 것이었다.


그를 못 본 체한 페일이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그가 집을 나선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점점 본능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인가.’


늑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오늘로 만 나흘.


그는 자꾸만 절 도와줄 동료를 얻기 위해 하울링을 하고 싶었고, 시도 때도 없이 꼬리가 흔들렸다.

가장 큰 문제는 자꾸만 고양이를 입에 넣고 싶다는 점이다. 마치 제가 고양이를 믿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말도 안 돼.’


입을 떡 벌린 페일은 도로 입을 닫곤 혀를 피가 나지 않을 만큼 깨물었다. 그에겐 정신수양이 필요했다.


한 발자국 더 떼자 문이 닫혔다.


페일은 현관 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감각이 예리해졌다.


페일은 주위에서 고양이나 이젤리카가 기르는 가축이 아닌 다른 짐승의 냄새를 맡았다.


‘멧돼지인가?’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건 잡아야 해.’


페일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그는 바람의 방향과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재빠르게 찾아냈다.


기척을 없애고 제 냄새가 적에게 가지 않도록 바람 방향에서 소리 없이 매복한다.


본능에 따라 첫발을 뗀 순간. 페일의 코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아주 차갑고 시린 무언가였다.


눈가에도 닿은 그것을 따라 페일은 고개를 들었다.


작가의말

저는 개인적으로 첫눈에 반하는 것도 좋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드는 감정을 더 좋아합니다 :)


이제 2021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오늘도 좋은 일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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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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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6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5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4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6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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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5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6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6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8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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