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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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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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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고심하다 (2)

DUMMY

다소 소란스러웠던 브런치를 마친 후 페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젤리카가 흘리듯 루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우리한테 말을 안 했을까?”


“···.”


“···.”


“뭐야, 지금 네가 나한테 말을 건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린 루나가 과장된 목소릴 냈다. 그리곤 뜬금없는 소릴 다한다는 얼굴로 이젤리카를 보았다.


“누가 뭘 말을 안 했는데?”


그의 주위에서 요동치던 흐름이 뚝 그쳤다. 정령들의 기억이 멎어 섰다. 허공에 떠 있던 루나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보니타.”


이젤리카의 입에서 요 근래 그들을 떠나지 않은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보니타 말이야.”


루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걔가 왜?”


이젤리카는 한 번 눈을 깜빡이고서 방음벽을 쳤다. 혹여 돌아온 페일에게 이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하지만 괜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아 빨리 대화를 마무리 짓고 끝낼 생각이었다.


주위를 경계한 이젤리카의 수염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젤리카는 솜방망이를 핥아 그 위를 정리했다.


똑바로 앉은 그가 한껏 소리를 낮췄다.


“이상해.”


루나는 뭐 때문에 이러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이젤리카가 말했다.


“페일이 매일 악몽을 꿔.”


“꿈자리가 사납나?”


“···.”


이젤리카의 매서운 눈초리에 루나가 양손을 들었다. 계속하라는 시늉이었다.


생긴 건 말캉조랭이떡이면서 하는 짓은 왜 저리 포악한 짐승인지.


루나의 투덜거림은 속내에서 그쳤다.


“매일 악몽을 꾸면서 우는데, 보니타를 부른단 말이야.”


그래서 항상 잠에서 깨.


이젤리카의 작은 투덜거림에 루나의 눈이 데구르르 굴렀다.


‘친구가 유지로 부탁받은 (故)친구의 제자를 죽이려 들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곤란한 명제에 순간 머리가 굳었다. 하지만 입은 착실히 이젤리카가 원하는 대로 호응을 했다.


“응.”


“계속 그렇게 악몽만 꾸면 나을 것도 못 낫겠어. 오늘 행복초 좀 따다 먹일까?”


죽이려는 게 아니었구나.


루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고뇌를 알 리 없는 이젤리카가 담요를 두드렸다.


“걔가 잘 자면, 나도 잘 자고.”


“···그렇지.”


나는 네가 다른 사람하고 그렇게 부대껴서 잘 수 있다는 것도 250년 평생 처음 알았다만.


루나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눈앞에서 보니타가 죽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애가 그렇게 아파할 정도로 보니타가 굉장히 아꼈던 아이란 소리겠지?”


‘아니, 리카 네가 그런 생각을?’


“지금 그거 뭐야? 기분 나쁜데.”


‘예리하긴.’


루나가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그제야 그는 이젤리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뭐, 행복초 좀 따다줘?”


“아니. 그거 말고.”


이젤리카가 물었다.


“그런데 왜 보니타는 제자에 대해서 말을 안 했을까?”


제자가 있다는 말은 물론, 페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때늦은 의문이 이젤리카의 머릿속에 피어났다.


“너도 후계자가 생기면 나한테 말 안 할 거야?”


그제야 루나가 이젤리카 쪽으로 다가왔다.


이젤리카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빛무리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그의 금안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


이젤리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어앉은 루나가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양손에 채 차지 않은 이젤리카의 보슬보슬한 털이 손바닥에서 감겨들었다. 루나는 제 손바닥에 귀를 문지르는 이젤리카를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짐짓 진지하게 표정을 가라앉혔다.


“리카, 보니타가 말을 안 해서 서운했어?”


서운했냐고?


루나의 손바닥에 얼굴을 기댄 채 생각해보던 이젤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루나의 금안에 안도가 깃들었다. 그는 제 젖형제이자 소꿉친구가 상처받는 게 끔찍하게 싫었으므로.


그가 말했다.


“리카. 난 너한테 숨기는 것 없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당연히 지금도 없지.


푸스스 웃는 낯엔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젤리카는 루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왜 보니타는 숨겼을까?”


“그러게.”


루나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쓸고서 손을 뗐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상해.”


이젤리카는 어딘가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반면 루나는 그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원래 인간들은 다른 사람한테 자기 얘기 별로 안 해.”


“친군데도?”


“친구여서 못 하는 것도 있지.”


그리고, 운을 뗀 루나가 가볍게 물었다.


“네가 너무 서탑을 싫어해서 그런 거 아니야?”


“보니타도 서탑인걸.”


아무렇지 않게 답한 순간. 페일을 구하러 가던 길에 ‘보니타의 제자가 제가 서탑을 싫어하는 이유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애면 어쩌지?’ 걱정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젤리카는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거 봐. 그래서겠지.”


별것 아닌 취급에 이젤리카가 그런가, 하고 방음벽을 없앴다. 마침 페일의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네가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게 신기한데.”


이제까지 그런 일 없었잖아? 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젤리카가 눈을 끔뻑였다.


루나의 금안이 가늘어졌다.


“지금 설마 안 그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언제나 자애가 넘치지.”


“그 넘치는 자애로 밥 좀 제대로 주지 그래.”


“···너 언제 휴가 끝나?”


밉지 않게 그를 노려본 루나가 말했다.


“내일.”


달맞이 축제 이후 하루도 쉬지 못했을 루나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이젤리카는 오늘 저녁 아껴둔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루나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도 고양이의 본능인지 뭔지로 루나에게 너무 박하게 굴었다는 자각이 있었다.


“뭐야. 이런 걸로 풀릴 줄 알아?”


흥, 루나가 코웃음을 쳤다.


“아유 이 천재 고양이. 아유 예뻐라.”


곧장 그를 안고서 둥가둥가 볼을 비벼댄 루나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한참을 어르고 만져대다 대차게 물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길게를 못 가요 아주.’


입을 삐죽인 루나는 상처 부근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리카. 네가 궁금해하는 건 알겠지만, 저 인간이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대놓고 보니타의 제자에게 묻지는 않기로 해.”


이젤리카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인 루나의 금안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상처를 받는다는 거지?’


이젤리카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루나도 알았다.


“정 묻고 싶어도 절대 보니타가 네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그럼 뭐라고 물어야 하는데?”


묻지 않겠다는 말은 끝까지 안 한다. 그게 참 이젤리카답다고 생각한 루나가 물었다.


“그냥 안 물으면 안 돼?”


“궁금한데 어떻게 안 물어봐? 그럼 잠 안 와.”


‘아니, 너 잘 자거든.’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자면서 어디서···.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본 루나가 그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이젤리카는 영 마땅친 않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들어는 주겠다는 듯 그의 볼에 대충 머리를 부볐다.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처음 본 페일은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기척을 죽여 자리에 앉았다.


그런 페일의 앞에는 서탑 일원의 명단이 놓여 있었다.


가장 낮은 지하 감옥에서부터 최상층에 놓인 마탑주의 방까지. 마탑의 구조물이 꼼꼼히 그려진 종이에는 그곳에 상주하는 인원과 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는 마탑의 일원의 생존 여부에 따라 지워지는 명부로 보니타와 제 이름 말고도 곳곳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페일은 그날의 참변이 저와 보니타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페일은 연구실의 1/5을 차지할 만큼 확대한 명부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보니타가 마탑의 눈을 피해 만든 복제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다 제 방에 크게 x자가 그려져있는 것을 보았다.


페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늑대의 몸이어서 지워진 걸까?’


아니면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을 넘기며 페일은 각 이름 옆에 ○, □, △ 모양의 도장을 찍었다.


동그라미는 보니타와 우호적인 관계였던 자를, 네모는 이도 저도 아닌 자를, 그리고 세모는 보니타와 적대 관계에 있었던 자들임을 뜻했다.


개중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페일이 잘 알지 못하는 이였다.


페일은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상층부부터 주욱 훑어내렸다.


한 명 한 명. 인(印)을 칠 때마다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생각났다. 동시에 이를 미리 준비했을 이의 모습이 그 위를 덮었다.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왜 제게 미리 말씀을 해주지 않았는지, 그만큼 제가 못 미더웠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며 땅굴을 팔 시간이 아니었다.


페일은 심호흡 한 번으로 임무 때의 경각심을 불러왔다.


착착착-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 이젤리카가 그를 따라 명단을 확인했다.


아는 이름도 있고 모르는 이름도 있었는데, 유독 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Fail Merídĭes


‘FAIL?’


페일의 이름 뜻을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이젤리카의 얼굴이 굳었다.


그날 저녁 구워진 고기의 절반은 오로지 페일의 몫이 되었다.


작가의말

(๑•̌⌓•̑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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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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