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54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22 22:10
조회
61
추천
6
글자
17쪽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DUMMY

이젤리카가 살고 있는 대륙 파벨라(fabélla : 작은 콩)는 말 그대로 작은 강낭콩의 모양이다.


이름이 파벨라가 된 이유는 모양도 그렇지만 보통 씨눈이 있는 자리에 마법사의 탑을 품은 거대한 호(湖)가 있기 때문이다.


대륙의 하단에는 콩의 둥그런 모양을 빙 두른 미노르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미노르 산맥은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선형의 산맥으로 그 첫 시작을 서쪽으로 보고 있으며, 해발 2,744m보다 높은 산을 ‘봉우리’로 센다.


그 수가 총 열셋.


이젤리카는 바로 이 미노르 산맥의 최고봉이자 마지막인 13번째 봉우리에 살고 있다.


동 제국과 북 제국의 국경 지역인 이곳엔 만년설 속에 둥지를 튼 드래곤을 시작으로 정상에서 멀어질수록 온화해지는 기후에 따라 여러 종족이 터전을 튼 상태다.


이젤리카의 집은 봉우리의 최하단에 위치한 요정의 숲과 산림의 경계선에 지어졌다.


떡갈나무로 지은 집은 옥상 정원 겸 텃밭을 머리에 인 형태다. 그 내부는 침실과 욕실, 화장실, 주방, 응접실로 나뉘어있으며, 두 개의 지하실은 침실과 주방을 통해 오가는 구조다. 이젤리카는 전자를 서재 겸 연구실로, 후자는 창고로 사용한다.


현관문은 길쭉한 반타원형의 모양으로 이를 열면 산림이 우거진 광활한 숲이 보인다. 이젤리카는 이곳에서 종종 토끼나 노루, 사슴 등의 소동물을 잡아 온다.


이젤리카의 현관 테라스에서 이 숲으로 이어진 길은 따로 없다.


일반적인 집과는 달리 이젤리카의 테라스는 앞이 아닌 양옆으로 길이 있는데, 이는 집의 뒤뜰과 텃밭으로 이어지는 꽃길이다.


텃밭 쪽에 심긴 빨간 꽃을 시작으로 주홍, 노랑, 초록, 파랑, 남색, 그리고 현관 쪽에 보라색이 오는 무지개 꽃길.


색조는 언제나 같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만 달라질 뿐이다.


이 무지개 꽃길을 따라가면 약초 텃밭과 구황작물, 야채, 채소 등이 각각 구역별로 직사각형 형태의 울타리 속에 있으며, 그 뒤는 과실수가 종류별로 한그루씩 심겼다.


이 과실수는 가로수 겸용으로 이젤리카가 아끼는 양 울타리와 닭장으로 이어진다.


텃밭보다 규모가 큰 두 개의 직사각형 울타리의 왼쪽에는 닭이, 오른쪽에는 양과 염소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이젤리카의 올해 목표는 흑염소 부부에게 아가가 생기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젤리카의 집은 바로 이 가축우리에서 다섯 발자국 뒤부터 꽃길의 앞부분까지다, 이젤리카는 이 영역에 둥그렇게 싼 돔 형태의 이중 결계를 두르고서 그 안을 사계절이 뚜렷하게 구분되도록 기후를 설정해 두었다.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스노우 볼처럼 생긴 이중 결계는 이젤리카와 그의 친우들이 함께 쳐 그 본인들과 이젤리카의 허락을 받은 이만 드나들 수 있다.


이외에도 이젤리카는 집안 곳곳에 마법을 걸어두었다.


목적은 실용과 편리.


이젤리카는 집 전체에 자동 세척 및 정화 기능을 심은 후, 문에는 자동여닫이 기능을, 텃밭 울타리에는 온도조절 마법과 자동 급수, 양우리와 닭장에는 자율배식 및 방범 마법을 중첩 적용했다. 또한 모든 도구와 가구에는 의인화 마법을 걸어 굳이 이젤리카가 힘써서 무언가를 할 필요 없이 알아서들 일을 하곤 했다.


마법을 건 당시엔 마력 부족으로 허덕였지만, 반영구적인 편리함 앞에서 그쯤은 일도 아니었다.


쓱싹쓱싹-


쓱싹-


그 덕에 오늘도 열심히 빗질하는 빗자루를 피해 흔들의자에 몸을 내맡긴 이젤리카가 반쯤 눈을 내리감았다.


‘오늘도 일 잘하네.’


가늘어진 눈매 속 오드 아이에 만족감이 서렸다.


오랜만에 고갤 내민 햇살 아래, 이젤리카는 평화로운 한때를 만끽했다. 그리고 막 잠이 들려던 찰라. 창문가의 결계가 울렸다.


‘응?’


꾸벅꾸벅 졸던 이젤리카가 눈을 번쩍 떴다. 커졌다 줄어든 동공에 주홍빛 날개를 가진 새가 비춰들었다.




[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콩콩-




[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새가 노란 부리로 창문을 두드렸다. 길게 하품을 한 이젤리카가 마주 두드리자 잠금쇠 없는 창문이 열렸다.


그 틈으로 포르르 날아든 새는 곧 편지가 되어 이젤리카의 앞에 펼쳐졌다.




[ 내 오랜 친구 리카에게. ]




‘보니타?’


이젤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지 봉투가 붉은 인장으로 봉인된 것을 보아하니 급보로 보낸 모양이다.


‘왜 수정구로 안 하고?’


정당한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편지는 말이 없는 법.


이젤리카는 봉인을 뜯은 후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편지의 내지에는 금박의 선이 사면으로 둘려있었다. 멀리서 보면 선이나 가까이서 보았을 땐 촘촘한 마법진이 이어져 있는 모양새다.


이젤리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산 위에 뜬 태양과 이를 감싼 형태의 마법진은 편지가 서쪽 마탑에서 쓰였음을 뜻했다.


‘그 똥색 놈들.’


본능적인 혐오감에 이젤리카가 얼굴을 구겼다 폈다.


그곳은 아주 오만하고 고집불통에 지들 잘난 맛에 사는 것들만 모인···.


“냐흥.”


저도 모르게 급발진한 이벨리카가 심호흡을 했다.


마녀와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공동 연구실 겸 숙소, 마탑.


좋게 말해 그렇지 마탑은 그냥 연구 성애자들과 그들이 돌려놓는 자동 작업기-제자-들의 집합소다.


현 대륙에서 마탑은 동서남북과 그를 아우르는 중앙으로 구성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마녀와 마법사는 보통 중앙 마탑에서 3년에서 5년간 교육을 받은 후 네 탑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거나 각자도생하곤 한다.


이벨리아는 후자였고, 이 편지를 보내온 보니타도 그러했다가 스승님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탑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불쌍했지.’


자고로 스승들 앞에선 알아도 모르는 척, 적당히 무능한 척을 해야 하건만.


‘하필 변신 마법에 미친 스승한테 걸려선.’


이젤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오만하고 도덕적인 소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제 친우는, 착하고 착하고 또 착한, 이 세상에 다시 없을 호ㄱ, 아니 사람이니 말이다.




[ 이번에 이름 없는 꽃을 발견했는데, 그 꽃을 보니 네 생각이 나 이렇게 펜을 들어. ]




그래서인지 이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편지를 읽으면 괜히 등허리 부근이 간지러워졌다.




[ 너처럼 예쁘고 귀여운 꽃이야. ]




“냐응-”


‘크흠-’


지금처럼.


이젤리카가 홱 고개를 돌려 오른쪽 등허리를 열심히 핥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편지를 읽었다. 한줄 한줄 읽어나가는 동안 그의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 이번에 영면에 든 드래곤 레어 주변에 있던 꽃인데, 아무래도 변신 마법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 몇 뿌리 캐다 연구해보니 생각보다 더 흥미롭지 뭐야. ]


[ (아, 그러고 보니 그 드래곤 레어에서 로로를 봤어. 영면에 든 드래곤과 친했던 모양이야.) ]




‘로로가?’


이젤리카는 잠시 제 소꿉친구를 떠올렸다.


로로 파빌라.


보니타가 언급한 그는 이젤리카와 마찬가지로 13번째 봉우리의 주민이자 만년설 속에 둥지를 튼 드래곤이다.


매번 별말 없길래 드래곤 아싸인 줄 알았더니.


‘걔한테도 동족 친구가 있었구나.’


백여 년 만에 처음 안 사실이나 소꿉친구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그쳤다.


이젤리카는 보니타의 편지에 집중했다.




[ 이 꽃은 폼폼 국화나 수국처럼 전체적으로는 동그랗지만 자세히 보면 길쭉한 꽃송이들이 모여있는 형태야. ]


[ 실물은 루나에게 보낼게. ]


[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땐 이미 보냈겠지?) ]


[ 너도 알다시피 지금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도착까지는 아마 2-3주 정도 걸릴 것 같아. ]




‘나 고양이 된 거 아직 루나한테 말 안 했는데.’


슬며시 제 몸을 내려다 본 이젤리카가 마저 뒷부분을 읽었다. 이 꽃을 어떻게 연구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젤리카는 세 장에 걸친 설명을 죽 훑었다. 평소였다면 대충 넘겼겠지만, 급보이니만큼 허튼 내용을 넣지 않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구가 잘 돼서 기분이 좋았나 봐.’


어쩌면 신약 개발 소식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젤리카는 또 한 장을 넘겼다.




[ 아무래도 이건 열매가 핵심인 듯해. ]


[ 나는 그 열매를 ‘데시데리움’이라고 불러. ]


[ 도감에 없는 걸 보면 아직 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지어본 이름이야. ]




데, 뭐?


이젤리카의 눈가가 찌그러졌다.




[ 지금 이걸 읽는 네 얼굴이 어떨지 알 것 같아. ]




무심코 거울 쪽을 본 이젤리카가 다시 편지로 시선을 옮겼다.




[ 방금 못 참고 거울을 확인했을 네 모습도. ]


[ 그래서인가? ]


[ 오늘따라 네가 보고 싶네. ]




‘아잇, 갑자기 왜 이래.’


이젤리카가 왼쪽 옆구리를 격하게 핥았다.


그가 다시 편지를 읽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 사실 나도 이렇게 이름을 지어놓고 ‘델’이라고 말할 때가 많아. ]


[ 이 열매도 몇 개 같이 보낼게. ]




그래도 그 모양을 미리 알려주고 싶었는지 옆에 동그란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


응.


나중에 도착한다는 실물로 알아보는 게 좋겠다.


이젤리카는 그 뒤에 이어진 열매의 효능과 여러 정보를 눈에 담았다.




[ 내가 델에게 ‘데시데리움(dēsīdérĭum)’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열매가 마나 보유자의 염원을 들어주기 때문이야. ]


[ 물론 뭐든지 들어주는 건 아니었어. ]


[ 아직 모든 게 밝혀진 건 아니지만 내 가정으로는 ]




이젤리카는 자연스럽게 편지를 뒷장으로 넘겼다가 비어있는 종이를 보고 다시 앞으로 편지를 뒤집었다.


팔락팔락-


‘응?’


그러길 몇 번.


“···???”


문득 책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


이젤리카는 편지의 첫 장부터 끝까지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몇 번을 살펴봐도 편지는 저게 다였다.


‘덜 꺼냈나?’


편지 봉투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빠진 건가?’


이젤리카는 편지를 봉투에 넣은 후 인장을 꾹 눌렀다. 그가 마나를 불어넣자 편지는 창문가를 두드렸던 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인장이었던 부리가 살짝 찌그러진 것 외엔 멀쩡한 모습이었다.


‘잘못 보냈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린 이젤리카는 마나를 회수했다.


바로 그 순간.


파르르 날아오른 새가 찌그러진 부리로 짹짹, 나지막이 울었다. 동시에 회수했다고 생각했던 마나가 새의 날개에 덧대어졌다.


이젤리카가 몸을 일으켰다.


금빛의 빛무리가 더해진 새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편지 봉투가 아닌 빈 양피지가 도르륵 펼쳐졌다.


이젤리카는 앞선 편지가 이를 보내기 위한 연막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편지는 발신자가 원하는 수신자의 마나가 덧대어진 후에야 제대로 된 편지가 보이도록 만든 급보였다.


이젤리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빈 양피지 위로 보니타의 필체가 한 자 한 자 새겨지기 시작했다.




[ 리카. ]


[ 네가 이 편지를 받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




갑작스러운 부고에 머리가 굳었다.


‘···뭐?’


이젤리카는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읽었다.


그의 다급한 손짓에 수정구가 하늘을 날듯이 굴러왔다.


‘보니, 보니, 보니.’


이젤리카는 부재중 연락을 뒤졌으나 무수히 많은 메시지 중 보니타의 것은 없었다.


이젤리카는 보니타의 연락처를 찾아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신호만 갈 뿐, 연결은 되지 않았다.




[ 보니 이거 잘못 보낸 거지? 그치? ]


[ 메시지 보면 연락해. 알았지? ]


[ 보니타 이런 장난은 재미없어. ]




이젤리카가 보니타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중에도 편지 속 문장은 계속되고 있었다.




[ 만약 내 실험이, 내가 세운 이 가설이 맞다면 델, 이 열매는 위험해. ]


[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어. ]


[ 이건 모두 내 잘못이야. 논문을 그렇게 두는 게 아니었는데. ]


[ 아니. 그때 이 꽃을 가져오는 게 아니었어. ]




후회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필체가 뚝 끊겼다.


‘···보니.’


이젤리카는 그 잠시간에서 친우의 망설임을 느꼈다.


그 뒤로 이어진 이런저런 사정을 요약하면, 델이라는 열매를 악용하려는 이들이 있고 제 친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손을 쓰는 중이었단다. 여기에 이 제자라는 애가 안 좋은 상태로 끼었고.


안 봐도 뻔하다.


그 더러운 서탑 놈들이 평소 제 친우와 이 제자를 시기하다가 한꺼번에 처분할 기회로 잡은 거다.


아니, 이미···.


···처분됐지.


뒷목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젤리카는 눈물 맺힌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였다.




[ 마녀의 달이 뜨는 보름. ]


[ 그날 내 제자는 죽을 거야. ]


[ 미노르 산맥의 두 번째 협곡에서. ]




머뭇거리듯 토해낸 친우의 진심이 까맣게 물들었다.




[ 염치없는 말이지만, 네게 부탁이 있어 리카. ]


[ 부디 ]


[ 내 제자를 부탁해. ]




‘···.’


이젤리카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속을 메스껍게 했다.


그때, 수정구가 울렸다.




[ 메시지 전송 실패. ]


[ ERR_사용자 정보가 없습니다. ]




‘말도 안 돼.’


떨리는 눈으로 수정구 문구를 몇 번이고 확인한 이젤리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보니.’


아, 보니.


이젤리카는 양발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의 털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고개를 들었다.




***


[ 미안해, 이젤리카. ]


보니타는 읽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제 아들처럼 생각해 온 제자의 일이어서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덧붙이기도 했다.


‘이 바보는 마지막까지 이러냐.’


통통 부은 눈으로 이젤리카는 나머지 부분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마녀의 달이 뜨는 보름은 3일 후.


이 급보가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3일이다.


그 말은 보니가 이 땅을 떠난 지 못해도 5-6일 정도는 되었다는 뜻이었다.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이젤리카는 혼자 삐죽이는 입술 꼬리에 힘을 주었다.


진작 연락해서 서탑을 엎자고 했어야지!


이 바보가!


“냐응!”


로로가 헬파이어 가르쳐 준다고 할 때 배웠어야지!


아니 로로한테만 연락해도 끝났을 문제를 왜 다 끝나고 연락한 거야 진짜!!


어엉-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리카. ]




“아오아옹.”


‘이 바보는 도대체 뭐가 미안해!’


가까이 있었다면 엉덩이를 때려줬을 텐데 이젠 만날 수도 없다.


‘너무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젤리카는 힝,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가슴 한구석을 애써 눌렀다. 보니타가 바라는 일을 하려면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냐아앙-”


그게 쉽지 않아 더 괴로웠다.


이젤리카는 축축한 털을 박박 문질렀다.


보니타와 그의 제자가 속한 서쪽 마탑의 위치는 미노르 산맥의 시작 부근으로, 미노르 산맥의 두 번째 협곡은 그로부터 3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젤리카의 집에서 미친 척 3-4년 치 마나를 쏟아부은 스크롤을 사용하면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다.


제가 아는 보니타라면 자기 일 때문에 다른 이의 마나를 사용하게 가만둘 리 없을 터.


‘아, 설마.’


이젤리카의 불안한 눈초리가 양피지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을 겨우 읽어냈다.




[ 제자를 부탁할게. ]


[ 리카. ]


[ 우리, 또 만나서 놀자. ]




흡.


이젤리카는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지 않게 턱을 바짝 치켜든 사이.


편지의 내용이 모두 지워진 양피지 위로 정교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미노르 산맥의 두 번째 협곡 아래의 좌표가 적힌 이동 스크롤이었다.


이쯤 되니 이렇게 아끼는 제자를 왜 소개 한 번, 아니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아.”


채 갈무리되지 않은 감정이 들끓었다.


‘이런 종이 말고 통신구로 연락을 했으면 ’


이젤리카는 한숨과 함께 앞발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제 친구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리 허무하게 가버렸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대충, 아주 1초만 생각해도 죽지 않을 방법이 그리 많은데.


이젤리카는 스크롤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더 한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젤리카의 눈이 올망졸망해졌다.


‘근데 나 지금 고양인데?!’


어쩌지?


답 없는 스크롤이 조금, 아니 많이 야속하다.




[ 메시지 전송 실패. ]


[ ERR_사용자 정보가 없습니다. ]




이젤리카는 수정구슬 속에서 열심히 달리는 아기 염소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 수 없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가 바짝 세운 이젤리카가 양 볼을 쪼물쪼물 하고서 창가에서 내려왔다.


“냐냥!”


해보자!


이젤리카는 야무지게 음식을 -제 사이즈에 맞춰 줄어든-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두 발로 중심을 잡은 채 가방을 등 뒤로 맸다.


시간상 내일 출발해도 되지만, 괜히 늦장을 부렸다가 시간이 어긋나면 평생 찝찝할 것 같았다.


이젤리카는 현관으로 달려가 결계 수준을 ‘출타 중’으로 맞춘 뒤 스크롤을 찢었다.


색종이를 잘게 잘라 뿌리듯 발밑에서부터 생겨난 금빛의 빛무리가 이젤리카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로부터 3일 후.




‘진짜네.’


이젤리카는 눈앞에서 늑대로 변한, 친우의 제자로 추정되는 이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단조롭던 마녀의 일상에 팔각 같은 존재가 끼어든 순간이었다.




첨벙-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양이가 된 마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3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2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4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7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8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8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7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4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6 4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