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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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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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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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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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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DUMMY

파벨라 대륙의 동쪽.


미노르 산맥의 열 번째 봉우리의 중턱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미노르 산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봉우리와 대칭이 되는 지점에는 거대한 배 13척과 그보다 작은 배 200척이 다이아몬드 진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13척의 배는 45개의 돛과 2열의 포열을 갖춘 갤리온(Galleon : 대항해시대를 대표하는 범선 중 하나)으로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군함과도 같다.


배의 외곽에는 동쪽의 마탑, 아우로라를 상징하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깃발은 휘장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각각의 배에는 선장 역할을 하는 원로와 항해사 역할을 하는 보좌관 및 수하들이 상주한다.


갤리온의 최대 수용인원은 16명,


열두 명의 원로와 한 명의 마탑주를 필두로 한 갤리온의 탑승자는 208명.


나머지 200척의 배는 소형 함선으로 각각 8명이 탑승한 상태다.


이 함선들은 각각의 동그란 형태의 구 결계가 쳐져 있고, 서로의 함대를 오갈 수 있도록 이동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단, 마탑주가 탄 배와 이어진 마법들은 장로들이 있는 12척의 배에 탑재된 마법진으로만 가능하다.


마탑주가 탄 배는 봉우리의 정 가운데를 동그랗게 파낸 구 모형 속에 정박하여 있어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출입도 불가능하다.


산에 있는 배다 하여 방주라고도 불리는 동쪽의 마탑은 모든 면에서 서탑과 달랐다.




[ 급보입니다. ]


···


[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


[ 비상경보 EX급. ]


···


[ 읽지 않은 메시지 15건. ]




쏴아아아-


철썩-


쏴아아아-


거대한 눈 폭풍이 파도처럼 뱃머리를 때리면, 그 바람에 돛이 휘날렸다.


그러나 갑판에 서 있는 이들의 옷차림은 하나같이 휴양지의 그것이었다. 마법사를 상징하는 로브조차 입지 않은 그들에게선 한여름의 바닷가를 떠올리게 했다. 끼룩거리는 새소리도 그에 한 몫을 더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윈터마린룩의 해군 정복과 모자를 바로 쓴 이가 선장실 앞에 섰다.


작게 심호흡을 한 그가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눈앞의 문을 두드렸다.


콩콩-


“탑주님.”


“···.”


쿵쿵-


“탑주님!”


“···.”


쾅쾅쾅-


“탑주님!!! 그냥 들어갑니다?!!”


꽁지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보좌관이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공격 마법이 날아오기 전에 속사포로 용건을 끝냈다.


“탑주님! 요정의 숲에서 급한 연락이 도착···했는데 이미 알고 계셨군요.”


[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 수신처. 요정의 숲. ]


보좌관이 떨떠름하게 자리에 섰다.


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듯 활짝 웃는 얼굴로 제 앞에 놓인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손으로 턱을 바친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이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저게 뭐람.’


보좌관의 얼굴이 썩어들었다.


깨진 안경을 추켜올린 그가 입을 열기 전, 남자의 손이 빨랐다.


“쉬-”


남자의 검지가 코와 입에 닿았다.


보좌관은 이보다 짜증 나는 일이 없다는 투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 여왕님 몸이 달으셨네.”


동쪽의 마탑. 아우로라의 마탑주 베니아 아우로라. 통칭 벤의 얼굴에 희열이 돌았다.


재수 옴 붙는다며 동쪽을 보는 것도 싫어하는 그 여왕님의 연락이라니.


“무슨 일일까.”


이런 중에도 띠링거리며 메시지는 계속해서 도착했다.


벤이 메시지를 확인한 건 수정구에 30개의 메시지가 쌓였을 때다.


그중 가장 처음과 마지막을 읽은 벤이 픽, 코웃음 쳤다.


“알곤 있었는데. 유쾌하진 않네.”


보좌관은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요정의 숲에서 도착한 전갈 외에도 전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전해야 하는 소식이 서쪽에서 온 것이라니.


벤의 서쪽 혐오증은 동탑의 주민이라면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러 전서구로만 전했던 것인데.


‘도대체 왜! 왜 전서구 확인을 안 하시냔 말이야.’


그는 가슴속에 묻어둔 10932번째 사직서를 내미는 상상을 했다.


여건만 된다면 사직서를 챡! 던지고 나갈 텐데,


‘그랬다간 내 몸이 산산이 조각나겠지.’


그래도 평소보다는 심기가 괜찮아 보이니 괜찮지 않을까.


고심 끝에 입을 열기 무섭게 보좌관 노튼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탑주님, 서탑에서도 ···.”


그의 눈이 잘게 떨렸다.


“응? 어디?”


“···메리디에스에서 연락이···.”


정말 울고 싶다.


‘내가 보낸 것도 아닌데.’


“노튼.”


“네, 탑주님.”


“그딴 건 너 알아서 해결해.”


어? 죽기 싫으면.


새파란 눈동자가 온기 한 점 없이 그리 종용했다.


‘이씨.’


내심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튼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어머니 저 이렇게 갑니다.’


두 눈을 질끈 내려 감은 그가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녀 보니타 메리디에스의 부고 소식입니다 마탑주님!”


“···.”


잠시간의 침묵이 마치 천년과도 같이 느껴졌다. 수정구를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던 벤이 그를 돌아보았다.


“뭐?”


오래 함께해 온 만큼 그가 뭘 묻고자 하는지 알아차린 노튼이 얼른 전서구를 내밀었다.


“보니타 메리디에스가 죽었답니다.”


빠득-


“아, 이런.”


수정구에 금이 간 것을 안타깝게 여긴 벤이 손을 털고서 부고장을 받아들었다.


“우리 여왕님께서 몸이 다신 이유가 있었네.”


보니타 메리디에스.


주제도 모르고 여왕의 관심을 차지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자다.


‘나도 못 받는 관심을.’


비뚠 웃음이 머문 자리에 흰 국화가 담겼다.


쯧,


벤이 혀를 찼다.


서탑의 연락은 간단했다.


보니타 메리디에스를 죽이고 도망간 전(前) 마탑주 후계자 페일 메리디에스를 사살하였으나 시신은 찾지 못했으니 이를 발견할 시 바로 서탑에 연락을 주라는 것이었다.


“이 건방진 것들이 어디서 연락을 주라 마라야.”


벤의 손에서 일어난 불길이 부고장을 태워버렸다.


잿더미 하나 남기지 않은 푸른 불꽃이 사그라질 때까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노튼이 마른침을 삼켰다.


“탑주님, 답은.”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한 번만 더 이딴 연락으로 귀찮게 하면 엎어버린다고 해.”


소독제를 병적으로 손에 뿌려댄 벤이 짓씹듯 답했다. 노튼의 손이 발발 떨렸다.


‘그, 그럼 전쟁 나는데요.’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인물이었다면 매년 열리는 마탑의 회의장에서 서탑의 마탑주에게 찻물을 뿌려대진 않았으리라.


“왜 대답이 없어.”


고운 금발이 햇빛에 부서졌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노튼이 방을 나서려던 그때. 벤이 말했다.


“아, 그리고 나 자리 비우니까 그렇게 알아라.”


“네?”


노튼의 반문에 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므로.


아악-


벤은 저 너머 들려오는 노튼의 비명을 배경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순수 마나량이 방대한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젤리카의 집을 둘러싼 결계 앞에 도착했다.


미노르 산맥의 열세 번째 봉우리 속 뒤틀린 공간.


평소에는 좌표에 잡히지도 않고, 순간 이동도 할 수 없는 그곳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긴 여전하군.’


주위를 둘러본 벤이 툭툭 어깨를 털자 셔츠에 바지 하나의 가벼운 옷차림이 마탑의 정복으로 뒤바뀌었다.


은실 자수와 견장으로 치장된 네이비블루의 제복과 까만 구두.


망토처럼 두른 제복 코트.


챙을 눌러 해군 모자를 고쳐 쓰는 그를 페일이 부르려던 찰라. 시선을 느낀 벤이 고개를 들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새끼 드래곤?’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는 거지?


뭐 높으신 분들의 사정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그가 로로를 못 본 체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낯선 이가 눈에 담겼다.


‘저 늑대는 또 뭐지?’


이젤리카의 패밀리어는 염소 새끼였던 걸로 아는데.


벤은 삐딱하게 고개를 내려 결계를 푸는 늑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일반적인 마법사에게선 맡을 수 없는 독특한 마나 향이 느껴지자 입가를 쓸며 픽 웃었다.


‘재밌는 짓을 꾸몄네.’


“우리 구면이지? 10년만인가?”


벤이 말한 그때는 10년마다 열리는 마탑 회의에 서탑 메리디에스의 마탑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던 날이다.


“···예.”


입을 열 시기를 놓쳤던 페일이 어물쩍 대답했다.


“근데 그 꼴은 뭐야?”


묻긴 했지만 말 그대로 물어만 봤을 뿐.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벤이 페일을 지나쳤다. 페일에겐 퍽 익숙한 처사였다. 이젤리카의 집에서 지내기 전까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듣지 못한 척.


페일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벤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노튼은 10933번째 사직서를 썼습니다. ( ᐕ)


그간 오래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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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3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4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8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7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6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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