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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79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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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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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늑대와 고양이 (2)

DUMMY

달칵-


집을 나선 이젤리카가 닫힌 문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떡하지?’


앞날이 걱정되는 건 페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젤리카는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그는 살면서 타인에 대해, 특히 관계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이젤리카에게 보니타의 제자는 너무나 어려운 존재였다.


이젤리카가 눈썹을 긁적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아프다는 것도 숨기는 걸로 모자라 배고픈 것까지 숨기다니.


‘근데 말도 안 통해.’


이젤리카의 귀가 시무룩하게 내려갔다.


‘보니, 네 제자가 날 안 믿는데 어떡하지?’


보니타의 늑대 제자는 자꾸만 꼬리를 엉덩이 밑으로 숨겼다. 개과 동물의 특성상 그 행위는 경계심이 아주 높다는 뜻이었다.


‘왜? 내가 무섭나?’


뒷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난 이젤리카가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볼록한 뱃살조차 귀여움 그 자체였다.


크앙-


양발에 발톱을 세우고 부러 무서운 척도 해보았지만, 고양이는 고양이었다.


늑대 제자의 꼬리만 한.


이젤리카의 두 귀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그럴싸한 생각이 들어 숨을 헉 들이마셨다.


‘내가 오드아이여서 불길해 보이나? 그래도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인데.’


이젤리카는 앞발로 머리에 있는 털을 삭삭 쓸어 눈을 가렸다.


부스스 털만 날렸다.


에페-


털을 뱉은 이젤리카의 입이 샐쭉하게 나왔다.


온몸을 털어낸 이젤리카가 쪼삣하게 등허리를 모았다가 폈다. 그리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뒷다리를 먼저 펴고 앞다리를 길게 내밀자 찌뿌드드하던 몸이 유연하게 풀렸다. 그러다 보니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아마 아직 아파서 그런 걸 거야.’


맛있는 걸 먹고 힘내면 괜찮아지겠지?


이젤리카는 촉촉하면서도 폭신한 흙에 발을 올린 후, 텃밭을 향해 씩씩하게 걸었다.


착착착-


발톱과 잔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탁을 두고 직접 밭으로 나온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이젤리카는 털을 간질이는 꽃잎을 지나 눈높이보다 높은 울타리들로 가득한 길에 접어들었다. 고양이가 되고 난 후 그에겐 꽃을 가로수로 한 오솔길이 생겼다.


‘운치 있어.’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땐 몰랐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령 쥐새끼랄지, 쥐새끼랄지, 쥐새끼 같은.


‘왜 내 밭에 쥐새끼가?!’


이젤리카가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엉덩이를 실룩인 그의 수염이 뽀칭뽀칭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리고 펄쩍 뛰어오른 순간, 본래 목적이었던 당근밭이 눈에 들어왔다.


‘핫-촤-’


이젤리카는 원래 이러려고 했다는 듯 죽은 척을 하는 쥐가 아닌 당근밭에 발을 내렸다. 그리곤 호미를 불러 박멸 대상에게 보냈다.


“냐냐냥냥!”


‘가랏 호미 3호-’


환자에게 쥐를 물었던 입으로 딴 채소를 먹일 수 없으니 말이다.


‘내 밭에 네발 달린 짐승은 나 하나로 족하다.’


응.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높게 솟아 있는 당근 중 유독 이파리가 예쁜 하나를 골라 물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쏙 뽑힌 당근은 튼실하니 아주 맛있어 보였다.


‘좋아.’


이젤리카가 뿌듯하게 당근을 띄웠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당근이 이젤리카의 뒤에 따라붙었다.


이젤리카는 그 뒤로 무 하나를 뽑고, 과일 몇 개를 땄다.


챡- 챡챡-


이젤리카의 걸음에 맞추어 채소 두 개와 과일들이 그의 뒤를 둥실둥실 따라왔다. 채 털어내지 않은 흙이 떨어진 곳은 빗자루와 걸레들이 쓸고 닦았다.


‘환자는 싱싱하고 깨끗한 걸 먹어야 해.’


그가 마법 접시를 두고서 –오랜만에- 밭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래도 환자다 보니 제가 먹어왔듯 마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이는 데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이젤리카는 보니타의 부탁을 끝내주게 잘 들어주고 싶었다.


‘진짜 늑대도 아니니까 이런 걸 먹어도 괜찮겠지?’


나름 늑대와 인간의 식성도 고찰한 이젤리카가 따온 것들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박아놓고 아주 가끔 꺼내 사용하는 크리스탈 그릇을 꺼냈다. 꽃 모양의 넓적한 대접이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릇 위로 토막 난 당근과 무, 그 주위를 장식한 과일들이 준비됐다.


‘드레싱은 아직 안 될 거야.’


요정족 혼혈인 이젤리카에게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하는 요리란, 썰어 보고, 구워 보고, 삶아보는 게 전부로.


“냐냥-”


[ 아주 신선. ]


페일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부풀린 고양이와 날 것 그대로의 채소와 과일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름대로 안 해본 경험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진심으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환자에게는 죽이나 스프를 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조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소라니.


‘나 같은 거한텐 음식도 아깝다는 걸까?’


페일의 심리가 땅을 파려던 순간,


착착착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 고양이가 페일의 앞에 놓인 것 중 당근을 입에 물었다. 그리곤 몸을 수그려 양발로 당근을 잡았다.


꼬독- 꼬도독-


엎드린 채 고개를 튼 그가 송곳니 쪽으로 조금씩 씹어먹을 때마다 페일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그때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페일은 얼른 안 본 척 시선을 옮겼다.


“냥!”


‘여기 봐.’


입을 삐죽인 이젤리카가 종이를 툭툭 때렸다.


[ 없는. 독. ]


페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우우- 웡- 아우-”


‘독 때문에 안 먹은 게 아니라-’


고양이는 완고했다.


[ 진짜. ]


“워엉- 아우우- 웡-”


‘그러니까 독 때문이 아니라-’


고양이가 이번엔 무를 먹으려 하자 마음이 급해진 페일이 덥석 무에 발을 얹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음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옹졸한 먹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페일이 민망해하며 발을 떼려다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


“···.”


‘···빈속에 이거 먹는다고 죽진 않겠지.’


나약하지 않은 제 위장을 믿으며 페일은 무를 천천히 입에 넣고 씹었다.


우적- 우적-


“냐냐냐-”


‘아이구 잘 먹네.’


팟팟팟-


페일은 제 앞에서 박수 치는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정말 막막했다.




***


늑대는 늑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고양이는 서툰 서제국의 단어를 조합해 종이를 두드린다. 당연히 늑대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고양이는 늑대의 의중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린 나름 잘살고 있다고 이젤리카는 생각했다.




***


아침 9시.


고양이가 당근을 썬다.


고양이의 기상 시간은 매일 다르다.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제 안색을 살피는 것으로 추측건대, 제가 없었다면 점심때까지 자곤 하지 않았을까.


이전에 고양이가 11시쯤 눈을 떴을 땐, 파드득 날아온 종이에 적힌 문구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 한다. 요리. 아주 빠르게. 신속! ]


그 후 고양이의 기상 시간은 아주 느려도 10시다.


잠에서 깬 고양이는 길게 몸을 늘여 기지개를 켠 후, 앞발을 싹싹 핥아 세수를 한다. 그리곤 네 다리 가볍게 집을 나선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는 허공에 떠 있는 채소와 과일 리스트를 보는 재미가 있다.


가축우리도 있는지 요 근래에는 달걀과 우유가 담긴 양동이도 날아 들어왔다.


페일의 지정석은 응접실의 벽난로 앞.


페일은 눈만 움직여 왼편에 자리한 부엌을 보았다.


통- 통통-


고양이는 아직 당근을 썰고 있었다.


“냐-냐냐-냐냐-냐-냐.”


“냐냐냐냔-”


고양이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흥겹다.


페일은 엉덩이를 실룩이는 고양이를 못 본 척했다.


당근을 다 썬 고양이가 그 옆에 있는 채소를 집었다. 그간 먹었던 무보다 짧고 통통한 콜라비다. 그 뒤를 참외와 토마토, 사과가 얌전히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 놓인 접시는 두 가지 종류로 하나는 투박한 나무 그릇인 반면, 나머지 하나는 크리스탈의 꽃 모양 접시다. 접시에는 이미 들상추와 스크램블 에그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하얀 네모지기는 감자인 듯싶다.


그 옆에는 각각의 접시와 세트로 보이는 대접이, 그 안에는 양이나 염소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유가 담겨있다.


이전 날보다 풍성해진 식단이다.


“냐-냐냐-냐냐-냐-냐-냐냐냐냐-”


페일은 고양이의 박자에 따라 발을 까닥였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음률이었다. 꼭 바나나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런데 도대체 왜 밥을 자꾸 저런 것만···.’


처음에는 저를 음식도 줄 가치 없는 인간 내지 늑대로 생각해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양이는 뭐든 원색적으로 먹기에 진심이었다.


썰어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도와주려 해도 의사소통이 안 되고 손사래를 치니 보고만 있긴 한데···.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음식을 할 줄 모르나?’


주변에 저렇게 많은 마법 도구를 두고도 도대체 왜 사용하지 않는지. 도 의문이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마법 접신데.’


그 모든 게 ‘손맛’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페일이 알게 되는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은 모처럼 맑은 날이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


이젤리카가 처음에 부른 노래는 레드벨벳의 power up 을 생각하고 썼습니다//


댓글 항상 감사드려요 ㅠㅠ


다음편은 예약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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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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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6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5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4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6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5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6 2 9쪽
»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40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6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8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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