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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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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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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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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DUMMY

주어진 시간에 비해 보니타가 보내준 물품은 너무 많았다. 계획 없이 움직였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만큼.


데시데리움에 관한 것에 더해 -혹여 친구들에게 필요할까 싶어- 이것저것 관련 있어 보이는 것까지 죄다 보낸 덕(?)이었다.


“얘, 아무도 모르게 보낸 건 맞겠지?”


보니타의 일처리 방식을 잘 아는데도 의심될 정도의 양에 루나가 혀를 내둘렀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세 사람은 그 즉시 루나가 짜놓은 계획을 바탕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계획 성애자답게 루나가 최소에서 최대 시간까지 계산한 일정표를 짜놓아 가능한 일이었다.


페일과 이젤리카는 별말 없이 그를 따르기로 했다.


“근데 일정이···.”


“뭐! 일정이 뭐!”


그의 기세가 흉흉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너희 정말 잘 자더라? 어? 감히 이 몸을 앞에 두고?”


정말로.


루나의 계획이 훌륭했을 뿐이다.


“아니 훌륭하다고.”


이젤리카의 말에 흠흠, 헛기침을 한 루나의 볼에 홍조가 올랐다. 살짝 뻐기듯 턱을 올리는 모양이 이젤리카와 똑 닮아, 페일은 나지막이 감탄했다.


턱을 치켜든 그대로 루나가 말했다.


“일단 계획서에 적힌 대로 짐 정리부터 하자.”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령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페일은 루나의 계획서를 읽으며 제 앞에 놓인 것들을 확인했다.


루나의 계획은 크게 세 가지였다.




늑대와 고양이의 몸에서 벗어나기.


서탑에서 아군과 적군 골라내기.


적군의 배후를 뿌리까지 솎아내기.




루나의 계획서에는 각각의 지분율도 적혀 있었다.




루나(이하 ‘R’) 2%, 이젤리카(이하 ‘I’) 49%, 페일(이하 ‘F’) 49%


R 50%, I 10%, F 40%


R 50%, I 50%, F +α




그 옆에는 이렇게 계획을 짠 이유와 역할 또한 상세히 적혀 있었다.


조직적이고 수동적인 삶이 더 익숙한 페일은 금방 계획서를 숙지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넣었다. 동시에 최대 효율을 낼 방법을 고안했다.


첫 번째 계획은 오늘부터 3개월 정도가 마지노선이었다.


페일이 할 일은 그가 마신 포션 C의 효력을 없애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를 위해선 데시데리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였다.


페일은 익숙한 필체의 연구서를 조심스레 제 앞으로 끌어왔다.


연구실 안쪽에 자리를 잡은 그와는 달리, 입구 쪽에 둥지를 튼 루나 또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의 역할은 두 번째 계획인 ‘서탑의 아군 적군 골라내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데시데리움과 물품들에 깃든 정령들의 기억을 읽어 서탑에서 있었던 일들과 여기까지 오는데 감시자 혹은 첩자는 없었는지를 알아내는 게 주요 임무였다.


입구 쪽에 자리를 잡은 건, 동물의 본능이 점점 드러나면서 야행성이 된 두 사람과는 달리 루나는 아침형 요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졸리면 곧바로 올라가 이젤리카의 침대를 차지할 예정이었다.


삼각형 형태로 세 사람이 자리를 잡았으니, 이젤리카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루나와 페일의 대각선이자 연구실의 가장 안쪽이 되었다.


그가 할 일은 페일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의 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젤리카는 제가 볼 책을 허공에 띄우고서 몸을 일으켰다.


챱- 챡-


발 볼록살과 바닥이 맞닿았다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연구실 안에 울려퍼졌다.


그가 향한 곳은 페일의 자리였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부르셨으면 갔을 텐데.


고개를 들어 올린 페일은 제게 다가오고 있는 이젤리카를 눈에 담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자 앉아 있으란 시늉을 한 이젤리카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그의 몸에 기대 주륵 미끄러졌다.


‘어.’


페일이 당황해하는 사이.


“냐~앙~”


이젤리카는 페일의 몸에 온몸을 기댄 채 반쯤 눕다시피 했다.


페일이 절 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젤리카는 속편히 책을 펼쳤다.


한쪽 솜방망이로 턱을 괸 이젤리카의 다른 쪽 솜방망이가 까닥일 때마다 책장이 자동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발이 저리다 싶으면 몸을 돌려 반대로 눕거나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위치도 발과 다리에서 점점 페일의 옆구리 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더니 종내엔 완전히 안긴 자세로 두 다리를 쭉 뻗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준 페일도 정자세로 앉아 있다 눕다시피 앉게 되었다.


페일에게 몸을 기댄 이젤리카의 얼굴은 태연자약했다. 요 며칠간 그와 함께해 온 페일은 그의 만족도가 꽤 높은 상태임을 알았다.


실제로 이젤리카는 고양이가 된 이후 가장 –눕거나 기대기- 편한 곳을 찾은 상태였다.


고양이가 된 뒤로 이전보다 더 누워있는 게 좋고 어딘가에 기대있는 게 좋아진 이젤리카. 그는 이곳저곳을 다 뒹굴어 본 결과 체온보다 따뜻한 건 없고, 적당한 온도와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페일은 적당한 온도와 편안함에 딱 알맞았다.


늑대의 몸은 고양이와 달랐다. 뼈가 ‘나 여기 있다!’ 말하듯 그 존재감이 두터웠다. 그래서인지 -말랑말랑하고 형체가 느물거리는- 제 몸을 기댔을 때 무언가가 받쳐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게다가 늑대의 빽빽한 털은 큰맘 먹고 산 이불보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페일도 별말 안 하는 거 보면 계속 기대도 괜찮은 거겠지?’


이젤리카가 흘끔 페일을 훔쳐보았다. 그는 데시데리움에 관한 책에 메모지를 붙이고 있었다.


‘불편하냐고 물어볼까?’


이젤리카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물어보면 다시는 기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제 양심의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그건 싫었다.


‘조금만 더 기대있을게.’


늑대의 털에 반쯤 파묻힌 이젤리카가 책장을 한 장 넘겼다.


사락-


한동안 연구실 안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만 오갔다.




***


오늘도 역시.


“으응.”


페일의 몸에 기댄 채 방만하게 누워있던 이젤리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젤리카가 보고 있던 건 변신마법의 총망라였다. 이 역시 보티나의 저서 중 하나로 그를 서탑의 장로가 되게 한 장본 서적이기도 했다.


6.4kg의 벽돌만 한 서적과 5.4kg의 정리 표(부록이다)는 보는 것만으로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특히 정리 표는 각 상황의 해결방안을 예측한 것이었다.


이젤리카는 1번부터 차례로 읽으며 필요한 재료들을 종이에 적었다. 그러다 지금 바로 해볼 수 있는 건 곧바로 따라했다.


“너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자꾸 바로바로 해 보고 그래?”


루나의 잔소리는 딱 그때뿐이었다.


이젤리카는 페일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루나의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루나의 말을 듣고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아예 못 들은 축이었다.


들었다고 하더라도 루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종이에 필요한 재료가 빼곡히 찼을 무렵.


이젤리카가 책에서 시선을 뗐다.


그가 물었다.


“요정의 숲에 희망초 아직도 자라?”


“응.”


“그거 12뿌리 가져다 달라고 해줘.”


루나가 별다른 말 없이 땅의 정령을 불러 그의 말을 전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이젤리카가 날린 종이가 그들의 반대편에 앉아 꽃에 깃든 정령들의 기억을 읽어내던 루나에게로 향했다.


목록을 죽 훑은 루나가 물었다.


“가닥은 좀 잡혀?”


이젤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갓 넘긴 페이지에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가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공중바퀴 세 번.”


이젤리카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등허리가 튀어 오르며 털이 쭈뼛 섰다.


‘확실히 따뜻하네.’


지하실의 찬 공기에 이젤리카는 방금까지 기대고 있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제 몸 크기만큼 페일의 털이 눌려 있었다.


그 빈자리에서 체감되는 서늘함이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페일은 자각 없이 이젤리카를 눈으로 좇았다.


이젤리카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실룩이며 몸을 낮추고서 뛸 최적의 시기를 쟀다.


그림 속의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후-”


심호흡한 그가 크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공중에서 뒤로 세 바퀴를 가볍게 돌았다. 주변 마나를 이용하니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였을까?


결과는 꽝이었다.


‘역시.’


마나 없이 스스로 돌아본다는 선택지는 그의 사전에 –애초부터- 없었다.


이젤리카는 여전히 주황색 털복숭이인 제 몸을 보고서 제가 누워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발라당 누운 그의 모습에선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이 다음은~’


속으로 콧노래를 부른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페일은 그런 이젤리카가 신기했다.


‘걱정이 안 되시나?’


부러 괜찮은 척하시는 건가?


혹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페일은 이젤리카를 훔쳐보았다.


때마침 고개를 돌렸던 이젤리카가 페일과 눈이 마주쳤다.


늑대와 고양이의 눈이 둥그렇게 뜨였다.


‘뭐지? 할 말 있나?’


당황한 페일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젤리카의 합리적인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설마···. 불편해서 그러나?’


여기가 제일 따뜻한데.


모르는 척을 하기에는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터라. 미적미적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린 이젤리카가 조심스레 자리를 비켜준 건 절대 페일의 본의가 아니었다.


“미안.”


“아, 그 아닙···!”


페일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정작 반응은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파드득-


“흐읍-”


어디선가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나가 숨을 들이켠 것이다.


페일과 이젤리카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 순간, 루나의 목소리가 쨍하게 울렸다.


“아니야! 나 안 졸았어!”


“···?”


“···.”


막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한 루나의 볼이 타오를 듯 붉어졌다.


서로 눈이 마주친 이젤리카와 페일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숨죽여 웃었다.




새벽 2시 30분.


새들도 아가 양도 잠들 시각은 요정족의 여왕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좋은 밤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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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6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5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4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6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5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6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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