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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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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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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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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DUMMY

“이젤리카!!!”


투명화 마법을 건 채 옥상 정원에서 뒹굴거리던 실버 드래곤, 로로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여간 화가 난 것이 아닌지 주변 공기의 떨림이 심했다.


로로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이어 옥상 너머로 눈을 빼꼼히 내민 상태로 이젤리카를 바라보았다.


부스스하던 그의 주홍빛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는 적절히 섞인 오렌지 태비의 장모가 되었고, 성인 요정의 평균 키보다 살짝 작았던 체형은 길쭉하면서도 동글동글했다. 와락 안아 보고 싶을 만큼.


‘귀여워.’


로로는 그의 탐스러운 꼬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간일 때나 고양이일 때나 이젤리카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나만 보고 싶었는데.’


설렘으로 붉게 물든 얼굴 위로 심통이 내려앉았다.


로로는 손끝으로 통신구를 굴리며 입을 삐죽였다.


오늘로 이젤리카에게 보낸 메시지만 5000여 통. 그중 답장을 받은 건 0건이다.


0건.


마지막으로 제 연락을 확인한 것도 보니타의 연락을 받은 그 날뿐이다.


‘너무해.’


은빛으로 빛나는 홍채 속 세로 동공이 가늘어졌다.


로로는 샐쭉한 표정으로 이젤리카를 응시했다.


‘이러려고 널 고양이로 만든 거 아닌데.’


그가 원했던 건 이젤리카가 제게만 도움을 청하고, 저는 그 시간 동안 이젤리카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젤리카의 오두막 주변의 통신도 잠시 어그러뜨린 것인데, 그 사이에 이젤리카와 루나의 친구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 줄이야.


로로는 턱을 괴듯 깍지 낀 손을 입에 댔다.


‘이건 계산 착오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독점은커녕 절교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절대 안 돼.’


우연을 가장해서 이젤리카에게 제가 왔노라고 이르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일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으려니 저 늑대가 자꾸만 이젤리카의 옆에 있는 게 거슬렸다.


긴 세월 중 길어야 1년 정도 있다 갈 녀석이지만 로로는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들었다.


‘왠지 더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이건 본능의 소리였다.


로로는 애꿎은 입술을 괴롭히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젤리카의 머릿속에선 이미 제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보니타의 일이 있기 전이라면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며 이젤리카의 옆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곤 보기 좋게 이젤리카를 인간으로 되돌려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사실 보니타의 일과는 상관없이 로로는 그리했을 테다.


로로의 시선이 이 집 지하에 고이 모셔져 있을 꽃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 꽃만 아니었더라면.


로로가 까득 이를 갈았다.


‘하필 저 꽃이 엮일 게 뭐야.’


저 꽃으로 인한 문제는 아직 헤츨링(300살 이하의 드래곤)인 그가 나설 수 없었다.


로로의 두 눈이 차게 가라앉았다.


루베오.


저 꽃의 정체는 드래곤이 자연으로 돌아가며 남긴 마나였다.


체내는 물론 체외에도 무수히 많은 마나로 뒤덮여있어 마나의 축복이라 불리는 종족 드래곤.


마나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이 영면에 들 때면 그들을 이루고 있던 마나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모든 일엔 예외가 있는 법.


간혹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거나 자연으로 돌아갔음에도 그 양이 너무 많아 잔류하는 마나가 생기곤 했다.


바로 그 마나가 피어난 결정체가 바로 이 루베오. 보니타가 데시데리움이라 명명한 붉은 꽃이다.


(본래 이름은 레페토 베르(répĕto ver)였으나 마나의 순도가 높을수록 붉게 피어 루베오(rúbĕo 붉게 물들다)라 부르던 것이 고착화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간 드래곤의 일부였던 만큼, 이를 섭취하면 그의 힘을 어느 정도 물려받을 수 있었기에 드래곤 족의 전유물이자 가보로 전해져 내려왔다.


자연으로 돌아간 드래곤의 레어를 정리하고 루베오가 피어있으면 전량 회수한다, 가 그들의 장례절차였다.


그렇게 회수된 루베오는 그의 뒤를 이은 헤츨링들이 먹었다.


이번의 경우처럼 미처 회수하지 못한 루베오가 다른 종족에게로 흘러갈 때의 대비책도 있는데, “그들이 요청하지 않는 이상 드래곤은 루베오에 대해 함구하며 끼어들지 않을 것.”이 그 방책이자 드래곤 사회의 법이었다.


드래곤 종족이 종족 특성상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이 신에게 부여받은 역할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륙이 무너진다든지 어떤 종족이 몰살을 당한다든지 등의 극단적인 문제가 아니고선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종족이 루베오를 섭취한다고 해서 어지간해서는 -드래곤이 움직일 만한-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종족이 드래곤의 힘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인다 해도 드래곤들이 보기엔 괜찮았다. 루베오(데시데리움)는 마치 드래곤의 용언처럼 섭취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들어주곤 했는데, 섭취자가 가진 마나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다 보니 기껏 해봐야 드래곤들의 시선에선 그 허브에 그 빵이었다.


좀 더 이론상으로 설명해보자면, 마법이 시전자의 강한 의지와 마나로 이루어지는 만큼, 자연으로 돌아간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발현한 마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로로는 저 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일언반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젤리카가 먼저 도움을 청하기 전까진.


‘그러니까 제발 연락 좀 해 줘 이젤리카.’


총총총-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들어가는 이젤리카의 뒤로 로로의 진득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


산더미처럼 쌓인 야채와 과일 한 바구니 그리고 삶은 달걀 6개.


루나의 몫이 포함된 저녁 메뉴는 평소보다 양이 많았다.


커다란 대야에 쌓인 그것들을 마법 집게가 각자의 앞접시로 가져다주었다.


루나의 날 선 시선이 토마토에 닿았다. 식단 때문이 아니었다.


이젤리카의 집에서 이젤리카가 밥을 차려줬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니 말이다.


실제로 루나는 그 이젤리카가 처음으로 저에게 밥을 챙겨줬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시야에 그 울분의 계획서가 들어온 순간, 감격한 만큼 이상의 분노가 차올랐다.


그의 시선은 곧 이젤리카에게로 향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가면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눈이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리라.


“웅?”


아삭-


그런 루나의 눈초리에도 이젤리카는 야무지게 사과를 씹었다.


“나한테 할 말 없냐니까.”


“안 먹어?”


“···.”


이젤리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 온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아이쿠.’


페일은 온몸으로 불을 내뿜는 듯한 루나의 눈치를 보며 우걱우걱 야채를 입에 넣었다. 저녁 이후의 일정을 위해서였다.


기가 팍 죽은 그의 입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오독-


꼬독-


꼬도독-


‘무서웠어.’


사실 지금도 무섭다. 페일이 어깨를 움츠렸다.


제가 마신 붉은 물약의 해독제를 만들기 전.


늑대의 본래 크기로는 이젤리카님의 연구실에 들어갈 수 없어 몸이 작아지는 약을 마시고, 졸음을 이겨가며 이족보행 연습을 했다. 그리고 펜을 쥐는 연습을 하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있더라.


여기까지는 ‘아,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러모로 고단한 하루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앞에 손님, 그냥 손님이 아닌 한 종족의 왕이 앉아 있다면?


“···.”


페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등골이 서늘했던 조금 전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살면서 무서웠던 순간을 줄 세워 본다면 단연코 3위 안에는 들 것이다.


페일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안의 것을 씹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반면 이젤리카는 거리낌 없이 볼 안에 든 야채를 해치웠다.


까득-


까도독-


야무지게 고개를 틀어가며 앙앙 목표물을 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게 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그를 보고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루나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심상찮았다.


‘아까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페일이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잠에서 깬 후 처음엔 상황이 파악이 안 됐고, 상황 파악이 되고 나선 경악했다.


페일은 대번에 여왕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몇 번이고 사죄했다. 이건 그가 한 종족의 여왕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이젤리카가 깨어났을 때는 희망이 조금 보이나 싶었는데.


‘그렇게 나가버리실 줄이야.’


페일은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게 정말로, 너무 힘들었다.


분명 온도조절 마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도 주변 온도가 뚝뚝 떨어졌다.


페일은 제 털 속으로 숨어들어온 정령들과 함께 오돌오돌 떨었다. 그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았으나 그 순간만큼은 한뜻이었다.


‘소리 내면 죽는다.’


총총총 나갔던 이젤리카가 텃밭에서 돌아오기까지의 15분 남짓했던 시간은 모두에게 지옥이었다.


“페일.”


“···네, 이젤리카님.”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페일의 반응이 조금 늦었다.


이젤리카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밥 다 먹고 나면 바로 지하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괜찮지?”


그때 루나가 팩 고개를 돌렸다.


“너!”


루나의 접시에 쌓인 야채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자 이젤리카가 그의 접시를 치우려 한 것이다.


“왜? 안 먹을 거 아니야?”


“먹어! 먹는다고! 먹을 거야!”


파르르 떤 그가 얼른 접시를 잡았다.


“씽.”


루나가 신경질적으로 포크를 움직였다. 정당한 심통을 부리다 밥도 못 먹게 생겨 서러웠다.


‘보니타 제자한테는 저렇게 따뜻하면서!’


이젤리카가 원래 무심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심하게 느껴지는 건 비교 대상이 강력해서였다. 그간 비교 대상들의 취급도 저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쟤만!’


우리가 피 철철 흘리고 그랬을 때도 무심했으면서!


루나의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페일에게 향했다.


그러자 슬그머니 페일의 앞을 막은 이젤리카가 발을 탁탁 두드렸다.


“안 먹을 거면 빨리 말해.”


“아, 먹는다고!”


루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이젤리카가 독립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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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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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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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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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0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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