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66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31 19:49
조회
27
추천
3
글자
9쪽

늑대와 고양이 (4)

DUMMY

‘눈.’


돔 형의 결계 안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본 눈에 온 신경이 쏠렸다.


실제로 눈이 내리는 건 결계 안이었으나, 길게 뻗은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이 배경이 되니 스노우 볼 속의 작은 인형이 된 기분이 들었다.


페일은 그 광경을 경이롭게 보았다.


‘예쁘다.’


페일은 저도 모르게 하울링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곤히 잠든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페일은 문이 닫혀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자연경관에 빠져들었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벽난로 속의 장작불을, 밖으로 나와선 이렇게 멍하니 눈이 오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페일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기분 좋아.’


숨을 쉴 때마다 순도 높은 마나가 마나 그릇을 가득 채우다 아직 덜 아문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대단해.’


마탑 안도 이렇게까지 정순한 구역은 없으리라.


페일은 무에라도 홀린 듯 일어나 발을 옮겼다.


고양이가 된 이젤리카에게는 오솔길이 되었던 꽃밭과 그가 본디 사람이었을 적 걸어 다녔던 길목 위로 늑대의 발자국이 꾹꾹 찍혔다.


페일은 작게 찍혀 있는 고양이 발자국 옆에 제 발을 꾹 눌렀다 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군병처럼 각 맞춰 정렬된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정리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스승 보니타가 떠올랐다. 그러자 들뜬 기분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킁-


묵묵히 감정을 누르며 페일은 각종 채소와 구황작물이 심어진 텃밭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니 과수원이 나왔다. 텃밭과 미니 과수원에는 따로 마법이 부여되어있는지, 계절과는 상관없이 모두 열매를 맺고 있었다.


‘아, 이래서.’


페일은 이제야 계절과 상관없이 마구 나오던 식단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얻어먹는 주제지만 사실 페일은 원색적인 식단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매일 이렇게 먹었을 고양이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다.


꼬꼬-


페일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쪽으로 발을 재개 놀렸다.


다섯 마리의 닭과 열두 마리의 병아리가 횃대에 앉아 절 보고 있었다.


‘넌 뭐여.’


순간 페일은 그 기세에 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더니 양 틈 사이에 자던 염소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들을 잡아먹으려 한 게 결코 아니었던 페일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문득 결계진이 보여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닭장과 양 우리가 다소 소란스러워졌다.


‘미안, 미안.’


페일은 속으로 그들에게 사과하며 결계에 이상이 없는지, 그 뒤는 뭐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중 결계는 추격대가 와도 쉽게 못 뚫을 만큼 견고했다.


‘이젤리카란 마녀는 생각보다 더 뛰어나네.’


이런 마녀의 이름을 왜 이제껏 스승님에게서만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돌린 페일은 다시 문 앞으로 돌아왔다.


멧돼지를 잡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


문에 등을 기댄 채 주륵 내려앉듯 엎드린 그가 얼굴을 발 위에 올렸다.


집주인 허락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죄책감을 페일은 애써 모르는 체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지겹기까지 한 불안이 머리를 들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스승님을 죽인 범인과 그 배후나 그들을 향한 복수 방법 등등.

고민한다고 해결되진 않아 정신만 좀먹는 종류의 것들 말이다.


‘복수를 한다 해도 날 도와줄 만한 사람이 없어.’


저나 스승이나 이용만 당하긴 매한가지인 삶.


도구가 사라졌다고 거기에 목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입맛이 썼다.


페일은 고개를 쭉 빼고서 한참 눈 구경을 했다.


현관까지는 온도조절 마법이 걸려 있어 따뜻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처음이네.’


고아가 된 후로 그는 일평생 치열하게 살아왔다. 한시도 쉰 적이 없었다. 잠을 잘 땐 경계를 놓을 수 없었고, 쓰러져 있을 때도 고통과 싸워왔다. 그 덕에 지금껏 살게 된 것이나, 그걸 살았다 하기엔 썩 좋은 맛은 아니다.


‘힘들었던 것 같아.’


아니.


‘힘들었어.’


페일이 포개진 앞발 위에 도로 머리를 내렸다.


‘계속 늑대로 산다면 뭘 해야 할까.’


집과 짐은 모두 서탑에 있었으니, 이 세상에 남은 건 말 그대로 몸뚱어리 하나뿐.


‘막막하네.’


페일은 마나 그릇이 다 나으면 변신 마법을 사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으로는 용병이라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후-


페일은 또 하울링을 하려 하는 본능을 다잡았다. 그는 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 진짜 늑대로 살아가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정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늑대로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늑대 무리가 날 받아줄까?’


‘이 주변에는 없어 보이는데.’


늑대는 11km 내에 있는 동족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을 때, 느껴지는 기척이 없는 걸 보면 떠난 뒤에도 한참은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이젤리카님께 폐를 끼칠 순 없으니 곧 나가야겠지.’


그런데 만약 저 고양이가 정말 이젤리카님이라면 왜 계속 고양이의 모습으로 있는 걸까?


‘내가 있어서 그런가? 나한테 본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의사소통이라도 잘 되면 이런저런 것을 물어볼 수라도 있겠는데, 도통 말이 통하질 않으니···.


페일은 답답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때까지 이곳에 있을 진 모르겠지만. 마나 그릇이 괜찮아지면 번역 마법부터 걸어야겠어.’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그만큼 생각도 많아졌다.


페일은 그런 스스로가 낯설었다.


이 또한 차차 적응해가야 했다.


페일은 제가 늑대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무사히 인간으로 돌아갔을 때 해야 하는 일을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의사소통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번역 마법을 걸면 재워주고 먹여주고 치료해주셔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부터 하고,’


머릿속으로 더듬더듬 마법 진을 그려 보던 페일의 눈꺼풀이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아직 자면 안 되는데.’


‘멧돼지가···.’


‘아니, 멧돼지 말고 스승님을···.’


‘앞으로 어디서 살지 고민···.’


‘···.’


고요한 숨소리가 눈 내리는 소리 속에 폭 파묻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페일은 제 품에 안겨있는 여자를 보고서 기겁했다.


‘누, 누구야!’


페일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일으켰다가 몸을 뒤틀었다.


낑!


찔끔 눈물이 샜다.


그런 페일의 눈동자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진 마녀가 제 팔을 벤 채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모습이 비춰들었다.


‘이젤리카?’


반사적으로 떠올린 이름에 지레 놀란 페일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동그랗게 몸을 만 고양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제가 몸을 일으켰다고 여긴 것도 착각이었다.


‘고양이.’


페일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가 제 다리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제껏 모르고 잤나 싶은 자세다.


“냐응-”


입맛을 다시며 고양이가 숨을 쉴 때마다 거친 발 볼록살이 따라서 움직였다. 그 규칙적인 박자에 따라 눈을 깜빡이던 페일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꼬록-


꼬륵-


부스스 눈을 깜빡인 늑대와 고양이가 숫접게 웃었다.




***


겨울의 작별을 알린 눈이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가던 아침.


이젤리카는 두 발로 일어서려 노력하는 늑대를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보았다.


첫날보다 현저히 두른 붕대의 면적이 줄어든 늑대는 털의 윤기도 달라졌다.


‘역시 손맛.’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린 이젤리카는 제 솜방망이를 칭찬했다.


쿵-


“낑-”


‘윽-’


“냑-”


‘힉-’


그러다 늑대가 뒤로 훅 넘어가자 이젤리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다.


‘내 등이 다 아프네.’


이젤리카는 러그에 손을 올리고서 두께를 좀 더 도톰하게 바꾸었다.


“끼웅.”


‘감사합니다.’


늑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늑대를 현관 밖에서 발견한 날.


늑대는 평소와 같으면서도 다소 의욕적인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 뒤 사흘을 꼬박 앓아누웠다.


보니타의 편지와 소포로 이미 늑대의 존재를 알고 있을 루나에게 연락을 취하니, 아마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다는 답을 받았다.


이번에도 이젤리카는 로로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젤리카는 보니타가 로로가 아닌 제게 이 제자를 부탁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서 루나에게 물었더니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해.” 하곤 끊어버렸다. 이후 늑대가 깨어나 그랬다는 것도 잊어버렸지만.


로로가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때의 이젤리카는 알지 못했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이때의- 이젤리카는 그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의말

2021년의 마지막 날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년도에는 올 한해보다 더 행복하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댓글과 후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더 힘내서 끝까지 도전해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양이가 된 마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7 4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