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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81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1.12.20 16:39
조회
124
추천
22
글자
20쪽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DUMMY

[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


투욱-

지붕에 쌓여있던 눈이 떨어지는 소리에 이젤리카의 의식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아침 6시.


실눈만 떠 시간을 확인한 이젤리카가 졸린 눈을 베개에 비비며 꾸물꾸물 일으킨 몸을 침대 헤드에 기댔다.


모처럼 날이 맑아 기분 좋은 아침이다.


이젤리카는 커튼 사이로 비쳐드는 햇볕에 몸을 내맡겼다.


따스함에 노곤하게 녹은 몸이 침대 헤드에 덧대어진 쿠션 속에 폭 파묻혔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올라 이젤리카의 집을 따끈따끈하게 데우고 있었다.


“무웅-”


이젤리카는 이젠 조금 따갑다고 여겨지는 햇빛의 피해 몸을 죽 늘리고서 이불을 들췄다.


그리고 다리를 내리려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잠옷이 왜 이렇게 커졌지?’


잠옷이 흘러내리다시피 하다못해 이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 졸음에 겨운 눈을 껌뻑이며 이젤리카는 조금 전 이불이라 생각하고 들쳤던 잠옷과 제 손발을 살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건 털 달린 사족보행 동물의 앞발과 뒷발이다.


‘···젤리?’


이젤리카는 손바닥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 연분홍빛의 발 볼록살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동그랗게 모인 손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꿈인가.’


반쯤 현실을 부정한 이젤리카가 한쪽 손으로 다른 쪽 손의 발 볼록살을 꾹 누른 순간.


엉치와 꼬리뼈 쪽에서부터 찌잉-하고 머리끝까지 전기가 통하더니 무언가가 바짝 솟아올랐다.


잠이 확 달아났다.


“냥-?!”


지레 놀란 입에서 튀어 나간 울음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이젤리카는 양손으로 제 입을 텁 막았다가 조심스레 한 손을 등 뒤로 돌렸다.


등을 더듬어가며 내려간 꼬리뼈는 더는 흔적기관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바짝 솟았던 무언가는 털이 풍성한 꼬리였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이젤리카는 허둥지둥 잠옷 속에서 빠져나와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달라진 시야와 무게 중심 등등으로 불안정한 착지였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탄성 있는 몸이 제멋대로 늘어나는 형상에 퍽 당황했다.


그 상태로 다다른 거울에 비친 건 언제나와 같은 제 모습이 아니다.


부스스하지만 보드라워 보이는 오렌지색의 털.


동그랗게 보이지만 털이 없다면 조금 살아있는 턱선이 도드라질 쐐기형 얼굴.


성인 여성의 주먹만 한 얼굴에 자리한 옥빛과 쪽빛의 오드아이와 젖먹이 아이의 것처럼 동그스름한 볼, 그 주위를 둘러싼 수염.


콕 찔러보고 싶은 볼록한 배와 탐스러운 꼬리.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장모종 고양이 한 마리가 멍청한 표정으로 거울을 보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하긴 한데 거울에 비치는 게 인간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젤리카는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만졌다.


거울 속의 저도 마찬가지였다.


“냐냔-”

‘내가 고양이가 된 거야?’


이젤리카는 답지않게 입을 벌린 채로 거울에 바짝 다가섰다.


다리와 허리에 조금 힘을 주자 착- 하고 거울에 기대서게 됐다.


이젤리카는 그대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더듬거리다 발을 내렸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길게 자란 털을 만져보았다.


‘폭신폭신해-’


이런 모습이어서 그런지 볼록 나온 뱃살도 귀여워 보인다.


‘응, 소중하고 귀여워.’


상황에 맞지 않게 기분이 좋아진 이젤리카는 앞발로 챡- 수염 부근의 볼을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생각보다 두 발로 서 있는 게 안정감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네 발을 바닥에 붙이고 있는 게 더 편하긴 하지만.


‘의외네.’


이젤리카는 그대로 엉덩이를 내렸다.


쭉 뻗은 다리가 짱달막하니 앙증맞다.


그 상태로 이젤리카는 제 다리를 꼼지락 움직여보다 진즉 확인해봐야 했던 것을 살펴보았다.


가령 마나 회로는 그대로인지, 마법을 쓸 수는 있는지 같은.


“냥-”

‘얍-’


솜방망이 같은 손끝에서 삐융삐융 터져 나오는 마법은 제3자의 눈으로 보았을 땐 신비로웠다.


그러나 이젤리카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또 연습해야 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마나 회로와는 달리, 마법을 쓸 때 사용되는 양 조절이 어려웠다.


‘그럼 내 결계는?!’


실망스럽게 솜방망이 두 개를 바라보던 이젤리카가 퍼뜩 고개를 들고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사족보행이 서툰 탓에 여기저기 넘어지고 부딪힌 곳이 아팠다.


‘우리 집 크네.’

사람이었을 땐 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다.


이젤리카는 현관 러그에 슬며시 발을 올렸다.


딸랑-


풍경이 울리며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이미 집에 녹아든 마법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모양이다.


문틈을 비집고 나선 이젤리카의 시야에 제 머리만 한 꽃들이 비춰들었다.


인간의 몸이었을 땐 과장 조금 섞어 제 주먹과 비등한 크기였던 꽃이다.


‘이렇게 봐도 예쁘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다면 느긋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바람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그것들을 헤치며 발을 옮길 때마다 흙바닥에 고양이 발자국이 늘어났다.


이젤리카는 집과 텃밭을 지나 닭장과 염소와 양을 가둬둔 울타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심어둔 마법진을 확인했다.


돔 형태의 결계는 잘못된 곳이 없었다.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냐웅-”


이젤리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녹아내리듯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젤리카는 제 시야보다 훨씬 높아진 가축들을 올려다보았다.


마나 회로에 이상도 없고, 마법도 잘 써지고, 결계도 그대로인데.


왜 갑자기 고양이가 된 걸까?


혹시 저주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제 몸과 집에 새로 걸린 마법이 없어 배제됐다.


‘뭘 잘못 먹었나?’


이젤리카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가다 길게 하품을 했다.


‘어쩌면 이건 꿈일지도 몰라.’


내가 고양이라니.


하하하-

“냥냥냥-”


하아-

“냐하-”


한바탕 웃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이젤리카는 가볍게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제 몸에서 흘러내렸던 잠옷을 두른 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근포근한 햇살 냄새가 뼛속까지 나른하게 만들었다.


‘하이고 좋다 좋아.’


이젤리카는 이불과 잠옷에 코 주변을 마음껏 비볐다.


그러다 몸이 발랑 뒤집혀 바동바동거리다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건 상정 외의 일이다.


‘으헉!’


이젤리카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이불을 야무지게 찍고 있는 발톱이 아니었다면 아주 크게 다칠 뻔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침대를 오른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조심해야지.’


이젤리카는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가 몸을 옆으로 뉘었다.


시야각이 이전보다 넓어진 대신 전체적인 시야가 흐릿했다.


예전에 어느 수인한테 고양이가 보는 세상이 이렇다는 걸 들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이젤리카는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고양이라니.’


아무래도 요즘 텃밭 가느라 너무 피곤했나 봐.


이젤리카가 배시시 웃었다.


호미 1호와 삽 1호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생각이다.


이젤리카의 집안일과 텃밭 경작 등의 일은 모두 마법 도구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이젤리카가 하는 일이라고는 텃밭 옆에 앉아 길게 하품을 하고서 울타리에 기대 쿨쿨 잠을 자는 것밖에 없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돌아가 있겠지.’

이젤리카는 네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코코네네 잠에 빠져들었다.


“냥?!”


그러나 그가 잠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여전히 고양이었고, 그건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거울 앞에서 양 뺨을 감싼 이젤리카는 그제야 고양이가 된 현실을 받아들였다.


냐흥-



[ 1.5. 마녀의 일상 ]



이튿날 아침 11시.


이불 속에서 느릿하게 몸을 비빈 이젤리카가 눈을 떴다.


곧장 손을 치켜든 그의 눈에 양말이라도 신은 것처럼 –손목이라 해야 할지 발목이라 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까지만- 새하얀 부위가 비춰들었다.


‘응, 오늘도 고양이.’


이젤리카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가늘어진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냐응-”

‘아이구-’


이젤리카는 한동안 기지개를 켠 자세 그대로 눈을 끔뻑였다.


뱃속을 울리는 허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다시 잠이 들었을 터이다.


꼬로록-


꼬로로록-


사실 이젤리카는 그 신호를 무시했다.


하지만 인간이었을 때와는 달리, 이러다 죽겠는데?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냐하-


역시나.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이젤리카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샜다.


‘어쩔 수 없지.’


밍기적, 밍기적.


겨우 몸을 일으킨 이젤리카의 털이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모처럼 날이 좋으니 밖에 나가서 먹어볼까.’


이젤리카는 네 다리와 몸을 쭉쭉 편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탁-


네 발이 가볍게 바닥을 짚었다.


움직여서 그런지 더 배가 고픈 기분이다.


정오를 넘긴 시각.


침실을 나선 이젤리카가 자연스럽게 식탁 의자로 발을 옮겼다.


막상 거실로 나오니 문까지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고 험했다.


‘우리 집 넓었네.’


그렇다고 텃밭까지 순간이동을 하자니 마나그릇에 차곡차곡 모아놨던 마나가 아까웠다.


‘내 마력은 소중해-’


그가 크기를 줄인 냅킨을 목에 묶었다.


기다렸다는 듯 커트러리와 그릇이 차례로 세팅되었다.


‘오늘은 따끈따끈한 거.’


톡톡-


이젤리카가 식탁을 두드리자 그릇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와 통통한 소세지 두 개, 스크램블 에그가 생겨났다.


‘맛있겠다.’


쵸릅 침을 삼킨 이젤리카의 오드 아이에 이채가 돌았다.


“냥냥-”

‘잘 먹겠습니다.’


혀로 날름 코를 닦아낸 이젤리카가 욤뇸뇸 소세지를 야무지게 썰어 먹었다.

이어 토마토와 설탕, 약간의 소금을 넣고 졸여낸 소스에 버무려진 스크램블 에그에 손을 댄 이젤리카의 입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그러기 무섭게 달려든 냅킨이 이젤리카의 입가를 박박 닦았다.


“음풋-”

냐응-


냅킨을 향해 아르릉 거린 이젤리카가 다시 소세지를 썰어 토마토 소스에 콕 찍었다.


그러길 몇 번.


우유까지 해치운 이젤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난 시각 1시.


이따금 날이 좋으면 호숫가로 낚시 겸 산책을 가거나 숲에 설치해둔 덫에 걸린 것들을 잡아오곤 한다.


그게 오늘이 아닐 뿐.


‘햐- 배부르다.’


이젤리카는 알아서 치우기 시작한 그릇들 사이를 지나쳐 거실에 놓인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 밑에 놓인 흔들의자 위로 포근한 햇살이 드리웠다.


‘으잉 좋아라.’


이젤리카는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살며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녹아내리듯 허물어진 몸이 의자 쿠션에 찍-하고 퍼졌다.


고롱- 고롱- 그르릉-


고양이 골골송을 부르며 꿀보다도 더 단 낮잠에 빠져든 그의 위로 노란 담요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후, 잠에서 깬 이젤리카는 한참 의자에서 뒹굴거리다 간식을 먹고, 그루밍을 하고 또 잤다.


한 번은 의자에서, 한 번은 러그에서, 또 한 번은 소파에서.


“냐흥-”


그 뒤 일어나 저녁을 먹고, 산책 겸 결계를 점검하러 문밖을 나섰다.


저녁 6시 45분.


‘오늘은 하지 말까.’


‘들어갈까.’


‘아, 도대체 과거의 나는 왜 자동 점검 마법은 안 걸어놨던 거야.’


이젤리카는 몇 번이고 발을 내딛다 멈추었다.


‘아, 가만히 서 있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마법을 설치해놨어야지. 길이 알아서 움직이게 하거나.’


시작이 반이라는데, 눈앞에 보이는 갈 길만 구만리다 아주.


‘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오늘 하루 빼먹는다고 별일이 생기겠지.’


아무 생각을 하며 곳곳에 설치된 마법 등과 구슬에서 은은하게 나는 빛을 따라 어둠을 헤치는 발걸음이 위풍당당하다.


‘히야- 이제 또 언제 돌아가.


과거의 나는 왜 순간이동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


이젤리카는 양 틈에서 자고 있는 제 패밀리어를 부러운 눈으로 보고서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그래도 과거의 제가 한 가지 잘한 점이 있다면,


‘연못 안 만들길 정말 다행이다.’


정원에 연못까지 만들지는 않았다는 점.


‘하이구 힘들다.’


냐흥-


이젤리카는 닭장과 양 우리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숨을 돌렸다.


‘진짜 왜 단거리 순간이동 뿅뿅 못하는 건데.’


인간이었을 때도 이렇게 고단하게 다녔나 고민한 이젤리카가 애착 담요를 불렀다.


빠르게 날아온 노란 담요가 이젤리카의 몸을 감싸려 했다.


‘아니야, 기다려.’


이젤리카가 발 볼록살을 내보이곤 근엄하게 담요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 담요를 허공으로 띄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보호 마법까지 걸고 나니 마녀의 빗자루 못지않은 이동 수단이 되었다.


‘좋아.’

이젤리카가 비장하게 솜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냥냥!”

‘자, 가라!’


이것이 바로 흔들림 없는 편안함.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손발이 덜 고생해.’


이젤리카는 이때까지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던 과거의 저를 나무라며 눈을 감았다.


‘우리 이대로 욕실까지 가는 거야.’


그의 의지를 받든 담요는 이젤리카의 평소 발걸음 속도에 맞춰 집으로 들어섰다.


욕실에는 이젤리카가 며칠 전 준비해둔 고양이 사이즈의 욕조에 거품이 한가득 풀려 있었다.


룰루랄라 엉덩이 춤을 추는 이젤리카의 머리 위로 양머리 수건이 뿅 생겨났다.


이젤리카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욕조에 발을 디디곤 몸을 푹 담갔다.


거품 사이사이로 복슬거리는 모양의 양 인형이 둥둥 떠다녔다.


미에-


이젤리카가 솜방망이로 건드릴 때마다 김빠지는 울음소리가 났다.


이젤리카는 어느새 다가와 주스를 바치는 쟁반의 수고를 치하하며 욕조 벽에 등을 기댔다.


꼴깍- 꼴깍-


캬하-


‘이게 사는 거지.’


하루의 마지막을 과즙 100%의 오렌지 주스 한 잔과 함께 거품이 가득한 욕조 속에서 마무리 짓는 것.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으리라고 이젤리카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의 피로를 푼 이젤리카가 털을 말끔히 말리고, 응접실에 앉아 별을 구경하다 침실에 들어섰다.


‘아! 오늘도 행복했다-’

밤 10시.

고롱- 고로롱-

이젤리카는 온몸을 울리는 골골송을 부르며 곤히 잠들었다.


고양이가 되기 전이나 후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 1.8. 마녀의 꼼수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젤리카는 아주 오래전, 마탑 교육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처박아두고서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은 책더미를 휙휙 뒤적였다.


변신 마법, 약초학, 마법 물약, 저주와 해주.


고양이가 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을 법한 내용이 주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젤리카는 그 스스로 고양이로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지하연구실에 발을 들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친구들이 불시에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친구 중에는 정령들을 이용해서 그곳에 있었던 일을 기억으로 읽어내는 이가 있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평소처럼 지냈던 제 모습을 정령들이 곧이곧대로 일러바치면(?) 아주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고양이가 됐는데 왜 연락을 안 했냐는 둥, 돌아갈 노력은 왜 안 했냐는 둥, 왜 그렇게 안일하냐는 둥. 솔직하게 ‘귀찮아서 그랬다.’고 대답했다간 난리 날 종류의 질문 말이다.


‘나는 괜찮은데.’

딱히 불편한 점도 없고.


이젤리카가 부- 뺨을 부풀렸다.


이젤리카는 이왕 고양이가 되어 버린 것, 긍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행복 회로를 돌린지 오래였다.


‘난 집도 있고, 말 잘 듣는 마법 도구들이 있어.’


이젤리카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의 자신은 뭘 해도 귀엽지 않은가!


‘이 정도면 묘생도 괜찮지.’


바닥에 굴러 간지러운 등을 긁으며 이젤리카는 앞발로 눈 앞머리를 비볐다.


오랜 시간 혼자이다시피 했던 그인지라 이전과 달라진 건 그다지 없었다. 그저 시야가 많이 낮아졌고, 작아진 몸으로 제 집과 마법을 사용하는 데 약간의 적응이 필요할 뿐이었다.


이젤리카는 네 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길게 늘어난 허리가 낭창하게 휘어졌다.


쾌적한 환경을 누리며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는 환경.


그 외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 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묘생은 그다지 나쁠 게 없었다.


이젤리카는 이 생각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척을 했다.


‘아주 귀찮지만.’


귀찮아서 그대로 있었던 게 아니라 열심히 인간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는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불쌍한 나!


‘급하지도 않은 문제인 거 같은데.’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건, 너희에게 걱정 근심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내가 먼저 시도를 해보고 모두 실패했을 때 연락을 하려고 한 것이다. 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루나는 다 좋은데 잔소리가 너무 심해.’

독심술은 못 해서 다행이지.


‘그것까지 할 줄 알면 이런 꼼수도 안 통했을 거야.’


이젤리카는 꽁알꿍얼 정령들도 듣지 못하게 웅얼거리며 책을 들췄다. 듬성듬성 책의 머리채가 뜯겨 있었다.


‘아, 여기 찢은 거 어디다 뒀더라.’


실용 마법과 관련 있는 부분이어서 잘 놔둔다고 어디에 잘 모셔둔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어디’가 어디였더라.


‘여기였나?’


아님··· 여기?


끙- 앓는 소릴 낸 이젤리카가 속 편하게 포기했다.


‘언젠가 나오겠지.’


그는 정신 건강에 나쁠 만한 것은 하지 않는 주의다.


‘그래도 찾는 척을 해야 믿겠지?’


심각한 상황이라도 닥친 듯 미간을 구긴 그가 아주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 척을 했다.


“냐항-”이젤리카의 입에서 한숨이 폭 나왔다.


벌써부터 귀찮아.


이 짓을 며칠은 더 반복해야 한다니.


‘복제 고양이를 하나 만들어볼까.’


아니면 패밀리어를 고양이로 둔갑시키는 거야.


그의 친우들이 이젤리카의 생각을 알았다면 대번에 ‘그 정성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찾았으면 진즉 인간이 됐겠다!’ 타박했을 터.


‘아,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


이젤리카는 하휴하휴 한숨을 쉬어대며 그럴싸한 것들을 추려냈다.


‘수인족의 인간화.’

‘드래곤의 폴리모프.’

‘동물로의 변신.’

‘변신을 푸는 법.’

‘변신약과 해독.’


마탑 교육원에서 지내는 5년간 배웠던 게 이렇게 많았는데 왜 기억나는 건 없을까?


고개를 갸울인 이젤리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있어 보이는 제목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오늘은 좀 쉴까?’


그래.


너무 무리해도 안 좋아.


이젤리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이마의 땀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어휴 무리했어.’


정말이지 정령들은 왜 기억 하나 간수를 못 해서 반인반요정을 이리 괴롭게 하나.


씁-


지하연구실에서 벗어난 이젤리카의 오드 아이가 도로록 굴러갔다.


“냥냥!”

‘너희 기억 간수 잘해라. 어?’


괜히 호통을 친 이젤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정령들만 속일 수 있으면 낮잠을 자면서 알리바이도 같이 만들 수 있을 텐데.


‘정령 눈 피해 자는 방법. 이런 건 없나.’


진지하게 주위를 살펴본 이젤리카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기를 헤치며 거실로 나갔다.


계속 의식해서일까?


그럴 리 없는데도 어디선가 정말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새겠지.’


이젤리카는 곧 신경을 껐다.


***


이날 이후 이젤리카는 성실히 지하실을 드나들었다. 아예 지하실에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이젤리카는 책을 읽는 척하고, 고민하는 척하고.


수정구 앞에서 알짱, 알짱-거려서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 그것도 포기했다.


‘이 정도 했으면 할 도리 한 거지, 뭐.’


어휴, 장하다 나 자신.


바닥에 찍 퍼진 이젤리카가 천장을 향해 배를 보이고 누웠다.


매일 누워있지만 매일 새로워.


‘짜릿해.’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감은 이젤리카의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쩌면 갑자기 고양이가 됐으니 또 언젠가 알아서 돌아가겠지.’


고양이가 된 지 만 열나흘.


마녀는 이 상황이 퍽 만족스러웠다.


작가의말

잘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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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2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6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5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4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6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5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6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40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2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6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5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8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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