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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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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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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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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마녀, 고심하다 (3)

DUMMY

끼이익-


끼익-


식빵 자세의 이젤리카를 태운 흔들의자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버걱댔다.


‘하이참,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보겠다는데.’


게슴츠레 눈을 뜬 이젤리카가 찬장을 향해 턱짓했다.


“이쪽으로 와.”


매끄럽게 열린 찬장 틈을 비집고 날아온 기름병이 이음새에 대충 기름을 뿌리고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페일이 제게 한 말 인 줄 알고 다리를 움찔거린 건 그 만이 아는 비밀이다.


페일은 눈에 얼씬 보이는 것에서 제 앞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옆구리가 허했다. 그의 위를 소임을 다한 기름병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상해.’


이젤리카는 눈살을 찌그러트렸다. 그의 밑에는 페일이 1차적으로 분류를 끝낸 명단이 펼쳐져 있었다.


Fail Merídĭes


이젤리카는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신경 줄을 깔짝이는 철자를 눈에 담았다.


친부모가 지어준 이름인가. 그래서 못 바꿔 준 건가?


라는 생각은 상정 외였다.


이젤리카는 확신했다.


‘이건 실험체한테 주는 거야.’


실패한 실험체한테.


가끔 정신이 훼까닥 한 포션상은 그가 만든 포션에 이상한 짓을 하곤 한다.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포션을 마신 자의 몸에 저를 상징하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화가가 제 그림에 싸인이나 인장을 남기듯.


이젤리카는 페일의 주변에서 얼쩡대는 포션 솥을 식은 눈으로 보았다.


페일의 마나 회로는 그런 흔적으로 가득했다. 오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거기도 정상은 아닐 게 분명하다.


여기저기 찍히고 파인 정신이상자의 싸인이라니.


‘마음에 안 들어.’


불행 중 다행은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 자는 아니었는지, 페일의 몸에 남은 것은 시간을 들이면 없앨 순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 쏟을 시간이 없다는 게 천추의 한이다.


‘보나 마나 불법이었겠지.’


페일이 지나온 길이 예상된 이젤리카의 볼이 퉁퉁 불었다.


탁탁-


이젤리카의 꼬리가 팔걸이를 때렸다.


미끈 매끈하게 흔들리는 의자의 안락함은 그의 기분을 풀어주지 못했다.


그의 눈치를 보며 쫄래쫄래 날아온 정령들이 페일이 찍어둔 도장 옆에 루나가 시킨 대로 표식을 찍었다.


이젤리카는 무의식중에 그 표식을 따라가다 보니타의 이름에서 한 번, 페일의 이름에서 또 한 번 멈췄다


‘그러고 보니 전에 보니타가 포션상에서 애를 구했다고 했던 것도 같고.’


그 애가 저 앤가.


이젤리카는 루나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페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페일이 고개를 돌렸다.


또롱또롱한 오드아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루나와의 대화 내용이 궁금해서 그렇다고 생각한 페일이 말했다.


“서탑에서 여기를 추적할 가능성에 대해 물어 보셔서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궁금한 게 아니었던 이젤리카가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루나의 의문은 보니타가 이제까지 보냈던, 혹은 보내는 문서나 물품들의 운송방법과 운송처의 발각 위험성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이젤리카에게는 스크롤로 변하는 전서구를 보내왔다고 하니, 마나추적기에 걸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여기가 발각되면 수색대가 먼저 움직일 거야.’


그다음은 추격대의 선제 공격이다.


페일이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다 머리를 감쌌다.


퍽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젤리카는 담담하다 못해 당당한 상태였다.


‘차라리 그것들이 쳐들어오면 좋겠다.’


페일이 알았다면 까무러쳤을 생각이다.


이젤리카는 심드렁하게 턱을 괴었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살짝 귀찮으니까 여기까지 와주면 편하고 좋을 텐데.


오히려 정당방위도 되고.


‘어, 진짜 좋은 생각인 거 같은데.’


여기에 데시데리움이 있다는 걸 살짝만 아주 사알짝만 퍼트리면.


“그 전에 나한테 맞겠지.”


꽁-


“냐하!”


가볍게 꿀밤을 먹인 루나가 말했다.


“여기가 공격당하면 동탑(동쪽의 마탑)에서 가만히 있겠어?”


그랬다간 아주 피 말리는 전쟁이 시작될 거다.


“이제 겨우 좀 조용해졌나 싶은데.”


생각도 하기 싫다며 루나가 몸을 떨었다. 서탑에 위선자들이 있다면 동탑엔 또라이들이 있다. 그것도 루나를 아주 사랑하는 스토커를 중심으로 한.


처음에 고양이가 되었을 때, 루나에게 가장 먼저 알리지 않은 것도 다 저 동탑 스토커와 그 밑의 수하들 때문이다.


“확 말해버릴까 보다.”


머리를 감싼 이젤리카가 루나를 노려보곤 아픈 부위를 문질렀다.


“그러기만 해. 지금 불러봤자 너나 나나 손해야.”


빨리 그 고양이 상태에서 벗어나던지. 하고 얄밉게 입꼬리를 올린 루나가 의자에 깔린 명단을 뺐다.


한눈에 보이도록 줄어든 명단이 루나의 손에 들렸다. 친절하게도 얼굴 형상까지 떠 있었다. 덕분에 정령들에게 읽어낸 기억과 매치시키는 게 수월했다.


꽃 자체에도 정령이 깃들어있지만,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력도 많아서인지 꽃에 심긴 기억은 매우 방대했다. 그만큼 걸러내야 하는 것도 많았지만 나름 유익했다.


문제는 그 속에 담겨 있던 무언가인데.


찜찜함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편 루나가 턱을 괴었다.


‘확실히 동쪽 또라이들한테 맡기면 일이 쉬워지긴 하는데.’


그걸 빌미로 얼마나 또 절 귀찮게 할지를 떠올리니 그럴 마음이 사그라드는 게 또 다른 문제다.


‘이 한 몸 바쳐서 일을 빨리 끝내느냐, 시간이 좀 걸려도 잡음 없이 끝내느냐군.’


요정의 숲의 안위와 관계있는 일이라면 대번에 전자를 골랐을 루나가 끙- 앓는 소릴 냈다.


그때, 이젤리카가 루나를 불렀다.


“루나.”


“왜.”


“보니타는 착하지?”


루나가 이젤리카를 뜬눈으로 보았다.


자꾸 뜬금없는 질문을 하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이젤리카가 낯설게 느껴졌다.


확실히 이젤리카는 고양이가 되기 이전에 하지 않았던 행동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착하지.”


이젤리카의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해준 루나의 금안에 날이 섰다.


‘어쩌면 리카가 이상해진 게 저 인간 때문일지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루나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건 알겠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가.’


이젤리카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 그랬지, 하곤 입을 다물었다. 그가 원래 하려던 말을 삼킨 덕분에 루나는 어쩌면 이번 일을 더 빨리 해결 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이젤리카는 제 의문을 조용히 마음 한 구석에 두었다.




착한 보니타.


그런데 보니타는 왜 애 이름을 그대로 뒀을까?


Fail.


사람은 물론이고 생명체에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이라면- 붙일 만한 이름은 아니었다.




***


이젤리카의 고민은 보니타의 인성이나 자신을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으냥-


땡깡 부리듯 발라당 몸을 뒤집은 이젤리카가 네 다리로 허공을 찼다.


뇌를 너무 썼더니 머리가 다 아팠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 위로 주인의 이상을 느낀 노란 담요가 덮였다. 이젤리카는 담요에 설정된 온도를 조금 높였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너무 오랜 만에 먹은 고기가 탈을 냈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배가 꾸룩거리는 것도 같고.’


끄응-


‘아파.’


이젤리카가 앓는 소릴 내곤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하지만 곧 몸을 풀었다. 동그랗게 말았더니 더 아픈 기분이 들어서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죽는다더니. 요 근래 너무 열심히 살아서 이러나.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의자에 몸을 비빈 이젤리카가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으며 루나를 불렀다.


“루나.”


그런 이젤리카를 본 루나가 성가신 티를 냈다.


“왜 또 왜.”


“나 이제 죽으려나 봐.”


“···.”


‘쟤는 도대체···.’


어휴-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었다.


“루···나.”


“지금 장난칠 때 아니야, 리카. 이거 끝나면 놀아줄 테니까 기다려.”


루나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젤리카는 진심이었다.


이젠 숨도 차올랐다.


니양-


‘진짜 머리가, 아니 온 천지가 너무 아픈데.’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숨을 몰아쉬며 이젤리카는 있는 힘을 다해 결계를 풀었다. 그러자 이젤리카의 집을 감싼 이중 결계 중 한 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체한 것 같았던 느낌이 확 사라지더니, 다시 괜찮아지는 듯했다.


아니.


큰 착각이었다.


그 순간.


어디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산발적인 고통이 뱃속을 진탕으로 만들었다.


“냑-!”


이젤리카의 입에서 짧지만 넘겨 짚을 수 없는 비명이 터졌다.


‘헉-’


덜컥 숨을 들이켠 이젤리카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 이게 무슨···리카?”


결계에 이상을 느낀 루나가 짜증스럽게 이젤리카를 돌아보았다가 허물어지듯 그에게로 달려왔다.


“리카!”


으아오옹-


아우-


가쁜 숨을 내쉰 이젤리카의 몸이 축 늘어졌다. 허공을 향하던 네 다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이젤리카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리카! 리카 정신 차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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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2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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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6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3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15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1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6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8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8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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