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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고양이가 된 마녀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김딸
작품등록일 :
2021.12.15 20:48
최근연재일 :
2024.01.05 10:2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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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5
추천수 :
132
글자수 :
142,512

작성
22.01.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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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늑대와 고양이 (8)

DUMMY

와르르-


페일은 얼른 중간에 발을 놓았다. 그 덕에 전부 무너지진 않았지만 제법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페일과 마법 도구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이젤리카의 침실 방문으로 향했다.


‘깨, 깨셨나?’


‘아니야. 안 깬 거 같아.’


그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기척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축 늘어트린 어깨를 펴며 페일은 마법 도구들과 함께 쓰러진 당근무더기를 도마 위로 올렸다.


그중 하나를 흐르는 물에 집어넣었다가 뺀 그가 칼의 손잡이를 입으로 물었다.


‘다시.’


비장한 분위기 속.


탕-


타당-


몇 번의 헛손질 끝에 잘린 당근은 못난이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런.’


페일은 이런 일을 쉽게 쉽게 해치운 고양이에 대한 존경심을 한층 더 키워나가며 조리도구를 쥐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은 이젤리카가 잠에서 깰 때까지 이어졌다.


서걱-




오전 9시.


“야앙-”


‘좋은 아침-’


[ 아침 좋다! ]


“워엉-”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비틀거리며 나오다 빠릿하게 눈을 뜬 이젤리카가 챱챱- 볼을 때렸다.


‘주인!’


‘우리 말 좀 들어봐 주인!’


그런 이젤리카를 향해 마법 도구들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페일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어젯밤의 일을 설명했으나, 이젤리카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원래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분하다!’


‘너희 손해지 우리 손해냐!’


마법 도구들은 씩씩거리며 바닥을 쿵쿵거렸다. 그러다 이젤리카의 시선이 닿을 때쯤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쉿! 쉿!’


“···.”


언제 그토록 이젤리카의 관심을 원했냐 싶을 만큼 도구들은 몸을 사렸다.


그들은 평소 말랑말랑하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의 주인이 무언가에 진심이 되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봐라.


오늘도 -그놈의 손맛이 뭐라고- 다 큰 늑대한테 샐러드를 한 대야나 퍼먹이는 거.


그걸 또 감사하다며 먹고 있는 늑대나, 주는 고양이나.


‘우리가 지금 누굴 걱정한다고.’


졸지에 실업자가 된 마법 그릇을 토닥여 준 마법 도구들이 혀를 끌끌 차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러다 성격 더러운 드래곤한테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그들은 매일 찾아와선 이젤리카에게 인사 한번 못 하고 돌아가는 드래곤 로로를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아 그 드래곤 눈빛 살벌하던데.’


집 안에도 자동 영상구를 설치해놨다면 똑똑히 찍혔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쉽다.


‘있었으면 그 영상구를 조작했을걸?’


‘맞네. 그러고도 남네.’


그 드래곤은 이젤리카 앞에서만 허허실실이니.


‘이러다 진짜 큰일나는 거 아니겠지?’


겁이 많은 빗자루가 몸을 떨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계속 그렇게 먼지 털면 주인이 먼저 널 털어버릴 거 같은데.’


‘힉-’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마법 도구들이 다시 일하는 동안,


아삭-


와삭-


오늘도 조용한 식탁 위에선 물 많은 채소가 씹히는 소리만이 아침의 정적을 깨웠다.


음메-


메에에에-


양의 소리와 비슷하나 그보다 톤이 낮고 소리가 ‘메’에 가까운 울음소리의 주인인 염소가 문을 밀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메에에-


페일은 이질적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끔뻑였다.


고양이만 한 크기에 아직 뿔이 나지 않은 역삼각형의 머리.


연분홍빛의 길쭉한 귀밑 살과 코, 온몸을 덮고 있는 보송보송한 흰 털.


페일은 터벅터벅 걸어와 이젤리카에게 머리를 들이미는 아기 염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페일의 앞으로 종이 한 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 위에 적힌 내용은 명백했다.


[ 내 패밀리어 풀루스! ]


내가 마녀 이젤리카고, 얘가 바로 내 패밀리어라고.


[ 불러. ‘풀’이라고. 애칭. ]


그간 이 고양이가 이젤리카님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와서인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


땡그랑-


“냐아?!”


‘뭐야, 왜, 왜 그래?!’


정말로.


처참하게 엎어진 그릇을 코와 발을 사용해 겨우 제자리로 돌린 페일이 입에 남은 것을 삼키고서 대접에 든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왠지 목이 탔다.


이젤리카는 그 앞으로 우유 한 대접을 더 따라주었다.


‘메에-’


그리곤 이젠 우는 것도 귀찮은 지 우는 척만 하는 아기 염소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꽁 때렸다.


패밀리어 풀루스(pūllus).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우리 속 양이 우리 밖과 결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종의 목양(牧羊)견 역할이다.


풀루스의 애칭은 ‘플’.


(평소 이젤리카가 풀루스라고 부르기 귀찮아서 풀이라고만 불렀다가 패밀리어를 바보(fool)라고 부르면 어떡하냐며 친우들에게 타박받고 ‘플’로 바꾼 비화가 있다.)


나태하고 게으른 아기 염소는 보통 양 우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와 ‘일을 하지 않은 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했고, 그중 최대한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쪽을 택했다.


뒷수습이 더 어려울 -귀찮아질- 것 같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 그 자체로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이런 풀루스의 행태를 본 많은 이들은 그가 갱생 불가의 패밀리어라고 입 모아 말했다.


(이젤리카의 명령은 잘 따르는데 평상시 모습이 무슨 상관이냐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런 풀루스가 가끔, 아주 가끔 이젤리카의 집을 나설 때가 있는데, 페일이 이젤리카의 집으로 오던 당시가 바로 그 시기였다.


마녀의 달이 뜨는 밤을 중심으로 최소 7일에서 최장 30일간 개최되는 요정족의 달맞이꽃 축제.


풀루스는 종종 반인반요정인 이젤리카 대신 그 축제에 참여했다.


이전 날 페일이 낚시를 하러 가다 모르는 척 지나쳤던 요정의 숲이 바로 그곳이다.


풀루스는 그곳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겼다.


요정들은 아기 염소 풀루스를 예뻐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풀루스는 등 따숩고 폭신한 이불 속에서 한껏 밍기적거리며 요정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전과 다른 점은 축제가 끝난 후에도 이젤리카의 통신석 역할을 하며 한동안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 티타임에 도착할 예정 ]


풀루스는 요정족의 여왕 루나의 전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풀썩-


페일은 이젤리카에게 무언가를 내밀더니 쓰러지는 풀루스를 보고 놀란 눈을 끔뻑였다.


‘엇!’


바닥에 떨어진 꽃 모양의 당근을 문 풀루스가 나태하게 바닥으로 녹아들었다.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페일은 그리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


사아아-


풀루스는 가물가물한 눈으로 씹는 것도 귀찮은지 입을 움직이는 둥 마는 둥 했다.


‘···대단하다.’


누워있다 못해 녹아 있는 염소의 먹방은 성격이 급하단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페일이 답답해할 만큼 여유가 넘쳐흘렀다.


페일은 풀루스가 양배추가 떨어져 있는 곳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저게 지금 멀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염소와 양배추의 거리는 고작 반의 반의반 뼘.


페일은 왜 이제껏 이젤리카의 패밀리어를 볼 수 없었는지 이해했다. 동시에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어졌다.


그 의문은 이젤리카에게도 향했다.


‘저 모습이 편해서 고양이로 계신 건가?’


이젤리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사정이었다.


페일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이젤리카를 보았다.


그때 제 패밀리어에게 양배추를 밀어준 –그 모습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이젤리카가 그를 올려다보더니 상처가 없는 부분을 골라 도닥였다.


[ 오늘 온다 손님 ]


[ 여왕 요정족의 ]


이젤리카는 그의 앞에 새로운 오늘 일정을 알려주며 웃었다.


‘이제 곧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저보다 이런저런 지식도 많고 조예도 깊은 루나이니 해결책도 빨리 찾을 수 있으리라고 이젤리카는 생각했다.


‘겸사겸사 나도 같이 돌려주면 좋겠다.’


잔소리 듣는 건 싫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종이 위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 제자는 곧 돌아간다 인간으로 ]


[ 해결한다 그 여왕이 ]


“냥냥냥- 냥냐-”


‘잘됐다, 잘 됐어-’


이젤리카는 인간으로 돌아간 늑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리를 치웠다. 그러다 늑대가 인간으로 돌아간 이후의 일을 떠올리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얘는 이제 보니타에게 복수하러 가겠지?’


이젤리카는 붕대를 가는 늑대를 돌아보았다가 접시를 꾹 쥐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일인데 막상 그날이 닥치니 영 내키지 않았다.


이젤리카는 그가 상대해야 하는 적을 비교적 잘 아는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또 다칠 거야.’


빠득-


접시와 발 볼록살의 젤리가 마찰을 일으켰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뜨거워진 발바닥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배 속에 가득 찬 것 같았다.


이젤리카는 한동안 늑대 제자를 빤히 응시하다 접시를 내려놓았다.


이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때의 이젤리카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냥냥.”


‘온다.’


이젤리카와 늑대는 닭과 양 우리가 있는 결계 앞에서 루나를 맞이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항상 감사해요(*ᴗ͈ˬᴗ͈)ꕤ*.゚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코로나는 물론 감기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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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2) 24.01.05 1 0 12쪽
29 12. 마녀, 과거를 거닐다 (1) 23.12.11 4 0 11쪽
28 11. 마녀, 진단받다 23.12.09 5 0 11쪽
27 10. 동쪽의 여명, 아우로라 23.02.11 13 0 9쪽
26 마녀, 고심하다 (3) 22.01.18 15 1 9쪽
25 마녀, 고심하다 (2) 22.01.17 15 0 9쪽
24 09. 마녀, 고심하다 (1) 22.01.15 12 0 10쪽
23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4) 22.01.14 14 0 10쪽
22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3) 22.01.13 15 0 10쪽
21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2) 22.01.12 18 0 10쪽
20 08. 마녀, 연구를 시작하다 22.01.11 13 0 10쪽
19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3) +1 22.01.10 25 5 15쪽
18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2) 22.01.08 15 0 9쪽
17 07. 여왕, 친우의 유지를 전하다. (1) 22.01.07 19 0 9쪽
16 06. 마녀, 손님을 맞이하다 22.01.06 19 1 12쪽
» 늑대와 고양이 (8) 22.01.05 20 1 9쪽
14 늑대와 고양이 (7) 22.01.04 25 4 9쪽
13 늑대와 고양이 (6) 22.01.03 24 3 9쪽
12 늑대와 고양이 (5) +1 22.01.01 28 3 9쪽
11 늑대와 고양이 (4) 21.12.31 27 3 9쪽
10 늑대와 고양이 (3) +1 21.12.30 25 2 9쪽
9 늑대와 고양이 (2) +1 21.12.29 39 2 9쪽
8 05. 늑대와 고양이 (1) +1 21.12.28 45 4 11쪽
7 마검사, 눈을 뜨다(2) +2 21.12.25 51 3 12쪽
6 04. 마검사 눈을 뜨다(1) +1 21.12.24 55 3 13쪽
5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2) +2 21.12.23 61 5 11쪽
4 03. 마녀, 마검사를 구하다(1) +1 21.12.22 62 6 17쪽
3 02. 마검사, 처분되다. +1 21.12.21 107 17 9쪽
2 01. 마녀, 고양이가 되다. +4 21.12.20 124 22 20쪽
1 프롤로그 +11 21.12.20 137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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