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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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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글자수 :
36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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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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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DUMMY

대료문이 겨우 적려도를 올려 달려드는 단유점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팔이 움직이지 않았고, 단유점의 공격이 그대로 대료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단유점도 지친 터라 공격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해 상처는 깊지 않았다. 이번엔 대료문이 단유점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힘도, 속도도 제대로 안 나는 공격이 단유점에게 닿을 리 없었다. 단유점이 가볍게 옆으로 피한 뒤 이번에는 대료문의 팔을 그었다.

대료문이 숨을 헐떡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단유점이 대료문의 앞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서무하. 이만 칼을 놓지 그래. 편안하게 죽여줄 테니 말이야.”

단유점의 말에 대료문이 적료도로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려 했다. 단유점이 그런 대료문의 어깨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대료문이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단유점이 큭큭,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대료문의 옆으로 걸어왔다.

“서무하. 궐 밖 제일 서무하. 과연 떠돌이 무사 치고는 제법 이었어. 이 정도 기로, 이 정도 시간 동안 맹공을 퍼붓는 놈은 네가 처음이었다. 검술 실력은 보잘 것 없지만 ‘기’는 확실히 대단했어. 그래봤자, 나한테는 안 됐지만 말이야.”

“이야, 천하제일. 니 기분 좋겠다, 야.”

대료문이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단유점은 그런 대료문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료문이 킥킥 소리를 내며 웃은 뒤 말을 이었다.

“표정 펴라 야, 천하제일 됐는데 웃어야지 않갔니.”

“그래. 웃어야지. 빌어먹을 새끼야.”

단유점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복형도의 칼자루를 잡았다. 한 쪽 무릎을 꿇어앉은 뒤, 복형도로 대료문의 가슴을 내리치려는 순간, 단유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유점의 허벅지에 적려도가 박혀 있었다. 이미 대료문에게 칼을 제대로 휘두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처가 깊진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단유점은 더욱 고통스러운 듯했다.

“이 개새끼가!”

“아, 많이 아프니? 기래 아플 줄 몰랐디. 하하….”

대료문이 웃자 단유점의 이마에 핏줄이 일어섰다. 허벅지에 박힌 적려도를 빼낸 뒤 단유점이 그대로 자신의 복형도로 대료문의 가슴을 찔렀다.

대료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가슴을 찌를 때마다 대료문의 몸이 움찔거렸다.

‘니미, 아프구만 기래….’

입을 달싹이던 대료문의 움직임이 멎었다. 칼로 찔러도 대료문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대료문의 가슴을 더 찌르고야 단유점의 손이 멈췄다. 단유점은 뒤로 털썩 주저앉아 대료문의 가슴에 박힌 복형도를 바라봤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이제 내가 제일이다! 그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부정 못 해! 내가 육천 제일이야. 내가, 이 단유점이! 하하하!”

단유점이 미친 듯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단유점의 귀로 세 발의 총성이 들렸다.

단유점이 손에 든 복형도를 놓고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피가 솟구쳐 나오고 온 몸의 힘이 빠졌다. 무릎을 꿇고 앉은 단유점 쪽으로 원드가 걸어왔다. 원드는 덜덜 떨고 있었다. 단유점이 그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으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얼굴이 모래에 쳐박혔다.

원드가 단유점과 대료문을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둘 다 맞은 건가? 이놈은 뭐야. 처음 보는 놈인데.”

원드가 중얼거리며 손에 든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넣었다. 단유점이 힘겹게 쿨럭였다.

‘안 돼.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단유점의 의식이 멀어졌다. 그런 단유점의 앞에서 원드가 침을 꿀꺽 삼켰다.

“현상금. 얼마나 주려나. 근데 이걸 두 명을 어떻게 들고 가지….”

원드는 둘의 시신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었다.


육천 연합군 중천의 회의 막사에는 스무 명이 넘는 고위 장수들이 모여 대장군 가사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평이 터져 나올 때 즘 가사현이 막사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사현의 말에 장수들이 입을 다물고 정면을 바라봤다. 가사현은 그런 장수들을 한 번 돌아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펼쳤다.

“장수들은 왕명을 받들라!”

가사현이 근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에 장수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사현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나갔다.

“과인이 부덕한 탓에 백성들이 불안해하고 대소신료들은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으니 어찌 그 책임을 모르겠는가. 이런 시기일수록 모두가 합심하여 나라를 바르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할 터. 허나 이런 어려운 때를 노려 조정과 왕실을 넘보는 패역한 무리가 궁궐 안을 활보하고 있다. 그대들의 중천의 녹을 먹는 장수들로서 과인의 앞에서 선위를 들먹이고, 서방과 내통한 역적을 어찌 보고만 있는가. 과인의 힘이 부족하여 그들을 감히 어찌할 수 없으니 이 나라 안위를 위해 그대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 대군을 이끌고 입성한다면 백성들이 어찌 아니 반기겠는가. 내 진심으로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부디 대장군과 함께 궁궐로 들어와 역적들을 몰아내고 왕실을 보호해 달라. 이 나라의 존망이 그대들에게 달려있노라.”

가사현이 왕명을 모두 읽자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서방 원정을 따라나섰는데 갑자기 궁궐 안 역적들을 몰아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장수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데 가사현이 장계를 탁상 위로 턱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내려놓았다.

“그대들은 왕명을 받들지 않을 참인가!”

그 소리에 얼른 장수들이 자리에 무릎을 꿇어앉으며 입을 모았다.

“왕명을 받들겠나이다!”

장수들이 모두 명을 받자 가사현이 다시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다른 나라 병사들 몰래 우리 중천의 병사들만 이끌고 신속히 회군할 것이오. 회군하여 백경을 점령. 궁궐로 들어가 국무대신 아도후를 비롯한 그 일파를 모조리 잡아들이고, 반역의 죄를 물어 처형할 것이오. 이 뜻에 반대하거나 함께하지 않을 자가 있다면 지금 나서시오. 지금 나서는 자는 죽은 뒤에도 남은 식솔들을 잘 돌봐주겠소.”

가사현의 말에 장수들 모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사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회군 준비를 마치시오. 해가 떨어지자마자 출발할 것이오.”

가사현은 장수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막사를 나갔다. 가사현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장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자기 옆의 장수에게 바짝 다가서며 소곤거렸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아도후 대감께서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도성에 알리고 최대한 버텨 시간을 끌라 하지 않았습니까.”

“가사현 혼자 일을 꾸몄다면 그리할 일이나, 왕명이잖나. 전하의 뜻이란 말일세.”

장수들은 한참을 수군거리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됐음을 깨닫고 서둘러 막사를 빠져나갔다.


모래벽이 무너져 내리고, 안에서 윰과 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윰은 이제 기운을 다해 더 이상 토지신의 힘을 쓰기 힘들었다. 멜번이 이겼다면 이대로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 달리 둘의 앞에 서있는 것은 칼리언이었다.

칼리언이 멜번의 시체 앞에 서서 고개를 뒤로 돌려 대리자 쪽을 바라봤다. 대리자가 활짝 웃으며 그 쪽으로 달려가려는데 칼리언이 오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대리자를 향했던 칼리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 시선 끝에는 총을 겨누고 있는 텔케른과 가르딘이 서있었다. 칼리언은 비틀거리면서도 겨우겨우 총을 텔케른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텔케른이 대리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리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습니다.”

텔케른의 말에 대리자가 움찔했다. 칼리언이 권총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여기서 단 번에 너희 둘, 다 맞출 수 있어. 지금 살려 달라 빌 쪽은 너희야!”

칼리언의 말에 텔케른이 식은땀을 흘렸다. 용병왕이라 불리는 멜번을 쓰러뜨린 자. 지쳤다곤 해도 쉽게 죽일 수 있을까. 만에 하나 한 발로 숨통을 끊지 못하면 텔케른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것은 칼리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양 쪽 모두 함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안 돼. 이러다간….’

옆에서 보고 있던 윰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만. 이제 대리자는 바로…!”

윰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대리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황야에 울렸다.

“나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사라진다면 이 지겨운 싸움도 끝나는 것이겠죠!”

대리자가 품에서 작은 단도 하나를 꺼내 뽑았다. 윰이 그것을 보고 놀라 막으려 하였으나 대리자는 거리낌 없이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안 돼!”

윰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쓰러지는 대리자를 끌어안았다. 대리자의 새빨간 입술에서 천천히 피가 흘렀다. 새하얀 그녀의 피부를 타고.

“윰. 윰….”

그녀가 힘겹게 윰의 이름을 불렀다. 윰의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 몇 방울 떨어졌다. 대리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죽었으니…. 이제 저들은, 저들은 널 노리지 않을 거야. 돌아가서…. 행복해야 돼. 신전으로 가기 싫으면, 가지마.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해. 대리자라는 것을 밝히지 말고, 숨어 살아도 돼. 부디, 네 뜻대로 살아….”

대리자의 말에 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죽지 마, 죽지 마.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대리자가 됐어.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 윰은 목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보던 텔케른이 총을 거두고 뒤로 돌아섰다.

“됐다. 대리자가 죽었으니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돌아가서 보고한다.”

“예.”

텔케른의 말에 가르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텔케른과 가르딘이 사라지자 칼리언이 총을 놓고 대리자 쪽으로 비틀비틀 다가오다 쓰러졌다.

윰은 대리자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댔다.


중천의 수도 백경. 그 네 개의 성문에는 각각 병사들이 빼곡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 궁궐과 가장 가까운 문. 백경의 성벽을 한 바퀴 돌아 조각돼 있는 용의 머리와 꼬리가 있는 곳. 두미문. 오로지 왕만 지날 수 있는 그 성문 앞에서 가사현이 소리쳤다.

“백경 안의 병사들은 들어라. 우리는 왕명을 받아 역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회군하였다! 순순히 성문을 열고 길을 비킨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문 위의 병사들이 크게 동요하는 듯 보였다. 그때 두미문을 지키는 장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군, 지금 전하께 사실을 여쭙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장수의 말에 가사현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내일 정오까지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힘으로 성문을 열 것이니 그리 알라!”

가사현의 칼까지 뽑아 들며 엄포를 놓았다. 그 순간에 맞춰 뒤의 대군이 함성까지 지르자 성문 위의 병사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몸을 낮췄다. 가사현은 드디어 거사가 코앞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니라가 다급하게 아도후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도후는 관복도 입지 않고 평복에 갓을 쓴 채 먹을 갈고 있었다. 다니라가 그 모습을 보더니 답답한 듯 주먹으로 가슴을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쳤다.

“대감. 대체 뭐하고 계십니까. 지금 가사현의 대군이 도성 밖에 쫙 깔렸습니다! 서둘러 도망을 가던가, 해야 합니다!”

다니라의 말에도 아도후는 미소를 지으며 붓을 들었다. 붓 끝에 먹을 묻혀 천천히, 종이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했다. 다니라는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도후는 천천히 글자 넷을 적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예?”

다니라가 영문을 몰라 묻자 아도후가 허허 웃으며 방을 나갔다. 다니라가 얼른 아도후가 종이에 뭐라 썼는지 바라봤다.

「일몰불가방(日沒不可防)」

“해가 지는 것은 막을 수 없…. 이런 젠장!”

다니라가 종이를 던져버리고 서둘러 아도후를 쫓아갔으니 이미 마차를 타고 멀어진 뒤였다.


그날 밤, 두미문을 지키던 병사들 중 하나가 몰래 성문을 열었다. 이에 가사현은 약속한 정오까지 기다릴까 하였으나 시간을 지체하였다가 일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판단. 곧장 네 성문에 파발을 보내 공격을 명했다. 두미문의 열린 성문으로 대군이 쏟아졌고, 가사현은 서둘러 병사 일부를 몰고 궁궐로 향했다.

이미 궁궐은 문이 열려 있고, 지키는 병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궁궐 안을 샅샅이 뒤져라! 아도후와 관련된 자는 모조리 잡아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가사현의 명령에 병사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궁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가사현은 곧장 왕의 침전으로 향했다.

가사현이 왔다는 말에 왕은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가사현이 절을 올린 뒤 입을 열었다.

“전하. 신 대장군 가사현, 밤중에 이리 병사들을 이끌고, 갑옷 차림으로 알현하는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이를 말인가. 무례라니. 당치도 않네. 그래, 아도후는, 아도후는 찾았는가?”

“아직 찾지 못하였으나 지금 도성과 궁궐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심려 놓으십시오.”

가사현의 말에 왕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사현이 인사를 올린 뒤 밖으로 나오자 장수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대장군. 조당, 조당으로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아도후가 그곳에….”

장수의 말에 가사현이 다급하게 조당 쪽으로 향했다.


조당 안에선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가사현이 조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장수 하나가 병사들 한 무리를 이끌고 안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가사현이 들어오자 장수와 병사들이 비켜서며 고개를 숙였다. 가사현은 들어오자마자 높은 곳에 위치한 옥좌를 바라봤다.

“대감. 지금 거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게요!”

가사현이 옥좌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옥좌에는 평복 차림의 아도후가 앉아 수염을 쓸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옥좌 뒤에는 다니라가 덜덜 떨며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다니라가 옥좌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가사현 쪽으로 입을 열었다.

“대장군. 어차피 내 역적으로 죽을 것인데. 옥좌에는 한 번 앉아봐야 덜 억울하지 않겠소? 하하.”

아도후의 말에 가사현이 칼을 뽑아 들었다.

“이 늙은 역적! 내 오늘 반드시 네 놈의 목을 벨 것이다!”

가사현의 옆의 계단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아도후가 갓을 벗어 탁상 앞에 놓았다.

“대장군. 그쪽으로 오지 말고, 적로로 오시게.”

“뭐야?”

“평생 적로를 밟아볼 일이 어디 있겠나. 이 기회에 한 번 밟아 보시게.”

아도후의 말에 가사현이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아도후가 말을 이었다.

“이제 자네의 세상일세. 자네 부친이 이루지 못한 가 씨 천하.”

아도후의 말에 가사현이 결심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적로’가 아닌 옆 계단을 통해 옥좌로 올라왔다.

“이 칼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가사현이 아도후의 앞에 칼을 들이밀며 물었다. 아도후가 슬쩍 보고는 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알지. 알아. 자네 부친께서 일전에 내게 말했지. 이 칼을 뽑는 순간 우리 둘 중 하나가 무사치 못할 거라고. 하하, 하하.”

“아버지가 남기신 주천도. 이 칼로 이 늙은이의 목을 베겠다!”

가사현이 그대로 주천도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쳤다. 옥좌에 피가 퍼지고, 아도후의 목이 붉은 천이 깔린 계단을, 적로를 따라 굴러 떨어졌다.

“역적 아도후가 죽었다!”

가사현이 주천도를 높이 들며 소리쳤다.


며칠 후, 공허의 절벽. 윰과 칼리언이 마주보고 서있었다. 칼리언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윰이 그 손을 맞잡았다.

“등의 그것은 뭡니까?”

칼리언이 윰이 등에 둘러맨 흰 봇짐을 보며 물었다. 윰이 미소를 지었다.

“죽은 동료의 창입니다.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이 칼도….”

윰은 요척과 대료문을 떠올리자 다시 눈가가 먹먹해졌다. 칼리언이 괜한 것을 물었다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짓자 윰이 말을 돌렸다.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윰의 말에 칼리언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요. 윰 씨는 돌아가서 어쩔 건가요?”

“글쎄요. 신전으로…. 가야겠죠. 제가 갈 곳은 거기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곳이 이제 유일하게…. 그녀의 흔적이 남은 곳이니….”

윰의 말에 칼리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열기구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윰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열기구에 몸을 실었다.

아직 어스름이 깔린 하늘. 아직 사라지지 않은 별 몇 개가 빛나고 있었다. 윰이 탄 열기구는 멀리 동쪽,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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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70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1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9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4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8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8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1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8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9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9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6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2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8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6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4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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