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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56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6.02.05 17:42
조회
330
추천
3
글자
11쪽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DUMMY

윰과 대리자는 벽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끔 땅이 흔들리고, 폭발음이 들리는 것으로 유추해볼 뿐이었다. 대리자가 놀란 눈으로 윰을 바라봤다.

“윰. 네가 어떻게 이런 능력을….”

“토지신의…. 힘입니다.”

“토지신…. 아, 칼리언!”

대리자가 바깥의 칼리언이 걱정되는 듯 모래벽으로 다가갔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윰은 다시 가슴께가 아파왔다.

그녀는 어째서 여기서 죽는다고 말한 것일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며칠이나 남았을까. 하루, 이틀? 윰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대리자님. 방법이 있습니다.”

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리자가 천천히 돌아보고, 윰이 말을 이었다.

“제가 대리자가 되는 겁니다.”

“뭐?”

“제가 대리자가 돼 돌아가겠습니다.”

윰의 말에 대리자가 약간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윰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은.

“대리자님은 이곳에 남으십시오.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윰이 다시 말했다. 대리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어째서죠?”

“대리자의 자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자리가 아니야. 자신의 평생을 바쳐야 해. 오로지 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거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윰은 이미 뜻을 굳힌 듯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윰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곳은 서방입니다. 제가 대리자가 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지도 몰라요. 제가 대리자가 된다면 저 사람들의 목표는 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절 죽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도 죽을 이유가…. 사라지는 거죠.”

문득 윰은 대리자에게 ‘당신’이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리자는 다시 윰과 시선을 맞췄다. 윰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토지신의 힘을 사용하느라….’

대리자가 하얀 손으로 윰의 이마를 쓸었다. 이마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제가 토지신의 후예라는 겁니다. 토지신의 후예인 제가 성신님의 대리자가 될 수 있을 지….”

윰이 대리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대리자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신은 그 무엇도 나누지 않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나누는 것을 즐기죠.”

대리자의 말에 윰이 안심이 됐는지 함께 미소를 지었다. 대리자는 그런 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토지신의 후예. 이대로라면 윰은 육천으로 돌아간다 해도…. 죽겠지. 여기 있는 모두를 살리고 이 지겨운 싸움을 끝낼 방법….’

대리자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윰의 결심이 섰다면 자신도 이제 결심을 할 때였다. 모든 하늘의 별을 관장하는 신이여.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길잡이가 되어주는 그대여. 지금 제가 가려는 길은 정도(正道)입니까?

대리자의 손이 윰의 미간에 멈췄다. 윰은 대리자의 손에서 밝게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봤고, 그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리자님….”

“윰. 힘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대리자가 눈을 꼭 감으며 말했다. 곧 모래벽 안이 빛으로 가득 찼다.


“서무하. 지친 것 같은데. 괜찮나?”

단유점이 대료문의 공격을 피하며 비웃듯 말했다. 대료문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칼을 휘두를 뿐이었다.

‘빌어먹을 놈. 아직도 이 정도 힘이 남아있나.’

단유점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 기를 실어 아직까지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계속 피하고는 있었으나 단유점도 슬슬 지치고 있었다.

그때 서무하의 칼이 단유점의 머리 위를 스쳤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나갔지만 오히려 단유점의 표정이 밝아졌다.

‘방금 공격. 뭐지. 아까 정도의 기운이 실려 있었다면 스쳤다곤 해도 기 때문에 타격이 심했을 텐데. 그러고 보니….’

대료문의 공격이 눈에 띄게 느려졌었다. 또한 온 몸을 짓누르는 것 같던 기의 압력도 줄어들어 있었다. 단유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저승의 야차같이 싸늘한 미소. 단유점은 대료문의 공격을 피한 뒤 곧장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무하! 너도 끝이다!”

한 걸음. 딱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면 대료문의 몸을 반 토막 낼 수 있다 생각하는 순간, 엄청난 압력이 단유점을 짓눌렀다. 단유점은 반사적으로 칼을 들었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대료문의 공격.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들보다 강한 기. 단유점 또한 자신의 모든 기를 칼에 쏟아 부었다.

양 쪽의 기가 부딪히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황야에 퍼졌다. 둘을 중심으로 모래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 모래들과 함께 단유점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대료문도 아까 서있던 자리에서 약간 밀려난 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단유점의 몸이 모래바닥에 툭 떨어졌고, 대료문은 숨을 헐떡이며 그 곳을 보고 있었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 것일까, 다시 일어날까. 다시 일어난다면, 싸울 수 있을까. 대료문의 머리로 온갖 생각이 지나갔다.

그때 단유점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단유점이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 빌어먹을 새끼! 개 같은 새끼!”

단유점이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복형도(卜形刀 : 복형기도)를 바라봤다. 이미 복형도는 반 토막이 나, 파편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으아! 좆같네, 진짜!”

단유점이 짜증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대료문 쪽을 바라봤다. 기침과 함께 피를 약간 토해낸 단유점이 천천히 대료문 쪽으로 걸어왔다. 대료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고 일어났다. 적려도를 잡고 있는 오른팔엔 감각이 없었다.

‘싸울 수 있을까.’

대료문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단유점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대료문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단유점이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장군 가비래! 풍천 탁가 탁홍천! 다 나한테 상대가 되지 않았어!”

탁홍천의 이름이 나오자 대료문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날카로워졌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단유점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런데 네깟 놈이, 고작 떠돌이 무사 새끼가! 감히 나를, 차기 대장군이자, 육천 제일 아니, 천하제일인 나를 막으려고 해? 나는, 절대로 못 져. 절대 못 죽어!”

단유점이 부러진 복형도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빙빙 돌리며 대료문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눈이 붉게 충혈 돼 있었다.


성천과 중천의 국경부근엔 수십만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역사에 이 정도 대군을 동원한 적이 언제였던가. 가사현은 높은 곳에 위치한 지휘관 진영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시선을 어느 곳으로 돌려도 눈길이 닿는 곳에는 모두 병사와 막사가 보였다.

가사현이 장관에 매료돼 있는 데 부관이 옆으로 다가왔다.

“장수들이 다 모였습니다.”

“알겠네. 들어가지.”

가사현이 막사로 들어가려는 데 부관이 약간 우물쭈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군. 그리고…. 방금 공허의 절벽 쪽에서 사람이 왔는데….”

“사람?”

“예. 그게…. 태서 총괄께서….”

“태, 태 서방이?”

부관의 말에 가사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부관이 주위를 한 번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봉을 꽉 잡은 가사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방에 갔던 태서가 만약 대리자가 살아있음을 알린다면…. 가사현이 조용히 부관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태 총괄이 지금 어디 있나.”

“언덕 바로 아래서 대기 중입니다.”

“장수들은 잠시만 더 기다리라 하고, 회의 막사 말고 내 막사로 들이게.”

“알겠습니다.”

부관이 경례를 한 뒤 물러나자 가사현이 서둘러 약간 떨어진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대료문과 단유점이 싸우는 곳 근처에서 누군가 자세를 잔뜩 낮추고 있었다. 금색 머리카락에 며칠을 굶었는지 삐쩍 마른 모습.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확실히 원드였다. 원드는 모래에 몸을 파묻은 채 엎드려 대료문과 단유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동방 새끼들은, 왜 맨날 내가 가는 데마다 따라 오는 거야. 돌아버리겠네. 지금 움직이면 걸리려나….”

원드가 중얼거리다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탄창을 확인했다. 남은 총알은 세 발. 마을이 보이면 먹을 거라도 사먹으려 아껴놓은 것이었다.

“돌겠네…. 저 새끼들 싸우는 거 보니까 그냥 괴물이던데…. 총알이 먹히긴 하는 건가. 다가오면 바로 쏴버리자. 그래. 원드야. 잠깐, 저 새끼들 아직도 수배 떨어져 있나. 그럼 현상금이….”

원드가 덜덜 떨며 총을 대료문과 단유점 쪽으로 겨눴다. 방아쇠에 손까지 넣었다가 원드가 다시 총을 거뒀다. 못 죽이면 자기가 죽는다. 제법 실력 있는 용병이고,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몇 날을 굶어서 그런지, 아니면 둘의 실력에 긴장해서 인지 손이 떨렸다.

원드가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가사현의 막사로 곧 태서가 들어왔다. 추레한 몰골을 보자 가사현은 반가운 마음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태서가 예를 갖추더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처남. 내 이렇게 살아서 보게 되다니….”

태서가 가사현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가사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태서가 그런 가사현을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대장군께서, 장인어른께서 그리 되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게다가 전쟁이라니. 대리자께서 돌아가셨다니. 이게 대체….”

태서는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궁금한 것이 산더미였다. 가사현이 그런 태서의 손을 놓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하시려 했던 계획을 제가 실행하고 있습니다. 전하의 어명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리자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명분이 없다면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아도후를 죽이고 역당들을 처리하기 위해, 윤허하셨습니다.”

가사현의 말에 태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리자가 죽은 것이 되었다면 환천군은. 대리자를 찾아오기 위해 그 고생을 한 환천군, 자신의 동료들은 어찌 된 것인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듯 가사현이 입을 열었다.

“아마 돌아와도 살아남진 못할 겁니다.”

“그게 무슨….”

“‘충신도 입 달린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죠.”

“처남. 다시 한 번만 생각을….”

태서는 말을 계속해서 잇지 못했다. 태서는 뜨거워진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꽂힌 단도로 피가 새어나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태서는 이것 또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어 가사현을 바라봤다. 가사현이 눈물을 흘리며 단도를 더욱 깊숙이 박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게, 이게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이오.”

태서의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가사현은 쓰러진 태서의 시신 앞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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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69 4 17쪽
»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89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0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8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3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7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7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0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7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8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8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5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1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7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3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5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3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3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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