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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59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6.01.04 19:29
조회
233
추천
4
글자
12쪽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DUMMY

다행히 태서의 부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박힌 총알을 빼내고 대충 소독 후 붕대를 감은 걸로 충분했다. 장현군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태서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추궁을 시작했다.

“대체 그곳엔 왜 갔던 겁니까?”

장현군의 매서운 눈초리가 태서가 움찔했다.

“대리자님을 모셔와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제 거의 다 됐었는데 어찌 성급하게 움직여 일을 그르치십니까!”

“송구합니다.”

태서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대리자를 죽일 절호의 기회. 그것을 놓친 태서로서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이 죽이려 한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더욱 경계할 것이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대리자를 자신 말고 다른 일행이 찾아낸다면, 그렇다면 오늘 자신이 하려했던 일들이 다 드러난다.

‘죽여야 돼. 반드시 내가….’

태서는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장현군은 깊은 한숨과 함께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이미 벌어진 일. 앞으로 어찌 할 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곳에 있기도 힘들 듯 하니 이동하지요.”

장현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윰만이 답답한 듯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겨우 발견한 그녀를 이리 허무하게 다시 떠나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날 총사령관의 막사에서, 윰은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외면하고, 자신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혹시 그녀에게 신이 무슨 계시를 내린 것일까. 아니면, 함께 동행하는 그 사내와…. 윰은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리자는 신과 통하는 자. 결코 그런 마음을 먹을 리, 먹을 수 없다. 대리자는 곧 신 그 자체와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그렇기에 여느 사람들과 같을 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닿자 윰은 무엇인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녀의 속마음이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그녀는 과연 지금 무슨 생각으로 그 사내를 쫓아다니고 있을까. 그녀는 과연 다시 신전으로 돌아가고 싶긴 한 걸까?

그때 요척이 윰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아, 아닙니다.”

“군대감께서 일단 근처의 3구역으로 가자고 하시는데, 네 생각은 어때.”

요척의 물음에 윰이 얼른 바닥에 놓인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3구역은 엘마르둑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말을 타고도 한 삼일 아니, 여유롭게 간다면 족히 닷새는 걸릴 거리 같았다. 그러나 엘마르둑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라 실크램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거리에 표시된 도시 및 마을이 없었다.

“일단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윰의 말에 장현군이 다시 지도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럼 제가 마라드가 씨에게 떠나겠다고 말하고 오겠습니다. 다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쉽게 안 보내 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장현군의 말에 대료문과 요척이 각자 무기를 챙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총사령관 마라드가는 자신의 막사에서 멜베테 중위와 함께 있었다. 대리자 일행이 이미 엘마르둑 성벽 밖으로 도주. 추격조를 편성했지만 이미 어디로 도망갔는지 방향조차 알 수가 없었다.

마라드가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거야!”

마라드가가 멜베테 중위를 매섭게 노려봤다. 멜베테는 표정 변화 없이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병력이 대리자를 확보하기 위해 막사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그 동방인의 일이 벌어진 후였습니다.”

“좀 더 철저히 감시했어야 했어….”

마라드가가 후회되는 듯 한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밖에서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총사령관님 동방에서 온 분이 뵙기를 청합니다.”

“들여 보네.”

마라드가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장현군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마라드가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처음 장현군이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마라드가가 멜베테 쪽으로 턱짓했다. 멜베테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마라드가 쪽으로 가볍게 경례를 한 뒤 막사 밖으로 나갔다. 멜베테가 나가자 마라드가가 기분 나쁜 미소를 보였다.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간밤의 일에 대해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저희도 맡은 임무가 있어 이만 이곳을 떠날까 합니다.”

장현군은 질질 끌지 않았다. 어차피 보내줄 것이라면 보내주고, 그렇지 않다면 나갈 방법은 없었다. 장현군의 말에 마라드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아, 가시겠다고요. 그렇죠. 대리자가 떠났으니 다시 출발하셔야죠.”

비아냥거리는 마라드가의 말투에 장현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벨트로크 측에서 도와준 일은 조정에 보고하겠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반드시 천부석과 무기 지원을 늘리겠습니다.”

“그것 참 고맙군요.”

마라드가는 장현군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장현군 또한 그의 심정이, 분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를 따르는 병력, 백성들의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벨트로크라는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자. 그의 책임감이 자신이나 중천에 있을 왕에 비해 적을 리가 없었다. 이미 망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그의 모습은 존중 받아 마땅하고,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현군의 말에 마라드가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쉽게 입을 열 지 못했다. 장현군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가려는 장현군의 뒤로 마라드가가 입을 열었다.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챙겨드리겠습니다. 동방 조정에는 제발…. 제발 말씀을 잘 해주십시오.”

마라드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자존심에 얼마나 금이 갔을 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장현군은 살짝 뒤를 돌아 마라드가 쪽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무운을 빌겠습니다.”

장현군이 막사를 나가자 마라드가는 한숨과 함께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장현군 일행은 무사히 엘마르둑을 나와 3구역으로 길을 잡았다. 광활히 펼쳐진 황무지. 부상자가 둘로 늘었기에 그리 빠르게 움직일 순 없었다.

“7구역에서 리리암에게 들었던 것에 의하면 각 구역들은 예전 범죄자들을 수용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 주민들은 흉악한 사라들이 많고 도적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장현군이 걱정스럽게 말했으나 대료문은 대수롭지 않게 허리의 칼을 붙잡았다.

“어찌 기런 걸 걱정하심까. 고것들 덤비면 요 형님 없어도 내 혼자서도 다 아작을 내버릴 꺼이니 까니 염려 마오.”

자신이 넘치는 대료문의 목소리에 장현군은 순간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살인마 서무하. 신분을 숨기고 온 그를 조정에 보고하고 돌려보냈다면 지금 자신들이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장현군은 어느새 대료문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은 대리자를 찾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보는 눈은 생각하지 말라. 너와 함께 돌아오는 자들은 내가 처리하겠다.’

서방으로 출발하기 전 왕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대리자를 죽이고 후계자가 되는 것. 그것이 장현군이 받은 ‘왕명’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이 곳에 있는 모두는, 과연 살 수 있을까.

해기서를 붙잡았을 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그를 그냥 보내준 것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따로 있듯 해기서 또한 받은 ‘명령’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 뿐.

“걱정 마십시오.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갈 겁니다.”

“하하, 뜬금없이 고거이 무슨 말임까?”

대료문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쳐진 것 같아서 말해봤습니다. 하하.”

장현군이 멋쩍게 웃었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말은 과연 저들에게 한 말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인가. 장현군은 헷갈렸지만 그것 또한 지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금방 날이 저물고 주위가 쌀쌀해졌다. 주변에서 코요테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름 모를 짐승 혹은 괴물들의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렸다. 장현군 일행은 어느새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오는 길에 쓸 만해 보이면 주워 놨던 장작거리 들에 기름을 붓고 성냥을 그어 모닥불을 만들었다. 모래바람이 불어 꺼질 수도 있었기에 바람을 막아줄 커다란 바위를 찾아 그 옆에 자리를 잡았었다. 처음 왔을 때는 모래바람 때문에 몇 번이나 불을 꺼먹었었다. 자고 일어나면 입에 씹히는 모래가 이제는 익숙해졌을 지경이었다.

윰이 먼저 불침번을 서고, 대료문이 중간에 교대하기로 정한 뒤 다들 자리에 누웠다. 태서는 벌써 잠이 든 지 코까지 골고 있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무함. 대리자를 코앞에서 놓쳤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 나고 있었다.

요척은 백경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잠이 서서히 들고 있었다. 그때 귀로 들린 수상한 소리. 요척은 그와 동시에 저릿한 공기를 느끼고 다친 몸으로도 일어나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이미 옆에선 대료문이 칼을 반 쯤 뽑아들고 있었다. 둘은 같은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위 뒤. 장현군 일행이 자리를 잡고 있는 쪽의 반대편에 사람이 있다. 이 정도 거리에 올 때까지 둘이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은 보통 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불침번을 서던 윰이 요척과 대료문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요척과 대료문이 거의 동시에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 윰은 얼른 입을 양 손으로 막았다.

대료문이 요척의 팔과 가슴의 붕대를 슬쩍 쳐다봤다.

“요 형님. 다친 데는 움직일 만 하시우까?”

“못 움직여도 움직여야지. 자네도 조심하게.”

“알갔소. 내 셋 세고 오른쪽으로 돌 거니까니, 요 형님은 왼쪽으로 도시오.”

“알겠네.”

둘이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게 소곤거렸다. 대료문이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을 외치려는 순간, 대료문은 섬뜩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바위 위를 바라봤다. 바위 위에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 등 뒤로 비춘 달빛이 그의 얼굴까지 비추진 못하고 있었다. 대료문이 서둘러 칼을 뽑았다.

“요 형님은 여 기다리시오.”

대료문이 요척에게 일러두고 그 큰 바위를 두 걸음 만에 뛰어 올랐다. 상대는 대료문이 다 올라와서야 칼을 뽑았다.

대료문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목을 노렸다. 횡으로 휘두른 칼이 시원하게 바람을 갈랐다.

‘어, 없어진 거….’

대료문은 갑자기 앞에서 사라진 상대에 당황할 틈도 없이 등 뒤의 살기에 반응했다. 허리를 숙여 상대의 칼을 피한 뒤 몸을 빙 돌려 그의 다리를 노렸다. 상대는 그런 대료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단숨에 바위 아래로 내렸다.

‘이 움직임….’

대료문은 무엇인가 짚이는 표정이었다. 바위 아래로 내려간 상대방을 쫓아 내려가 모닥불로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대료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 노인네 이, 살아있었구만 기래!”

대료문은 칼을 넣고 아까까지 칼을 부딪치던 상대를 와락 끌어안았다. 요척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창을 든 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상대방은 온 힘을 다해 대료문을 밀쳐낸 뒤에야 칼을 집어넣었다.

“아, 숨 막혀 죽겠네. 이 자식아.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백발의 주변머리만 남은 노인이었다. 게다가 동방인. 요척은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정체에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윰 또한 무슨 상황인지 몰라 모닥불 앞에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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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69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0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8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3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7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7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0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7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8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8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5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1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7 4 12쪽
»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5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3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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