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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63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5.12.31 16:22
조회
245
추천
4
글자
12쪽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DUMMY

태서가 천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현군 일행의 막사보다는 작았지만 둘이 지내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두 개의 간이침대. 어두웠지만 바깥에서 들어온 횃불 빛 덕에 대리자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이시여…. 부디 절 용서하십시오.’

태서가 속으로 간절히 빌며 석궁을 대리자 쪽으로 겨눴다. 이제 방아쇠를 당기면 화살은 정확히 대리자의 머리에 꽂힌다. 태서의 검지가 떨렸다.

‘그래. 누르는 거야. 누르자.’

태서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왼쪽 머리로 차가운 것이 닿았다. 태서가 힐끔 그 쪽을 바라봤다. 아무렇게나 자른 것 같은 머리카락이 보이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날카로운 눈이 보였다. 태서는 자신의 머리에 닿은 것이 총구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태서가 천천히 석궁을 내렸다. 그러나 남자의 총은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보낸 거지. 루캄인가. 아니면 벨트로큰가.”

“….”

태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것. 총소리가 들리면 근처의 병사들이 몰려올 것이었다. 저 자가 총을 쉽게 쏠 수 있을까. 그러나 태서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병사가 몰려올 것을 각오하고 저 자가 방아쇠를 당긴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여기서 끝.

‘그래. 일단 내가 먼저 움직여서 첫발을 피하고, 총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오기 전에 대리자를 처리한다. 젠장, 아직 죽고 싶진 않은데….’

생각은 그리 했으나 몸이 막상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입구 쪽 눈치를 보며 다시 한 번 태서 쪽으로 물었다.

“마지막 기회다. 말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남자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태서가 움직였다.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석궁을 남자의 배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태서가 움직이는 순간, 남자도 옆으로 움직여 화살은 빈 간이침대에 박혔다.

남자가 다시 총을 태서 쪽으로 겨누려 했다. 그러나 태서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총구와 일직선이 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남자는 단 한 발.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끝이라 생각했는지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태서는 움직이면서 빠르게 화살을 석궁에 쟀다.

태서가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 석궁을 겨누면 남자는 또 움직여 조준할 수 없게 했다.

‘이대로는 안 돼. 설령 내가 죽더라도 대리자는 반드시….’

태서는 몸을 움직이며 재빠르게 대리자 쪽으로 석궁을 겨눴다. 정확하게 조준할 여유 따윈 없었다. 믿을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사격해온 경험과 감.

‘잡았다!’

그 순간 ‘탕’하는 총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어느 정도를 예상하십니까.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마라드가가 장현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장현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천부석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가까이 더 지원할 것이라 봅니다. 총 뿐 아니라 화포종류까지 지원할 가능성도 있지요.”

“동방의 총과 화포가 이곳의 것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진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무기들은 모두 ‘마나’라는 것을 소모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마나라는 것은 고갈 상태구요. 루캄과 장기전으로 간다면 화약을 사용하고, 천부석을 이용하는 벨트로크와 마나를 사용하는 루캄. 어느 쪽이 유리할 거라 보십니까?”

장현군의 말에 마라드가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장현군이 한 말 중 틀린 말은 없었다. 분명 장기전으로 간다면 벨트로크가 유리해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마라드가는 장현군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장현군께서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아십니까?”

“예?”

“장기전이라고요? 벨트로크가 망하고 수많은 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벨트로크의 국민들이 모여 있었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자식을 잃은 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먹을 것이 없어 흙을 끓여서 먹고, 벽지를 뜯어 먹다가 죽어가는 것을 제 눈으로 봤습니다. 지금.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굶어죽는 자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입니다! 당신들이 준 천부석으로 농사를 지어봤자 공에 눈이 멀어 들어온 용병이나 건달들로 늘어난 병력을 감당하기도 힘듭니다!”

마라드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장현군은 차마 거기에 대고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장현군이 짊어진 것은 동방의 수많은 백성들과 조정의 안위. 결코 타협할 수 없고, 흔들려서도 안 됐다.

“안타까운 일이나….”

장현군이 입을 떼는 순간, ‘탕’하고 총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장현군이 순간 놀라 막사 입구 쪽을 바라보는 순간, 그곳에서 병사 하나가 튀어 들어왔다.

“총사령관님. 방금 총소리가!”

“어느 쪽인가!”

“그게…. 동방에서 오신 분들이 묵는 쪽 같습니다.”

병사의 말에 마라드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현군은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이 몸을 감돌았다.


서방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태서는 긴급한 부름을 받고 대장군 가비래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방 안에는 가비래와 함께 가유현, 가사현이 앉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온 태서는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둘째 가사현의 앞에 앉았다.

“장인어른. 부르셨습니까.”

태서의 말에 상석에 앉은 가비래가 머리를 싸쥐었다. 가비래의 두 아들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태서의 옆에 앉아 있었다.

곧 가비래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라진 대리자를 찾기 위해 서방으로 보낼 사람을 추천 받고 있네. 나도 한 명을 추천하기로 했고.”

“그렇습니까? 빨리 대리자님을 찾아야 할 텐데요. 이것 참….”

불길한 예감 때문에 태서의 말이 약간 빨라졌다. 가비래는 태서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추천할 생각이네.”

“예…. 예?”

태서가 깜짝 가비래를 멍하니 바라봤다. 가비래는 태서 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네의 사격술은 육천에서 이미 최고라 소문이 자자하지 않나.”

“그, 그렇사오나….”

“그리고, 중히 맡길 일도 있고 말이야.”

“맡기실 일이라면….”

“가서 대리자를 죽이게.”

가비래의 말에 태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리자를 찾기 위해 서방으로 가서, 대리자를 죽이라. 태서는 너무 놀라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비래의 두 아들은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가비래가 옆에 놓여있던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눌렀다.

“대리자가 서방 땅에서 죽으면…. 나는 전하께 서방으로 진군해야 한다 청할 걸세. 이는 아도후가 나서도 반대할 명분이 없겠지.”

“저, 저, 전쟁….”

“그래. 군권은 군부대신이 쥐고 있으나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실질적으로 전장에서 군을 지휘하는 것은 대장군이네. 즉, 중천의 오십만 대군을 내가 지휘하게 된다는 말이네.”

가비래가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에 불을 댕겼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방 안에 퍼졌다.

“그 병력을 이끌고 회군하여, 백경을, 백옥궁을 장악. 역적들을 토벌할 생각이네.”

“자, 장인어른….”

“역적들을 토벌하고! 전하를 평안히 해드린다면 내 이 나이에 죽는 것이 두렵겠나. 나 가비래. 역적들을 토벌하여 조정을 평안히 한 후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시는 것을 보고 이 자리에서 물러날 게야!”

가비래가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줘 말했다. 태서는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가비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들을 때마다 털이 곤두섰다.

가비래가 담뱃대를 꽉 움켜쥐었다.

“이런 중요한 일에 어찌 남을 맡길 수 있겠나. 자네는 서방으로 가 대리자를 죽이게. 그리고 자네가 죽였다는 사실이 들키면 안 돼. 만약 들킨다면…. 동행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게. 그렇게 한다면 조당에서 내가 서방의 소행으로 꾸미고, 반드시 군을 움직이겠네.”

태서는 쉽게 대답을 내릴 수 없었다. 역모. 군을 일으키는 역모였다. 실패한다면 가문이 사라지는 일. 하지만 여기서 이 말을 거절할 수 있을까. 이미 모든 계획을 들은 태서였다. 과연, 여기서 하기 싫다 한다면 그냥 돌려보내줄까.

태서가 살짝 고개를 들어 가비래를 바라봤다. 가비래는 매서운 눈으로 태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태서가 다시 눈을 내리 깔았다. 매서운 살기. 저게 전장을 누비던 대장군 가비래의 진짜 눈빛인가. 태서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일단 승낙하고 발고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온 무인들의 존경을 받는 대장군을, 아니 그 전에 자신의 장인어른이자 가장 존경하는 자를. 태서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태서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거절했어야 했는데….’

태서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팔뚝이 타는 듯 뜨거웠다. 바닥에 흥건히 피가 고여 있었지만 태서는 팔의 상처를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태서가 대리자의 침대 쪽을 바라봤다. 화살은 대리자의 베개에 꽂혀 있었다. 대리자는 이미 일어나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총을 쏜 남자가 그 옆에서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천막 입구가 걷히고 병사 몇 명이 들어왔다. 병사들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태서에게 총을 겨눴다. 병사들이 그 남자에게도 총을 겨누려는 순간. 남자가 품에서 꺼낸 폭탄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한 순간에 주위가 밝아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에 태서와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걷히고 나서야 태서가 눈을 떴다. 먹먹하던 눈이 풀리고 나서야 태서는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병사들도 이제야 앞이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없어, 도망쳤다! 빨리 보고하고, 비상 때려!”

병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태서에게 총을 겨눈 병사 셋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병사들 중 하나가 태서에게 말했다 .태서는 다친 팔을 움켜쥐고 시키는 데로 일어나 똑바로 섰다. 팔의 고통이 아까보다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총부터 겨누다니 이게 무슨….’

태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막사 안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태서 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장현군이었다. 마라드가와 장현군이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왔었다. 마라드가가 눈치를 주자 태서에게 총을 겨눴던 병사들이 물러났다. 그제야 장현군이 태서에게 다가와 부축했다.

“태서 씨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여기 있는 거예요!”

“군대감. 죄송합니다. 지금은…. 제가 나중에 설명을….”

태서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혼절한 듯 보였다. 마라드가가 주변에 있던 병사 둘을 불렀다.

“의무대로 옮겨 치료해 드리도록.”

마라드가의 말에 병사 둘이 들것을 가져와 태서를 옮겼다. 마라드가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떨어진 석궁을 집어 들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마라드가의 말에 장현군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마라드가는 침대에 박힌 화살까지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일행 분이 왜 이 곳으로 들어왔냐는 겁니까.”

“저도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혹시 몰래 대리자를 빼내 달아날 생각이었던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죄송하지만 대리자는 저희에게도 중요한 협상 카드입니다. 이곳이 우리 진영 한복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마라드가의 목소리와 표정에 담긴 살기를 느낀 장현군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주먹만 꽉 쥐었다. 마라드가는 뭐라 더 말하려다 말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막사 밖으로 나갔다.


작가의말

이제 2015년 마지막 날이네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일은 하루 쉬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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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69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0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8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4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7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7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0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8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8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9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5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1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7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6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3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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