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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68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6.01.18 19:57
조회
237
추천
4
글자
11쪽

4부. 공멸(共滅) : 넷

DUMMY

장현군 일행은 공허의 절벽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침 일찍 장현군, 윰, 태서, 요척, 대료문이 짐을 싸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향한 것은 성문 쪽이 아닌 밭이었다. 맨 앞에서 탁홍천이 장현군 일행을 안내하고 그 뒤로 3구역의 사람들이 거의 다 뒤따르고 있었다.

밭에 도착하자 탁홍천이 걸음을 멈추고 윰을 바라봤다. 윰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밤에 탁홍천이 부탁한 일.

‘능력을 사용해서, 우리 밭을 살려다오.’

할 수 있을까. 애초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 의심하는 윰의 눈에 들어온 것은 3구역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 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윰은 탁홍천이 부탁한 것을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윰이 밭 안으로 들어갔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윰은 온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시체 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 죽어버린 땅의 서늘하고, 가슴 저리게 만드는 이 느낌을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윰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 쪽 손으로 닦아냈다.

탁홍천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숨 죽인 채 윰만 바로보고 있었다. 윰은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잊은 지 오래였다. 지금은 오로지 죽어버린 이 땅만이 신경 쓰였다.

윰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땅에 손바닥을 댔다. 더욱 또렷하게, 가슴 속까지 느껴지는 절규. 아니, 이미 땅은 비명을 지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느낀 절규는 윰이 만들어낸 착각일 것이었다. 윰이 눈을 감고 손을 타고 느껴지는 땅의 기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순간, 손에서 부터 시원한 바람이 타고 올라와 윰의 몸을 휘몰아쳤다. 그것은 강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신이 있다면 그의 숨결이 이럴 것이다 생각될 바람이었다.

윰이 그 바람에 온 몸을 맡기는데, 옆에서 탁홍천이 무릎을 꿇어앉았다.

“사, 살아났다. 땅이…, 땅이 살아났어.”

탁홍천의 시선 끝에 보이는 것은 꽃이었다. 밭 한 쪽에 잡초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 하나가 달려가 땅 한 쪽을 파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땅을 파느라 흙투성이가 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감자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실한 크기였다. 고구마나 감자조차 심으면 절반은 죽어버리던 죽은 땅. 이 땅을 살리기 위해 제국 여기저기를 떠돈 지난 수 년 간의 노력을 떠올리며 탁홍천이 결국 눈물을 쏟았다.

어느덧 윰은 일어나 탁홍천 앞에 서있었다. 윰 또한 자신의 촉촉한 눈가를 한 번 훑은 뒤, 탁홍천의 등을 두드렸다.


“대장군, 대장군이…. 그, 그럴 리가 없다! 대장군이 어쩌다가 그리 됐단 말이오! 대체 범인이 누구요!”

아침 조당 회의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분위기였다. 간밤에 대장군 가비래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왕은 수라까지 다 먹은 뒤에야 들었었다. 왕은 신하들 앞에서 놀란 표정과 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때 아도후가 앞으로 나섰다.

“전하. 이미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보다 대장군이 조사하던 그 역적에 대한 일을 어찌해야 하올지.”

아도후의 말에 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도후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대장군을 죽인 것이 누구인지.

“국무대신께서…, 알아서 하시오.”

왕은 화를 겨우 화를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아도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후임 대장군은 누구로 임명하면 좋겠나이까?”

“그 일은 내부에서 할 일 아니오. 일단 대장군의 장남인 유현에게 임시로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오.”

“유현은 장남인 지라 상가를 지켜야 하오니, 차남인 사현에게 맡기심이 어떻겠나이까?”

“그리 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잡겠나이다.”

아도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왕이 이어 말을 하려는 데 내부대신인 다니라가 앞으로 나섰다. 가비래가 죽자마자 대장군부에서 풀려나 입궐한 터라, 얼굴 여기저기엔 아직 상처가 보였다. 다행히 대신의 자리에 있는 자라 고신이 심하진 않아 입궐은 할 수 있었다.

“전하, 송구스럽사오나, 지금 전국의 학자, 선비들이 상소를 올리고 있사온데, 그 내용이….”

다니라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왕이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다니라를 바라봤다. 다니라가 곧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을 차마 신의 입으로는 아뢸 수가 없나이다.”

왕이 답답하다는 듯 내관 하나를 바라봤다.

“그대가 상소를 가져와 읽어보라.”

“예, 전하.”

내관이 얼른 다니라의 앞으로 가 상소를 받아들었다. 상소를 본 내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왕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어서 읽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예, 저, 전하. 월천(月天) 남부의 선비 천여 명이 함께 올린 상소이옵니다.”

내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펼쳐든 상소의 내용을 눈으로 훑어보는 그의 표정에선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 오늘날 성천의 신관(神官 : 대리자)께서 사라지신 일은, 천 년이 넘는 역사동안 단 한 차례도 없던 일이라. 백성들은 신께서 대노하실 것이라 걱정하고, 성천 조정은 비축해놓은 천부석이 언제 동이 날까 전전긍긍하는 형국이옵니다. 이는 조정의 대신들이 아직 제대로 된 범인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에 나오는 말이 아닐까 하옵니다. 하여, 이 일의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고 그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여겨지옵니다. 이에 우리 월천(月天) 남부의 의사(義士) 천이백팔십오 명은 그 원인이 육천을 통솔하는 전하의 부덕(不德)에 있다고 여기오니, 부디 세자 저하께 양위하시옵고, 상왕으로 물러나시어….”

“그만.”

채 상소의 내용이 끝나기도 전에 왕이 내관의 말을 막았다. 내관은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왕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상소도 읽어보라.”

“예, 예. 성천 북부에서…, 성주(城主) 여덟이 함께 올린 상소이옵니다.”

내관이 읽었던 상소를 다니라에게 다시 건네고, 새로운 상소를 받아들었다.

“사,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성천 북부는 황량하고, 날씨가 추운 바 천부석이 없이는 백성들이 제대로 농사도 지을 수가 없사옵니다. 지금 여러 날이 지나도록 대리자 님에 대해 제대로 된 단서조차 없다고 하니, 저희 성천 북부의 백성들은 애통함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나이다. 비단 천부석 문제만이 아니옵니다. 백성들이 입만 열면 대리자 님께서 사라지셨으니 이제 신께서 성천을 버릴 것이라 하옵니다. 전하께옵서는 이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디 이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세자 저하께 보위를 물려주시고, 상왕으로 물러나시어 신께 죄를 묻는….”

“그만. 또 어디어디서 상소가 올라왔느냐.”

“그 밖에…,월천 서부에서 학사(學士) 이백 팔십여 명이, 일천(日天) 수도 일도(日都)에서 하급 관료 육십여 명이, 운천(雲天) 동부에서 선비 삼백 이십여 명이….”

“됐다. 그만하라.”

왕명에 내관이 얼른 상소를 다니라에게 다시 건네고 물러났다. 다니라는 슬쩍 고개를 들어 아도후의 눈치를 봤다. 아도후는 다니라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어쩌시려고 대장군이 죽자마자 이런….’

다니라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조당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가끔 들리는 왕의 한숨소리. 신하들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단 한 명, 아도후를 빼고.

왕이 아도후를 바라봤다.

“국무대신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왕의 물음에 아도후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중론(衆論)을 거스를 수는 없다 사료되옵니다. 세자께 비록 양위하신다고 해도 아직 어리시니 상왕으로 계시며 국정을 돌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사옵니다.”

아도후의 말에 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도후…. 네 놈 짓이구나…. 대장군이 없으니 이제 네놈 세상이라 이건가.’

왕의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 일은 세자는 물론, 왕실의 어른 분들과 상의 해보겠소. 대장군의 자리는 가비래의 차남 사현이 임시로 맡게 하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뤄주도록 하라.”

왕이 명을 내린뒤 옥좌에서 일어났다. 신하들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왕의 명을 받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아도후에게 다니라가 얼른 다가왔다.

“대감. 어찌 이런 상소들을 올리도록 사주를….”

“어허. 입 다물게. 사주라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겐가.”

아도후가 다니라의 입을 가로 막는데, 앞으로 또 누군가가 다가왔다. 감히 이 나라 국무대신의 앞을 가로 막은 자. 아도후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곤 표정이 밝아졌다.

“고생했네.”

아도후의 앞에 선 것은 단유점이었다. 아도후가 단유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순간 단유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장군은 아니더라도 정식 총괄 자리라도 하나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운합니다. 대감.”

단유점의 직설적인 말에 아도후가 살짝 당황한 듯 눈이 커졌다.

“허허. 뭐라 했나?”

아도후의 물음에 단유점은 아무런 말도 없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아도후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웃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를 총괄이 아니라 대장 자리도 천거할 수 있네. 그러나 지금 자네를 천거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자네가 공을 세워야 천거를 할 게 아니야. 가비래 일로 자네를 천거할까?”

아도후의 말에 단유점이 짜증스럽게 담배를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럼 이 자리에 만족하고,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겝니까!”

단유점의 목소리가 일순 높아졌다. 아도후가 주위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단유점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대장 자리에 앉힐 만한 일이 하나 있긴 하지.”

“그게 뭡니까?”

“서방으로 가게.”

“예?”

“내 오늘 전하께 서방으로 우리 쪽도 공사를 보내 이번 대리자 일을 결판내자고 말했네.”

아도후의 말에 단유점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전 무장입니다. 외교, 뭐 그런 골치 아픈 일 못해요.”

“외교 따위 필요 없네. 우리 쪽에서 보낸 첩자들. 환천군. 그들을 다 죽이게. 그거면 되네. 그러면 내가 조정에 자네가 서방에서 대리자를 찾아오진 못했지만 좋은 조건의 사과를 받았다고 하지. 그렇게 되면 자네의 공을 어찌 전하께서 치하하지 않겠나.”

“정말입니까?”

단유점이 살짝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아도후를 바라봤다. 아도후는 허허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내 루캄 공사에게 미리 말해뒀으니 지금 바로 그쪽에 가보게. 짐 챙겨서 바로. 이번 일만 잘되면 그대 출셋길은 내가 보장하지.”

아도후의 말에 단유점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대감.”

단유점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물러났다. 단유점이 사라지자 다시 다니라가 아도후의 옆으로 다가왔다.

“저런 무례한 자를 봤나. 저런 자를 어찌 믿으십니까.”

“못 믿지. 못 믿어. 벼슬 맛을 본 자는 믿으면 안 되지. 허허.”

아도후가 웃으며 궐 문 쪽을 향해 걸었다. 다니라도 절룩거리며 얼른 그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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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69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0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9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4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7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8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1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8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8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9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6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2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7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6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3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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