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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81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5.12.25 19:50
조회
389
추천
3
글자
11쪽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DUMMY

실크램에서 대리자에 대해 탐문할 때 엘마르둑으로 가는 길은 약간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장현군은 해안으로 길을 잡았었다. 해안을 통해 가는 길은 내륙보다 훨씬 나았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대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감쌌고, 물결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곧 해가 질 것 같습니다. 약간 내륙 쪽으로 이동하시죠.”

요척이 장현군의 옆으로 말을 몰아오며 말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바닷바람까지 더해지면 제법 추울 듯했다. 장현군이 이를 허락하고 내륙 쪽으로 말을 몰았다. 해안 근처, 야자수들이 자라난 지역을 벗어나자 다시 앞으로 황무지가 펼쳐졌다.

“여기서 오늘 묵죠.”

장현군은 야자수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말들을 근처에 묶어두고 야자수를 따 목을 축였다.

어느덧 해가 저물자 대료문이 야자나무와 그 잎을 베어 장작을 마련했다. 딱, 딱 하고 야자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장현군 일행은 각자 요를 바닥에 깔았다.

“대리자 님의 행방을 놓쳐 엘마드룩으로 가고 있다 전서구를 보내야겠습니다.”

장현군이 종이와 펜을 꺼내며 말했다. 옆에서 태서가 장작을 나뭇가지로 쑤시며 입을 열었다.

“해기서가 배반한 일도 적으셔야 합니다.”

“예. 그래야지요.”

장현군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동료의 이탈. 혹여 나머지 인원들의 사기도 꺾일까 염려됐다. 장현군이 서신을 다 쓰고 천둥새의 다리에 묶는데 태서가 급하게 자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저도 보낼 것이 있습니다.”

천둥새를 날려 보내려던 장현군이 동작을 멈췄다. 태서는 황급하게 종이에 뭐라 뭐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를 길게 접더니 겉면에 ‘대장군께’라고 적어 장현군 쪽으로 내밀었다.

“그럼 이것도 함께 보내겠습니다.”

장현군의 말에 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현군은 자신의 서신을 다시 푼 뒤, 태서의 서신과 겹쳐 천둥새의 다리에 묶었다.

“종이 무게 때문에 균형을 못 잡아서 가다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겠죠?”

“그럼 양쪽 다리에 묶을 까요?”

“음…. 아닙니다. 전서구용 종이는 본래 가벼우니 괜찮겠지요. 천둥새야 뭐 비 내릴 것까지 예상해 안 내리는 길로 돌아갈 만큼 영물인데. 괜찮겠지요.”

태서와 장현군이 시시콜콜한 걱정을 주고받는 사이 대료문이 요척의 옆으로 다가왔다.

“거, 다친 데는 좀 괜찮수까?”

“괜찮네. 너무 염려말게.”

대료문의 걱정에 요척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러진 팔을 한 번 휘둘러 보였다. 대료문은 그런 요척의 모습에 허허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둘이 잠시 어색하게 피워놓은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는데 요척이 대료문의 칼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7구역에서도 그렇고, 이마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를 찾는 것 같던데. 누군지 말해줄 수 있겠나?”

혹여 꺼리는 일일까 하여 요척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대료문은 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길고 보니 요 형님께서 내 칼 쓰는 거이 어서 배웠는지 전에 물었잖소.”

“그랬지.”

“그때 말했던 고향 사람. 기니까 내 스승이우다.”

“스승?”

“야. 이 칼이 그 인간 쓰던 칼 중 하나요. 내 이 먼 남의 땅에서 이 칼 볼 줄 어이 알았겠소. 이거이 인연 아이 갔소. 하하.”

대료문이 옆에 놓아둔 칼을 꽉 쥐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요척 또한 무도인. 그런 고수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분 존함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존함은 무슨, 그 인간 이름 알며는 아마 깜짝 놀랄 거이요.”

대료문이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여 있던 칼을 뽑았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칼날이 모닥불 빛을 받아 예리한 자태를 드러냈다. 평범한 모양과 달리 말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마 대료문이 칼을 쥐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 요척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요척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칼자루와 가장 가까운 부분, 검신에 적힌 네 개의 글자.

「발의살신(發義殺神」

그 글자를 본 순간 요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보게. 이 글자는….”

대료문이 칼의 그 글자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이빨을 보이며 씩 웃는 모습은 은은한 모닥불과 어우러져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발의살신(發義殺神) 만대평안(萬代平安). 의로서 일어나 신을 죽이니, 만대가 가도록 평안하리라.”

대료문이 중얼거리자 요척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장현군과 태서는 벌써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워낙 작은 데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모닥불 타는 소리가 겹쳐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요척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대료문 쪽을 바라봤다. 그때 요척의 눈에 아직 자지 않고 대료문 옆쪽에 쪼그려 누워 있는 윰이었다.

요척이 자신의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쉿.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

요척이 윰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윰은 지금 하는 말이 왜 문제가 되는 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윰은 참 별이 많구나, 라는 생각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척이 대료문 쪽으로 약간 더 다가갔다.

“그 문구는 설마….”

“풍천 탁가. ‘탁가 도법’이 꽤 유명하디요.”

대료문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척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 칼은 전쟁에서 풍천 탁가의 가주(家主)가 사용했다는 적청쌍도(赤靑雙刀)인가?”

“요 형님, 마이 아시는 모양이우다.”

“알지. 풍천이 애초 육천의 나머지 나라를 적으로 돌린 것도 풍천 탁가를 믿고 한 것 아닌가. 탁가 인원들이 최대한 빠르게 진격하여 백옥궁을 점령 왕을 인질로 잡으려 했다지.”

“기렇다고 합디다.”

대료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칼을 다시 칼집에 넣었다. 요척은 그 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붉은색 칼집이 눈에 띈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50년 전, 전쟁 때 풍천 가주가 결의를 다지며 만들었다는 적청쌍도 중 하나. 적려도(赤侶刀)일 줄이야.

요척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풍천 탁가라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겨우 멸문을 면해, 명맥을 이어갔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 후 30년 뒤,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근근이 이어오던 풍천 탁가는 반란을 모의했다는 죄로 멸문 당했었다. 당시 관련된 자들은 모두 죽고 단 한 명. 가주였던 탁홍천만이 적청쌍도를 가지고 탈출했었다. 탁가를 포위한 병사들 중 오십여 명을 죽이고 말이다.

요척 또한 당시 하급 군관으로 ‘탁가 진압 작전’에 참여했었다. 병사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문 앞을 막고 선 탁가 제자들. 그 모습이 또 다시 지금, 요척의 눈에 보였다. 그들을 향해 총과 활을 쏘고, 창으로 찌르던 병사들. 이번엔 요척의 귀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모두 죽인 뒤, 집 안으로 진입한 병사들. 탁홍천은 양 손에 칼을 들고 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집 담을 넘어,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까지. 총소리가 들렸지만 탁홍천을 맞추지는 못했다. 그의 기묘하면서 벼락같이 빠른 움직임. 이번엔 요척의 머리에 그때 들었던 생각이 다시 꽂혔다.

‘두렵다.’

탁홍천이 유유히 달아나는 것을 요척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은 병사만 오십여 명. 다친 병사들까지 하면 아마 백 명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이 최고의 무인(武人)을 꼽을 때 늘 대장군 가비래와 탁홍천을 입에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요척은 잠시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그때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요척이 자신의 자리에 누웠다.

“나는 이만 자야겠네. 자네 다음에 누가 번을 서기로 했나?”

“저 태서 총괄이 한다기에 기 하라 했소.”

“그런가. 고생하게.”

요척은 눈을 감으며 몸을 대료문 반대편으로 돌려 누웠다.


제법 밤이 깊었다. 다들 깊게 잠든 것 같았다. 단 두 명. 윰과 대료문을 빼고. 윰은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꿈뻑거리며 하늘의 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료문이 약해지는 불에 야자수 잎 몇 개를 더 넣다가 윰 쪽을 슬쩍 바라봤다.

“니 아직도 아이 자니?”

“네. 잠이 안 오네요.”

“대리자 때문에 기러는 거이니?”

“저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 대리자 님을 찾고 싶은 건지, 성신 님을 찾고 싶은 건지….”

윰의 말에 대료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게 뭐니. 기나 저나 다 같은 거 아이니.”

“그렇겠죠. 어차피 똑같은 거겠죠?”

윰의 말에 대료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윰이 대료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머지 분들은 누굴 찾고 싶어 하는 걸까요?”

윰의 질문에 대료문이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봤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윰은 딱히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계속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서방을 넘어 동방까지 뻗어 있을 것이고, 거기까지 별이 담겨 있을 것이다. 별은 그녀가 어디로 가든 지켜보고 있다.

“찾고 싶기는 한 거인디 모르갔다.”

대료문이 여전히 모닥불을 응시한 채 말했다. 윰은 살짝 대료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료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니는 어찌 생각하니?”

“네?”

“대리자고 신이고, 찾고 싶기는 한 거 같니?”

“그게 무슨….”

“아까 태서 총괄이 말하지 않았니. 해기서는 성천에서 밀명을 받고 온 거였다고. 기럼 나머지는 여 진짜 대리자 찾으러 온 거이 맞을까, 생각 아이 해봤니?”

대료문의 말에 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대리자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 먼, 죽을 지 살 지도 알 수 없는 이 서방에 올 이유가 있을까.

멍하니 생각하는 윰을 보고 대료문이 낮게 웃었다. 윰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다들 왜 온 건가요?”

“길세. 나도 고거이 어이 알갔니.”

대료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료문이 손목의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번을 서기로 한 태서를 깨우려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대료문이 약간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윰을 바라봤다.

“니는 신이 전지전능하다 생각하니?”

“예?”

“신은 말이디, 무조건 공평해야 하고, 선과 정의의 편에 서야 돼. 오히려 그런 것에 얽매이디 않는 인간이 더 전지전능하다, 생각해 본 적 없니?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말이디. 그러니 너무 믿지 말라. 니가 생각도 못할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이 사람이야.”

“예?”

“허허. 아무 것도 아이다. 자라 야, 시간이 늦었다. 피곤하다고 떼써도 아이 들어줄 거야.”

말없이 바라보는 윰의 시선을 무시한 채 대료문이 태서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태서가 일어나자 대료문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윰은 방금 한 말의 뜻을 물으려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작가의말

크리스마스라 좀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보려 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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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70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20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1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9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60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4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8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10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7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8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1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8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9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4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9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6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6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2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8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6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4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2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9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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