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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신을 찾는 자 : EAST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백아™
그림/삽화
키샷
작품등록일 :
2015.11.06 21:44
최근연재일 :
2016.02.06 16:14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5,761
추천수 :
356
글자수 :
368,327

작성
16.01.27 20:42
조회
213
추천
4
글자
11쪽

4부. 공멸(共滅) : 아홉

DUMMY

눈이 꽃잎처럼 살랑살랑 달빛을 받으며 내려와 바닥에 갓 쌓이기 시작했다. 언제였던가. 아마 요척이 천신전 총괄 직을 맡게 된 날이었을 것이다. 요척은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총괄로 승진한 것보다도 기쁜 것은 근무지가 천신전이라는 것이었다. 백옥궁 안에 있는 천신전. 그 말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멀리로 부임해 가족들 얼굴보기도 힘들까 걱정했던 요척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요척이 집 마루에서 신을 벗고 있는데 뒤에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아들 면의 목소리였다. 요척이 뒤로 돌아보려는 순간 뒤에서 면이 와락 요척의 목을 감싸고 안았다.

“아부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아들의 말에 요척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요척이 신을 다 갈아 신고는 일어났다. 그러자 목을 안고 있던 아들이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요척이 그대로 아들의 허벅지를 받친 채 업고 방으로 들어갔다.

“추운 데 뭐 하러 밖에 나와.”

요척이 방문을 닫으며 업힌 아들에게 말했다. 면은 빙그레 웃었다. 그때 바느질을 하던 요척의 아내가 면이를 향해 인상을 썼다.

“아부지 힘든데 어서 안 내려와?”

아내의 말에 면이 팔을 풀고 내려왔다. 요척은 그런 면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만두야. 식기 전에 먹어. 빈이 건 남겨두고.”

요척이 벌써 잠든 딸 빈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 면이가 얼른 만두의 포장을 푼 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또 다시 인상을 썼다.

“할머니 먼저 드세요, 해야지.”

그 말에 면이 시무룩한 표정을 하며 구석에 앉아 있는 요척의 어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들고 있던 만두를 두 손으로 잡고 내밀었다.

“할머니. 만두 드세요.”

요척의 모친은 반쯤 풀린 눈으로 면을 보다가 고개를 휙 둘렸다.

“싫어. 안 먹어. 내 아들 올 때까지 안 먹어.”

할머니의 말에 면이 요척과 자기 엄마 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요척이 옷을 다 갈아입고는 면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면아 너 먼저 먹어.”

요척의 말에 면이 활짝 웃으며 만두를 입에 넣었다. 면이 다시 만두 쪽으로 가자 요척이 손을 내밀었다. 거칠거칠한 어머니의 손. 그 손을 잡고 요척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아들 왔어요. 만두 드세요.”

“내 아들 데려와. 내 아들 척이. 척이 데려와.”

모친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요척은 한숨을 쉬며 만두 하나를 모친의 손에 꼭 쥐어 주고 아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는 여전히 바느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술 한 잔 했지. 동기들이랑.”

“당신이 술을요?”

“놀라지마. 이번에 승진했어. 총괄로.”

그 말에 아내가 드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요척을 바라봤다. 총괄이 어떤 자리인가. 각 군의 대장과 부대장 밑의 군을 직접 통솔하는 자리.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총괄은 그 바로 밑의 부총괄과 차이가 컸다.

“그것도 천신전 수비총괄. 매일 퇴궐해서 집으로 올 수 있어.”

요척이 만두 하나를 아내 쪽으로 건네며 말했다. 그제야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무너져 버린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장수가 되었고, 총괄까지 올라왔다. 무관으로서의 명맥이 끊겼던 집안에 조금씩 빛이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부지. 나도 커서 아부지처럼 장군 될 겁니다.”

“그래? 하하. 우리 면이가 몇 살이지?”

“아홉 살이요.”

면이 입 안의 만두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요척은 자기도 모르게 번지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칼을 잡아야겠구나. 아버지가 시간 날 때마다 봐주마. 목검도 하나 사주고.”

그 말에 면이 좋아라하며 요척의 품에 안겼다. 요척이 면을 안고 한 쪽에 세워져 있던 태절창을 잡았다.

“우리 면이, 장수가 되면 이 창도 주마.”

요척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고 있는 딸이 시끄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내도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요척의 모친도 쥐어준 만두를 다 먹고 방 가운데로 다가와 있었다. 하나 남은 만두를 입에 밀어 넣는 모친과 옆의 아내, 자고 있는 딸, 그리고 안겨 있는 아들 면. 요척이 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부인. 면아, 빈아, 그리고 어머님….’

그 자리에 서있던 요척이 다시 걸음을 뗐다. 한 걸음, 한 걸음. 대료문 쪽으로 다가갔다. 대료문은 그런 요척을 보는 것조차 괴로운 듯했다.

“형님. 이제 그만 하시우다.”

대료문이 다시 한 번 말했지만 요척의 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어느새 요척은 태절창을 휘두르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내가 살면, 내 식구들이 죽네. 항명은 곧 반역이네. 아우. 무인으로 죽여주게.”

요척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대료문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장현군이 결심한 듯 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요 총괄. 멈추시오! 그 명에 전하의 옥새가 찍혀 있었소? 그것이 전하의 명이라 확신할 수 있냔 말이오!”

장현군이 총을 겨눈 채 요척을 향해 소리쳤다. 요척이 장현군 쪽을 보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명이 내려온 것은 내무부. 그것이 전하께서 하명하신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장은 오로지 명이 내려오면 실행할 뿐. 어찌 장수가 명의 진위를 따지리오.”

이미 요척은 눈이 풀려 있었다. 장현군의 다리가 떨려왔다.

‘일단 다리를 쏴서. 진정시키자. 이러다가는 진짜 죽는다.’

장현군이 신중히 요척의 다리를 겨눴다. 그때 요척이 다시 태절창을 양 손으로 꽉 쥐었다. 베인 어깨에서 피가 한 번 쿨럭였지만 요척은 이미 고통 따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대 중천 신위군 소속 천신전 수비총괄 요척, 조정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요척의 태절창이 그대로 대료문의 목을 향했다. 지금까지 요척의 공격에 비하면 예리하지도, 살기가 느껴지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대료문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허리를 숙였다. 태절창이 대료문의 머리 위에서 붕,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다. 대료문이 다시 일어서 손에 힘을 줬다. 태절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요척의 목을 대료문은 정확하게 베었다.

요척의 목에서 피가 솟구쳐 대료문의 얼굴을 적셨다. 대료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뒤로 쓰러지는 요척의 마지막 표정. 웃고 있었다.


“전하. 가유현 태부 들었나이다.”

“들이라.”

내전 밖에 서있던 내관이 고하자 왕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곧 내전의 문이 열리고 상복을 입은 가유현이 안으로 들었다.

“가 태부. 상심이 크시겠소.”

절을 올리는 가유현 쪽으로 왕이 애도를 표했다. 가유현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만 들었다.

“3년 간 상복을 입고 부친의 묘소를 지키는 것이 법도인 지라, 상복 차림으로 알현하는 점 용서하십시오.”

“그런 말마시오. 과인은 아직도 대장군의 부고가 믿기지 않소.”

왕의 말에 가유현이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왕이 당황하여 가유현에게 다가갔다. 그의 어깨를 왕이 토닥여 주는데 가유현의 눈빛이 변했다.

“전하. 주위를 물려주십시오.”

가유현의 목소리는 왕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주위의 내관, 궁녀들을 밖으로 물렸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가유현이 입을 열었다.

“전하. 아도후가 감히 전하를 겁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아우에게 전해 들었나이다.”

“그렇소. 세자에게 양위하라고 하는 데…. 서방으로 간 환천군이 돌아오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으니…. 시간이라도 끌어보고 있으나 얼마나 못 버틸 듯하오.”

왕이 일어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에 가유현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전하. 실은 신의 부친께서 역당들을 토벌할 계책을 하나 세워 놨었나이다. 만약 서방과 내통한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부친께서는 이 계책을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왕의 질문에 가유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가유현의 비장한 표정에 왕까지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가유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석신명적멸무훈계삼대태부(惜身命敵滅武勳繼三代太夫) 겸 대장군부 소속 남안장군(南安將軍) 전시(戰時) 용위군(龍衛軍) 제이(第二) 부대장(副大將) 가유현.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께 부친의 계책을 고하나이다.”

“고하시오.”

왕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가유현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진짜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신의 부친께서는 도성수비대 남군 총괄 태서에게 대리자를 죽이라 명했나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러면 부친께서는 서방에서 대리자를 죽였다 여론을 조장하여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나이다. 전시에 전장에서 실질적으로 병사를 지휘하는 것은 대장군. 부친께서는 전쟁을 일으킨 뒤 회군하여 궁궐을 장악. 역도들을 토벌하고자 하셨나이다.”

가유현의 말에 왕의 눈이 흔들렸다. 그런 대담한 일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반란을 대장군이 꾀하고 있었단 말인가. 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비틀거리며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가유현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하. 지금 대장군 직은 신의 아우가 임시지만 대리로 있나이다. 지금 이 계획을 전하께옵서 실행하여 주시옵소서.”

“그게…. 무슨 소리요….”

자리에 앉은 채 왕이 가유현을 흘겨봤다. 가유현은 그런 왕과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대리자가 서방에서 죽었다는 환천군의 문서를 꾸며 전서청에 전하겠나이다. 전하는 이를 사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역당들을 토벌하라는 교지를 신의 아우에게 내려주신다면, 아버님께서 하시려 하였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겠나이다.”

가유현의 말에 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중천의 전군을 이끌고 궁궐을 장악하겠다. 그 말을 지금 왕인 자신의 앞에서 하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조금이라도 역심을 품는다면 자신의 옥좌는 물론 이 왕실 전체의 안위가 위험한 일이었다. 그때 가유현이 결연한 눈빛으로 왕을 노려봤다.

“전하. 저희 가 씨 집안을 믿으시옵니까?”

“믿소….”

왕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가유현은 더욱 힘 있게 목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전하! 믿지 못하시겠다면 지금이라도 저희 가 씨 집안사람들을 모조리 추포하여 반역의 죄로 다스려 주십시오!”

가유현의 말에 왕이 고민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도후와 가 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여기서 가 씨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차피 자신의 자리는 보전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린 세자가 왕위에 오를 것이고, 조정은 아도후가 장악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이 한 줄기 희망 아닐까.

왕은 결심이 선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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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4부. 공멸(共滅) : 열여섯 (完) 16.02.06 369 4 17쪽
66 4부. 공멸(共滅) : 열다섯 16.02.05 331 3 11쪽
65 4부. 공멸(共滅) : 열넷 16.02.04 319 3 10쪽
64 4부. 공멸(共滅) : 열셋 16.02.03 290 3 10쪽
63 4부. 공멸(共滅) : 열둘 16.02.02 230 3 11쪽
62 4부. 공멸(共滅) : 열하나 16.02.01 148 3 12쪽
61 4부. 공멸(共滅) : 열 16.01.28 245 4 11쪽
» 4부. 공멸(共滅) : 아홉 16.01.27 214 4 11쪽
59 4부. 공멸(共滅) : 여덟 16.01.25 451 4 12쪽
58 4부. 공멸(共滅) : 일곱 16.01.22 247 4 10쪽
57 4부. 공멸(共滅) : 여섯 16.01.20 209 4 10쪽
56 4부. 공멸(共滅) : 다섯 16.01.19 216 4 9쪽
55 4부. 공멸(共滅) : 넷 16.01.18 237 4 11쪽
54 4부. 공멸(共滅) : 셋 16.01.15 220 5 13쪽
53 4부. 공멸(共滅) : 둘 16.01.14 167 4 14쪽
52 4부. 공멸(共滅) : 하나 16.01.13 188 4 13쪽
5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아홉 16.01.12 213 4 16쪽
5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덟 16.01.11 269 4 13쪽
49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일곱 16.01.08 305 4 11쪽
48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여섯 +2 16.01.07 245 4 13쪽
47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다섯 16.01.06 331 4 12쪽
46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넷 16.01.05 227 4 12쪽
45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셋 16.01.04 234 4 12쪽
44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둘 15.12.31 245 4 12쪽
43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하나 15.12.30 253 5 12쪽
42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열 15.12.29 231 4 12쪽
41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아홉 15.12.28 244 3 12쪽
40 3부. 절벽 끝, 공허(空虛) : 여덟 15.12.25 3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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