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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흑마법사는 회귀 직후 마차에 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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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모노
작품등록일 :
2024.07.25 17:03
최근연재일 :
2024.08.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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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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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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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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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8.

DUMMY

펠과 도렌이 떠났다.

하일런은 쓸쓸하다.

하지만 제나만 할까. 하일런은 제나가 걱정이다.

하지만 펠이 아니면 내성을 나갈 명분은 없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영주님의 명령이십니다. 내성문은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예상 대로.

겁먹은 병사의 얼굴. 열어줬다간 톡톡히 대가를 치를 거란 영주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버님은 펠과 도렌 남매를 만나 놀아도 된다 허락하셨으나, 며칠 전 지금껏 성문을 몰래 열어줬던 병사가 곤장을 잔뜩 맞았단 걸 알게 됐다.

병사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하일런은 물러난다.


“글리시, 나랑 카드 놀이 할래?”


하일런은 동생, 둘째 공자 글리시에게 용기를 내서 말을 건다.

늘 싫은 걸 넘어 적을 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글리시.

반년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지냈는데, 그 시선과 태도는 여전했다. 아니 더 심해졌다.

그래도 최근 여러 일들을 겪으며 생긴 용기, 용기를 내어봤는데.


“바빠. 그런데 쓸 시간 없어. 형이랑 놀아봐야 재미도 없고. 오히려 기분만 나빠지지.”


이제 10살 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차가움과 독설.

허나 귀족가에선 그리 유별난 것도 아니다.

귀족가의 아이들에게 아이다운 것은 죄악시되며, 귀족가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후계자 자리를 두고 목숨이 걸린 싸움을 한다.

후계자가 되어 영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은 대개 처리된다.

유별난 것은 하일런이었다. 그는 영주가 되더라도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아, 그래? 나도 뭐, 역시 즐거울 것 같지 않네. 글리시 너하고는.”


아직 아이, 천성이 선해도 너랑 같이 놀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말까지 듣고 좋은 말이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뱉은 말에 더 상처 받는 건 하일런.

그렇게 둘은 휙 지나쳐 간다.


‘글리시가 영주의 자리에 오르면 틀림없이 날 처리하겠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일런의 선한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쓸쓸하고 허한 마음을 좀 풀어보려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가 더 슬픈 기분이 됐다.


“지금 제나는 이것보다도 더일 거야. 더 슬플 거야. 이쯤이야...참 남자답지, 귀족답지 못하네, 나.”


지금 자신은 마음을 채울 걸 찾아다닐 때가 아니라, 제나를 위로해줘야 한다.

하일런은 정원으로 간다.

그곳의 꽃을 조금 꺾어 꽃다발을 만든다.

그리고 자수없는 낡은 회색 망토를 두르고 꽃다발을 그 망토 속에 숨기고 하일런은 비밀통로들을 달린다.

이크, 벗겨질뻔 한 망토모자를 얼른 붙잡아내려 밝은 금발머리를 가리며 개구멍을 빠져나온다.


똑똑!


미케일의 집을 노크한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미케일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망설이다 하일런은 근처를 서성이며 기다린다.


“어머! 하일런, 공자님?!”


목소리를 속으로 삼키는 소리.

해가 완전히 지고, 미케일이 퇴근했다.


“어서 안으로.”


혼자인 걸 알고 미케일은 일단 하일런을 얼른 집으로 들인다.

빈민가, 하지만 다들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지만, 불한당이라도 만났으면 어쩌려고!

미케일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집에 있는 게 이런 것들 뿐이라, 송구합니다...”


“아니다, 차도 과자도 맛이 좋은걸?”


사실은, 과자라는데 아무런 맛이 안 났다.

하지만 좋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색하기도 하지만, 하일런은 이 공간을 포근하게 느낀다.

미케일이 하일런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바라본다. 어디에 쓰려는 건지 짐작이 가기에. 미케일이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제나는 어디갔느냐?”


“송구합니다. 펠, 도렌과 함께 갔습니다.”


“...뭐어?”


쿠궁! 하일런은 머릿속에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셋이 다 떠났다고?! 나만 두고?!

뭐, 공자인 자신을 데리고 갈 수 없는 건 알지만, 배신, 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다.


“제나는 수도까지 가는 건 아니고, 곧 돌아옵니다.”


그 말에 그제야 안도한 표정을 짓는 하일런.

제나까지 가버리면 놀사람이 아무도 없어진다.

아버님은 내성 밖 출입을 금하셨지만, 개구멍이 있으니. 아주 조심히 가끔씩은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걸 제나가 돌아오면 전해주거라. 내가 있으니, 그러니까, 크흠, 너무 섭섭해하지 말라고.”


꽃다발을 미케일에게 건네고 돌아가는 길에 하일런은 고개를 갸웃한다.


‘뭐였지, 그 느낌은...제나는 곧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말야...’


제나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곧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

오래 생각해 보지만, 아직 12살의 하일런은 그 감정의 정체를 아직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


==========


들판을 달리고 산을 넘었다.

펠버드는 지도를 들고 있었다.

바라칼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히야, 펠, 저기 봐! 빨갛게 잘 익은 것 좀 봐.”


바라칼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 위에서 도렌이 산 아래를 가리킨다.

농장이 있었다. 수박도 보이고 사과도 보였다.


“응, 맛있어 보이네.”


펠이 대답한다. 그게 다였다.

도렌은 답답했다. 하여간 순진해.

위협이나 마법과 관련이 없는 일엔 펠버드는 확실히 순진했다. 반응이 무디고 굼뜨다.

도렌 남매 앞에서는 특히 그랬다. 그들을 믿기에. 안심이 되기에.


“아니, 그게 아니라...그러니까 말야...”


침을 꼴깍 삼키면서 도렌은 차마 말을 못한다.

기본적으로 셋이 있으면 리더는 도렌이다.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장남이고.

펠이 자신을 믿고 신뢰한다는 걸 알기에, 도렌은 차마 끝까지 말을 못한다. 자신에게 실망을 할까봐.

도렌은 앞으로도 계속 펠의 인정을 받고 싶다.


“서리!”


“오오, 동생아! 이제야 우리가 다시 맘이 잘 맞는구나! 그래, 그거.”


“도둑질이 아냐.”


그렇지그렇지. 제나의 말에 화색이 확 도는 도렌.


“서리?”


펠버드는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들어본 단어.

회귀 전 그의 유년시절의 기억엔 아이다운 기억이란 없다.


“그래, 이건 아이들의 특권이면서, 유구한 전통 같은 거야.”


“.....”


펠버드는 이해가 안 된다. 서리라...대체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도렌과 제나는 절대로 나쁜 일에 손을 대지 않는다.

미케일에게 엉덩이가 새빨개지도록 맞고, 미케일이 슬퍼하면 더 슬퍼지는 아이들.

오히려 길에서 뭔가를 주우면 꼭 주인을 찾아준다.

집을 떠나왔다고 벌써 바뀌어버릴 걸까.


“이놈들!”


세 아이는 과일밭으로 들어갔고, 주인에게 들켰다.


“이크! 빨리 튀어! 펠, 그 수박까지는 챙기고.”


말과 달리 도렌은 웃고 있었다. 양심에 찔리는 표정은 짓고 있지 않다.

놀이를 할 때의 그 표정.


“거기 서라라아! 잡히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난 농장 주인이 쫓아오며 소리친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하는 말과 달리 아이 같은 표정을 보인다.

펠버드는 혼란스럽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서리라...


컹컹!


농장의 개들이 세 아이를 포위했다.

바라칼을 부른다면 당장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겠지만, 그랬다가 바라칼의 발에 작물들이 엉망이 된다.

잡혔어도 도렌은 바라칼을 부르지 않았다.

세 아이가 손에 든 과일은 사과 2개, 토마토 3개, 수박 하나. 마법 없이 키운 수박은 아이 머리보다 작다.


“잡았다, 요 녀석들!”


잡힌 도렌은 긴장한다.

아이의 특권, 전통이라고 했지만, 서리로 봐주지 않는 농부들도 있다. 사실 요즘은 그쪽이 더 많다.

산 위에서 봤을 때 나이 지긋한 농장 주인이 꾸벅꾸벅 졸고 있길래 성공을 확신했는데, 이렇게 잘 훈련된 개가 세 마리나 있었을 줄이야.


“서리한 건 그게 다냐?”


“예...”


아까 말과 달리 긴장한 듯한 도렌의 얼굴을 보며 펠버드는 어찌될지 감이 안 온다.

펠버드의 경험, 상식으로는 붙들려갈 게 뻔했다.

매질을 당하거나, 훔친 것보다 훨씬 과한 노동으로 갚게 되거나, 근처 경비대에 넘겨지거나.

그런데.


“하하, 요런 순진한 녀석들을 봤나.”


과일들을 확인한 농장 주인이 웃는다.


“셋이 와서 딱 손에 들 수 있을 만큼만 서리해가는 녀석들은 또 처음 보네 그려. 옛다, 이거 하나 더 가져가거라.”


눈동자가 커지는 펠버드.

농장 주인이 수박 하나를 더 도렌의 품에 안긴다.


“가, 감사합니다. 풍년되세요...”


도렌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제야 평소의 웃음기 있는 얼굴로 돌아온다.


“그려그려. 허지만 얘들아, 다른 농장에서는 더 하지 말거라. 요즘 농부들의 인심이 예전 같지 않거든. 살기 팍팍한 세상이니까 말이야.”


제국과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북부에서는 마수가 창궐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까지는 아이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얘야, 그 목걸이는 뭐니?”


농장 주인이 제나의 목걸이를 가리킨다.

제나가 목걸이를 상의 밖으로 꺼낸다. 펠은 긴장한다.

허나.


“엄마가 준 거예요.”


농장 주인은 다만 목걸이를 보며 경건히 성호를 긋는다.

수녀의 목걸이. 교회에서 나오고 결혼을 해도 간직하게 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지만, 진짜였다.


“아주 소중히 다뤄야 할 목걸이구나. 맛있게 시원하게들 먹고 더위를 잘 나거라.”


늙은 농부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세 아이가 다 똘망똘망하니 더없이 귀여웠다.


“풍년되세요!”


다시 제대로 세 아이가 다 같이 입을 모아 크게 인사한다.


‘선의...’


펠버드는 생각한다.

세상엔, 인간에게는 그런 것도 있다, 역시.


“햐, 끝내주게 맛있다! 이렇게 단 수박은 처음 먹어 봐!”


바라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셋은 과일을 나눠 먹고 다시 바라칼의 등에 타 달린다.

과일을 나눠먹을 때까진 신나게 웃고 떠들던 제나의 표정이 좀 가라앉는다.

이제 오빠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지평선의 해가 산머리와 가까웠다.


==========


안토니 백작은 참모들과 둘러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동부 지도가 펼쳐져 있다.


“다이어울프에겐 동부의 어떤 산도 넘는데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얼마나 험난한 지형이든 직선으로 해시츠 산을 넘을 것입니다.”


참모가 지도에 일직선으로 선을 쭉 긋는다.

회의 끝에 그가 결론을 짓는다.

그는 마수학에 일가견이 있는 자였다.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서 나타나는지는 베일에 쌓여 있으나, 마수들의 능력과 습성은 연구되고 있었다.

더구나 블랙 다이어울프라면 동부 지역에서는 두려워할 마수가 없었다.


“테이갈 자작에게 연결하도록.”


안토니 백작이 말한다.

집사가 수정구를 들고 온다.

통신 수정구.

왕국 어디든 연결되는 건 아니고, 동부 내 성들이라면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나 안토니 백작이오.”


-예, 각하! 말씀하십시오.


테이갈 자작의 태도가 깍듯함을 넘어서 있다.

무슨 용무시냐 묻지도 않는다. 테이갈 자작은 안토니 백작의 말은 그게 무엇이든 수행해야 했다.

둘은 봉신 관계다. 그것도 마나의 계약서로 묶인.

알려지지 않았으나 테이갈 자작가는 한때 파산의 위기에 처했었다. 그걸 안토니 백작이 막아주면서 둘은 지금의 관계가 되었다.

대대로 안토니 백작가의 큰 주춧돌 하나가 뛰어난 정보단이었다.


“펠, 그 아이가 해시츠 산을 넘고 있소. 블랙 다이어울프를 타고서.”


-예?


테이갈 자작은 마수를 길들인 펠, 그 이야기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안토니 백작은 일방적으로 설명한다.

통신 수정구는 엄청난 고가의 마법품,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안의 마력이 소실되는 소모품이다.


“해시츠 산에서 놈을 처리하시오. 살려두면 훗날 피스터 백작가가 안토니 백작가를 넘보려 들 수도 있을 듯하니.”


-아아, 예.


안토니 백작이 왜 그 아이를 해치려는 건지는 바로 납득이 된다.

가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기대하고 있던 귀한 인재를 잃었고, 생일날 그 창피를 당했으니.

하지만 다이어울프를 타고서, 라고?


“블랙이오, 블랙 다이어울프. 명심하시오, 테이갈 자작. 하지만 놈의 형제 둘이 함께 있으니 그걸 이용하시오.”


뚝.


안토니 백작은 통신을 끊는다.

테이갈 자작은 때때로 도박병이 도지던 자지만, 마나계약서에 금지를 명시하였고, 그걸 빼면 젊고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자다.

테이갈 자작가는 대대로 강한 기사단을 지녔다. 안토니 백작은 더 펠에 대해 생각치 않는다.

테이갈 자작도 안토니 백작의 생일 파티에 있었다. 후텐의 죽음을 똑똑히 보았다.

테이갈 자작이 기사와 병사, 마법사까지 차출해 해시츠 산으로 올려보냈을 때, 셋은 미케일이 싸준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제나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라칼, 처리해. 마석이 있다면 챙겨와.’


아직 거리가 있었으나 바라칼은 다른 인간의 냄새를 맡았고, 그것을 펠버드에게 보고했다.

바라칼이 일어나 수풀로 달려 들어간다. 이빨들을 훤히 드러내며 벌어진 입이 귀에 걸릴듯 한다. 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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