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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님의 서재입니다.

천외천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팔복
작품등록일 :
2014.01.22 13:19
최근연재일 :
2016.04.15 13:39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80,661
추천수 :
4,542
글자수 :
258,503

작성
16.04.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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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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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1쪽

혈채(血債) 2

DUMMY

"호오! 이거 패배 확정이었는데 갑자기 반전이야? 소설도 이런 급전개는 없겠어!"


"이거..짜고 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 경우가 세상에...참...나..."


표현은 다르지만 창천과 비천 모두 한 편의 연극 같은 상황 전개에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연극이면 좋겠군."


짜고 치는 연극이라면 많이 경험한 검천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경우는 없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무림맹의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죽었다고 알려졌던 백호궁의 소궁주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백호궁의 신물을 보임으로서 해결했다.


멀리 있어도 그 순간, 무림맹 사절단의 머리인 제갈청광의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흐름대로였다면 아마 무림맹 사절단은 신마궁의 뜻대로 휘둘리다가 무림맹으로 힘없이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제갈청광이 백호신마를 향해 일배하고 세가의 죄를 자복해 버렸다.


판세가 또 다시 변했다.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도 정신없어서 못 만든다.


'슬슬 결론을 내어야 겠군.'


검천의 심안이 독사신마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계획도 엉클어 졌는지 독사신마의 기파도 처음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


'...쉽게 풀린다 했더니만. 역시.'


문현 제갈청광.


확실히 뛰어난 인물이다. 만통지황이라는 제갈효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아 제갈세가를 이끌어갈 기둥으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아직 독사신마에 비하면 조금 모자랐다.


계책을 꾸미고 사람을 부리는 모사로서의 재주는 이미 제 조부에 버금가지만, 아직 자신의 정도(正度)를 찾지 못했다.


자신의 정도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고 어떠한 일을 꾸미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자 이정표이니 이것이 없는 모사는 그저 누군가를 따라하는 모사(模寫)꾼일 뿐이다. 흉내를 내는 재주로 이류가 될지는 모르나, 자신의 정도를 찾은 일류의 모사(謀士)와 비교할 때 그 재주를 따라갈 수는 없다.


만통지황에게 그것은 의(義)일 것이며, 사황성의 혈뇌신산은 주군의 대한 충(忠), 천마신교의 마뇌자는 적에게 심어주는 공포(恐怖)를 스스로의 정도로 삼았다.


이 밖에도 세상에 이름 높은 뛰어난 모사들 모두가 이러했으니 독사신마의 경우에도 자신이 있을 때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철저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갈청광은 조부의 것을 그저 따라할 뿐이었으니 두 사람의 간극이 컸다.


독사신마가 예상한 대로 흐름이 진행되었음은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라니!'


잘 나가다가 거의 목표에 도달했을 때 판이 뒤집혔다.


"복건 출신의 문용직. 친우의 죽음과 문파의 멸문을 듣고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원수들을 외면하였습니다. 죄를 청합니다."


"소림의 제자 심옥기. 백호궁의 멸문에 일조하였던 속가제자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북팽가의..."


제갈청광이 포문을 열고 판검대인과 소림신검이 분위기를 만들자 너도나도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잘못을 시인하고 죄를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파의 의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책사와 모사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정파의 특성이다.


"무림맹은 지금 이 시간부로 신마궁의 이전 행사에 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호궁의 혈채가 부족하다면 언제든지 말하십시오. 모두 갚겠습니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짜놓아도 꼭 가장 가능성이 적은 행동으로 모든 것을 엉클어 버린다.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 제갈청광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여 주신 무림맹주 만통지황 제갈효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잠시의 침묵. 제갈청광은 몸을 일으키며 더욱 큰 목소리로 내공조차 운용하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만,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만 말아 주십시오. 지난 무당혈야로 인해 이미 무림맹은 너무 많은 형제들을 잃었습니다. 군웅지적들의 죄는 인정하고 그들을 단죄하지 않았기에 치러야만 하는 대가임은 많지만, 그러함에도 죄 없는 형제들이 너무나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


"무림맹은 절대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일로 무림맹이 현판을 내려야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정파로서 지어선 안 되는 죄를 지었으니 정파의 정도로서 갚겠습니다. 신마궁이 정녕 백호궁의 뜻을 이어 받았다면 저의 청을 받아 주십시오."


"싫다면?"


"결국 싸움으로 끝이 나야만 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무사로서 명예를 걸고,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십시오. 연관 없는 다른 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무림맹의 이름을 건 일전을 원합니다!"


제갈청광의 눈동자가 빛나 보임은 착각인지.


각성을 한 제갈청광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상황을 계산하지 않고서도 군웅들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의기(意氣). 의기로구나.'


마침내 독사신마는 눈을 감아 버렸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이렇게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당당히 죄 값을 청하는 사람을 처벌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제갈청광처럼, 무림맹의 제갈효처럼 만인을 감복시킨 영웅은 더욱 힘들다.


백호궁의 혈채는 무리맹의 10년 봉문을 요구해도 과하지 않으나 지금 분위기에서는 설사 1년을 요구하더라도 심한 처사로 보이리라.


달리 계산하지 않아도 당장 들리는 군웅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으음..."


'아무리 혈채가 있어도 일을 너무 크게 벌렸어. 그걸 무마시키려고 무림맹의 죄를 부각시킨 건데 이런 식이 될 줄이야. 숨 돌릴 틈을 준다고 하다가 한 방 먹었어!'


무림맹주가 준비했던 수가 이제야 보였다.


이 순간, 죄를 가진 쪽은 무림맹이나 마치 거대한 신마궁이란 악에 맞서 정기를 잃지 않는 정도의 협사와도 같았고 이것이야말로 무림맹주 제갈효가 신마궁에 던지는 최후의 한수라 할 수 있었다. 이 한 수에 신마궁은 졸지에 악역이 되어 버렸다.


'졌다. 뇌서신마를 가늠할 처지가 못 되는구나.'


제갈효의 환상이 눈앞에 아른 거리다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백호궁은 명분을 가졌고 이 개파대전의 마무리도 원하던 대로 치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 여겼던 무림맹의 명예는 빼앗지 못했다.


결국은 무림맹주가 원하던 결론이다. 자신처럼 전면으로 무림맹주가 나선 것도 아닌데 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완패다.


[백호신마. 이제 끝을 낼 시간이오.]


독사신마는 준비해 놓은 말을 전음으로 백호신마에게 차근차근 일어주었다.


"진정으로 죄를 청하는가?"


백호신마가 연무장에서 땅으로 내려서며 입을 열었다.


독사신마는 그 모습을 그저 뒤에서 지켜만 보았다.


"진정으로 죄를 청합니다. 세가의 이름을 걸고 어떠한 대가라도 치루겠습니다."


현기 어린 제갈청광의 두 눈이 백호신마의 호안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진심이로군."


백호신마의 시선이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호왕음의 수법으로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데려와라."


그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는지. 신마궁의 고수들이 걸어 나왔던 천문을 뛰어넘고 나타나는 인영들이 있었다.


백묘(白卯). 흰 토끼가면의 여고수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다.


노인을 등에 업은 백묘가면의 여고수가 군웅들을 뛰어넘고 무림맹 사절단 앞, 백호신마의 옆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런데 그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무림맹 고수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어, 어찌?!"


몸에 힘이 없는지 백묘 가면의 여고수의 배려로 땅에 조심이 내려왔음에도 곧 주저앉는 노인이 무림맹 사절단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풍신개 대협!"


이구동성으로 노인의 이름을 외쳤다.


실종 된지 수개월이 지나 이제는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사라진 일차 무림맹 조사단의 책임자, 개방의 전대고수 풍신개 고몽이 노인의 정체였다.


갑작스런 풍신개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일 때, 백호신마는 아무 말 없이 풍신개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검지를 세우고 순식간에 다섯 군데를 점한다. 삼단전 전체를 막아 놓았던 금제가 풀리며 풍신개의 내력이 돌아왔다.


힘없는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개방의 절대고수만이 남아 두 발로 굳게 땅을 딛고 일어섰다.


"가시오."


"..."


가라는 그 한 마디에 풍신개는 백호신마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무림맹 사절단을 향해 걸어갔다.


다가온 풍신개를 보고 무림맹의 고수들이 이것저것 걱정의 말들을 건넸지만 풍신개는 피곤하다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들고 무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리고 군웅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막혀있던 물꼬가 트이고 군웅들의 말소리가 연무장을 채웠다.


"철저히 준비하란 뜻이다."


백호신마의 가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얼굴로 돌아왔다.


가면을 씀은 그 주인의 의지를 뜻하는 바이니.


술렁임과 소란 가운데서도 백호신마의 목소리만은 제갈청광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일전을 원한다고 했나? 그럼 그렇게 해주마."


"...!"


"구파일방, 팔대세가 모두에게 알려라. 찾아가겠노라고."


찾아오겠다?


"...전쟁을 원하십니까? 그것이 대가입니까?"


"아니. 내가 말하는 대가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떠오른 한 단어가 제갈청광의 말문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이..."


"잠시 중단했을 뿐이다."


다급히 말을 꺼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호한 한 마디 뿐.


"진정 무림맹의 현판 마저 걸 수 있다면 피하지 마라."


그것을 끝으로 백호신마는 몸을 돌렸다.


"나 신마궁의 백호신마로서 말한다!"


우렁찬 호왕음은 바로 수천 군웅들에게 향하는 것이었다.


백호의 눈길이 넓고 넓은 연무장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신마궁은 백호궁의 유지를 이어 받아 오늘부로 백호궁이 마무리 짓지 못한 마지막 행사를 치루겠다."


백호궁의 마지막 행사라.


그 말이 나온 순간,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스쳤다.


"천하군림행(天下君臨行)을 다시 시작하겠다!"


그것은 선언이었으니 무림사에 기록될 한 장면이었다.


"너는 가서 이 모든 것을 전하라."


"...전하겠습니다."


깊이 예를 표함으로서 길고 길었던 장의 끝을 알리는 것은 제갈청광의 몫이었다.


===


"과반수의 일백협사패(一百俠士牌)와 신협검(神俠劍)이 한 자리에 모일 시. 일회에 한하여 무림맹주령을 발동시킬 권한을 가진다."


"무림맹 규약 삼조 삼항이네."


"맞다."


"그거 다른 말로 천하군림행의 구절이잖아. "


문득 창천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백호궁의 마지막 비무행도..."


"천하군림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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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4 +1 16.04.08 930 22 7쪽
64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3 +1 16.04.04 987 19 8쪽
63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2 +1 16.04.01 968 22 9쪽
62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1 +1 16.03.28 1,124 20 12쪽
61 사천집합(四天集合) 5 +1 16.03.25 887 25 9쪽
60 사천집합(四天集合) 4 +1 16.03.21 1,090 25 9쪽
59 사천집합(四天集合) 3 +1 16.03.18 1,187 20 9쪽
58 사천집합(四天集合) 2 +2 16.03.14 1,150 29 11쪽
57 사천집합(四天集合) 1 +1 16.03.11 1,180 22 12쪽
56 백호신마(白虎神魔) 5 +2 16.03.07 1,192 23 10쪽
55 백호신마(白虎神魔) 4 +2 16.03.04 1,081 28 7쪽
54 백호신마(白虎神魔) 3 +2 16.02.29 1,309 35 10쪽
53 백호신마(白虎神魔) 2 +2 16.02.26 1,122 32 8쪽
52 백호신마(白虎神魔) 1 +1 16.02.22 1,511 32 8쪽
51 뇌서신마(腦鼠神魔) 4 +1 16.02.19 1,301 30 8쪽
50 뇌서신마(腦鼠神魔) 3 +1 16.02.15 1,349 30 9쪽
49 뇌서신마(腦鼠神魔) 2 +1 16.02.14 1,439 40 8쪽
48 뇌서신마(腦鼠神魔) 1 +2 16.02.13 1,467 40 8쪽
47 과거지연(過去之緣) 3 +1 16.02.12 1,469 45 10쪽
46 과거지연(過去之緣) 2 +1 16.02.11 1,481 41 7쪽
45 과거지연(過去之緣) 1 +2 16.02.09 1,468 38 7쪽
44 추격전(追擊戰) 1 +1 16.02.08 1,328 38 9쪽
43 무림집회(武林集會) 2 +1 16.02.07 1,430 37 9쪽
42 무림집회(武林集會) 1 +1 16.02.06 1,483 43 7쪽
41 비정무천(非停舞天) 2 +1 16.02.05 1,589 40 9쪽
40 비정무천(非停舞天) 1 +1 16.02.04 1,812 4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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